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스는 기함 콜로라도호(Colorado號)를 비롯하여 군함 5척에, 수해병 1,230명, 함재대포 85문을 적재하였다. 5월 초순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함대를 집결, 약 보름 동안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고 5월 16일 조선원정 길에 올랐다.
로저스는 조선측이 평화적 협상을 거부할 경우에는 무력시위 및 군사작전으로 강제적으로 입약(立約)을 성취시키겠다는 포함 책략을 수립하고 인천 앞바다에 내침하였다. 로저스는 서울로 가기 위한 수로를 탐색하기 위해 강화해협을 탐측하겠다고 조선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하였다.
그리고 6월 1일 강화해협의 탐측 항행을 강행하였다. 함대가 손돌목[孫乭項]에 이르자 연안 강화포대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조·미간에 최초로 군사적 충돌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손돌목 포격사건’이라 한다.
미국 대표는 조선측에게 평화적으로 탐측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군 함대에 대한 포격은 비인도적 야만행위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조선 대표를 파견해서 협상할 것, 포격사건에 대한 사죄 및 손해배상을 해줄 것 등을 요구하였다.
만약 이 같은 요구 조건을 거부하면 10일 후에 보복상륙작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하였다. 조선측은 강화해협은 국방 안보상 가장 중요한 수로이기 때문에 미군 함대가 조선당국의 정식 허락없이 항행한 것은 주권침해요, 영토침략행위라고 규탄하면서 협상 및 사죄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평화적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은 6월 10일 초지진(草芝鎭) 상륙작전을 단행하였다. 상륙 군 부대를 10개 중대로 편성하고, 포병대·공병대·의무대, 그리고 사진촬영반 등이 동원되었다. 수륙 양면공격을 개시하여, 역사상 최초로 조·미전쟁(朝美戰爭)이 발생하였다.
미군은 함상 함포사격으로 초지진을 완전 초토화시키고 점거하였다. 미군은 6월 11일에는 덕진진(德津鎭)을 무혈 점거하였다. 마지막으로 광성보(廣城堡) 작전을 수행하였다. 광성보에는 진무중군 어재연(魚在淵)이 이끄는 조선 수비병 600여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미군은 수륙 양면포격을 한 시간 벌인 끝에 광성보를 함락하였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이었고, 조선군은 전사자 350명, 부상자 20명이었다. 미군은 광성보를 점거하고 수자기(帥字旗)를 탈환하고 성조기를 게양, 전승을 자축하였다.
---------------------------------------------------------------------------------------------------
백병전을 했는데도 3킬 350다이의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온것은 미국의 압도적인 무기와 피지컬 때문인건지 조선군의
호구력 때문인건지...참 씁쓸한 역사다
첫댓글 백병전 얘기는 어디있냐?ㅇㅇ
저때 이후로 영국 군함한테 좆나 깨진 에도막부 사쯔마번처럼 서양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있었어야 했는데
일본만 아니었어도 성공했을지도 모른다곤 하던뎅...'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