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쓴다는 것 1+ 2 -
글을 쓴다는 것 1
1, 글을 쓴다는 것. 여러측면이 있을 것이다. 돈때문에 팔릴 수 있는 잘 포장된 글을 쓰기도 할 것이고 자신을 드러내고픈 욕구도 있을 것이고 남을 비판비난 하고픈 마음을 주체못해 또 분노와 열등감 혹은 아니꼬움 때문에 보복을 위해 별에 별 동기가 있을 것이다. 물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배설도 있다.
2, 그런저런 부정적 요인도 있지만 마음의 정화를 위해, 내상의 치유를 위해, 또는 쓰다보면 뭔가 배우거나 깨달아지는 긍정적 측면도 많은 것 같다. 여러 경우가 복합된 경우가 많을 테니 어떤 정의란 불가능하지 싶다.
3, 다만 글은 그 사람을 나타내주는 거울일 수 있다. 헌데 실체를 그대로 반사해주는 거울을 보고서도 거울속의 저 사람은 절대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반사란 무엇인가? 독자의 비판이나 혹평 충고등이 바로 반사일지 모른다. 호평이나 찬사만 바라는 이는 글 쓸 자격미달 아닐는지...
4, 현실에선 호평이 대부분인 글을 주로 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문제를 야기해 풍파를 일으키며 비판받는 글을 주로 쓰는 사람도 있다. 개성이라고 봐줄 수도 있겠으나 나만 진실이고 옳은데 주변 세상이 틀려먹었다고 억지를 쓰는 사람도 보는데 딱한 일이다.
5, 내도 글이랍시고 수십개 넘게 쓴 것 같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으나 묘한 것이 내딴엔 썩 잘된 글이라고 생각했건만 조회수나 혹은 댓글이나 추천에서 별 반응이 없는가하면 그냥 심심풀이 중언부언한 엉뚱한 것이 더 관심을 받고 어필하는 경우가 적지않은 것이다. 도무지 처음에 대강 이런 반응이겠지 하고 예상한 것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빗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6, 제목탓이 큰 것 같아 신경써봤는데 그 탓도 아니었으며 내용 역시도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때에 편승한 재수랄까 파도를 타는 리듬이랄지...운명적인 어떤 부분도 분명 작용하는 것 같다.
7, 회심의 역작이 죽을 쑤고 뗌빵작이 히트를 친다며 가수들이나 영화관계자들도 간간 토로하는 것 같은데...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사지만 삼진을 자주 먹더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간간 안타도 홈런도 날릴 수 있지 않을까?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시행착오는 없었으리..작가도 마찬가지로...
8, 여하간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글을 쓸 수 있겠지만 더욱 일이 꼬이고 잘못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단 말이다.
9, 어제 B형과 술을 먹었다. 그가 가로되, 참 그도 %% 회원이고 바둑도 상당한 고수다. '광장에서 너도 대표적인 하나같은데 왜 사람들은 자기만의 선을 정해두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못 참으며 화를 내고 통제를 하려고 드는 것인가?...싸움도 재미있는 흥행의 큰 요소인데'
10, 주로 광장지기에 대한 비판맥락이었지만...물론 내도 간간 비슷한 말을 했었고 크게 보면 맞는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완전 자유 방임을 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머잖아 광장공간이 종교나 정치선동..도박광고나 정력제 광고로 뒤덮힐지 모른다, 그 이전에 성님 아우 동지하며 작당하여 公적인 부분은 소멸되고 私적인 패거리들만 횡행할 수도 있다.
11, 아니 그 이전에 나는 그만한 권력도 없거니와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없다. 광장지기라면 그런 비판받아도 무방하겠지만 나는 일개 자연인의 자유로 그리할 뿐이다. 딴지 걸고 제동 걸고 초를 치는 것도 자연현상의 일부란 말이다. 그러기에 자연은 지금껏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왔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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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지만 버릇없는 어린아이를 야단치다가 그 부모로부터 잘 듣는 상투적인 말이 있다. '당신이 뭔데?' 어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녀의 스승에게도 거리낌없이 쏘아부친다. 말만이라면 양반이다. 따귀나 주먹 안 날리면 다행이다. 아마 경찰이나 심지어 대통령이나 신에게도 '네까짓게 뭔데'라고 퍼부을지 모른다.
13,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는 무지다. 내 소유물건을 나 말고 뉘라서 건드릴손가. 사유재산제의 치명적인 병폐일지 모르나 서양이나 일본은 자녀가 잘못하면 가차없이 따귀를 때리거나 굶기거나 골방에 가두어 벌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전설을 들었으니 그것은 아닐 것이다...
14, 한국사회의 기강이 무너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항차 어떤 글을 글로 평한다는 것도 점점 난감한 일이 되어가는성 싶다. '내가 쓴 글을 언놈이 감히 토를 달고 잘못이라고 지럴이야'
15, 끝내는......관두자..소금은 짜면서도 달고
쓰면서도 맛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 감히 소금이고자 하지 않으니 1인의 필부로 족할 뿐이라. 終
2011, 5 바둑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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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 2
- 하이퍼그라피아 -
현대사회의 여건상 사람들은 주로 글로 또 문자로 소통하는 것 같다. 기사를 보고 책을 읽는 등 남의 글을 통해 정보를 얻으며 메일이나 문자로 감정의 파란을 나누며 공유하는지 모른다. 문자로 먼저 전화해도 되느냐고 묻지 않고 전화해도 실례라는 전설마저 들리는 세상이다.
근자 ‘하이퍼 그라피아’라는 책을 누가 소개해주었다. 외국 여자가 쓴 모양인데 글 쓰는 욕구가 강한 사람, 혹은 집필 중독에 빠진 사람을 뜻하며 고금을 통틀어 세계적인 대문호들도 그 범주에 많이 든단다. 그 반대개념인가 몰라도 슬럼프인지 뭔지 ‘롸이트 락’이라든가 하는 글 못 쓰는 증후도 있다던데...
뭐 새삼스런 얘기도 아닌 것이....병적 증상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연의 어떤 증후군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누구나 다소간의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직접 그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서 더 이상의 소개는 못하겠지만.....
다만 내 경험상 혹은 내 시각에 의하면 글을 쓰는 것은 훈련이랄지 어떤 특별한 재능 같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리 달변이고 말을 재미있게 해도 글을 한 줄도 못 쓰는 것인지 안 쓰는 사람도 많다. 만물박사같이 박학다식하고 어떤 비평 갈파도 곧잘 하건만 막상 글에는 재주가 없다고 해야 할지...흥미나 취미가 없는 것이다.
물론 장님의 귀나 촉각이 정상인보다 더 밝아지거나 섬세해지는 것과 같이 세상은 공평해서 필요에 따라 특화되어 어느 한 방면이 좀더 도야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실생활의 대화나 소통능력이 보통 이하도 많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도 실생활은 추할 수 있듯이... 내 같은 눌변은 더욱 그러하다. 물론 글도 잘 쓰고 대화마저 잘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어쨌든 비교적 소수에 속하는 무릇 글 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독자에게 얼마나 감명감동을 주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상상컨대 선대의 상당수 하이퍼그라피아들은 독자들의 이해나 호평 계몽 감명보다는 스스로의 집필욕구를 만족키 위해 일방적으로 많이 썼을 것 같다. 내 자신이 많이 그러한 것처럼...
근래 **님이 어디글에선가 현시욕과 관음증을 말했었는데 아주 근사한 표현이라 무릎을 쳤었다. 사실 그런 부분이 상당하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런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어떤 선배님은 인터넷 일각에서 상당한 인지도가 있고 수백명의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데..어케 그럴 수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하자 ‘별거 없어, 아름답고 슬프게만 쓰면 되는겨’라고 굉장한 비결같이 속삭인다. 맞는 말이지만 정말이지 난 아름답거나 슬픈 이야기들을 별로 못 본다. 아니 보긴 봐도 아름답다거나 슬픈 감정이 안 솟아나고 넘 진부하다...이건 픽션이잖아 같은 비판이 앞선다.
가령...그 선배님의 산문인지 시인지는 대개 ‘이렇게 비오는 저녁이면 당신이 미치도록 보고 싶습니다. 죽고 싶도록 그립습니다’ 같은 분위기다. 조금 과장한 것이지만 쌍팔년도에 유행했던 멘트 같고, 지금도 끈질기게 인터넷에 떠도는 ‘좋은 글 중에서’ 같은 식의 샘플 아닌가싶은 느낌도 든다.
조금 고차원적인 표현은 실감도 어렵고 거리감도 생기니 선배님 같이 익숙하거나 상투적인 표현이 대중에겐 더 어필할지 모른다고 추측하지만...적어도 내 구미엔 도통 안 맞아 관심을 접었다. 그런 정도에 열광하는 여인들이라는 것은...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또 어떤 형은 엄청난 다작이었는데 평균이하이던 내를 많이 독려했었는데...‘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이여 감동’ 하며 비결이라고 일깨워준다. 말이 좋아 감동이지, 세상에 그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가 제시하는 감동의 실례 역시 대부분 억지성의 꿰어맞추기였다. 가령 의사가 불치병인 자신의 어린 딸을 무료로 살려줬는데 의사에게 위기가 닥쳐오자 자신의 목숨을 던져 보답한다.
훌륭한 은혜갚음일 수 있다. 협객일지 싸나이의 의리 실천이기도 하겠다. 따라서 어떤 이들에겐 감동의 도가니탕일수 있겠다. 더욱이 딸과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나누는 대사들이란 ‘미워도 다시한번’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 같으니...
허나...중략....
여하간 근래 들은 감동일화로는(라지오서 들었다)..융니오 때...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았는데...남편이 전쟁 중 실종되었다(유복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반지만 보내왔단다. 알고 보니 부상으로 팔이 절단 나서 병원에 있는 걸 찾았는데 아내에게 새출발하라는 의도로 그랬다던가. 해피엔드로 지금은 손자들 돌보며 잘 산다던가..
헌데 사실은 영화 애수라든가 예스터데이라든가 비슷한 일화는 많다. 어쩜 감동 짜깁기 영화인 포레스트 검프도 그 범주일 것이다. 진부한 실화지만 듣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돋을 것 같았다. 하여 나도 완전 메마른 인간은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도 생겼었다. 감동 감탄을 많이 해야 오래산다는데....
아무래도 한오백년도 못살듯한 불길예감ㅠ^^
* 왕년 헝가리 보컬팀의 '스마일 어게인'은 엄청난 반응이었지요. 캐나다 비급 영화인 예스터데이에 1983년 수입업자가 마구잡이로 갖다붙인 것인데...그게 대박나 한 십여년 한국의 애창팝송 10위안에 꾸준히 들었다는.... 유복자를 남기고 월남전에 갔던 남주인공이 중대 부상을 숨기고...
2011, 6 세이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