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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지 못합니다
출 13: 17-22 박조준 목사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가져와 발 전하는 것보다 같은 상태로 있으면서 고통받는 쪽을 택합니다. 미래에 확신이 없을 때는 더욱 그 렇습니다. 이것은 익숙함과 낯설음의 싸움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얼마 안 되는 사람이 모여서 교회를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압니다. 모두가 말없이 주어진 일들을 잘 해 나갑니다. 일의 규모가 작고, 손쉽고, 모든 일의 예측이 어 느 정도 가능합니다. 친구와 가족 간에 정이 오가고, 자연스럽게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대로 지내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새 얼굴들이 나타나고 교회가 성장하고 어쩔 수 없이 예배의 횟수가 늘어나고 새로운 단체, 새로운 사업들이 생길 때 전의 모습이 달라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극복하면 그 교회는 생동력 있게 자라가지만 변화를 싫 어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교회는 침체되고 말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와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못 되어 교회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봅니다. 교회가 오래 되면 될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짙습니다. 우리는 이 런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어느 지방의 교회는 같은 성을 가진 분들이 대다수인데, 그 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일하기도 어렵고 끼어 주지를 않습니다. 어느 오래 된 교회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 좀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면 저 사람이 언제 우리 교 회에 왔길래 저렇게 까불어? 하며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 니다. 교회는 언제나 새로워져야 합니다. 진리는 변할 수 없습니다. 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모습은 언제나 달라져야 합니다. 새 옷을 갈아 입어야 합니다. 세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날 때의 일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0년 간 종으 로 학대를 받으며 온갖 고초를 다 겪은 그들의 멍에를 벗겨 주시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새 땅을, 그들이 주인으로 행사할 수 있는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콜롬부스의 대서양 횡단 처녀 출하의 승무원들처럼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민수기 14장 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을 떠나 왔던고!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 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으랴? 라고 하면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습니다. 이 말을 누가 했습니까? 버림받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멍에를 벗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보호를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을 먹으며 안전한 곳, 젖과 꿀이 흐르 는 땅을 향해 가고 있는 출애굽한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돌아가기를 애원하며 애굽에서 먹던 고기 를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저들을 돌아가게 하려는 시험이 있었습니 다. 이들의 목적지는 어디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가나안 땅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 어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이 루시는 방법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일은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험의 길이 눈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전통적이고 방어적인 판에 박힌 생활 방식 을 버리고 그를 믿게 하기 위해 테스트를 했습니다. 첫째로, 익숙하지 않은 놀라운 일들을 통해 시험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바로가 백성을 보 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고 했 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가는 가장 좋은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 었습니다. 가깝고 덜 위험했습니다. 그 외의 길은 멀고, 힘들고, 위험하고, 홍해가 가로막힌 길 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 가운데 지금 놀라운 일을 당하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낯익은 곳에서 멀리 떨어져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한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움 속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둘째로, 원하지 않는 두려운 일을 통해 시험했습니다. 그들은 바다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두려 운 일이 생겼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옵니다. 남으로는 사막이요, 북으로는 험한 산맥 이요, 그리고 바로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독 안에 든 쥐처럼 되었습니다. 이 때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 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육지가 되게 하여 건넜습니다. 이것은 진도 앞바다에 일어나는 간만의 차에 의한 현상 때에 길이 나타난 것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다를 갈 랐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건너자 하나님께서는 쫓아 오는 애굽 사람들을 처리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힘든 일들을 통해서 시험했습니다. 목적지는 가까워오고, 먼길을 오느라 힘이 들자 이 스라엘 백성은 옛날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11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며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의 음식을 즐기려면 하늘나라의 식성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에 그들은 안도감을 원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편리한 대로였습니다.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기를 원했 지만 다른 것까지 빼앗기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낯이 익고 친근한 애굽의 나일 광야가 그리웠 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애굽에는 먹을 것은 넉넉했었습니다. 생선과 신선한 채소, 많은 양념들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바위틈에서 흐르는 미지근 한 물과 매일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만나를 가지고 끊 이고, 볶고, 굽고, 자르고, 지지고, 부치고 그야말로 안 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동안 「모세 부인의 100가지의 요리법」이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었습니 다. 오늘은 메뉴가 뭐지? 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방법으로 요리하지? 하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지친 저희들은 애굽이 더 좋게 보이고 가나안은 그 맛을 잃어가고 있었 습니다. 넷째로, 정당하지 않은 비난거리로 시험했습니다. 지각없는 몇몇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에 지도 자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민수기 11장 26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희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 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 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 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더니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그 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 하셨느냐?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먼 데 사람이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 사람이 괴롭힙니다. 남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가 비난합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이 지도자를 향해서 공 격을 하고 있을 때입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그랬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의 자리 에 앉아 본 사람은 누구나 말로 공격받는 그 고통을 압니다. 책임 맡은 사람치고 말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회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가 말 듣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정당하지 않은 비난거리로 시험할 때 잘 이겨야 합니다. 다섯째, 뜻하지 않은 저항을 통해서 시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 국경까 지 왔을 때 이들의 항의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스라엘 각 지파 중 에서 족장 된 자 한 사람씩을 보내서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40일 동안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하면서 에스골 골짜 기에서 딴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얘기가 여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 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불신의 큰 글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 있었습니다.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 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가에 거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 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 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심정이 없습니까? 거인의 발자국 소리에 두려워 떨고 있지 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 인생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거인의 배에 머리를 드리밀고 있습니까? 물론 그 첩자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에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약속을 잊은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거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인이 하나님의 상대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서시면 모든 것이 다 작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것을 누구 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 좀 어렵다고 해서 노예 생활하던 애굽을 그리워하고 돌아가려 해서도 안 되고,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왜 돌아가지 못합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1. 하나님께로부터 확실한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본문 21∼22절에 그 해답이 기록되었습니 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 하니라 했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마다 그의 백성들은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면 되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그랬습니다. 지금의 우리의 형편이 어디쯤 와 있는지는 모 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포기하지도 않으십니 다. 폭풍우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의 갈 길이 멀고, 거인들이 크게 보일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 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 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 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 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사 41:10∼13)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 리가 처참한 애굽으로 돌아가야 할 경우를 막아 줄 것입니다. 2. 낙심으로부터 건져 주었기 때문입니다.모세가 백성들로부터 비난과 비평의 대상이 될 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모세로서는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내려 주시며 그 짐을 덜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해 주십니다. 모세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의 짐을 나누어 져 줄 사람 70명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람은 큰 일을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갈보리교회가 이렇게 서 나가는 것은 저 혼자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 목사님들, 전도사님들 그밖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같이 힘을 모아서 일하시는 여러분들에 의해서 서 나가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같이 고통을 나누고 어려움을 녹여 나가는 분들 이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세에게도 다른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도와 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무죄를 입증해야 할 경우가 있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힐책할 때였습니다. 이때 하나 님께서 친히 그의 종의 편에 개입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 신을 변호해야 할지, 우리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여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 는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록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기대하 는 것과 다른 것이 보통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요셉을 보세요. 그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 오랫동안 고생했지만 나중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그의 간증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간증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익숙지 않은 일들 이, 원치 않는 두려운 일들이, 견디기 힘든 일들이, 어처구니없는 비난이, 뜻하지 않는 저항이 우리로 하여금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시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와 주시고, 지켜 주시고, 약속을 성취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마무리를 아름답게 지어 주실 것입니 다. 그러므로 겁내지 말고, 낙심치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광야 생활의 비결
출 13: 17-22 박조준 목사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21 - 22절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 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민족사 가운데 출애굽의 역사는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어떤 고난을 당했고, 하나님께서 자기 택한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시고 그들이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우고를 아시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큰 과업을 맡 기신 일, 그리고 모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나아가 자기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싸운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끈질기게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줄 것을 거부하는 애굽 왕 바로와 싸우며 그 땅에 여 러가지 재앙을 내리다가 마지막 열번째로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다 죽이는 재앙을 겪고 바로는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의 해방령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자유를 찾아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그 길을 비춰주는 빛이 요 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태양, 뜨거운 햇빛 밑에서는 낯설은 외적들의 공격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으므로 이스라엘과 대적들 사이를 가로막아 가리워 주며 보호해 주는 그늘이 필요 하였습니다. 지난 두 주일에 걸쳐 첫 40년 애굽 궁중에서의 모세의 고귀한 결단, 그리고 중간 40년 미 디안에서의 모세 자기 자신의 혁신을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생각할 말씀은 모세의 생애의 마지막 40년간의 일입니다. 그는 그의 동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향해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40년 간의 생활입니다. 흔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광야 생활하다가 마지막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역 사적인 사실을 영적으로 생각하여, 이스라엘의 애굽의 노예 생활을 우리가 예수 믿기전 죄악 된 이 세상에서 죄에게 노예가 되어 종살이 하는 생활로 말합니다. 그리고 애굽을 떠나는 것 을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애굽을 떠나기 직전 애굽에 마지 막 재앙인 처음 난 것을 다 죽이는 때 모세에게 하나님이 지시하여 이스라엘 사람들만은 그 전에 양을 잡아 피를 내어 그 피로 이스라엘 사람들 집 문설주에 바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문설주에 피 바른 집은 그 피를 보고 넘어 갔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큰 명절인 유월절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문설주에 발린 양의 피를 보고 죽음을 면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실상은 죄러 말미암아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지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받아들일 때 그의 피 공로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것처럼 우리가 예수 믿어 그 심령이 구원받 았지마는 이 육신은 이 세상에 살며 끊임없이 원수들과 싸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 도 바울은 성도의 생활을 선한 싸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 광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좌우를 분별할 수 없이 모두가 어둡고, 지척을 가 릴 수 없는 환경과 앞일을 예측할 수 없이 이 광야 생활을 하루 하루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이 어두운 마음과 앞 길을 비춰줄 빛이 요구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광야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 었습니까? 오늘의 본문을 봅시다. 1 .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의 택한 백성 앞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의 택한 백성을 인도하십 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먼저 미디안에서 양치고 있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양하였습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민 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는 그래도 또 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표징으로 보여 주셨지마 는 사양하였습니다. 주여, 저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말도 잘해야겠는데 저는 입이 뻣뻣 하고 혀가 둔합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셔요.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모 세야 !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 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 이렇게 그들 앞에서 행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 주님께서 먼저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시고 앞서 가시면서 담대하라 고, 겁내 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온갖 위험과 불안 그리고 절망 가운데 서 하나님을 따라 안전과 평안 그리고 희망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문자 그대로 광야 같이 길은 험하고 위태합니다. 그러나 겁낼 것이 없습니 다.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우리 앞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 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따라가면 실족할 염려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위인도 노래하였 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도다. 하나님은 오늘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양과 같은 우리들 앞에 행하시며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2 .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광야 생활에 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은 언제나 우리 인간의 필요와 형편에 응하여 주십니다. 사실 하나 님은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 재를 의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빌을만한 분명한 이유를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마땅 히 행해야 할 의무 앞에서 주저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용기와 담력을 주십 니다. 우리가 실패하여 낙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슬픔과 탄 식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평강을 약속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의 신앙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 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고 그 까닭은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보배이신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광야 생활하면서도 승리하며 사는 우리의 생의 비결입니다. 3 . 하나님은 광야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고 지켜주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 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 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오늘 본문 중에 낮에는 구 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였습니다. 여기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므로 끝까지 우리가 의지할만한 절대적인 능력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위험을 직면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두려워서 떨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도 주님은 우 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런 모든 위험과 공포와 환란의 때에도 함께 하실 뿐더러 새 날이 오게 하시고, 새 소망이 넘치게 하시며 내일에 기대를 가지게 하 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에 변화를 일으키시고, 계획하게 하시고, 건설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을 때 어떤 고난과 위험이 다가온다 할찌라도 절망하거나 겁내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믿지 못할 때 고난에서 시들어지 고, 꺼꾸러지고, 저 무서운 절망의 심연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 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주님도 분명 히 약속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히브리서에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를 버리지 아니하며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 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하였습니다. 4 .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도를 무시할 때 감당할 수 없 는 어려움과 징계를 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하는 동 안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을 때 겪은 일들을 말하면서 이것을 거울로 삼아 말세를 당한 우리가 바로 살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생은 반드시 큰 변화가 생 길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광야 생활은 정말 고달픈 길이었고, 실망과 후회가 거듭 되는 긴 여행길이었습니다. 무려 40년의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기쁨과 감격 그리 고 희망에 넘쳐서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온갖 역경과 위험이 따랐습니다. 그래 서 때로는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도 하고 애굽을 떠난 것을 후회도 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어떻습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개인이나 가정, 겨레 앞에 메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면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의심하게도 됩니다. 여러분 ! 이런 때일수록 의심하지 맙시다. 낙심하지 맙시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오늘 본문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의 땅의 길은 가까울찌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 하지 아니하셨다 고 하였습니다.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인도하였습니까? 그 다음에 보니 하나님이 광야 길로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 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보통, 사람은 평탄한 길을 원합니다. 가까운 길을 찾습니다. 수고 하지 않고 목적한 길에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친 광야의 길, 멀고, 고되고, 시 달리는 길을 통하여 약속한 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 나님의 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17절 하반절에 이 백성이 전쟁을 보 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였기 때문이었다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립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일수록 귀한 것을 압니다. 그것 은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 를 더 잘 아십니다.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도록, 괴로울지라도 목적지를 향해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서 우리의 갈 길을 다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로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홍해를 건너지 않을 수 없이 하셔서 다시 돌아설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광야는 평탄한 곳이 아닙니다. 좋은 길이 닦아져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쉽고 가벼운 것만 하나님의 축복은 꼭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때로 거칠고, 괴롭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망하지 않고 갈 수 있 도록 인도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결코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물 가운데로 지나도 함께 하시고 불 가운데로 지나도 불꽃이 우리를 사르지 못하게 지켜 주십니 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광야같은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 하나님 이 함께 하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다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이 우리 하나 하나에게 임하시기 를 축원합니다.
구름 기둥, 불 기둥
출 13: 17-22 박조준 목사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 읽은 본문 중에 21 - 22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사 가운데 출애굽의 역사는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가 출애굽을 읽어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어떤 고난을 당했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기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시고 그들이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우고를 아시고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큰 과업을 맡겨주신 일 그리고 모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나아가 자기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싸운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끈질기게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줄 것을 거부하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땅에 여러가 지 재앙을 내리다가 마지막 열번째로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죽이는 재앙을 겪고 바로 는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의 해방령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자유를 찾아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민중들에게는 그 길을 비춰주는 빛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태양 밑에서는 낯설은 외적들의 공격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으므로 이스라엘과 대적들 사이를 가로막아 가리워 주며 보호해 주는 그늘이 필요하였 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와 축복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 둥으로 그들에게 비추사 주야로 진행케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을 인도한 구름 기둥, 불 기둥 을 생각하는 가운데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 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좌우를 분별할 수 없이 모두가 어둡고 지척을 가릴 수 없는 환경 과 예측할 수 없는 앞 일을 가리기 위하여 우리의 이 어두운 마음과 앞길을 비춰줄 빛이 요구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항상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원수들의 해를 입을 위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를 쳐서 해치려는 무리들 앞에서 나를 가리워 주고 저들이 나를 겨누지 못하게 하고 나를 흔들어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줄 짙은 안개같은 구름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 .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택한 백성 앞에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인도하십니 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기 위하여 먼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고 있는 모세를 불렀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양하였습 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는 그래도 또 사양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표징으로 보여주셨지마는 사양하였습니다. 주여 ! 저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말도 잘해야 하겠는데 저는 입 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 었습니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밝은 자나 소경이 되 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 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 그들 앞에서 행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 기었노라. 우리 주님이 먼저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시고 앞서 가시면서 담대하라고, 겁내 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온갖 위험과 불안과 절망 중에서 하나님을 따라 안전과 평화와 희망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광야와 같이 길은 험하고 위 태합니다. 그러나 겁낼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행하시므로 따라갈 것 뿐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에게는 우리 앞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주 님만을 바라보며 따라가면 실수나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시인도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 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도다. 하나님은 갈 길을 모르는 양과 같은 우리들 앞에 행하시며 우리의 갈 길을 가리켜 주십니다. 2 .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은 언제나 우리 인간의 필요와 형편에 응하여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을만한 분명한 이유를 보 여주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행할 의무 앞에서 주저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용기와 담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실패하여 낙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슬픔과 탄식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평강을 약속하 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의 신앙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 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 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고 하였습니다. 3 . 구름 기둥, 불 기둥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며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오늘 본문 중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므 로 끝까지 우리가 의지할만한 절대적인 능력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위험을 직면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 리가 두려워서 떨고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위험과 공포 와 환란의 때에도 함께 하실 뿐더러 새 날이 오게 하시고 새 소망이 넘치게 하시며 내일 에 기대를 가지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생활에 변화를 일으키시고 계획하게 하시고 건 설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그것은 환란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실 히 믿게 된다면 어떤 고난과 위험과 절망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 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이 고난에서 시들고 거 꾸러지고 저 무서운 절망의 심연 속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 앞 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떠나지 않으신 것처럼 오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주님도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고 그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 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 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였습니다. 4 .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은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우 리의 생애를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은 반드시 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나의 생에 여러 방이 있다면 그 방의 열쇠를 모두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개는 맡기고 아직도 내게 가장 요긴한 것 몇 개는 그냥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까지 몽 땅 맡겨야 합니다. 혹 어떤 가정을 보면 같은 집에서 사는 부부간에도 비밀이 있습니다. 남편 돈주머니 따로 있고 부인 돈궤가 따로 있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라면서 그럽니다. 부부는 촌수를 따지면 무촌입니다. 촌수가 없습니다. 자녀는 일촌이요, 형제는 이촌입니 다. 우리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부부 관계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그를 따라야 합니다. 그 래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는 그들이 생각했 던 것보다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고달픈 길이었고 실망과 후회가 거듭되는 긴 여행 이었습니다. 무려 40년의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기쁨과 희망에 넘쳐서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온갖 역경과 위험과 실망이 뒤따랐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 나님과 지도자를 원망도 하고 애굽을 떠난 것을 후회도 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짓기 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어떻습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짐 이 개인의 생활에, 가정 생활에, 때로는 나라와 겨레 앞에 가로 놓여 억누르는 것을 경험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왜 이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고난과 위험이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고 의심하게도 됩니다. 여러분 ! 이런 때일수록 낙심하지 맙시다!! 오히려 우리는 여기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 과 섭리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찌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 도하지 아니하셨으니 하였습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인도했습니 까? 그 다음에 보니 하나님이 광야 길로 백성을 인도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은 평탄한 길을 원합니다;. 가까운 길을 찾습니다. 수고없이 목적한 곳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친 광야의 길, 멀고 고되고 시달리는 길을 통하여 약속한 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원하 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가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배후에 숨은 뜻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밝 아져야 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 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17절 하반에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였기 때문이었다 고 하 였습니다. 여러분 !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립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일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그 것은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여러분 !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도록, 괴로울찌라도 목적을 향해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서 우리의 갈 길을 다 가 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로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홍해를 건너지 않을 수 없이 하셔서 다시 돌아설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평탄한 길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쉽고 가벼운 것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때로는 거칠고 괴롭고 험한 길이나 망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결단코 택한 백성인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 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 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물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 43 : 1 - 3).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은 오늘 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은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바라보 십니까? 그것을 따라 가십니까? 자신이, 가정이, 이 겨레가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따릅니 까?
천국 가는 지름길
(출 13:17~22)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 시간에 “천국 가는 지름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때 가는 그 길은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평지로만 형성된 지중해 해변을 따라 가는 해안길이고, 다른 하나는 시나이 반도를 통과하는 광야길이었습니다.
해안길을 택하면 홍해와 맞닥뜨릴 필요가 없고, 요단강을 건너지 않아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말렉, 모압, 암몬, 미디안, 에돔, 헤스본, 바산과 같은 수많은 적들과 교전할 필요도 없습니다. 블레셋 한 족속만 상대하면 되고 불과 보름이나 한 달이면 도착하는 훨씬 편하고 쉬운 길이 해안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요셉 야곱이 다 해안길을 이용해서 애굽으로 내려오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해안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반면 그 많은 인구가 광야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관점에서 보면 광야길이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은 믿음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광야의 여정을 통해서 참 믿음이 어떤 것인지 배워야 했습니다.
이처렴 천국 가는 지름길은 무엇일까요?
1. 예수 믿음이 천국 가는 지름길입니다.
18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했습니다. 먼저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이 뭘까요? 고전10:1-2에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홍해는 신약에서 세례의 상징입니다. 세례는 예수 믿는 자에게 베푸는 구원의 표시로서 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요5:24-25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뚝딱 옮겼으니 이보다 더 지름길이 있겠습니까? 방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말고 다른 길 찾으면 찾을수록 늦어집니다. 그래서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2. 영적 싸움이 천국의 지름길입니다.
17절에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가나안으로 가는 최단코스는 해안길을 따라 블레셋의 가사 지역을 통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한 달 이상 걸리는 광야 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호전적이고 철병거까지 갖추고 있어 믿음 약한 백성들이 그들과 전쟁하지 않으려고 출애굽을 후회하고 서둘러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지름길의 귀한 힌트를 줍니다. 전쟁을 불사할 마음을 가진다면 그들 앞에는 해안의 평원지대로 통과하는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믿음을 방해하는 세력과 싸우고 승리하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은혜를 빨리 받습니다. 그리고 탄탄대로가 그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쓸 사람들은 대개 이 길을 갔습니다. 크게 쓰신 종들을 보면 상상할 수 없이 강한 신앙훈련을 시켰습니다. 한순간도 방심하면 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영적으로 치열하게 싸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은혜 받고 능력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이 길을 가게 한다면 아마도 예수 믿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세요. 그들은 빼앗기고 갇히고 죽고 추방과 온갖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랬지만 그 길이 은혜 받는 최단거리의 길이었기에 그들은 그 속에서 목숨 바쳐 신앙생활하다가 불과 며칠 만에 능력 있고 해처럼 빛나는 성도로 일군으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꼭 박해를 받아야 되는 건 아닙니다. 박해 받을 때 이상으로 신앙생활하면 됩니다. 목숨 바쳐 신앙생활하면 동일한 결과가 옵니다.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그래서 위대합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들이 북한에 가서 교회 세우겠지만 반대로 그들이 와서 한국교회를 성령으로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런 교인들 한 명만 와도 지역을 복음화시키고도 남을 것입니다.
3. 교회생활이 천국의 지름길입니다.
21-22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러한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얼마나 광야에서 방황했겠습니까?
이처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천국 길을 가면서 인도자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불기둥 구름기둥과 같이 지금도 여러분을 인도하는 기둥이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래서 딤전3:15에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했습니다.
천국 가는 길에 교회의 지도를 받으면 더 잘 갈 수 있습니다. 행7:38에 보면 “광야 교회”라고 한 것처럼 광야는 교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천국 가는 길을 교회가 아니면 어디서 가르쳐 줍니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 받는 것도 교회 아니고 어디서 양육을 받습니까?( 엡4:11-12).
그러므로 무교회주의는 사탄의 시험입니다. 교화와 목회자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혼자서 말씀 하나 깨닫는데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데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수천 년간 검증하고 검증된 축복의 진리를 거저 쉽게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목자 없는 양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잘 출석하시고 가르친 바를 따라서 열심히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4. 몸 드려 섬김이 천국 가는 지름길입니다.
민20:17에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고 하라" 왕의 대로는 다메섹에서 아카바만에 이르는 남북으로 뚫린 오래된 무역로입니다.
그러나 에돔왕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막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또 다시 먼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자손인데도 도와주지 않고 군대로 앞길을 막았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체도 형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마음으로도 해야 하지만 몸을 바쳐서도 하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되 예수님 말씀처럼 목숨까지도 바치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육신은 에돔과 같아서 자꾸 막아서고 막아서며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몸이 신앙의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구로 길들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왕이 대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율법으로도 노력으로도 선행으로도 명상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되 더욱 열심히 기도생활 교회생활하면서 몸과 마음 다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탄과 싸워 미래 천국은 물론 현세에서도 온전히 천국을 경험하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新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