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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한 사람이 들어올리기엔 버거운 무게다. 수십 명이 할 일을 대형 크레인이 한 번에 대신한다. 저 크레인처럼 우리네 일상사 먹고살기 버거운 것들을 대리해주는 기계장치는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단 하나 있다면 오직 노력뿐이다.
설날 사흘 전, 나는 잊지 못할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A)은 어려운 경제 현실을 비관해 스스로 새끼손가락을 절단했고, 또 한 사람(B)은 역전 동냥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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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죽도록 패주고 싶을 만큼, 어리석은 자해 행위를 했던 A씨는 전봇대 철선을 타고 오르는 덩굴 식물처럼 살았다. 열심히 올랐지만 겨울이 왔고, 그를 지탱했던 뿌리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나약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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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B씨는 역전 동냥아치다. 낮에는 지하상가에서 구걸을 하고 밤에는 포장마차가 몰려 있는 역전 광장에서 빗자루질을 한다. 그 대가로 포장마차 아줌마들이 우동이나 국수를 말아준다. 그는 그렇게 10여 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농업용 살수장치인 스프링클러가 한겨울 잠시 작동을 멈추고 서 있다. 재가동을 하려면 적절한 때가 되어야 한다. 저 스프링클러를 보며 A씨와 B씨를 생각한다. 그들의 재기를 그린다.
그 둘을 취재하려 한다. 시민기자로서 쉬운 일이 아니다. A씨를 취재하려면 한계가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업계 전반의 문제점을 짚어보아야 하는 일이다. B씨는 아주 심각한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를 만나려면 역전 더러운 골목길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꼭 취재를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언제나 다같이 잘 사는 세상이 올까? 설 연휴 내내 강박관념에 빠져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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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30일 정오, 집을 나서서 대전 안영동 뿌리공원까지 세 시간 남짓 산행을 했다. 산길을 지나 들판을 건너 봄날 같은 겨울을 실감한다. 겨울이 봄을 안고 있다는 말은 진리다. 안영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뿌리 공원에 들어가면 작은 선착장이 있다. 물놀이용 오리배가 얼음 속에 박제가 된 채 겨울잠을 자고 있다. 얼음이 녹으면 그들은 늘 같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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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물은 흐르는 곳부터 녹는다. 제방 무너미 부근은 봄날 같은 햇살이 결빙을 허락하지 않는다. 얼음은 제 살에 허연 핏줄을 만들고 그 핏줄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햇살은 그 핏줄을 따라 장엄하게 이동한다. 녹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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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그렇게 견고했던 얼음이 제방을 뛰어내려와 돌부리에 부딪쳐 힘찬 날갯짓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고통과 싸우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중견 시인 이윤학은 말한다. 물보라가 아름답다면 돌부리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통을 안고 사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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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돌아오는 길, 등산로 입구 비닐하우스엔 간이주점이 있다. 장작더미와 난로와 주전자와 사람들 모두가 정겹다. 사진을 찍는 내게 주인 아줌마가 놀란 눈으로 이유를 묻는다.
"이 공간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요!" "에구 난 또 어디 구청에서 나온 사람인 줄 알고 겁 먹었잖유!"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무심코 들이댄 디지털 카메라가 허가 없이 영업 중인 아줌마에겐 가슴 떨게 하는 돼지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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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전문 카메라가 아닌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에도 조리개 우선 모드니 셔터 스피드니 수동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불과 한 달 전이다. 구입한지 열 달 만에 사용설명서를 치밀하게 읽고 카메라 기종에 맞는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하여 여러 기법을 익힌다.
그동안 얼마나 분별없이 사진을 찍었던가. 초점, 구도, 주제, 빛 등을 보다 치밀하게 제압하려면 고급 카메라로 기종 변경을 고려해야 될 테지만, 보급형 카메라의 기능만 잘 익혀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배나무 단지에 들어선다.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있다. 아웃포커스 기법으로 접사 촬영을 시도한다.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장엄하다. 한겨울 혹한 속에서도 여린 가지에 물이 흐르고 있다. 그 물을 먹고 자란 새순이 찬란한 배꽃을 피우고 육중한 과실을 달게 된다. 새순이 돋고 있다. 분명히 사태다. 그래서 시인 박성룡은 '과목에 과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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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설 연휴 중에도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 공수를 주고받으며 일상사 탄력을 조절한다. 이 편 저 편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견고한 규칙을 적용하며 유기적인 공동체 생활을 엮어간다. 아름다운 질서, 부러운 체력, 함성과 탄식과 추임새가 오가는 운동장의 풍경이 오롯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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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
| 등산로 초입에 보리밥집이 하나 있다. 주인은 장승과 솟대를 아기자기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솟대에 오리가 올라가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리는 물새로서 비와 천둥을 지배하며 풍요와 생산의 상징이라고 한다.
설 연휴가 지나고 있다. 조상을 모시는 차례에서, 세배를 드리는 마음과 덕담에서, 우리네 소박한 소망들이 방방곡곡에 솟대처럼 솟아올라 있다. 다시 일상이다. 풍요와 생산을 위해 차곡차곡 한 땀 한 땀 걸어가야 한다. 겨울은 명백하게 봄을 안고 있다. |
첫댓글 햐암님 고뇌가 살짝 배어있는 수필같은 느낌이네요. 사진부분은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네요. 화보조행기에 쓸려고 사진 찍었더니 바로 긴장하는 분이 있었다는....ㅎㅎ
모르면 일상인데 알면 가슴 한구석이 짠하네요.
마지막 사진 참 좋은 느낌이네요 ..글의 마무리 다운.. 글의 느낌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사진이랄까 ...
지금보니 대신고 선생님이시군요!! 저 지나다니면서 선생님 가끔 봤었는데!!!ㅋㅋ 반갑습니다!!
헉!! 누구신지...
아마도 햐암님 제자가 아닐까요? ㅋㅋ 역시 세상 좁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