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주민 여러분..."
방송멘트도 유난하지만 주민들을 가족같이 여기는 B경비가 주제넘을 때도 있었으니
가령,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면 엄청 야단치거나 소녀들이 밤늦게 나다니면 사는 동호수를 확인하고 행선지를 묻는 등 마치 여학교 기숙사 사감처럼 행세했던 것이다.
B경비의 행사에 고마워하는 부류도 있었으나 대개는 까탈스럽달지..사생활 침해가 아니냐라는 여론이었다.
언제든가 주민들의 경비에 대한 갑질이 사회문제화 된 적도 있었지만 B경비도 간간 소소한 민원에 짜증내는 일이 잦았다. 도둑보안이 주업무인데 가정보안도 포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지만.....글쎄?
그러던 어느 날,
B경비가 술한잔 산다고 하여 웬일인가 하고 나갔더니 3층에서 떨어지는 어린아이를 받아 구출한 공로로 관리소장이 금일봉(5만원) 아이 엄마가 귤 한박스를 감사표시로 주었다는 것이다.
자랑스레 반창고 붙인 코를 들이밀기에 자세히 캐물었더니...
순찰 중...며칠 전부터 익은 살구가 먹음직스럽기에 벌써 나무아래 여러개 떨어져 썩고 있기에 몇 알을 따기 위해 화단 분리막을 딛고 올라가 두어 개 따는 순간,
'후둑' 소리와 함께 뭔가 코를 쳤고 그 바람에 코피가 터졌으며 품에 뭔가 걸쳐져 얼결에 잡고보니 첨엔 인형인가 하다가 인형이 소리를 내더란다!
와중에 살구 모두를 분실했으며 엉거주춤 내려왔는데 위에서 찢어지는 여인의 비명소리가 터졌던 것이다.
베란다 청소 중 겨우 돐 지난 어린애가 난간 틈으로 추락한 것이니 아이 엄마가 오죽 놀랐으리오.
결국은.... 순찰중인 B경비가 우연히 보고는 바람같이 달려가 추락하는 절체절명의 아이를 구해낸 것으로 널리 홍보된 셈이었다.
"나무틈 사이를 꿰뚫어보게 내가 육백만불의 사나이냐? 뛰긴 커녕 걷는 것도 숨찬데...순전 우연히 내 품안에 떨어진 애를 받은 것 뿐이란다.
3층이라지만 2층 옥상인 셈이니 중간에 나무에 걸치기도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들 안 다치고 멀쩡했을 수도 있단 말이다. 언젠가 고층에서 떨어진 애도 살았다는 뉴스도 본 것 같은디"
차마 살구따다가 눈먼 고기 잡았다고 자수할 수는 없었다?
"자수는 간첩이나 하는 건디 존엄한 보안관에게 뭔 망발이여. 그리고 고기라니..너 보안대 끌려가서 고문 한번 당해볼래? ㅋㅋㅋㅋ
영웅멸종시대 아니냐, 영웅이 있어줘야.... 없으면 조작해서라도 만들어야 하는 시국이란다. 바야흐로"
갑질 당하던 형도 조금 어깨를 펼 것이고?
"너도 아는 박경비는 살구를 딴 것도 아니고 떨어진 살구를 줍다가 들켜서 잘렸잖냐. 미국은 공원에서 아무리 사과가 떨어져 썩어가도 한 알도 안 주워간다더라. 그게 선진시민이겠지. 어쩌다 조선 논네들이 주워가 자식에게 엄청 욕먹는다는 전설.."
관리소장 체면도 살고 주민들도 공연히 기분좋을 것이고?
"여기도 천지사방이 씨씨티비라서 소장도 왠지 개운치 않아서 십만원 포상을 반으로 줄인 건지도 모른단 말여"
그래도 아이부모가 겨우 과일 한박스라는 것은 좀...
"아니어도 거하게 대접할 테니 시간 좀 내라는 걸 펄쩍뛰며 사양했단다. 경비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기본중기본이다!"
얼굴 뜨겁지 않우?
"너한텐 전혀 안 뜨겁기에 이렇게 불러내어서 술멕이고 있지 않냐"
......갑질과 을질은 별개가 아니다..?
"문자까지 써야 되냐? ....천망회회 천지티비!"
天網恢恢 疎而不漏 천망회회 소이불루 하늘에 있는 그물은 크고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악행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 (노자 도덕경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