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 2018년 감독(국내 개봉 2022년) 하시모토 나오키
믿고 싶구나!
여덟 살 소녀 사야카(닛츠 치세 분)가 후세(오이다 요시 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할아버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나요? 누군가도, 무언가도 좋아요.” “뭘 기다리나요?” “할아버지는 기적을 믿나요?”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소녀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후세 할아버지 역시 누군가를,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물어보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무언가는 뭘까?” “믿고 싶구나.”라는 할아버지의 대답은 소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재일 동포 출신의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이주인 시즈카의 단편소설이 원작인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죽음과 상실, 이별과 기억, 위로와 공감의 영화입니다. 사야카는 얼마 전 반려견 루를, 작은 재즈 카페를 운영하는 이웃의 후세 할아버지는 40년 전에 어린 아들 고이치로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소녀도, 할아버지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절대 죽지 않았어.”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야카는 여전히 루가 옆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걷고 뜁니다. 건널목에서 루가 가장 좋아했던 붉은 색의 전철이 지나가기를 눈을 지그시 감고 기다리고, 둘만의 비밀 장소인 바닷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터의 풀밭을 뒹굽니다. 세상의 모든 반려견이 그렇듯 사야카에게 루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사야카는 파양 당해 버려진 루에게서 자신을 보았습니다. 루와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고, 혼자서 바라보거나 느끼던 것들을 함께 했습니다. 영화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그 순간들을 앙증맞고, 순수하고, 당돌하고, 사랑스럽고, 눈과 가슴 시리도록 따뜻하게 담았습니다.
그런 시간을 겨우 1년만 보내고 떠난 루. 찾아야 합니다. 그 ‘기적’을 위해 사야카는 후세 할아버지에게 “어딘가로 가요.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가 먼저 찾으러 가요.”라고 제안합니다. 후세 할아버지가 임시로 돌봐주는 또 다른 유기견 루스와 함께 바닷가로 간 그들은 아들과 루를 만납니다. 상상이면 어떻고, 꿈이면 어떻습니까. 그들은 다시 만났고, 영생을 보았습니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에서 역은 하늘나라로 가는 전철을 타는 곳입니다. 병이 깊어 죽음을 앞둔 후세 할아버지는 그 역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 아들과 루와 함께 그 전철을 타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사야카는 그 역이 어디인지, 그 전철이 어디로 가는지, 왜 함께 타기로 약속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공터의 낡은 철로로 열차가 들어오고 후세 할아버지와 고이치로, 루가 떠납니다. 사야카도 “제발 나도 데려가 줘.”라고 소리치며 달려가지만 탈 수 없습니다. 아주 긴 세월이 흘러야만 탈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기차가 도착하는 곳에서 루도 다시 만나겠지요.
그때까지 루는 사야카의 마음속에 살아있습니다. 소중한 존재이니까. 어쩌면 루스가 루의 다른 모습일지 모릅니다. 소중한 존재와의 작별과 그 의미, 기적과 하느님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사야카가 “루 고마워.”라고 하면서 루스와 함께 힘차게 산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보면.
[2022년 12월 4일(가해)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