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과 청렴의 상징 능성 구씨 인물들ㅣ두문동 72현 구홍ㅣ
ㅣ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구인문ㅣ구봉령ㅣ구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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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홍(具鴻)[?~?]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구영검(具榮儉)이며, 아버지는 소부윤을 지낸 구위(具褘)이다. 어머니는 경주박씨(慶州朴氏)이다.
구홍은 본관이 능성이고 호가 송은인 고려 말 문신으로, 밀직부사와 우정승 등을 지냈다. 조선 건국 뒤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며, 1403년 좌정승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절이다.
구홍은 단순한 고위 관료에 머물지 않고 교육과 관료 사회의 기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당대의 대표적인 문신들과 교유했다는 점에서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도 중심적인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두문동 72현과 은거 생활은거 배경과 태도
1392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구홍은 두문동으로 들어가 송산에 은거했다. 이후 태조가 좌정승으로 불러 세 차례나 회유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는 새 왕조에 협력하기보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려는 태도다.
구홍은 정몽주, 이치, 성사재, 최문한 등과 교유했다. 그의 저술로는 『송은선생실기』가 있으며, 후손들이 관련 기록을 모아 이를 펴낸 것으로 전해진다.
구홍은 고려 우왕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고 관직이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에 이르렀다. 관직에 있을 때 충심으로 왕에게 간언하고 관료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애썼다. 학교를 세워 유학(儒學)을 진흥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어은(漁隱) 이치(李致)·두문자(杜門子) 성사재(成思齊)·충재(忠齋) 최문한(崔文漢) 등과 교유하였다.
1392년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구홍은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송산(松山)에 은거하였다. 이후 태조가 좌정승을 제수하며 세 차례나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구홍의 저술로는 『송은선생실기(松隱先生實紀)』
구홍은 태종(太宗)으로부터 문절(文節)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표절사(表節祠)에 배향되었으며, 서변동에 재실인 모선당(慕先堂)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