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시 읽기> 앵두/고영민
시 쓰기 시험이 있다면 모범답안 가운데서 빠질 리 없을, 깨끗한 솜씨와 감각이다. “둥글고 빨간 화이바”의 그녀 얘기가 ‘앵두’란 두 음절의 제목에 받쳐서 산뜻한 균형과 더불어 생기롭다. ‘앵두’ 쪽에서도 마찬가지. “빨간 화이바”의 그녀와 나란히 놓임으로써 예기지 않은 쪽으로 이미지의 확장을 이룩한다. “가랑이를 오므리고” “간산, 부레끼를 밟으며”같은 대목은 얼마나 적절하고 맛있는 구절인가.
면소재지쯤에는 대개 다방이 하나둘 있고, 그곳에서는 고향과 이름이 분명찮은 처자들이 또 하나둘쯤 있어 이륜차로 커피배달을 한다. 잔과 보온병을 야물게 보자기에 싸고 탱탱한 청바지를 입고 입술과 손톱을 빨갛게 칠하고 간다. (영화에서는 대개 껌도 같이 씹는다!) 대서소와 이발소는 물론 부면장실 우체국 노인회 사무실에도 간다. 그들이 앵두다. 삭막한 시골이 그들로 해서 그나마 홍조를 띤다.
나는 자꾸만 시 소 r의 ‘그녀’를 커피배달 나가는 읍내 다방 처녀쯤으로 읽고 싶어 한다. 이렇다 할 근거도 딱히 없다.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같은 구절은 차라리 젊은 여교사에게나 걸맞을 느낌이겠고, 더구나 시의 정갈한 호흡으로 보건대 ‘나’는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다방 처녀가 차배달을 오게 할 성싶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젊은 애인이라거나 남편 대신 배달 온 슈퍼의 젊은 새댁이라거나 해서는, 무엇보다 ‘앵두’의저 당돌한 뉘앙스에 위배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소재지 다방 미스 아무개’가 맞다고 우기려 한다.(아무려나 외간 여성을 두고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것도 의젓찮은 노릇, ‘그녀’를 다만 ‘그녀’로 두는 게 예의이기는 하겠다.)
50년대 가요 <앵두나무 처녀> 이래로 앵두나무는 우물가에 있고, 우물가는 젊은 동네 여성들의 공간이었다. 앵두의 작고 빨간 보석 안에 서린 기운은, 수수한 듯 맹랑하고 도발적이다. 그것을 온 동네가 부푼다. 앵두의 둥근 빨강을 떠올리니, 다시 철없는 시절인 듯 마음 설렌다.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도서출판b,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