https://www.youtube.com/watch?v=c2_NAUcwROQ
본문: 삿 21:13-25
제목: 고식지계(姑息之計)
찬송: 586장
13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여기서 평화란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들을 다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다.
14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된 이 상황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 과정 중에 나타난 모든 악행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으로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16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실로는 여호수아 때부터(수 18:1) 엘리 제사장 때까지(삼상 4:3-4)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이 있었다. 여호와의 명절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명절은 포도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포도 수확과 관련이 있는 장막절로 추정한다.
20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은혜를 베풀어서 자신의 딸을 달라고는 하지만 이것 역시 사람을 강제로 납치해서 결혼시키는, 인격을 유린하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23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처음 회중의 장로들이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대책을 제시할 때에는 단지 붙잡는다는 의미로 ‘하타프’라는 동사를 사용했는데(21절) 23절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반항하거나 도망가는 여자들을 붙잡아오는 과정에서 폭력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는 ‘까잘’이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한글로는 21절과 23절에서 모두 ‘붙들어’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는 다른 동사를 사용했다.
24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의 핵심 구절이다. 두 번의 에피소드에 모두 4번이나 기록되어 있다(17:6; 18:1; 19:1; 21:25). 여기서 왕은 물론 인간 왕을 가리키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인간 왕을 가리킨다(신 17:18-19).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의미이다. 각기 자기의 소견에서 소견은 ‘눈 안에’라는 의미이다. 곧 각기 자기의 눈 안에 옳은 대로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사단이 하와를 속일 때 했던 말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창 3:5). 부패한 마음을 가진 인간의 판단을 기준으로 행했다는 의미가 된다.
신 17:18-19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온 회중이 림몬 바위로 도망해서 숨어 있는 600명의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서 평화를 공포했습니다. 평화를 공포했다는 것은 그들을 다시 언약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베냐민이 돌아왔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400명의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합니다.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한 지파가 빠지게 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 과정 중에 나타난 모든 악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으로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의미를 담고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회중의 장로들이 말하기를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책을 꾸밉니다.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실로는 여호수아 때부터(수 18:1) 엘리 제사장 때까지(삼상 4:3-4)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 곳에서 곧 여호와의 명절이 있는데 이 명절은 포도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포도 수확과 관련이 있는 장막절로 추정됩니다.
회중의 장로들이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했습니다.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명절에 춤을 추러 나온 실로의 여인들을 강제로 붙들어서, 납치해서 자기의 아내로 삼으라는 겁니다. 당연히 딸의 아버지나 형제들이 시비할 것입니다. 그러면 회중의 장로들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고 합니다.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은혜를 베풀어서 자신의 딸을 달라고는 하지만 이것 역시 사람을 강제로 납치해서 결혼시키는, 인격을 유린하는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희가 맹세한 것을 어긴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잘못이 없다는 말로 그들의 잘못을 덮으려 합니다. 베냐민 자손은 회중의 장로들이 명령한 대로 했습니다.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억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끝나자 이스라엘 자손이 실로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사사기의 핵심 구절입니다. 두 번의 에피소드에 모두 4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17:6; 18:1; 19:1; 21:25). 여기서 왕은 물론 인간 왕을 가리키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인간 왕을 가리킵니다(신 17:18-19).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할 때 소견은 ‘눈 안에’라는 의미입니다. 곧 각기 자기의 눈 안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 5절에서 사단이 하와를 속일 때 했던 말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사 시대 당시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부패한 마음을 가진 인간의 판단을 기준으로 행해서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사사시대와 다르지 않은가 돌아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