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4일 강화도 해병2사단에서 총기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 기수열외, 가혹행위 등 해병대 내의 병영 부조리가 연일 터져 나왔습니다. 가혹행위를 당한 해병대원이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금 해병대는 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급기야 해병대는 7월18일 김관진 국장장관과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 그리고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해병대 병영문화 혁신 대토론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가혹행위 근절을 위해 해병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회수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극약처방 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병대가 환골탙태 한다면 전화회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번 해병대 사건과 6년 전에 일어났던 연천 530GP 사건과 비교를 한 바 있습니다. 두 사건 이후의 너무 다른 처결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제2탄입니다. 당시 범인으로 김동민 일병이 지목됐습니다.
김 일병은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장호원 육군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그런데 김 일병이 범인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족들도 "김일병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1. 범인이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
김동민 일병이 범인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자백뿐이다. 김일병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생존 사병들도 수류탄 폭음과 총소리만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일병이 범행에 사용한 총이나 수류탄 고리에도 지문이 없었다. 국방부는 김일병이 정은총 상병의 총을 가지고 범행을 했다고 발표했다. 김일병은 후방 초소 근무 중 후번 근무자를 기상시킨다는 명분으로 내무실로 내려왔다. 내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정상병의 K-1 소총을 꺼낸 후 수류탄과 25발 탄창 두 개를 사용하여 총기를 난사했다.?
?? @김동민 일병 현장 검증 모습
?? @사건 직후 김일병 지문채취 모습 ?
사건 정황상으로 보면 김일병의 지문은 총기 곳곳에 묻어 있어야만 한다. 또 김일병이 투척했다고 말하는 KG14 세열수류탄은 원기둥 형태의 수류탄 곽에 테이프로 봉해져 있고, GP장의 사인이 들어간 종이로 봉인되어 있다. 수류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테이프를 뜯고 뚜껑을 열고 꺼내 안전핀을 제거한 후 던져야 한다.?
그런데도 지문 감식 결과 탄창이나 수류탄 손잡이 어느 곳에서도 김일병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2005년 7월 5일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가 낸 감정서에는 “범행 증거물(탄창, 수류탄 손잡이)에서 지문이 현출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범행 당시 김일병은 지문을 감추기 위해 장갑을 끼거나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김일병도 재판장한테 “(자신의 범행이) 말뿐이지 증거가 없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2008년 5월7일 고등군사재판장에서?재판장한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라며 질문을 했다. "재판장이 무슨 질문이냐"라고 묻자 김일병은 “말뿐이지,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직접증거는 없지만, 주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판결을 한다”라고 말했다.?
2010년 7월6일, 유족들은 용산 국방부 민원실에서 당시 수사실무자들을 만났다. 유족들은 이렇게 항의했다.?
“군은 어째서 김동민 일병이 계속해서 오랫동안 들고 다녔던 소총에도 지문이 없다 하고, 김동민이 만진 탄창 두 개에도 지문이 없다하고, 김동민이 여러 차례 만진 수류탄 안전고리에도 지문이 없다하고, 김동민이 약실에서 꺼내 아래 주머니에 넣었다는 실탄에도 지문이 없다하고, 수류탄 보관통에 감긴 세 개의 테이프에도 지문이 없다 하느냐? 금속성에 남은 지문, 테이프에 남은 지문은 나무에 남은 지문보다 더 확연하게 보존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범죄 수사는 나무에 난 지문도 채취하는데, ‘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군’은 어째서 김동민의 지문이 남아 있을 8개의 물체 모두에 지문이 없다하느냐?”
이에 대해 국방부 수사 당국자들은 “총에 남겨진 지문의 감식율은 23%이고, 탄창에 남긴 지문의 감식율은 5.5%다”라고 답변했다.?
과연 그러한가? 2008년 11월23일 철원 181GP에서도 수류탄 투척사고가 발생했다. 181GP에서는 수류탄 손잡이에서 범인의 지문을 채취했다. 폭발한 수류탄 안전핀과 안전고리에 대해서는 유전자를 감식했다.
그리고 그 유전자가 황이병의 유전자와 질치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 결과를 가지고 군은 황 이병을 추궁하여 자백을 받아냈다. 530GP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과학적인 수사인 것이다. 왜 하필 530GP에서만 이토록 예외가 많은 것일까?
<박영섭 등 5인 저서 ‘사상 최대의 군 의문사 530GP' 중에서>? ?
2. 530GP 소대원들의 진술서 “소대분위기는 화기애애 했다”
김일병의 범행 동기도 석연치 않다. 국방부는 “김일병이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했다”라고 밝혔다. 당시 530GP의 내무실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생존 소대원의 진술서에 나타난 분위기는 ‘화기애애’였다.?
“사병 상호간에는 존중과 경어를 사용하였다. 휴가시 계급 관념을 두지 않고 서로 반말을 사용했다. 휴가시에는 함께 놀기도 했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시는 위계질서, 선·후임병에 맞는 호칭을 사용했다. 김일병도 휴가지에서 상병급에게 반말을 하기도 했다. 김일병과 소대원들의 분위기는 좋았다”라고 적고 있다.?
김 동 민 수 양 록 2005년 5월20일 크헉 공포가 밀려왔다 후반야 도.정을 하루도 안빼고 나가다니 전부5시간 도정이다.-_-;;이제 나도 후반야인데 어메~토해토해 - ㅠ - 편지도 쓰고 운동도 하면서 다음휴가때는 이쁘게 몸만들어서 나가야징 도정의 어려움 2005년 5월23일 후반야 2틀나가고 허리 부샤 질라고 한다. 후반야 첫 비번인데 이렇게 좋을줄이야 킥킥 다들 힘든데 나도 힘들공 글씨 연습도 많이 해야겠다. 비번의 만족감 2005년 5월26일 합지검이 들어온 단다 제길 오늘 날짜였는데 또 늘어났다. 오는건지 안 오는건지 군단장.사단장 다 온다고 설치고 미쳐가는구만. 사단장 방문에 작업에 대한 부담감 나의 첫 휴가 첫휴가를 나가는 날이지만 그다지 기쁜 마음이 안들었다 그냥 갔다오는 기분이 들어서 더 우울했다고 할까나 그래도 보고싶은 친구 가족모두 보아서 기뻤고 다음 휴가는 더 재미있게 놀다와야겠다. 2005년 5월27일 ㅡ_ㅡ합지검이 안들어 온다는 통보~별루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군단장도 안들어오고 다행이구나~이제 3일만 지나면 나도 일병이로세 2005년 6월1일 드디어 일병을 달았다. 기쁨과 책임감 무게감이 공유했다. 이제 후임관리 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일병 달았다고 빠질까봐 괜히 생트집이다. 그래도 일병이 조쿠나 일병진급의 만족감 2005년 6월4일 하~이번 GP는 시간이 빨리 가는것 같다.일병을 달아서 일까? 벌써 GP올라온지 1달이 지났구나~정말 시간은 유수같이 흐르는 구나.이런기분으로 다음GP 531까지 가서 상병을 달아보세 시간의 빠름과 상병을 달고 싶은 마음 2005년 6월7일 괜히 은근슬쩍 후임한테 욕도하고 못한다고 지랄했다.개념없는 석민이~ 킥킥 나도 한때 그랬지~석민이도 쫌만지나면 나처럼 개념이 잡히겠지 그전까지는 욕좀 먹겠지만..... 후임 관리와 개념에 대한 표현 2005년 6월10일 지금은 비번잡고 쓰는 수양록이 지루지루하다. 부GP장을 닦고 보니 40분이나 걸렸다. 어찌나 녹이 슬었는지....부식도 많이 올라온 금요일 빵만6개다. 크크 좋다! 요즘 관물대가 털리고있다. 짜증 마지막 기록 표현의 자유성
그렇다면 김일병은 왜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할까. 범행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증거도 없다. 연천 GP 총기 사건의 최대 의문점 중의 하나이다. 김일병의 아버지 김영래씨는 유족들과 만나 “동민이를 면회한 자리에서 사건 이야기를 하면 입을 닫아버린다”라고 말했다.?
김동민 일병의 변호인 이었던 법무법인 창조 이기욱 변호사는 고등군사법원에 무죄 추정 근거에 의해 항소했으나 기각되었다. 이변호사는 “김일병이 범인이라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그런데도 김일병이 자신을 범인이라고 자백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김동민 일병을 괴롭혔다는 질책사병들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며, 조기 전역은 물론 '국가유공자'라는?혜택까지 받았다. ?
3.?거짓말 탐지기도 ‘판단 불능’으로 나왔다
군 수사당국은?사건이후 김동민?일병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국방부 검찰단 거탐 2005-006)를 2005년 7월5일 유족에게 보냈다. 여기에는 수류탄 투척, 박의원 상병 취침위치에 대한 내용이 ‘판단 불능’으로 나왔다.?
①피검사자 조건 적합 여부 “사건의 파장과 달리 너무나 차분하였고, 마치 타인의 행위를 진술하는 듯 하였고, 법적 처벌의 수준도 알고 있어서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모습으로도 보여지지 아니하여 피검사자의 정신적·심리적 상태가 어떠한지 의심의 여지가 있어 본 검사관도 황당했다.”
②김동민의 행동 징후 “혼자 있을 때도 전혀 불안해하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계호병들과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에서 과연 이번 범행을 저지른 피검사자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검사가 끝나고 검사실을 나서면서도 웃는 등 본 검사관이 당혹할 수 밖에 없었다.”
4. 유족들은 왜 '김일병 살리기'에 나섰나? ? 자식을 비명에 잃은 부모들이 김일병을 살려야 한다며 구명운동에 나섰다. 유족들은 김일병의 부모를?먼저?찾아갔다. 김일병의 부모는 유족들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만나주지 않았다. 몇 차례의 설득 끝에 자리를 함께했고, 유족들은 “당신의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며 진실 찾기에 동참해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유족들은 왜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김일병을 살리려고 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정부와 군 당국의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연천 530GP?사건?3주기 추도식 모습
유족들은 애초부터 ‘동료 병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군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군의 발표는 의혹투성이였고 어느 것 하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군 당국은 ‘진실을 밝혀 달라’는 유족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유족들은 급기야 군의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조작설’을 제기하고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유족들의 진실 찾기는 벌써 6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8명의 유족들은 매달 둘째 셋째 주에는 어김없이 대전 현충원에서 모였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마음을 서로를 위로하고, 진실을 밝힐 때까지 힘을 합치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유족들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이 가장 힘들고 서럽다고 말 한다.
유족들은 한때 자비를 들여 김동민 일병의 국선 변호인 대신 민선 변호인을 선임하기도 했다. 사건의 열쇠를 쥔 김일병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병이 사형당하면 진실도 묻혀버린다고 조바심도 든다.?
고 이태련 상병의 아버지 이찬호씨는 “살해 동기나 사건 정황 등에 대해 의혹이 많은 사건은 사형을 집행하면 안 된다. 자칫하면 진실이 가려질 수 있고, 억울하게 죽는 일이 생길 수 있다. 530GP 총기 사건은 당시 여러 정치 상황에서 터진 사건이다. 의혹을 감추려 하지 말고 정부와 군 당국이 속시원히 털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5. 김일병의 부모가 아들 구명에?소극적인 이유는? ?
김동민 일병 부모의 태도도 이상하다. 유족들이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김일병의 아버지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2007년 9월28일?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연천 GP 총기사건' 관련 기자회견이다.
유족들의 간청에 의해 기자회견장에 나왔으나 그 다음부터는?유족들을 피했다.
이렇듯 김일병의 부모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유족들이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 동민이의 구명에 나서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김일병의 부모는 아들의 생사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고 조정웅 상병의 아버지 조두하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는 “동민이 부모는 자식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동민이의 수사기록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남의 자식 생각하듯 했다. 같은 부모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 6. 김일병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
김동민 일병은 2005년 11월 제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며 2006년 4월 고등군사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김 일병측은 상관살해 등 7개 혐의로 사형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군형법 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그러나 김동민 일병은 지난 2008년 5월7일 고등군사법원 고등2부(재판장 김영률 대령)에서 상관살해 등의 죄로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김일병은 현재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
? 유족들은 여기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일병이 진짜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인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지난해 8월7일 오전 11시경 육군교도소를 직접 방문해 김동민 일병에 대한 면회를 신청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교도소 측은 면회를 거절했다.?
고 조정웅 상병의 아버지 조두하 한국폴리텍대 교수는 “김일병의 실제 수감 여부와 근황 등을 확인하기 위해 면회를 신청했지만 교도소 측은 면회를 거절하고 수감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조교수는 “면회가 안 되면 교도소 수감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얼굴만이라도 보여주던지 CCTV 화면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교도소 측은 “확인해 줄 수 없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첫댓글 저도한때의문이었죠 혹시북한군이넘어와서한일을일병이뒤집어썼을수도
북한군이 철책 넘어와 초소 문두드리며 북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수준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군대비리 쩌는 곳이라서~!
98년도에 중위 사망사건도 있던데요~!
별3개의 아버지가 있는데 업무의 과중함으로 자살했다고 결론지음~
육사 출신에 아버지가 별3개인데 자살이라~ 말도 안되고 지문이나 화약도 안 묻음~!
군이 거짓말 하는거죠~!
기억나는군요.
김훈 중위 말씀하시는 거죠?
사건 동영상 보니 끔찍하더군요. 내무반에 누운채로 총맞고 수류탄맞아 죽어있는 병사들 보니 할 말이 없었죠. 도대체 진실이 뭔지 궁금하네요.
의문투성이...
뭔가 있어도 제대로 있다..
군대라는 집단이 원래 힘의 원리로 움직이는 상명하복 시스템이라 어쩔 수 없는 드럽고 무서운 곳이죠...군기도 좋지만 기본적 인권과 투명성이 필요하다 봅니다...
이거한때 제가관심이많이가서 실제사진동영상다봣는데요 근무일지에보면 비무장지대순찰을갓는데 북한 화기가떨어져서 죽엇다는 글이잇엇구요 일단제생각은 북한군소행인것같은데 시체를 내무실로 옮겨놓은거죠 실제내무실에는 수류탄파편흔적이발견이안되엇죠 제가보기엔 김일벙과 그가족에게 수억 또는 수십억을주고 일을 이렇게만든것같습니다 김일병은아마 다른이름으로살고잇거나 해외에잇을거라는추측
저도 같은 생각이네요...면회를 가도 안된다 CCTV 확인도 안된다....저도 사진이랑 이것저것 봤는데 총상이라 말하는 부위가 5cm가 넘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상식상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참...
전534gp에서 군생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