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 81사단 문화지도원 최순희 노고단 정상 86년 10월 #1 86년 10월, 노고단 정상. 제문을 읽는 이는, ‘남부군 81사단 문화지도원’이었던 최순희선생이다. 젯상이 어마하다. 최순희선생의 빨치산 동지들에 대한 마음이다. 당시 노고단대피소 대장이었던 함태식선생도 보이고. 어떤이가 오래전, 이 사진을 보냈는데, 메모한 내용이 사라져버려 잊고 있었다. 당시 노고단산장지기였던 고 함태식선생의 말이다. "최순희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남부군 문화공작대에서 문화부장을 지낸 여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지리산에서 체포될 때, 다시는 지리산 한 계단도 오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동지들이 피로 범벅이 되어버린 산과 영원한 단절을 맹세했던 것이다. 그러나 커다랗게 구멍이 나버린 한 많은 가슴은 결코 아물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잡지에 기고한 법정스님의 글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는 송광사 불일암으로 법정스님을 찾아가 과거사를 이야기하면 신세타령을 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법정스님이 입을 열었다. "현장으로 가보세요." 산으로 다시 가보라는 이야기였다. 빨치산 출신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부부와 함께 전라선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녘이 되어 섬진강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하자 최순희는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화엄사 집선대를 오를 때까지도 울었다. 그리고 노고단에 올라와서는 꼭 혼이 나간 사람처럼 온 산에 대고 절을 했다. 나는 그들을 맞아 노고단 정상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그녀는 노고단 정상에 뜨거운 커피를 뿌렸다. 서울대 출신 빨치산들이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죽어가면서도 커피 한잔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혼이라도 있는지. 노고단의 붉은 땅에 뿌려진 커피가 금세 땅 밑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 . 그녀와의 첫만남은 이랬다. 2008년 5월 1일, 소설 <빨치산의 딸>의 주인공인 전남빨치산 정운창의 장례식장에서 였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전 당신을 5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때를 보며 기다렸습니다. 5년이 지났군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왜?" "당신을 알고 싶어서요." "무엇하게?" “다큐 찍으려고요…” "니까짔게.. 너! 내가 침묵으로 말할 때 알아들을 수 있어? 너! 보이지 않는 것도 찍을 수 있어? " . . 이렇듯 5년의 기다림 끝에.. 혹독한? 테스트를 거치고 나서야 다가갈 수 있었다. #2 2008년 9월 17일 빗점골 이현상사령관 기일. -물론 난 배신했어. 피한방울까지도 바치겠다고 한 맹서를 배신한거야. 그 때 손들고 나올 때 말이야. 그 때 죽었어야 하는데... 육군본부는 날 마음대로 쓰먹었어. 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동물로서 잡혀있었던 거야. " 조감독! 너도 이현상선생님께 절 해!" 마침내 내가 이 여인에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엎드려 절을 올리는 등 뒤로 그녀의 한마디가 흘렀다. "이현상선생님! 이 싸가지없는 조감독을 잘 가르쳐 주십시요!" 그녀에겐 세 개의 삶이 있었다. 북에서의 삶, 전쟁 시기 지리산빨치산의 삶 체포 후 남한에서의 삶. 남한에서의 그녀의 삶은 차라리 죽음 보다 못했다. 평생을 회한으로 살았다. '남부군 81사단 문화지도원 최순희' 야말로 그녀에겐 최고의, 진정한 삶이었다. "북에 있을 때 잘나갔지. 콧대가 아주 높았어! -왜 북에서 내려왔죠? -조국전쟁 시기, 진다고 생각도 못했어. 문화선전상 허정숙까지도 말렸단 말이야! 근데 난 당원이야.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이럴 때 뭔가 해야지. 입 만으로 개소리들 하지 마라. 큰소리 치며 내려왔지. 내가 북에 있었으면 적어도 문화성 제일 높은 자리를 했을거야.. 매년 9월 17일이면 빗점골 이현상사령관 전사지로 찾아와 제를 지낸다. 제물도 직접 준비한다. “어느 가을날 벽소령 군사도로에서 쉬고있던 우리 부대원들에게 우연히 지나가시던 선생님이 부대원들에게 소중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동무들! 인생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동무들 자신이었음을 잊지 맙시다." 언듯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지만 그 말씀이 메이드인 USA 총뿌리 앞에서 두손을 들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60년여를 살아온 나의 삶의 기둥이 되어 주었습니다. .. 남조선 지리산 남부군 81사단 문화지도원 최순희가 올립니다." 그리곤 소지를 하고 소주 한잔을 올렸다. - 어떤 임무를? - 광주문화예술총연맹 감독으로 내려왔지. 전주까지 내려오다 전선이 후퇴하게 되 완주군당에 소속되어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됐지. 빨치산이 안되었으면 난 아주 나쁜 인간이 되었을 거야.... 북에선 화려했거든. 고생을 몰랐어. 내가 '평양국립예술극장'에서 오페라를 3개 했어. '카르멘' '바보온달' '춘향전' 3개를 주연했지. 춘향전 공연할 때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하던 최승희 한테 무용지도를 받기도 했지. 그러니깐 우린 상류층이잖아. 계속 있었으면 개판이었을거야 빨치산하면서 착해졌지. 함께 고생하면서 인간의 정도 배우고... 인간이 된 거지. 그 콧대를 그대로 가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갔거든. 산에서도 난 화장을 했어. 무대 체질이잖아! 동지들이 전부 날 좋아했지. 인기가 좋았지. 나중에 체포됐을 때도 그 콧대를 그대로 가지고 갔지.... 물론, 엄청 두들겨 맞았지. '뭐 이런게 다있어' 하며... 내 당원증 번호야! 167663. 아직도 외우고 있어. 이게 나야! 남부군 문화지도원 최순희." 남부군 81사단 정치지도원 이옥자. 26년 생. 남부군 81사단 문화지도원 최순희. 24년 생. 이옥자는 최순희에게 언니라고 부른다. -배운것도 없는 니까짓게 무슨 정치지도원이라고.. -언니 같은 쁘띠부르죠아가 무슨 문화지도원이라고.. -쁘띠가 아니고 난 부르죠아였어..부르죠아가 지리산에서 인간이 된거야. 그러니 빨치산이 위대한거야... 둘은 만나면 늘 티격태격이었다. 극빈농 출신의 정치지도원 이옥자와 부르죠아 출신 문화지도원 최순희. " 너! 약속 할 수 있어? 나 죽으면 말이야.... 화장해 지리산에 뿌려줘. 뼛가루를 가방에 넣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조금씩 뿌려줘. 그리고 천왕봉에서 마지막 남은 한웅큼을 확 뿌려줘!... 할 수 있겠어? " .. "네. 제가 하겠습니다.” #3 2015년 11월 21일 별세했다. 입시 피아노를 가르치며 삶을 지탱했다. 그녀가 말했다. "가르치는 것도 '빨치산' 이야! '확' 끓어 오르는 것은 주고, 그리고 '확' 휘어 잡는 거야. .. 어때! 남부군 81사단 문화지도원 같애?" 당당했다. 그녀는. 그러다 슬픈 눈빛으로 그녀 자신에게 말했다. "나.. 미스 최, 내가 높이 평가해. 그 고생하고도 이렇게 살잖아. 어떨 땐, 나 불쌍해 죽겠어. 자식 하나 없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어때 불쌍하지? 나....." 그러다, 느닷없이.. "너, '루 마찰스키'가 누군지 알아? " "아뇨,, 누구죠?" "레닌 시대 때 정치가야. 나중에 반동으로 죽었지. 그가 이런 말을 했어. '끓어 넘치는 정열이 나로 하여금 혁명가가 되지 못하게 했다.' " 시대와 불화했던 여인 그녀를 기억해 줄 이 조차 아무도 없다. 너와 나, 외엔. 빗점골 이현상선생 곁에 목비 하나 올렸다. 편히 잠드시길. . 2015년 12월 많은 눈이 내려 약속을 지키진 못했다. 그녀의 일부는 지리산 노고단에 일부는 빗점골 이현상선생 곁에 모셨다. <그리운 이들의 품에 안기다 남부군 81사단 문화지도위원 최순희‘ 1924.2.10-2015.11.21> 최순희 작사 작곡 피아노 노래 ‘지리산 곡哭’ https://youtu.be/u62MzSB3ueI ‘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 기슭엔 오늘도 옛같이 안개만이 서렸구나 피아골 바람 속에 연하천 가슴 속에 아직도 맺힌 한을 풀 길 없어 헤매누나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 비만 내리누나’ . . #진달래산천 *** 치밭목 대피소 앞, 왼쪽분은 함태식 선생 모시고 있었던 분으로 이름은 김인환 치밭목 산장으로 제물을 지고 올라온 것으로 보입니다 붉은 패딩 입은 분은 송연목씨입니다. 김인환님의 연락처를 아시는 분….알려주셔요, #진달래산천 #1 #2 #3 댓글 쓰기 블로그 보내기카페 보내기Keep 보내기메모 보내기기타 보내기 펼치기 인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