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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륜(輪) - 도성제》
음..
제 경우는 불교에 불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불교는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그것도 중국에 있는 한인교회 도서관에서 법화경을 시작으로 반야심경을 따라 하다가 얼떨결에 밑창이 빠지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그 후로 마음이 너무 고요하고 평온하게 갑자기 바뀌어서 시끄럽게 싸우고 다투고 하는 험악한 사회생활은 할 수가 없게 되니까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이 험한 사회를 어떻게 살아나가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 다시 예전 마음으로 돌아갈 방법 좀 알려달라고 하려고
그때부터 스님들을 찾아다니다가 남양주 선재사에 청운 스님을 찾아가서 만나 뵙고 장장 11시간 정도를 쉬지도 않고 점심도 거르면서 너무나 재미나게 불교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저는 이 어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을 섞어본 스님이었답니다.(2018년 경)
그리고 숙소로 차를 몰고 이면서
"혹시 나도 된것 아니야?"
라는 마음이 그때 처음 들었었는데요?
왜냐하면 스님 말씀이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경허선사 이야기도 이때 처음 들었고요.
법당 안에는 경허스님 영정도 크게 걸려있기에 저는 꼭 조폭 두목이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승복은 입은 것 같은데 머리는 스포츠머리에 수염까지 있고 몽둥이까지 들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 박에요?^^
(이 정도로 제 경우는 불교를 몰랐음)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법화경과 반야심경을 다시 보는데..?
와.. 그렇게 어렵던 법화경과 반야심경 내용들이 너무나 쉽게 다가오는 겁니다?
심지어 성경 책까지도 말이지요?
성경 책 같은 경우는 그동안 제가 알고 있었던 내용과 전혀 달랐답니다?
아무튼 그때는 정말로 신기했답니다?
그리고 마음도 한결 더 가벼워졌고요.
왜냐하면 속이 다 시원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런 글들을 쓰기 시작했던 것인데요.
그 이유는 집안 종손 형님과 신당동에 사시는 형님 한 분께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그 당시에는 중국에서 막 들어와 당구장 쪽으로만 돌아다닐 때였거든요.^^
그 당시에 만난 당구 선후배들도 다수가 이 글을 보고 있고요.
아무튼 그러다가 평택에 자리를 잡고 얼마 후에 오산에 있는 일물선원 구담 스님을 만나 뵙고 어깨너머로 법문을 듣고 그때부터 나도 이분들처럼 이것을 알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따로 혼자 나가서 여러 스님들을 만나보면서 대상을 넓혀 나갔던 것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두 분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때 당시만 해도 스님들은 모두 다 수행에는 도사들이고 다 깨우친 사람들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진실)
그런데? 남쪽의 어느 어른이나? 북쪽의 어느 어른이나? 요즘은 중간에 어느 어른이나? 다들 겪어 보니까..
"아.. 이것이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한국 불교 정말로 큰일 났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나 혼자라도 이러고 있는 것인데요.^^
그 당시에는 앞에서 만난 두 스님들처럼 다른 스님들도 모두 수행도 열심히 하고 종교 활동도 열심히 하고 그런 줄 알았었거든요?
종단과도 원활한 줄 알았었고요?
그런데 출가를 하면 생계수단도 어렵고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현실을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었는데요.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안되겠다 나라도 남들을 가르치려면 수행을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기왕이면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남방 불교 스님들과 교류를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물어보고 듣고 하다가 [대념처경]을 보라고 하기에 봤더니?
와.. 이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다 싶어서 그때부터 혼자서 3년 이상을 가까운 도반들만 빼고는 일체 대인관계는 단절하고 일만 하면서 대념처경 내용들을 이렇게도 따라 해 보고, 저렇게도 따라 해 보면서..?
"아.. 그래서 알아차림을 하라고 했었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지금은 사성제 모두를 완벽하게 터득을 하면서 수행의 맛을 보게 되니까 지금은 알아차림 수행 재미에 흡뻑 젖어 있는 것인데요.
일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알아차림 수행을 제대로 알고 하면 정말로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답니다.(진실)
왜냐하면 경전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까 순차적으로 다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그 당시에 륜(輪)이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고요.
세상 모든 일체 만물들이 돌고 또 도는 반복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알아차림 수행조차도 말입니다.
마치 바퀴나 물레방아가 돌아가듯이 돌아가면서 성장도 하고 패망도 하고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알아차림 수행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 몸(오온/생각 포함)과 마음에서도 늘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또 일어나고 하잖아요?
이것이 곧 고통의 원인인 것이고요?
화두든 몸이든 알차림 수행을 하다 보면 더 이러한 것들을 느끼실 것이고요.
제가 보는 알아차림 수행은 본인이 직접 해보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직접 경험해 보고 체득하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수 박에 없다는 것인데요.
저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념처경에서 하라는 대로 꾸준히 따라 하다 보니까 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지는 것을 알아차리라고 하는지를 그냥 알겠더라고요?
"아하.. 그래서 이것을 하라고 했었던 것이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제 자랑이 아니라 수행은 이렇게 경전이 하라는 대로 꾸준히 따라 하는 것이 최고라고 본답니다.
그러나 직접 해보지도 않고 몇 번 해보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요.
왜냐하면 자기가 느끼지를 못하는데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몸(오온/생각 포함)에서는 어떤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마음에서는 어떤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등을 못 느끼는데?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감각을 못 느끼고 있는데? 무슨 재미로 수행을 하고 무슨 재미로 알아차림을 하겠느냐 이겁니다.
간화선도 마찬가지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누차 말씀드렸지만
간화선은 위파사나(조견오온)보다 훨씬 더 힘도 좋고 역동성도 있고 무엇보다 화두 하나로 사성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 높게 평가하고 있는 편인데요.
그런데 문제는 어쩐 일인지 간화(看話)만 열심히 하고 있지 [의단]이나 [타파] 쪽은 어떻게 관리를 하고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를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답니다.
남방 불교 스님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도 저는 남방불교 스님들을 만나면 당신은 어떻게 수행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있는데요.
요즘은 페북을 통해 각 나라의 스님에게도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있고요.
요즘은 번역기가 잘 되어있잖아요.
아무튼 위파사나(조견오온)도 사성제를 활용해야 하는데 줄곧 고성제에 해당하는 알아차림만 하고 있으니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인데요?
그렇잖아요?
간화선의 목적도 마음을 깨우치기 위함이지 화두를 깨우치기 위함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까짓 화두 몇 개 풀어봐야 뭐 하겠습니까?
위파사나(조견오온)도 본성(불성/성령/마음)을 알기 위함이지 알아차림만 하기 위함이 아니잖아요?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활을 쏘려는 방향이 과녁이 되어야 하는데 하늘을 대고 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답니다.
저로서는 정말이지 지금 수행자(수도자)들이 너무 답답한 경우인데요.
왜냐하면 분명히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가르쳐 주셨잖아요?
그런데 사성제를 어떻게 알아차리고 어떻게 적용을 시키고 어떻게 관리를 하고 어떻게 소멸을 시키고 어떻게 도성제에 들어가서 도를 펼쳐야 하는지 등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줄곧 고성제에 해당하는 알아차림만 하고 있지요?
간화선도 화두 알아차림만 하고 있고
위파사나도 조견오온만 하고 있고요?
그 이유는 부처님이 하라는 대로 안 해서 그렇답니다.
기독교도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안 하고 있고요.
다들 알맹이는 모르고 있고 껍데기만 가지고 주물럭 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말이 심하거나 틀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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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법륜경 / 상윳따 니까야》
20260119
제목: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네 가지(사성제)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watch?v=9DDn0Voa4aU&si=VjM8q_SSsEqL6E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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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사성제(四聖諦)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삶은 괴로움이니라.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괴로움이니라.
이 괴로움은 다시 태어나려는 갈애(渴愛)에서 비롯되나니,
감각적인 쾌락과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집착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갈애를 남김없이 버리고 놓아버릴 때 고통은 완전히 소멸되어 그대들은 참된 평안과 자유에 이를 것이다.
(내용은 짧지만 이 안에 사성제가 다 들어가 있고요. 륜(輪)도 다 들어가 있답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처럼 누구나 다 바퀴처럼 돌고 또 돌고 있잖아요? 그래서 사성제로 이러한 것들을 모두 소멸시켜야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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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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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가정에 늘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
※ 이 글은 주로 수행(수도)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은 사성제 내용인데요.^^
그래서 오늘부터는 오랜만에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4주에 거처서 연속적으로 자세한 알아차림 수행(수도) 이야기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알아차림 수행의 기본은 뭐니 뭐니 해도 사성제(四聖諦) 내용이지요?^^
사성제는 몸과 마음으로부터 완전한 소멸과 해탈로 이끄는 성스러운 경전이라는 의미인데요.
사성제는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고] → [집] → [멸] → [도]로 가는 순서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사람들은 맨 끝에 있는 [도제]를 먼저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것은 수행을 완전히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여사미거하사도래(驢事未去馬事到來) 랍니다.
앞에 일은 하나도 해결을 안 해 놓고 뒤의 것이 먼저 가려고 하는 격입니다.
왜냐하면 [도제]는 앞에 있는 [고제]와 [집제]와 [멸제]가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알아차림의 확립" 쉽게 말해 완전히 숙달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물론 앞부분에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고귀한 진리 도성제(道聖諦)] 라는 내용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완전한 마무리 단계를 위한 완전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고귀한 진리 도성제(道聖諦)이지
아직 알아차림 숙달도 안된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숫돌로 비유를 하면 고제와 멸제까지는 마음이 거친 칼날을 거친 숫돌로 갈아내는 과정이라면
도성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마음이 완벽한 칼날 같지만 지혜 제일 사리불처럼 완벽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고운 숫돌로 다시 마음을 완벽하게 갈기 위한 내용들이 도성제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법화경에서 부처님과 사리불 이야기에서도 잘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리불이란 이름 뒤에 (불) 자가 붙으면 이미 불성을 깨닫고 증득한 보살이라는 뜻이랍니다.
쉽게 말해 도성제는 보살들을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제와 집제와 멸제가 어느 정도 확립이 되고 난 후 도제로 마무리하는 것이랍니다.
마치 고운 숫돌로 칼날(마음)이 고와지긴 했지만 더 완벽하게 곱게 갈기 위한 숫돌 역할을 하는 것이 도성제 라는 겁니다.
깨닫게 되면 누구나 다 알겠지만 깨닫고 증득을 했다고 해서 완벽한 것이 아니랍니다.
부처님이 지혜 제일 사리불(불성을 증득한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고제와 집제와 멸제를 통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더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성제라는 것이고요.
물론 일반 사람들도 도성제 내용들이 잘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되겠느냐 이겁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몇십 년 동안 수행을 했다고 하는 큰 스님들도 팔정도 내용들을 제대로 행하고 있는지를요?
만약에 큰스님들이 팔정도를 정확히 행하고 있다면 저도 도성제부터 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모든 수행자들은 고성제부터 다시 시작하셔야 한답니다.
괜히 욕심들을 내서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만 찢어지지 마시고요.
따라서 [도성제]는 어디까지나 [고제]와 [집제]와 [멸제]를 다시 한번 종합적으로 팔정도라는 기준점으로 다시 한번 정리를 해서 깨닫고 증득한 보살들이 완전한 소멸을 이끌어 내 보라는 것이 도성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전체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도성제]를 먼저 설명해 보고
다음 주부터는 [고성제]와 [집성제]와 [멸성제]를 순차적으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볼 것이니 이번 기회에 여러분들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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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제(道聖諦) 내용?>>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watch?v=opwdzYkS-FA&si=PecMoS2FfEp3L8v4
[IV.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진리
도성제(道聖諦) Maggasaccam)]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로 이끄는 길의 고귀한 진리 도성제(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고귀한 여덟 가지 길 팔정도(八正道)이다.
즉
① 바른 이해(正見 정견)
② 바른 생각(正思惟 정사유)
③ 바른 말(正語 정어)
④ 바른 행동(正行 정행)
⑤ 바른 생계(正命 정명)
⑥ 바른 노력(正精進 정정진)
⑦ 바른 알아차림(正念 정념)
⑧ 바른 선정(正定 정정)
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① 정견에 관한 설명임?
무엇이 바른 이해(정견/견해)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괴로움에 대한 참다운 앎,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참다운 앎,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참다운 앎,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참다운 앎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이해이다.
② 정사유에 관한 설명임?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각인가?
출리(出離/세속과 관계를 끊음. 미혹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름.)
에 대한 생각 혐오(악의)로부터 자유로운 생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생각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생각이다.
③ 정어에 관한 설명임?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인가?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과 이간질을 삼가며, 거친 말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말이다.
④ 정업에 관한 설명임?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동인가?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잘못된 음행을 삼가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행동이다.
⑤ 정명에 관한 설명임?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인가?
여기에 비구들이여, 어떤 고귀한 제자가 잘못된 방법의 생계를 포기하고 바른 수단으로 그의 생계를 유지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생계이다.
⑥ 정정진에 관한 설명임?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노력(정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아직 일어나지 않는 불순한 번뇌들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의지를 낸다.
이미 일어난 불순한 번뇌들을 없애기 위해, 그는 의지를 내고 강한 노력을 하며, 정진을하며 그것에 마음을 적용시키고 열심히 애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법을 계발시키기 위해
그는 의지를 내고 강한 노력을 하며., 정진을 하며 그것에 마음을 적용시키고 열심히 애쓴다
이미 일어난 선한 법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들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고, 증장시키며, 완전한 성숙과 완전한 개발을 위해 그는 의지를 내고 강한 노력을 하며,
정진을 하며 그것에 마음을 적용시키고 열심히 애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노력이다
⑦ 정념에 관한 설명임?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알아차림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알아차림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알아차림이다.
비구들이여,
⑧ 정정에 관한 설명임?
그러면 무엇이 바른 선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감각적인 욕망으로부터 초연하고 불순한 번뇌들로부터 초연해져서, 대상에 대한 마음의 적용(휴)과
대상에 지속되는 주의력(()이 있고, 초연함으로부터 생겨난 마음의 희열(홈)과 몸의 행복감(#)으로 채워진 첫 번째 선정(해로)에 들어가 거기서 머문다.-
대상에 대한 마음의 적용과 지속되는 주의력이 가라앉아, 내적인 고요와 마음의 통일을 얻으며, 대상에 대한 마음의 적용과 지속되는 주의력이 사라지고, 삼매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감으로 채워진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가 거기서 머문다.
희열이 사라지고 그는 감각의 완전한 알아차림과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앎을 지닌 평정심에 주하며 성인들이 말하는 "평정심과 알아차림을 지닌 사람이 경험하는 행복감" 과 같은 즐거움을 몸으로 경험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들어가 거기서 머문다
육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도 사라지고, 정신적인 기쁨과 슬픔도 이전에 사라졌기에, 그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넘어 평정심과 알아차림으로 완전히 청정해진 네 번째 선정에 들어가서 거기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선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고귀한 길의 진리
도성제(道聖諦)이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그는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고,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한 법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낸다.
"이것이 법이다" 라는 알아차림은 그에게 확립된다.
이렇게 그는 그의 알아차림을 오로지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만이 있는 단계까지 개발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비구가 사성제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 방법이다.
ㅡ♡
(본문 해설)
제 말이 맞는지 그른지 한번 보십시오?
아직 알아차림이 숙달도 안된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아직 알아차림도 확립이 안된 깨닫지도 증득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견]에 해당하는 괴로움에 대한 참다운 앎,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참다운 앎,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참다운 앎,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참다운 앎 같은 것을 정확히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정사유]에 해당하는 출리(出離) 즉 세속과 등지고 미혹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요?
그리고 아직 깨닫고 증득도 못한 사람들이 혐오(악의)로부터의 자유로운 생각과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생각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나 [정어]에 해당하는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과 이간질을 삼가며, 거친 말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는 것 정도는 깨닫고 증득은 못했어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 내용은 모든 철학에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집이나 학교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니까요.
그러나 정어 한 가지만 가지고 팔정도라 할 순 없잖아요?
그리고 [정업]에 해당하는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잘못된 음행을 삼가는 것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비록 깨닫고 증득은 못했어도 굳이 노력을 안 하더라도 기본상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명]에 해당하는 어떤 고귀한 제자가 잘못된 방법의 생계를 포기하고 바른 수단으로 그의 생계를 유지는 것은 가능할까요?
자기 목숨줄이 달려있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지금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동자 출가를 해서 평생을 수행을 했다는 큰 스님들도 천도재나 제사나 친견비 등을 받고 행하는 것이 잘못된 생계수단이라는 것을 몰라서 저러고들 있을까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러면 스님들은 뭘 해서 먹고 사느냐고요?
아니 그러면 다른 나라 스님들은 굶습니까?
그리고 한국 불자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아무려면 스님들을 굶기겠습니까?
다들 절밖에 사람들과 똑같이 하려는 욕심들이 있다 보니까 그런 것이지요?
스님들이 무슨 벤츠 같은 자동차가 필요합니까?
한쪽에서는 스님들이 식대 거리가 없어서 부처님께 올렸던 공양 거리로 때우고 있는데요?
그래서 팔정도 내용들은 아직 깨닫고 증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눈앞에서 돈이나 재물 등이 아른거리면 그것을 물리칠 마음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정도 같은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숙달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언제든 충분히 가능하답니다.
저만해도 직업을 바꾸어서 하고 있고요.
그리고 [정정진] [정념] [정정]도 마찬가지랍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은 스님들조차도 아예 수행들을 안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무슨 도성제에 해당하는 [정정진] [정념] [정정] 같은 팔정도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도성제는 알아차림 숙달도 안된 상태에서 깨닫고 증득하기 전에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고성제 알아차림부터 시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랍니다.
기독교 같은 경우도 선지자(남보다 먼저 깨달아 아는 사람)가 아니면 불교 식으로 말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아니면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을 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계를 유지하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르게 알아차리고, 바르게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기독교 쪽도 늘 시끄러운 것이고요.
이렇게 깨닫고 증득(영접) 하지 못한 사람들 마음은 스님들이든 목사들이든 신부든 늘 시끄러운 법이랍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님.." "우리 목사님.." "우리 신부님.." 하면서 눈앞에서 좋은 것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왜 그 마음이 안 시끄럽겠습니까?
아닙니까?
이렇게 늘 마음이 시끄러운데 어떻게 바르고 보고, 바르게 생각을 할 수는 도성제 같은 것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뭘 모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성제부터 차근차근히 해보라는 것입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왜냐하면 간화선도 사성제를 응용한 수행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화(看話) = 고성제 앎
의단(疑端) = 집성제 앎
타파(打破) = 멸성제 앎
동일함 = 도성제는 같음
그리고 깨닫고 증득(영접) 해서 도성제까지 되는 사람들은 하나로 굴릴 줄 알아야 한답니다.
마치 바퀴를 굴리듯이 말이지요,
고성제 따로, 집성제 따로, 멸성제 따로, 도성제 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두를 하나로 굴릴 줄 알아야 한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를 비유로 륜(輪) 자를 써서 우물 안에 있는 4방에 네 마리의 독사가 사람들을 물려고 한다고 했던 것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륜(輪)이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들 마음에는 4마리의 독사와 같은 뱀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들 마음에는 4마리의 독사와 같은 바퀴가 굴러가고 있다는 옛날식 표현이랍니다.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리고 굴려서 밖으로 떨궈야 하는 것이고요.
기독교 쪽 분들은 성경에도 같은 내용들이 많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면 에스겔서 10장 9~14)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답니다?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나아가며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부르며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네 바퀴란 우리들 마음의 바퀴들을 말하는 것이고 쉽게 말해 우리들 마음에는 황옥 같은 바퀴들도 있지만 독수리나 사자 같은 바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퀴들이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과 같이 그룹들 즉 마음의 한 무더기가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 돼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가 향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룹]이 곧 불교에서 말하는 [집성제(集聖諦)]이고요.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집(集) 자가 그룹처럼 모여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불교식으로 말하면
우리들 마음에는 황옥과 같은 좋은 마음이든 독수리나 사자와 같은 나쁜 마음이든 4마리의 독사와 같은 마음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무슨 일을 접하면 불교식으로 말하면 [안][이][비][설][신]을 통해 [의]가 일어나게 되면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모든 의식이 한곳으로 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화택 속의 아이들이 불타는 집에만 의식이 빼앗기듯이 말이지요.
누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내 몸(오온/생각 포함)과 마음에서 불이 타오르면 몽땅 그년이나 그놈에게 의식이 쏠려서 한 방향으로만 화를 내고 있잖아요?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또 있는 것 같이 한곳으로 몰빵을 해서 정신들을 못 차리고 있잖아요?
사랑하는 연인이 생겨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 사람만 생각하고,
귀여운 자식이나 손주가 생겨도 그렇고요.
사회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요.
그 마음의 모양이 마치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과 같다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누구나 화가 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고통스럽거나 사랑스럽거나 하면 여러 가지의 얼굴들이 나오는데 이것을 바퀴로 비유해서 모든 의식이 한 방향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성질이 나서 화가 북받쳐 오르거나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거나 하다못해 로또에 당첨되면 모든 의식을 한 방향으로 쏠리게 되어서 마치 네 바퀴가 하나로 움직이듯이 홀딱 그 한곳에 모든 의식을 빼앗기고 있잖아요?
그래서 오늘 본문 내용에서도 "수행자들이여, 삶은 괴로움이니라." 하셨던 것이고요.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 마음에서 보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苦)랍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사성제 안에서 굴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성제까지 되시는 분들은 사성제 모두를 하나로 굴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알아차림이 숙달되지 않으면 힘이 없기 때문에 굴릴 수가 없다는 것이고요.
아무튼 그러다 보면 분명히 모든 법은 하나로 통하고 하나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된답니다.
처음에 하나가 일어나면 다음이 일어나고 또 다음이 일어나면 또 다음 것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이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 십이연기법이고요.
그래서 십이연법만 이해를 해도 끝장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십이연기법도 마찬가지랍니다.
십이연기법도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이연기법의 첫 번째인 무명(無明)만 소멸시키면 뒤로 이어지는 연기는 이어질 수가 없다는 뜻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무명이 곧 깨달음이고요.
수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일어나는 것만 잡으면 훨씬 수월한데..
모든 사람들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못 알아차리다 보니까 연기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행뿐만이 아니랍니다.
모든 일체만법이 모두 다 연기법 하나로 돌아가고 있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모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했던 것이고요.
자꾸 어려운 얘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나 자신도 하나로 돌아가고 있고 세상도 하나로 돌아가고 있고 지구도 하나로 돌아가고 있고 전 우주도 하나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것들이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알면 일체 만법을 알 수가 있다 한 것이고요.
수행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행도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성제 따로 집성제 따로 멸성제 따로 도성제 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몸(오온/생각 포함)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동시에 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은 이러한 내용들은 어려울 것이니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요.
다음 주부터는 네 번에 거쳐서 연속적으로 고성제부터 자세하게 설명을 해 볼 것이니 다시 수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셔서 꼭 좋은 결과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도성제 활용법은 맨 뒤에 다시 자세하게 설명을 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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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고성제 예습 동영상?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부처님의 명상법 대념처경 14 법념처 E 4성제 1고성제 -
https://youtube.com/watch?v=vzuGX1xD-Fw&si=cgFzWGeNjiFRdw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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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다들 열심히 하셔서 꼭 성불이든 성령 영접이든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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