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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5.성탄절설교
눅2;14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
예수님의 성탄은 온 땅이 기뻐하는 은총의 계절입니다.
거리마다 상가마다 케롤과 함께 붐비고 있는 이즈음에 크리스마스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탄일이 명시 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초기에 와서부터 범 교회적으로 지켜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와 알마니안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 교회의 해석 차이로 서방 교회는 12월25일을, 동방교회는 1월6일을 각각 성탄절로 지켜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양쪽 모두의 날짜가 그 지역 이방신의 축제일과 중복됨으로 인하여 점차적으로 성탄의 본래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Son of God 의 탄일이 Sun of God(태양신의 아들을 섬기는 제전)인 saturnaliafestival 의 겨울 축제의 기간과 겹치게 됨으로 인하여 많은 혼동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기간에 Merry making, 이나 그날의 의미로 사용했고 소나무에다 태양신을 상징하는 장식을 사용했으며 굵은 장작을 때면서 새해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초기 청교도들은 이 모든 이방의 풍습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엽에 번성하는 상업주의에 부응하여 이 풍습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만의 절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술취한 사람이 교회당 담벽에 오줌을 누면서 아니 교회에서도 성탄절 노래를 부르는가? 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8-14 기쁨의 좋은 소식 굿 뉴스
찬 양 :115, 119, 121, 123, 125.
오늘은 전 세계의 80억 인구가 다 알고 있는 성탄절입니다. 성탄이란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 성자가 탄생하신 날만이 성탄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파에 따라서 성탄절이 다릅니다.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1.6일을 성탄절이라고 지키고 있고, 아르메니아 정교회에서는 1.19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다만 기독교와 캐톨릭 교회에서만 12.25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근래에 와서 불교계에서는 4월 8일을 성탄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신이 될 수가 없고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소식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이 있고 좋은 소식이 있는가 하면, 슬픈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10절 그런데 천사들은 크고도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어느 한 두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좋은 소식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에게라도 미치는 기쁘고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에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1.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어야 합니다.(10절)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어째서 기쁜 소식입니까?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구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신 소식은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것은 기쁜 소식 중의 기쁜 소식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군대 간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든지 전화가 오던지 하면 부모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오랜 날 동안 병상에서 고통을 당하던 환자에게 의사가 말하기를 당신 병이 나았다는 말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잠25: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2. 온 백성에게 미칠 수 있는 큰 소식이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 10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신 것이 어떻게 온 백성에게 미치는 좋은 소식이 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지구촌 곳곳에는 나라마다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는 공산권의 국가와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들에게까지 예수의 복음은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의 80억 인구가 오늘 이 성탄절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3. 나를 위한 소식이어야 합니다.
11절 말씀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30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좋은 소식은 남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좋은 소식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구주로 오셔서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아서 좋은 소식이 되었지만 그 소식이 바로 나에게 해당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집의 좋은 소식이 나에게도 좋은 소식은 될 수 없습니다. 다소 얼마간의 기쁨을 함께 하는 공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옆 사람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은 바로 나의 구원이 되어야 합니다. 옆 사람이 구원받는 것도 기쁘고 좋은 일이지만 내가 구원받아야 하지 나는 구원받지 못하였는데 옆 사람의 구원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옆 사람이 은혜 받고 성령 받고 기뻐하며 좋아하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은혜 받고, 내가 성령 받고, 내가 기쁨의 생활을 하고, 내가 내 믿음 가지고 천국 가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4. 평화가 있는 소식이어야 합니다.
14절 말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이 땅에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느 날 옥중에 갇혀 있는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당신이 오실 그분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마11: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오셔서 첫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21,26) 라고 말씀하셨고, 12년간을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그 병이 깨끗이 나았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라고 하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탄생하신 소식은 평화의 소식입니다.
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식이어야 합니다.
본문 14절 말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도 그것이 사람만 기쁘게 하면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소식이어야 합니다.
분명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를 구원하여 하늘 백성이 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사랑하는 시온성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결론 =오늘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오늘 우리들에게 전하여 졌습니다. 바로 나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시고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우리들은 의례히 매년마다 성탄절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성탄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을 내가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22년의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성탄주일눅2;14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
예수님의 성탄은 온 땅이 기뻐하는 은총의 계절입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오늘 말씀은 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고, 구유에 누이신 사건입니다. 저자는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가 어떻게 해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었으며, 구유에 누인 아기가 어떻게 구주가되시는 가를 증거 합니다. 그리고 첫 번 크리스마스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비천한 구유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2장14절에 보면 천사의 찬양 가운데 성탄의 세가지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둘째는 땅에서는 평화, 셋째는 사람에게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께 영광
첫째로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인간과 대화하는 통로로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의 뜻과 예정을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요4;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다 먹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다윗동네에 즉 베들레헴에 그리스도가 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 전에 미가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한 것인데 이 예언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미가5: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2.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14절)같이읽기)
그가 기뻐하시는 자들에게는 평화, 이 말씀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가 기뻐하시는 백성은? 자기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창1:27)그런데 그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심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 함에 있습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이는 그가 자기백성을저희 죄에서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
살전2:12),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함이니라.
그러나 자기 백성이 예수님을 영접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비극을 연장시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요1:11), 그러므로 주님은 이 골목, 저 골목 다니시며 이상하다! 이상하다!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즉 자기를 믿어야 할 자가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막6:6), 마침내 주님은 우셨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맞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눅19:41-42)
3)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무지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평화의 도를 받고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겨야 할 터인데 오히려 그 기뻐하심을 입은 백성들(자기 백성들)이 예수님을 미친자(막3:21), 귀신들린 자(요10:20) 이단 등으로 몰아 부치고 끝에는 십자가에서 못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평화의 도를 깨닫는 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고전2:8)
결론
예수님은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먼저 오셨으나 저들이 주님을 배척함으로(신28:48)의 기록된 말씀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그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이 예수님을 영접지 않음으로 큰 불행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은 3가지로 이루어집니다.
1. 하나님(말씀)을 아는 것입니다.2. 하나님(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말씀)을 사랑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의 성탄 축하 (마2:1-12)|말씀………성탄절☆설교
동방 박사들의 성탄 축하는 사 복음서중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있습니다.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에 오늘 날 우리에게 주시는 깊은 의미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초기전설에는 열두명이 왔다고 하지만 세가지 예물을 드렸다는 점에서통설 세 사람 - 카스파르.멜키올.발타잘이라 하며 멜키올 박사는 백색 머리에 긴 수염을 갖었으며 황금을 드렸고
카스파르 박사는 젊고 수염을 기르지 않았으며 얼굴이 붉게 생긴 미남으로 유황을 예물로 발타잘 박사는 새로 수염을 길렀고 거므스레한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합니다.
아마 모든 인종의 대표격을 나타내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1. 본문 2절-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 - 페르샤나 아라비아 같습니다.
그곳의 유명한 점성술사 같습니다.
지난 날 유행가요에도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샤 왕자 ..."
옛날의 제사장이나 점성술사는 오늘 날 무당이나 점쟁이 같은 하등 종교인이 아닌 지도급 인사 입니다.
오늘날도 아프리카나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큰 일을 감당 합니다.
저들은 어떠면 왕자 였는지도 모릅니다.
페르샤에서 베들레헴 까지는 머나먼 길 - 여행길 입니다.
오늘날 처럼 교통이 발달한 사회도 아니니 한껏 낙타나 타고 여행 하였으리라 믿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골짜기와 사막을 통과하는 고난의 길쓰러질 때도 있었을 것이고 돌 뿌리에 발을 상하기도 하며 사나운 짐승을 만나는 인생 길 입니다.
그 어려운 길을 마다않고 유대인의 왕 - 왕중 왕.구세주 예수님.아기 예수를 찿아 왔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찿아 오는 길은 순탄 하지만은 않습니다.
어려워도 바로 찿아 오기만 하면 복인것입니다.
가룟 유다 역시 예수님을 처음 만남은 좋았지만 잘못 판단으로 인생을 망쳤습니다.
우리는 동방 박사의 교훈에서 험난한 인생길 이지만 예수님을 바로 찿아 갑시다.
구세주의 탄생을 진정으로 축하하고 저들과 같이 경배 합시다.
가지 가지의 유혹도 물리치고 고난에서도 예수님을 생각하고 승리 합시다.
이단, 사이비의 유혹이 아무리 달콤 할 지라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 꼭 예수님을 만납시다.
별을 보고 출발한 저들은 말 구유가 아닌 집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 달이 지났을지도 모릅니다.
저들은 먼길에서 지치고 힘 들었지만 낙심치 않고 별이 머문곳에 이르러 결국 아기 예수님을 만나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 하더라" 성경은 말씀 하십니다.
오늘 날 우리의 암울한 현실에서 기뻐할게 하나도 없지만 성탄절을 마지하여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 하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 12절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예물 또는 선물은 세상 사람 누구나 좋아 합니다.
그래서 뇌물까지 생겨 뇌물 주고 받다가 인생 망치는 사람까지 생겨 났습니다. 옛날의 성탄절은 참으로 흥겨웠습니다.
그게 물론 진정한 축하는 아니지만 그립습니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상점마다 성탄 카- 드.
여기 저기 성탄 트리가 우뚝 우뚝 서있고 새벽 송은 발을 동동 굴리면서도 새벽 공기를 가르고
어린이로 부터 장년에 이르기 까지 함께 집집마다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받은 과자등을 나눠 먹고 밤샘의 고단한 몸을 교회 바닥에 누워 잠자고 나서야
예배드리고 점심에 떡국 먹는 걸로 하루를 마감 했지요
"아! 옛날이여" 이선희의 노래 같네요
그런데 요사히는 너무 삭막 합니다.
물론 이것이 성탄 축하의 진 면목은 아니지만 좀 흥겨운 성탄.즐거운 성탄, 기쁜 성탄이 되었으면합니다.
웃음이 사라진 오늘에 성탄이 우리에게 웃음으로 닥아 오고 앞이 않보이는 현실에 환하고 밝은 기쁜 소식으로 이어지는 금년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동방 박사의 예물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학자 오리겐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믿고 또 하나님으로 믿으며
또 사랑으로 믿는 믿음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예수께서 왕이시요 제사장이시요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을 상징 한다고 했으며 어떤 신학자는 믿음, 기도. 죽음을 뜻 한다고도 했습니다. 저들은 최상의 예물을 아기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는 믿노라 하면서도 그저 뜨뜨미지근한 신앙
헌신 한다고 하면서도 너무도 초라한 헌신
예수로 죽겠다 하면서도 세상적으로 잘 살 궁리만 하는 믿음의 형태를
동방박사들과 같이 최상의 예물, 최대의 신앙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 왕의 왕으로 경배 합시다.
예수님을 모십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내 인생, 내 민족을 전적으로 마낍시다.
이번 성탄은 우리의 신앙, 예수님께 최상의 예를 올리고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본문 12절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가니라"
성경에 나타난 헤롯은 거의 나쁜 통치자 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헤롯 역시 예수님을 자신의 적으로 알고 죽이려고 거짓으로 자신도 예수님께 경배하러 가겠다고 속임수를 씁니다.
마귀의 괴괘는 이와 같은 얄팍하고 달콤한 속임수 입니다.
이단 사이비의 감언이설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죽음 뿐 입니다.
박사들은 꿈의 계시대로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갑니다.
우리가 가는 길도 세상 길이 아닌 다른 길, 진리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헤롯은 박사들이 오지 않자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에 사내아이들을 두살 아래 모두 죽이는 잔인함을 보입니다.
하나되고 화해합시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듭시다.
또한 악한 세력은 기독교를 미워하고 없애 버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간 기독교는 이 땅의 자유 민주주의를 쟁취 하고저 무수한 피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이지만 정의의 종교이기도 합니다.
아모스 기자는 암5:24에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지어다"하였습니다.
악의 편에 서지 말고 정의 편에 서야 합니다.
첫댓글
2022.12.25.
성탄절 예배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