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연중 제23주일) 하느님 백성 오래전에 설사와 복통으로 배가 쥐어짜듯 너무 아파 난생처음 119 신세를 졌다.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은 뒤에 온몸이 평화를 되찾았다. 그렇게 갑자기 아프면 119 대원들이 달려와 주고, 마치 응급실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거처럼 아픈 나를 잘 대해주고 치료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아프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해외를 다녀온 사람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라고 했는데, 요즘 뭔가 좀 이상해졌다.
나는 민족주의자, ‘하느님백성주의자’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쓰든지 마지막까지 하느님 백성 무리에 속해있을 거다. 우리 순교 성인들은 믿는 대로 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고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척박한 곳으로 갔다. 그런 곳에서 생존하고 살아갈 수 있던 건 같은 마음을 지닌 교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신 계명에 따라 모두 평등하게 가진 걸 서로 나누며 고단한 삶을 함께 견뎠다. 엄격한 신분 계급 사회에서 그런 시도는 위법이고 아주 위험한 생각이어서 그들은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그런데도 선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그렇게 살았다. 과연 우리 선조들은 예언자들이었다. 지금 우리 삶을 내다본 것이다. 그들은 오직 하느님 말씀에 희망을 걸었다. 하느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믿고 살았다.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강대국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갔다. 만군의 주님 전능하신 하느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라는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비참한 노예 생활하는 가운데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아 그렇게 된 거라고 고백하고 뉘우치고 참회했다.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는 대가로 가난해지는 걸 감내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같은 예언자를 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거짓말 같은 하느님 말씀을 들었다.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 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 그곳에 큰길이 생겨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니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지 못하리라.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앞장서 가시니 바보들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 … 구원받은 이들만 그곳을 걸어가고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이사 35,4-10).” 이런 하느님을 모세는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너희는 보아라! 나, 바로 내가 그다. 나 말고는 하느님이 없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주기도 한다. 내 손에서 빠져나갈 자 하나도 없다(신명 32,39).”
과연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기적적으로, 그들의 노력은 하나도 없이, 상상도 할 수 없던 방식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느님 약속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예언서에 기록된 그대로 하느님이 실제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잘 듣고 말할 수 있게 하셨다. 오늘 복음에서 귀먹고 말 더듬던 그 사람은 사고로 장애를 입은 게 아니라 마음이 무디고 둔해서 잘 듣지 않아 말도 행동도 어눌해진 거라고 한다. 귀담아 듣지 않으니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행동에 확신이 없는 거다.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마음과 사는 방식이 그런 거다. 전례는 의무적으로 참석하고, 하느님 말씀은 광고문구 정도로 듣는다. 예수님은 이런 이들을 두고 이사야서를 인용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마태 13,14-15; 이사 6,9-10).” 믿는 이들에게 성경은 옛날얘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얘기, 지금 여기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 얘기다. 언제 어떻게 인지는 몰라도 하느님은 오늘의 이 답답한 상황을 반드시 바꾸어놓으실 거다. 이는 하느님 백성이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치유는 예수님이 즐겨 하시는 일이고 평등과 평화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은 누구나 차별 없이 치료받는 제도가 만들어질 거다.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우리 하느님 자녀들은 우리 삶으로 증언한다. 오늘 야고보서가 전하는 대로 최소한 성당에서만이라도, 미사참례 할 때만이라도 서로 차별 없이 대하고, 나만큼이나 너도, 아니 나보다 네가 더 아프고 힘들었을 거라고 여기며 서로 따뜻하게 잘 대한다. 이런 데에 하느님이 안 계시면 다른 어떤 곳에 계시겠나.
예수님, 인간은 계획하고 하느님은 섭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화내고 비난하며 교만 떨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이런 현실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정치인들과 의사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선하신 하느님을 신뢰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