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_ 가장 중요한 신앙과 품성의 개혁
세 번째 엘리야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과 품성의 개혁일 것이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온 예수님의 재림을 열심히 외치며, 기독교에 들어온 오류를 식별하여 진리를 깨닫고, 외양적인 삶의 방식들을 개혁한다 해도, 진리대로 성화 되는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설교와 전도는 바로 그 사람의 품성과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 개혁자의 믿음과 겸손
침례 요한은 구주께로부터 선지자 중 가장 크다는 말을 들은 선지자였다. 그러나 그의 겸손한 태도와 말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의 말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침례 요한은 당신이 그리스도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겸손하게 낮추었다. 또한 그의 제자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가 새 선생에게로 향해졌다는 불평을 했을 때, 요한은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 다만 약속하신 분 앞에 보내진 메신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그분의 백성의 애정의 첫째 자리가 그리스도에게 당연히 속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9,30). 우리는 위대한 개혁자였지만, 너무 겸손했던 침례 요한의 신앙과 성품을 본받아야 한다. 겸손은 참된 그리스도인 품성의 대표적인 것이다. 겸손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특성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한 일꾼들은 이렇게 겸손한 사람들이다. 자부심이 강하고, 질투와 시기심이 많고, 비평적이고 흠을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다. 진리의 원칙에 확고하고, 의무에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사업에 열성이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겸비하며, 온유하고 부드럽고 인내하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에게 사랑을 나타내고 즐겨 용서해 주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 품성이 벌써 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또 그분에게서 배웠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은 믿음이나 신앙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리와 함께 가야 한다. 침례 요한과 같은 위대한 선구자가 그렇게 겸손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겸손해야 할 것인가!
2) 하나님과의 교제의 필요성
엘리야 선지자나 침례 요한이 하나님의 사업에 합당한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게 된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사람 다 주님과 깊이 교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엘리야도 산 중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기도하던 경건한 사람이었고, 침례 요한도 짧은 개혁사업을 하러 나오기 전까지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주님과 교통하며 지낸 사람이었다. 아무리 바쁘고 분주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으면 유혹과 시험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바라봄으로 변하게 된다. 거룩한 모본이신 주님의 완전하심을 명상할 때에 우리는 완전한 변화를 입으려는 욕망을 품게 될 것이며 주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 지음을 입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교제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데, 그 교제의 친밀 정도, 지속성, 교제하는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 등에 의하여 영향력이 결정된다. 만일 우리가 주님과 친숙한 교제를 지속한다면 그 교제를 통하여 흠 없고 모본 되신 그분과 같아질 것이다. 경험은 실험으로 얻은 지식이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경험, 체험적 신앙이 필요하다.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나왔을 때에 그의 얼굴이 광채로 빛나 수건으로 가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이상 중에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가서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받는 특권을 누렸다. 초기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찾고, 발견하고 따랐다. 그들은 집에서, 식탁에서, 골방에서, 들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교사와 함께 있는 학생들처럼 그분과 함께 있었고, 날마다 그분의 입술에서 거룩한 진리의 교훈을 받았다. 주님과의 교제는 그들을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었고, 마침내 맡겨진 사명을 다 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의 깊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교만과 자고심에서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낮은 자리가 그들에게는 너무도 명예로운 자리임을 느낀다.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거룩한 은혜를 힘입을 때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임하게 되며 그 능력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품성에 역사하게 되어 영혼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사귀고 주님과 매일 연합하는 것이 얼만 중요한 일인가? 그런 깊은 교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가 살펴보자.
3) 회개와 죄에 대한 승리
세 번째 엘리야의 사명을 이루기 원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우리는 진리를 알고 있으므로 우리 자신들이 영적으로 꽤 괜찮은 상태에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변화되지 못한 마음과 품성을 보고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권하신다. 그리고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신다. 많은 사람이 마음의 문 앞에 너무 많은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어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형제들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문을 열 수 있게 제거해야 할 악한 성질, 이기심들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마음의 문 앞에 출입을 방해하는 세속적인 것을 쌓아 놓고 있다. 이 모든 쓰레기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문을 열고 구주를 맞아들이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예수님과 매일 동행할 때에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정복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하나의 싸움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히 12:4)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죄를 간직하고 변명한다. 예리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을 쪼개지 않는다. 모든 죄는 버려져야 한다. 우리의 신앙 생애를 방해하는 모든 방종은 끊어 버려야 한다. 만일 우리 신앙에 거치는 것이 있다면 오른눈이나 오른손을 잘라 버리듯이 희생해야 한다. 사탄의 유혹에 계속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계속적이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서이다.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는 분명하고 능력 있는 진리 안에서 승리할 수 있다. 세 번째 엘리야가 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생애에서 먼저 죄를 승리하는 체험을 하며, 나아가 바벨론의 죄악을 경고하고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에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죄를 승리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을 전해야 할 것이다. 임박한 재림을 알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조는 사람들을 깨우고, 시대의 징조들을 알려주며, 다가오는 환난을 위하여 준비시켜야 할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엘리야들이 나타나기를 세상은 바라고 있다. 이 암흑과 배도의 시기에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충성할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에 취해서 깊은 잠에 빠진 형제들을 깨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엘리야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할 때에 진리와 하나님을 위해 홀로 설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침례 요한처럼 죄를 죄라고 부르며 권력과 지위의 여하를 막론하고 용감하게 곧바른 진리를 전할 용사들이 어디에 있는가?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세 번째 엘리야들은 이 세상이 영적 암흑으로 덮일 때에, 사탄의 배도하는 세력 앞에 모든 세상이 무릎을 꿇을 때에 홀로 서서 별과 같이 빛날 것이다. 머지않아 가장 극심한 환난과 시험의 때에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을 세상에 담대하게 외친 사람들의 머리에는 보석으로 꾸민 찬란한 면류관이 씌워질 것이다. 우리 모두 세 번째 엘리야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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