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워싱턴 선언에서 핵협의그룹(NCG) 창설 및 핵미사일을 탑재한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정기적인 한국 기항을 통해 확장억제를 강화하기로 상호 합의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미국의 전략핵잠인 켄터키함에 최근 직접 방문하여 탑승한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면역이 되어 있다. 올해 미 해군 항공모함이 국내 입항했을 때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미국이 대한(對韓) 안보공약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전략핵잠 켄터키함을 부산에 보냈을 때에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저항의 의미로 무력시위를 했고, 이 탄도미사일은 북의 발사지점으로부터 부산까지의 거리와 일치했다. 프랑스 공군과 한국 공군이 연합훈련을 실시했을 때도 북한은 프랑스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공격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과 중국의 안보 위협으로 인한 한국 국민들의 전례없이 강력한 자체 핵무장 정서가 워싱턴 선언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3국의 해외분쟁 개입이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최근의 우크라이나전 사례를 보면서, 비핵국가들은 종잇장에 기반한 안보공약이 항상 안심스럽지는 않음을 깨닫고 있다. 비슷한 사례인 한국은 NPT에 잔류한 상태로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 강력한 거부역량을 확보해 인접 핵보유국들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준비가 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NPT를 우회하는 방법으로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핵추진잠수함(핵잠)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정된 국방예산을 가진 한국은 비대칭 전략자산인 자체적인 핵잠 획득을 우선시해야 한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한국의 주류 핵무장 여론을 억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지역 불안정 속에서 족쇄에 묶인 한국
핵무기 없이 재래식 전력으로만 무장한 한국은 북핵 위협과 중국의 해양굴기에 맞설 게임 체인저가 절박한 실정이다.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고 핵보유국들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의 딜레마는 현 시점에서 빠른 핵잠 확보를 통해 가장 시간효율적으로 상쇄될 수 있다. 다만 이는 한국의 미사일 역량을 제한하던 한미 미사일지침 폐지 이후에도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마지막 안보 족쇄로 인식되어 왔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은 2020년까지 핵잠 개발 및 실전배치를 위해 ‘362 사업’으로 명명된 비밀 국방사업을 시작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로 이어지며 좌초되었다. 노 전 대통령과 가까이 일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들어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고2030년대 초까지 핵잠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다시 추진력을 얻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총 9척의 신형 잠수함 중 3척을 2030년대까지 핵잠으로 건조하는 방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이후 워싱턴 선언에서의 NPT 준수 선언을 의식한 윤석열 정부에서도 핵잠을 실행가능한 우선순위로 고려하지 않으면서 핵잠 획득은 지금까지도 진전이 없는 상태다.
왜 핵추진잠수함이 디젤 잠수함보다 나은가?
한국이 핵잠을 선택하면 이 핵잠은 원해 작전 중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진다. 핵잠의 가장 큰 이점은 정숙성을 비롯해 디젤 잠수함보다 더 오래 가능한 고속 기동으로, 비밀 작전에서의 은밀성과 압도적인 화력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핵잠은 상당히 긴 시간동안 수중에서 잠항한 상태로 머물 수 있다. 디젤 잠수함의 몇 주에 불과한 임무수행과 비교하였을 때, 발각되지 않고 수개월 간 작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안보에서 큰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
임무 상 중요한 작전 기간 중 수면위로 부상할 필요가 없는 핵잠은 승조원들이 견딜 수 있는 한 무제한 잠항 기동이 가능하다. 한국의 핵잠은 수개월 동안 SLBM이 실린 적 잠수함을 모니터링하고 추적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북한 수역이나 해상교통로 근처에 대기하다가 핵시설이나 지휘소를 정밀 타격 후 빠져나올 수도 있다.
1982년에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은 두 잠수함의 전략적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영국 해군 핵잠은 약 1만 4000킬로미터 떨어진 포클랜드 지역으로 10일 만에 도착해 아르헨티나 해군을 격퇴하고 제해권을 장악했다. 반면 같은 날 출항한 디젤 잠수함은 작전지역에 도착하기까지 5주가 걸렸다.
핵잠 건조는 한국 해군이 가지고 있는 만연한 문제 중 하나인 승조원들의 질낮은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군인들의 근무조건 향상을 위한 정부의 불충분한 지원도 문제지만, 이들이 해군을 떠나는 많은 이유 중에는 협소한 잠수함의 좁은 공간으로 인한 낮은 질의 근무 및 생활 환경도 있다. 현재 한국 해군의 재래식 잠수함은 엔진과 장비가 차지하는 공간으로 인해 매우 협소하다. 크기가 더 큰 핵잠은 잠수함 근무자들을 위한 시설과 물자를 실을 수 있는 더 많은 공간을 만들 것이다.
추가적으로, 한국은 핵잠을 다목적 전략자산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핵잠은 함상 생활여건 개선 및 기동 속도 향상 뿐 아니라 더 많은 수의 미사일 발사대 및 어뢰 발사관을 탑재할 수 있어 타격력을 높인다. 또한 특수전 병력 수송용 잠수정을 핵잠에 설치해 운용하는 것은 미국과 영국 해군에서도 채택한 전략이다. 한국은 이를 벤치마킹 함으로써 핵잠의 가용성을 높일 수 있다.
쉽게 말해 적의 핵자산을 억제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수단은 공격용 핵잠이다. 시간이 흐르며 축적된 핵기술, 세계적인 수준의 조선업 역량, 매년 증가하는 국방예산을 고려하면 한국은 지도부의 결심만 있다면 재정적으로 더 전략적인 핵잠 연구개발과 건조에 투자할 수 있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활용 방안
한국의 핵잠 도입은 역내 안보 상황 타개를 위한 임무 융통성을 보장할 것이다. 이 잠수함들은 북한의 미래 잠수함과 탄도미사일을 억제하는 한편 중국의 도발을 견제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해군 기지 근처의 한국 핵잠은 동중국해 상에서 중국 해군 함대에 압박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필수 수단을 준비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한 반격 전략을 개발하는 데에 드는 소요시간을 줄일 것이고, 한국 핵잠재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핵잠 플랫폼에 기반해 톤수를 키워 미사일 발사대를 통합하면 더 무거운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나 순항미사일을 실어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 또는 핵추진 순항미사일 잠수함(SSGN)으로 전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대 국가에게 불확실성을 더하여 공격적인 행동을 재고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만약 미국의 양해를 얻어 한국이 핵무장을 하게 될 경우 이러한 한국형 핵잠은 핵 3축체계의 일환으로서 적의 핵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반격하는 2차 타격 능력을 보장할 것이다.
그러한 투발수단을 개발하는 맥락에서 핵잠을 도입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여 서태평양에서 중국 해군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 중국, 북한 간의 합의된 동시 행동은 긴장 상황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형 핵잠은 중국의 대만 병합 시도 시 가능할 북한의 긴장 악화 행동을 억제시킨 후 동맹과의 방어적 대응행동에 나설 수 있다. 따라서 핵잠에 대한 한미 양국의 합의는 시진핑 주석과 독재자 김정은에게 강력한 경고장이 될 것이다.
핵잠 없이는 한국이 북한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어 미국 지원이 제한될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의 신냉전에서 힘에 부칠 가능성이 높다. 중국 해군은 이미 미 해군의 군함 수를 능가했고 러시아는 미국 잠수함 견제에 적극적이다. 미 해군은 약 50척의 핵잠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비와 훈련 일정으로 인해 상시 출동이 가능한 잠수함은 그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핵잠들이 거의 30척에 달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핵잠수함을 상대해야 하며, 이 수는 증가하고 있다. 미국이 핵 비확산 원칙을 포기하고 오커스를 통해 호주에 8척의 공격용 핵잠을 제공하겠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만, 호주의 핵잠은 2042년 이후에나 완성될 전망이다. 한국이 여기에 참여해 지원과 협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해협에서의 분쟁이 어떻게 지속되느냐에 따라, 이미 촉발된 서구권과 구공산권의 대리전은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맹목적으로 비확산 원칙을 미국이 강요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 것이다.
전직 정부 관료들과 안보 전문가들이 이미 이야기하였듯, 한국은 핵잠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인프라, 독일 및 일본과 같은 잠수함 강국들에 견줄 만한 자체 잠수함 설계 및 건조 역량을 상대적으로 짧은 30년 내에 구축하였고, 이제는 기록을 경신하는 해외 무기수출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핵잠에 적용가능한 소형 원자로 기술도 축적해오고 있으며 미국과 이 기술 협력에도 합의했다.
반대의견에 대한 반론
핵잠의 주요 문제는 소음이다. 하지만 소음 저감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우려를 경감시키고 있다. 미국의 버지니아급 공격핵잠과 오하이오급 전략핵잠 또한 2000년대 이후 소음을 상당히 감소시켰다. 그러한 개선은 디젤 잠수함에 비해 리스크 적은 기동성과 어뢰같은 대잠 무기에 맞설 더 나은 전투대비 역량을 제공한다.
혹자는 한국이 NPT에 서명하고 비준한 국가이므로 핵잠 개발이 핵무장에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형 핵잠은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은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킨다. 자체 핵잠은 적 핵잠수함을 추적하거나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SLBM 및 순항 미사일을 운용하는 데에만 사용될 것이다. 재래식 전력으로 무장한 핵잠은 NPT를 온전히 준수한다.
그리고 실제 핵무장에는 플루토늄 또는 무기급 우라늄이 핵무기 생산을 위해 필요하지만, 핵잠은 추진체계를 위해 저농축 우라늄만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강한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백악관에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촉구함으로써, NPT를 탈퇴하지 않고도 미래 차세대 핵잠 역량 향상을 목적으로 우라늄 농축 비중을 조정할 수 있다.
한국은 국제법적으로 IAEA의 안전조치 협정의 일부인 INFCIRC/153 조항을 활용해야 한다. 이 조항은 NPT 가맹국들로 하여금 민감한 핵물질을 핵무기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INFCIRC/153는 한국이 원자력을 잠수함 추진체로만 채택할 경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핵심 원칙을 준수하게 됨을 뜻한다. INFCIRC/254 조항의 경우도 가맹국들이 제3국으로의 핵농축 기술 이전을 평화적 목적으로만 가능토록 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핵잠 개발을 위해 NPT 체제의 이러한 법적 권리들을 활용해야 한다. 2021년 영국과 미국이 오커스 회담에서 호주에 핵잠을 제공하기로 발표하였을 때, IAEA는 핵탄두를 싣지 않은 원자력추진 잠수함의 이전은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전세계에 명확히 했다. IAEA의 그런 입장은 실질적으로 미래 한국형 핵잠 개발의 문을 연 것이다.
한국은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으로부터 핵잠에 대한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한다. 급변하는 아시아 안보 환경과 한국을 위협하는 상대국가들의 군사력 증강을 고려하면,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 주도의 TF팀을 꾸려 핵잠 개발 소요시간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해외 협력과 국산화를 통해 현재의 인프라를 핵잠 건조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