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가 이루었던 일
96년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했을 때, 각 신문의 기사 제목은, [X세대 집단 히스테리 증상], [난장판 서태지 집 앞], [오빠부대 집단 히스테리], [자살도 불사하겠다] 등등 이었다. 물론 매우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기사 제목들은 9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서태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간접적이나마 알려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태지가 활동한 3년 10개월 동안 4장의 정규앨범은 모두 6백만장 이상 팔렸고, 그의 모든 행적은 그 자체로 이슈가 되었다. 그는 단지 일개 댄스 가수가 아닌 일종의 문화전사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현실문화연구에서 펴낸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그를 이렇게까지 높이 평가했다.
"우리는 서태지의 음악을 메틀랩이니, 몰개성이니, 강한실험성이니 하는 식으로 한정시키고자 하는 모든 노력과 싸울 뿐 아니라 그들 비평가와 법률가와 장사꾼들의 거만한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노력인가를 증명해 낼 것이다. 우리는 서태지를 20세기의 가장 창조적인 아티스트의 한사람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사실 어쩌면 이런 주장 역시 조금 과장된 것인지도 모른다. 서태지가 활동했던 90년대 초중반의 시기는 동구권의 몰락, 그리고 문민정부의 출범 등으로 문화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특히 사회진보세력에게 있어선 더욱 그랬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기성문화와 대립되는 항으로는 흔히 민중문화를 떠올렸다. 텔레비전 및 매체, 심지어 일반 콘서트에서조차 들을 수 없었던 운동가요, 민중가요만이 저항과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민정부 이후 대학가, 운동 집회 등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그런 저항문화가 서서히 제도권에 흡수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무엇이 저항이고 무엇이 대안이며 무엇이 대중과 함께 하는 문화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서태지가 등장한 것이다. 분명히 뭔가 저항성을 띤 것으로 보이고, 이제껏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을 했으며, 그가 하는 발언과 행동 역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대립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100만명이 넘는 그의 팬클럽 회원수는 그렇게 획득하기 힘들었던 대중성마저 확보해주지 않았던가? 대안이 없으면서도 대안이 강요되는 시기에 서태지가 그 대안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것은 문화비평이 사회적 담론에 서서히 중심으로 들어선 것과도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정치, 경제적 담론만이 무성했던 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에는 문화, 삶, 일상이라는 것이 새로운 화두로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대중문화비평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국의 대중문화 생산은 그 이론을 따라기에는 너무나 천박했다. 뭘 말하고 싶어도 말할 꺼리가 없었던 것이다. 서태지는 이들의 바램마저 충족시킬 수 있었다. 말하고 싶은 대중문화에 그 말할 꺼리를 끊임없이 제공해주었다. 대중을 이야기하면서도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었고, 저항을 말하면서도 상업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서태지가 이루었던 일은 서태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커져나갔다.
서태지는 과연 대안이었던가?
서태지는 언더그라운드 스타가 아니다. 치밀한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대중에 호소하는 제도권 스타이다. 이와 관련해선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이영미씨는 서태지의 그 마케팅 전략에 대해 쓴 글이 사회평론 [길]지에서 삭제가 되었다.
"서태지 3집의 파격성을 다른 언더그라운드와는 달리 매니지먼트로 보는 이 분석이 내 글의 독특한 논지였는데, 짐작컨대 바로 이 논지 때문에 삭제되지 않았나 싶다. 즉 서태지의 천재성과 혁명성을 고작 상술로 격하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만이 편집자에게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문화연구나 사회평론 등에서 인식하는 서태지는 현실과는 좀 동 떨어져있었다. 자신들이 바라는 서태지상을 세워놓고 논지를 거기에 맞춰나갔던 것이다. 90년대의 새로운 혁명가로. 반면 이영미씨는 오히려 서태지를 조용필과 비교하였다.
"후세의 한국 대중가요 연구자들은, 트로트로부터 60년대 풍 이지리스닝을 거쳐 록에 이르는 당시 대중가요 전 장르를 완벽하고 수준 높게 소화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정확하게 이미지 변신을 해낼 정도로 고도의 매니지먼트를 구사했던 조용필이야말로, 80년대에 10대로부터 60대에 이르는 전 계층을 팬으로 삼았던 수퍼스타였음을 짚어내면서, 그 뒤를 잇는 90년대의 수퍼스타가 서태지였음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영미씨의 논지는 수퍼스타는 혁명성과 상술 모두를 갖춰야 하는데 서태지는 그 양자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태지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주로 혁명성에 초점을 맞추고 서태지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주로 상술에 초점을 맞춘다. 이 양자의 결합이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혁명성을 갖춘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며, 어떻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음악이 혁명성을 갖출 수 있겠는가?
서태지의 음악 자체에 대해선 최근에 나온 그의 새로운 음반 <울트라맨이야>조차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철저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가 랩이라는 장르를 한국에 보급시킨데 이어, 이번엔 들고나온 하드코어 장르까지, 도대체 외국에서 수입해서 내다판 것 말고는 뭐가 있냐는 것이다. 대중음악 평론가 성기완은 그의 음악을 이렇게 평가했다.
"서태지가 <하여가>, <교실이데아> 등을 통해 림프 비즈킷 스타일의 음악을 일찍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적 재능은 인정받아야 한다. 그가 이번 음반에서 들려준 음악은 이미 국내 록계에서도 시도해온 것으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또한 그의 저항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곡으로 손 꼽히는 <발해를 꿈꾸며>와 <교실 이데아> 역시 진보성을 상업성에 억지로 짜집기한 것은 아닌가라는 평가가 있다. 특히 <발해를 꿈구며>가 그렇다.
"<발해를 꿈꾸며>는 서태지의 절실한 경험과는 가장 거리가 먼 작품으로 보인다.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가사가, 천재 서태지치고는 너무도 상식적인 수준이고 사랑타령의 대중가요 잔재가 부조화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작품은 대학생들에게 히트하며, 대학가에서 음반 판매고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자신의 고유한 작품 세계와 히트의 요소를 나누어 생각하고 이를 통제해내는 능력, 고도의 매니지먼트 감각이, 작품 창작에 간여한 결과이며, 이것이야말로 서태지의 TV 가수적 면모이다.(이영미, {서태지와 꽃다지} 171쪽)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업그라운드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죽었다 깨도 성공할 없다는 랩이 서태지로 인해 대중화되었고, 역시 죽었다 깨도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하드코어 장르(하드코어가 아니라 콘이라는 평도 있음)를 갖고 어쨌든 히트시키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서태지의 성공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대중화시키고 있다기 보다는 발빠른 매니지먼트 회사의 기획거리만 풍성하게 해준 결과를 초래했다. 핑클의 이효리도 랩을 하는데, 언더그라운드와 업그라운드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지며, 현재 언더그라운드는 거의 초토화되었다는 진단이 더 올바를 것이다. 지금 들국화, 신촌블루스와 같은 그룹이 있는가?
서태지가 대안이 되기 위하여
21세기에 들어와서 90년대에 불었던 수많은 논쟁들, 신세대 논쟁, 대중문화 논쟁,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은 거품으로 치부되고 있다. 현실이 못 따라오는데 입만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태지를 비롯해서, 그 주위에서 일었던 논쟁과 이슈, 거기에는 과연 거품이 없었던가?
그건 서태지의 잘못은 아니다. 서태지는 할 만큼 했고, 충분히 그 업적을 평가받을 만하다. 문제는 제2의 서태지, 제 3의 서태지가 계속해서 나올 수 있을 만한 대중음악적 토양을 만드는데 너무 인색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태지를 좋게 보는 사람도, 또한 서태지를 나쁘게 보는 사람도 다 마찬가지였다.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다면, 신촌 카페에서 자신의 음악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서태지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문화생산 구조를 정착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핑클은 군인들을 위한 위문공연단으로 나가야 했고, HOT는 고등학교 축제 공연 정도를 다녀야 했다. 정말로 우리가 서태지를 혁명적 전사로 인식하고 그러기를 바랬다면.
아직 게임이 끝난 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서태지가 다시 컴백했기 때문이다. 서태지를 조성모 HOT와 비교하며 누가 누가 이기나 도박판 게임을 즐길 때가 아니다. 이제껏 접하고 싶어도 마니아층이 아닌 이상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하드코어 장르를 추구하는 숨겨진 언더그라운드 그룹들과 서태지와 싸움을 붙여야 한다. 서태지의 음악성과 혁명성에 물음표를 달고 싶다면 서태지보다 더 뛰어난 아티스트를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래서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서태지 효과라는 것, 그것은 우리가 만들기 나름이다. 다시 한 번 주어진 기회, 또 다시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서태지 - 새로운 것이 세상을 바꿨어?
새로운 것이 세상을 바꿨어?
서태지가 귀국했을 때 입국장에서 신고 온 나이키 신발이 화제였다. 자기도 나이키 사서 신고 싶다는 애들이 속출했으니까. 게다가 옷까지 똑같은 거 사 입고 싶다는 아해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나이키 신발 얘기로 시작해볼까한다.
1. 나이키 신발
미국에서 나이키 신제품을 사 신고 할렘가를 어슬렁거리면 한시간 내에 시체가 되서 발견된다는 얘기가 있다. 애들이 죽고 못사는 나이키는 세계최고의 신발 브랜드이다. 이 말에 쓸데 없이 토를 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나이키의 '품질'은 아디다스, 리복, 아식스보다 훨씬 우월한가? 그러나 우리는 곧 이러한 의문이 바보같은 시간낭비일 뿐이란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어느 바보가 나이키의 신발을 뜯어서 천의 재질이 어쩌구 고무탄성도가 어떻고 하는 보고서를 쓰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벤치마킹된 글을 보고 구매욕이 불타올라 신발을 사러 나섰던가?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이봉주?) 결국 우리는 '나이키는 나이키'이기 때문에 최고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2. 태지 컴백?
자, 이제 서태지 2집이 나왔다. 나올 줄 알았다. 1집 나왔는데 2집 안나오랴. 음악과 별로 상관은 없는 얘기지만 잡설 한번 하자. 한석규가 어느날 인기절정에서 은퇴를 한다고 치자. 그런데 몇 년후 다시 영화에 출연한다.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묻는다. "당신, 은퇴했다며? 은퇴번복인가?" 그러자 그는 대답한다. "저는 여전히 은퇴입니다. 다만 TV출연은 안할거에요" 듣는 당신,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1집이 나왔을 때 '은퇴번복은 아니다'라는 태지의 인터뷰를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영화배우는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이고 뮤지션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일을 대외적으로 하지 않음을 영원히 지속할때 우리는 비로소 '은퇴했다' 라고 한다. 또한 여전히 그 일을 하면서 모습만 비추지 않을 때 우리는 '잠적했다'라고 한다.
말하자면 서태지는 입으로만 '은퇴'한 것이고 그 간의 시간은 은퇴를 가장한 '잠적'이었을 뿐 이다. 그는 컴백한 게 아니다. 은퇴를 한 적도 없는데 돌아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3. 새로운 사운드?
어쨌건 서태지는 2집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예상했듯이 태지 팬들은 마이클 잭슨을 깨갱하게 하는 숫자로 공항에 몰려든다. 기자들 역시 개떼처럼 몰려든다. 그리고 사람들의 궁금증이 최대화되었을 때 음반이 공개된다. 당연히 서태지의 팬들은 울부짖었다. 새/로/운/ 사/운/드/의 출현이라며 혼절한다. 혹자는 조심스래 "별로 안좋은거 같은데"라고 말해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무식한…. 이것이 바로 하드코어란 새로운 음악이야!"란 대꾸에 곧 기어 들어가고 만다. 그런데 이번엔 주변에 뭔가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물음표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 Limp Bizkit나 Korn, RATM, Beastie Boys, Coal Chamber 같은 그룹들의 팬들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게 무슨 하드코어???" "이거 Korn 아냐?" "하나도 안 새로운 데??" (사실 서태지는 말할 것도 없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 림프...같은 것조차도 절대 하드코어가 될 수 없다. 태생적 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하드코어라고 할 수 있나. 오버 에서 빵빵한 사운드 끌어내 메이저 음반사로 유통시키면서 무슨 하드코어? 이 얘기를 하려 면 너무 길어지므로 여기서 그만두기로 한다. 어쨌건 우리나라에서 이런 Pimp의 '팬'들 만큼 은 '언더'이다. 처음에 하드코어라고 보도되었던 것과는 달리 인터뷰에서 서태지 자신은 이 번 앨범이 핌프락이라고 말했다. 멍청한 팬들과는 달리 서태지 자신은 제대로 알고 있다. )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가. 서태지는 언더였던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주류'의 상징적 존재이다. 분명히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가 '비주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는 우리나라에서 언더인 음악을 오버로 팔아먹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확실히 해두어야 할 점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에서'라는 점이다. 이것의 함축적 의미는 크다.
서태지는 외국에서는 검증된 장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언더로 남아있는 장르에 손을 댄다. 혹자는 서태지가 다른 건 몰라도 음악만큼은 비상업적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납득시키는 적절한 예가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편의점'이 없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예전부터 히트를 치고 있었다. 이 편의점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사람은 '사업적 모험'을 했을지는 몰라도 '비상업적 시도'를 한 것인가? 당신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음악과 편의점은 다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서태지의 음악과 음반을 다른 것으로 인식한다. 혼동하지 말라. 서태지는 무형적 실체인 음악을 파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음반'을 판다.
아이디어가 '음악'이라면 사업적 실체인 편의점은 '음반'에 해당한 다. 메이저 유통을 통해 음반을 판매하는 것을 끝까지 비상업적이라고 우길 셈인가. 조금 헷갈릴지도 모른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는 <외국에서 성공했던 아이디어를 국내에서 사업적 실체에 담아 판다.
이것이 그의 벤쳐이미지의 본질이다. 자 이제 됐는가?
이쯤 읽다보면 서태지의 팬들은 머리에서 김이 날만도 하다.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서태지 1집에 대한 외국 평론가의 글을 소개한다. 원문을 보고 싶으면 이곳으로 가보기 바란다.
Well I must start of this review by saying this is one of the most interestingreviews
I've ever had to write because it is of a Korean artist. In addition I know very little,
if anything, regarding the Korean music industry but despite this lack of insight
into the work a diehard fan of Seo Tai Ji's convinced me to write this review. And I
must say I'm happy I finally gave this CD a listen.
So to first discuss purely the music of the CD. His sound is base din hardrock but mixes in pop, and electronic sounds to create a very full and polished sound. In general the sound of this album is closer to heavy metal, or hardcore then to rock or pop. I'd say his sound on this album creates a very energetic and powerful feeling.
An interesting feature of this album is that most of the tracks are simply titled "Track" insert track number here, essentially placing all the tracks on equal footing. I found that logical as to me as all the tracks seemed to flow together to create a workrather than a series of tracks. Unfortunately as all of the tracks are in Korean and I don't speak Korean I had little understanding of the lyrics and especially of the context of the lyrics within the songs. But to help me understand the musical conten I was provided with lyric sheets, which gave me a feel for Seo Taiji's ideas and beliefs. It appears that he hits on many of society's most controversial topics such as, abortion and suicide. And that he doesn't steer away from any topics. But what really hits me is his sound. And to me it is this sound that is so strong that it explainsto me why a fan was so excited about his work to send me a copy to review!
Dave Reid
놀랍게도 굉장히 호의적인 내용이다. 나쁜 말은 하나도 없다. 이걸 보면 혹자는 '아 서태지 음악이 외국에서 통하는 구나'하고 순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뻐하기에 앞서 정작 음악 자체에 대한 평을 주목하기 바란다. 무슨 사운드네 왜 팬들이 열광하는지 알겠네 하는 게 결론이다. 음악 평론으로서 보자면 그냥 드러난 '팩트'를 기술한 것으로 끝이다. 단지 그 뿐이다. Dave Reid가 음악적으로 심도있게 설명하지 못할 만큼 쇼킹하거나 난해해서? 아니다 우리는 제 3세계 음악을 들었으면 당연히 나왔어야 할 단어가 빠져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U/N/I/Q/U/E 란 단어. 이것을 표현하거나 암시하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왜? 당연하게도 그의 귀에는 서태지의 음악이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새로웠다는 것은 과거형이며 순수하게 음악적인 면에 있어 그 분야는 한정되어 있다. 최초로 랩을 한국어로 완벽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점 등은 우리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기억될 큰 발자취이다. 서태지의 이런 큰 음악적 공헌을 인정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역시나 '한국에서'라는 레테르가 붙어있다. 그/는/한/국/에/서/새/로/<웠>/다.
④ 언더밴드를 활성화시키다?
자. 그런데 이제 서태지는 더 이상 한국에서도 새롭지 않게 되었다. 위성채널과 인터넷의 발달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증대로 인해 외국에서 하는 음악장르는 재빨리 한국으로 수입된다. 하지만 상업화되지는 않고 단지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더로 머물며 그들 나름대로 그 장르를 한국적으로 소화발전시킨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서태지 때문에 언더 밴드들이 많이 주류로 등장하지 않았느냐. 그가 돌아왔으니 언더밴드들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라고. 언더밴드들이 활성화 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서태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태지처럼 되기 위해 언더밴드들이 고생하며 알아주지 않는 음악하는가? 뽕짝과 발라드에서 벗어났다고 무조건 서태지 영향이라고 우기는 것은 오버액션에 다름아니다.) 또한 소수지만 언더에서 오버로 올라온 그룹 중에 또한 새로운 밴드는 없었다. 서태지를 리엔지니어링한 기획사의 물량공세로 언더밴드들은 오버로 올라올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더 박탈당하고 있다.
가장 성공한 그룹인 자우림을 살펴보자. 그들이 과연 서태지의 영향으로 음악하는가. 게다가 그들의 음악이 새로운가? 이름만 민트락이라고 붙인다고 새로운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가사가 특이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팬들은 김윤아의 섹시한 보컬과 외모에 더 끌려서 음악을 소비하는 것 아닌가. 설마 보컬이 노영심으로 교체되도 자우림이 계속 번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예가 적절치 못하다고 항의한다면 그럼 다른 밴드를 들어보자.
드럭이 배출한 불세출의 크라잉 넛. 어디가 서태지의 영향이라는 것인지 나도 궁금해진다. 서태지의 영향으로 언더밴드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호히 말하겠다. 더 직접적인 예를 들라고 하면 또 들 수 있다. 교실이데아에서 카리스마적인 보컬을 보여준 크래쉬. 물론 크래쉬의 이름이 서태지로 인해 대중에게 알려진 점은 맞다. 하지만 팬이 될만한 사람들은 그 전에 이미 팬이 되었지 서태지를 듣고 크래쉬에 빠져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를 완성시키는데 큰 대들보 역할을 했지만 팬들이 벌떼같이 모여드는 현상이 발생해 크래쉬가 오버로 변신되었던가? 이번 2집을 듣고 서태지의 팬들이 태지오빠가 했던 핌프를 심도있게 듣겠답시고 닥터코어911이나 힙포켓, 코어매거진, 피아, 해머와 같은 우리나라 인디의 앨범을 사러 뛰어나갈까? 다 가능성 없는 얘기들이다.
⑤ 서태지의 악영향
우리는 이제 뭔가 확실하게 감이 오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그것은 어떤 장르를 오버로 만드는 가장 큰 영향력이자 중심은 바로 '누가' 그것을 하고 있는가 인데 그것의 선택권은 대중,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련의 '여고생'(및 여중생. 요즘은 국민학생까지)들이 쥐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팬클럽을 조직하고 가수에게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며 24시간 그들 생각을 하고 캐릭터상품을 몽땅 사모으면서 매일매일 팬레터를 쓸만큼 한가한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다. 나름대로 머리 빠개지는 고민들이 있겠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하고 있는가 이지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서태지의 영향은 한국 가요계의 언더가 아니라 오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태지가 일단 쓸고 지나간 장르는 더 이상 이른바 '빠순이'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게 되므로 음악적 재능이 전무하더라도 그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를 가진 또래의 아이돌을 모아 기획사에서 찍어내면 성공할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이 되어있는 것이다. 즉 서태지가 건드린 장르는 기획사의 시장개척에 이용될 따름이며 이는 그동안 실력으로 준비했던-또한 외모가 딸리며 어느 정도 연령이 있는 언더밴드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들은 이제 데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졌으며 음악을 그만두던가 아니면 평생을 라면만 먹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진정 음악으로 승부하고자 했던 그들을 기다 리고 있는 것은 기획사에서 TV에 재빨리 먼저 등장시킨 이쁘장한 외모의 어린애들이다. 빠순이들은 그들이 표절한 곡을 불렀건 문제삼지 않는다. 오빠들이 립씽크를 하건말건도 상관 하지 않는다. 립씽크는 서태지도 했거든.
⑥ 언더는 그렇다치고 과연 서태지는 세계시장에 내어놓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여러모로 살펴봤듯이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 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귀납적인 추리에 의한 것이므로 백퍼센트라는 말은 아끼도록 하겠다.
⑦ 그럼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은 없는가
있다. 분명히 있다. 조윤의 'Mobius strip'을 들어본다면 우리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 을 느낀다. 한국 최초의 프로그래시브 락으로 명명된 그의 앨범은 시완레코드가 망하게 된다는 우려를 뒤집고 해외 애호가들에게 수출까지 되었다. 그의 앨범은 한국 최초일 뿐만 아 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니크하며 수준또한 나무랄 데 없다. 국내의 척박한 토양에서 나오기 힘든 것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리체 이상은의 앨범은 또 어떤가. 그의 내면적 세계가 투영된 한국적 정서를 그만의 사운드를 통해 세계적 감성으로 잘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요즘 뜨고 있는 이박사는 또 어떤가.
수년전 이박사를 처음 들었을 때 뒤통수를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스캣맨이 가사가 아닌 그 독특한 스캣만으로 세계적이 되었듯이 그의 음악은 충분히 유니크한 사운드로 분명히 세계를 재패할 수 있다고 본다. 몇 해전 일본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보았지 않은가. 물론 가사까지 영어로 전달된다면 그 파괴력은 가히 메가톤급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모든 희망은 여전히 언더로 머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당연하다.
⑧ 문제는 오빠부대
확실히 한국 대중가요계의 문제점은 오빠부대가 야기시키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조성모의 음악이 어디가 훌륭해서 수백만장이 팔리고 있는 것인가. 음악성으로 보면 하등 보존의 가치도 없는 앨범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한국 가요계의 주류소비계층인 오빠부대들은 그것을 산다. 오빠의 판매순위를 높여주기 위해 심지어 똑같은 것을 몇 장씩 사모은다. 이번에 HOT 새 앨범이 나오면 서태지에게 왕창 밀린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용돈을 털어 혼자서 몇 장씩 똑같은 것을 사모으는 오빠부대들이 있는 한 한 번 뿌리박은 아이돌 스타들에게 좌절은 없다. 오빠부대들에게 조윤이나 이상은의 음악은 관심의 표적에서 멀어도 한참 멀리 있다. 이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이해하기조차 싫어한다. 오빠들 음악 듣기도 바쁜데 이들에게 언제 신경쓰리. 오빠부대들이 음반시장의 주류소비자인 이상 이러한 극과극의 현상은 매우 당연하며 일본과 같이 여러 수많은 장르가 독특한 발전을 이루는 구조가 오는 날은 기약 없는 희망에 머물를 수 밖에.
⑨. 그럼 서태지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
기존 오빠부대들이 건재할 때까지는 지금과 같이 계속해서 롱런할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은 HOT의 팬들이 단순한 오빠부대들의 집합체라면 서태지의 팬들은 그들보다는 연령이 좀 더 높고 남자들이 끼어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들이 언제까지라도 서태지의 하드한 사운드에 심취해있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서태지가 궂이 새로운 장르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과거 앨범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느낌의 곡을 재생산해낸다면 큰 이탈자 없이 그들을 계속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서태지 자신의 이미지와 배치되는 것이고 또한 새로운 어린 구성원을 영입시키지 못하는 한계가 되기 때문에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도 해외음악의 트랜디를 계속 따라갈 것이 분명하며 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게 되더라도 그의 음악을 꾸준히 소비할 것이다. 새로운(비록 허구지만) 그의 음악을 소비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이제 늙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해할 수 없어도 그의 팬들은 서태지가 어떤 시도를 하던지 광적인 열광을 보낼 것이며 눈높이를 맞추려고 스스로 노력할 것이다.
⑩ 서태지는 한국의 나이키
서두에 나이키 얘기를 꺼낸 것을 이제 정리할 때가 온 것 같다. 서태지는 한국 음악계에서 이미 음악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로서 존재한다. 한국에서 그에게 음악성을 논하는 것은 나이키의 품질을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아무런 상업적 이득이 없는 일이다. 현재 한국의 대중가요 소비자들은 서태지의 브랜드만으로도 그의 음악을 소비한다.(서태지의 이번 앨범을 어떤 무명 언더밴드가 불렀어도 대히트할 수 있었다고 우기는 짓은 하지말자.)
하지만 서태지의 네임밸류가 먹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소비자들이다. 필자가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언제까지 브랜드로 음악을 소비할 것인가. 왜 세계적으로도 가능성 있으며 창조적이며 역량있는 뮤지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가. 서태지가 음반을 낸다는 소문이 들렸을 즈음 기존의 아이돌 그룹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언더밴드들은 그동안 준비했던 신보 발표를 연기했다.(일부러 정면대결하는 척 하며 자신과 서태지를 스스로 동일선상에 놓으며 언론을 조종, 기존 오빠부대들의 관심을 의도적으로 모은 조성모는 예외)
앞에서 살펴봤듯이 기획사의 대량생산형 아이돌들에게는 치명적 손해가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새롭게 등장하려는 언더밴드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변이 없는 이들에게 서태지의 등장은 최악의 악재에 다름 아니다. 서태지로 인해 대중의 남은 관심이 그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오빠부대만큼이나 서태지에 집착하는 언론들의 눈길이 그들에게 미치지 않게 됨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서태지가 깜짝 발표한 음악이 그 동안 그들이 라면 먹어가며 밤새워 만들었던 장르라고 한다면 그들은 채 싹을 틔어보지도 못하고 죽게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소식은 간과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 인디밴드들이 모여서 이번에 안티서태지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사실 지금 현실은 서태지에게 자신의 음악을 OEM방식으로 납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번에 참여한 닥터코어911을 보라. 예전의 크래쉬는 어떻고. 재주는 죽도록 곰이 부리고 열매는 서태지가 따는 한숨 나오는 현실에 대해서 정말 할말이 많을 듯 하다. 노브레인, 삼청교육대도 나온다고 하니 왠지 재미있을 거 같지 않은가? 정말이지 한국의 대중음악 소비자들은 언제까지 서태지의 상표만 보고 음악을 고를 것인가. 음악에 부끄러움이 없으니 최대한 상업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서태지의 말이 무색하다.
서태지는 '한국'의 나이키다.
서태지, H.O.T, 그리고 음악적 자의식
그가 좀더 성숙된 자세로 실패와 비난을 무릎 쓰고 음악 생활을 연장시켰다면 갓 잉태된한국 대중 음악 산업의 중요한 한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더에 침잠해 있던 핌프 락이라는 생소한 장르가 오버 전면으로 나서게 할 수 있는 역량이 그에게는 있는 것이다.
서태지와 H.O.T? 아주 간단히, 그리고 진부하게 얘기하자면 서태지는 음악성이 있고 H.O.T는 음악성이 없다. 그러나 이 진부한 명제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으로 이렇게 고쳐져야 옳다. 서태지는 음악성이 많고 H.O.T는 음악성이 적다. 이 차이가 이들을 명확히 가름하는 것일까? 음악성을 주제로 파생된 양자의 차이들은 더욱 다양하다. 서태지는 천재고 H.O.T는 기획사의 꼭두각시다. 서태지는 진정한 대중문화 전복자이고 H.O.T는 그저 브랜드일 뿐이다. 서태지는 신화를 자발적으로 창조하고 H.O.T는 신화를 강제적으로 연장한다. 서태지에게는 음악성이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고 H.O.T에게는 이미지가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다.
몇 가지만 나열해 놓고 보아도 대뜸 긍정성은 모두 서태지가 전유하고 상대적인 부정성은 H.O.T가 떠 안게 된다. 이 부당한 듯한 차별이 생겨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 H.O.T가 서태지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H.O.T는 서태지의 공백을 대신해서 서태지로 인해 극적으로 포화되었던 10대들의 문화적 욕구를 대변한 포스트 서태지였다.
'서태지 골수팬'들은 이른바 'H.O.T현상'을 일시적인 거품이라 진단했었다. 물론 이 진단은 섣부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단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서태지 팬들의 자존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태지가 지닌 음악성이었을 것이다. 정체되어 있던 10대들의 문화적 욕구란, 단순한 외부적 분출, 즉 보여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세련된 음악에 대한 욕구도 포함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H.O.T에는 바로 그 선도적인 음악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이것이 서태지 팬들의 도도한 자만심을 가능케 했다.
H.O.T는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그 그룹이 이토록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장기간 문화적 기호로 자리 매김할 수 있으리라고는 제작자 또한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작명'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하이틴이 아니지만 여전히 10대들의 강력한 우상이다. 뜬금 없이 복귀한 서태지에 대해 H.O.T 열성 팬들이 개인당 H.O.T의 신보를 일곱 장 씩 살 것을 결의할 정도로.
결국 H.O.T가 예상을 뛰어 넘어 중국 대륙에까지 공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10대 대중에 대해 좀더 냉정하게 평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태지 골수팬들의 전망이 틀리고 H.O.T 제작자조차 섣불리 예상치 못한 포스트 서태지, H.O.T의 파괴력은 음악성이라는 잣대에 대한 맹신을 회의하게 만든다. 좀더 압축시켜 말하면 서태지에 대한 서태지 팬들의 열광 역시 '음악성'과는 별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당연한 전제이겠지만, 대중들, 특히 10대 대중들은 게중 특별한 매니아가 아니고서는 나름의 음악적 기준으로 대중 음악을 판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음악 역시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오랜 음악적 섭렵을 통해 자기화 되는 경향에서 예외일 수 없기에, 10대들에게 호소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력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것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다면, 서태지 팬들이 서태지를 자신들의 문화적 기호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음악성과 깊은 관계가 없다면 서태지 신화는 어떻게 창조되어진 것일까? 감각적이고 세련됨, 신선함, 그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였다. 사실 서태지의 앨범들은 어떤 뚜렷한 장르적 일관성과 깊이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다. 국악과의 퓨전, 락, 갱스터 랩, 얼터너티브 락, 그의 앨범은 매 번 색깔이 바뀌었고 그 음악의 색깔에 따라 그의 패션과 춤이 바뀌었다. 그 매 번의 새로움이 10대 팬들의 감각을 사로잡았고 열광케 했던 것이다.
서태지 개인의 카리스마 역시 한 몫 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곡을 작사 작곡하고 프로듀싱 해내는 보기드문 오버 그라운드의 음악 감독이었으며 천재라는 수식어가 이러한 그의 능력을 더욱 휘황하게 만들었다. 이미 잘 알려진 탁월한 신비주의적 전략 역시 그를 이 시대 최고의 문화 영웅으로 만드는 데 일조 했음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서태지가 음악을 잘 만들고 못 만들고가 아니다. 사실 대중들은 대체로 그 음악을 판별할 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대중들에게는 어린 나이의 서태지가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사나위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는 것, 그리고 전곡을 스스로 만든다는 그 사실이 보다 더욱 중요하고 그것이 곧바로 H.O.T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제 일성이 되는 것이다. 사실, 서태지가 새로 들고 나온 핌프 락과 H.O.T의 힙합 중 어느 것이 더 낫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것은 기성 세대들에게 똑같이 소음일 따름이다. 가령 서태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H.O.T에 별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청자에게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서태지가 아니라 H.O.T가 불렀다면 과연 똑같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서태지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보다 더 오래도록 활동을 했어야 했다. 그는 분명 사막같이 건조한 한국 대중들의 귀 한 쪽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것도 언더가 아닌 오버 전면에서 하나의 폭풍 같은 문화 기호로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신선한 음악적 영역을 깊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가 좀더 성숙된 자세로 실패와 비난을 무릎 쓰고 음악 생활을 연장시켰다면 갓 잉태된 한국 대중 음악 산업의 중요한 한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더에 침잠해 있던 핌프 락이라는 생소한 장르가 오버 전면으로 나서게 할 수 있는 역량이 그에게는 있는 것이다.
H.O.T는 서태지의 비운 자리에서 대중성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서태지의 음악적 유산이 보다 견고했다면 H.O.T는 그처럼 장수할 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H.O.T가 확인시켜준 대중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래가 아닌 이미지다. 이미지가 음악을 전복시켜 10대들의 감각을 매혹시킬 수 있음이 철저하게 증명된 예가 H.O.T였다. 끊임없는 새로움, 끊임없는 변화의 욕구가 10대들과 공유되었다. 어찌 되었건 H.O.T와 서태지는 '새로움'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에 있어서 동일 선상에 놓여져 있다. 그것이 향후 전개될 서태지와 H.O.T의 대결에 있어 당락을 좌우할 변수임은 분명하다.
H.O.T는 이러한 서태지의 아우라에 못 미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H.O.T는 독립적인 존재이기보다는 기획된 포스트 서태지였기 때문이다. 포스트 서태지에서의 탈출이 가능할까? 모르겠다. 음반 판매량에 있어서는 그 결과를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더 이상 과거 독주하던 H.O.T의 면모를 보여주긴 힘들게 된 것 같다.
보다 주시해야 할 것은 서태지와 포스트 서태지가 공존하는 21세기의 한국 대중 음악계가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질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일 것이다. 일부 평론가는 여전히 서태지가 고수하는 신비주의 전략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서태지에게 몰린 과도한 여론의 관심과 서태지가 획득한 상업적 성과(CF계약 등등)에 대해 불편해 한다. 그들이 희구하는 음악적 장 - 다양한 뮤지션들과 다양한 청자들이 공존하는 - 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음반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서태지나 조성모, H.O.T 같은 주류가 나누어 가질 뿐 다른 뮤지션들이 공정하게 가질 수 있는 파이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의견에 반만 동의한다. 서태지는 결코 '음악 감독', '아티스트'라는 직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적 자의식, 이것이 바로 H.O.T와의 변별점이기도 하다. 한 명의 문화적 영웅이 선도하는 대중 음악의 업그레이드가 얼마나 대단한가는 그가 없던 지난 4년여의 한국 대중 음악계의 불모성이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서태지의 복귀가 일회성의 해프닝에 그치지 않는 한 그는 다시금 한국 대중 음악계의 밭을 일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서태지 리포트 닷 컴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