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나쁜 날
현진건님의 '운수 좋은 날'이란 저명소설도 있지만 역설일 것이다.
나쁜 일은 겹친다는 머피의 법칙이라고 있다.
B경비가 오늘같이 운수 나쁜 날은 처음이라고 너무 속이 터져서 한잔 안하면 죽겠으니 나오란다.
부조금 지출이 겁나서 나간 것은 아니다^^
사연인즉 출근 때부터 징조가 안 좋았는데.. 돋보기인지 안경을 잊고 나간 것이다.
책볼 때나 쓸 뿐 평소엔 안경을 안 썼기에 애써 별일 아니라고 자위했다.
나도 종종 그러는데 노화로 인한 자연현상인걸.
그런데 '일어나기로 된 안 좋은 일은 꼭 일어나기 마련이라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나른한 초여름의 11시 '평화시'경이었는데
근무중, 씨씨티비 카메라에 우연히 3동 베란다에서 위험하게 행동하는 아이가 포착되었다.
헌데 안경이 없어서인지 카메라도 불량하지만 설치 촬영장소가 안 맞아서..
눈이 아물거려 9층인지 8층인지 헷갈리는 것은 물론 3라인인지 그옆의 5라인인지도
확신을 못하겠더란다(4호는 결번).
해당집이 특정안되어 8층과 9층 전체에 비상벨을 울리고는 방송하기를
"...비,비상! 언내 있는 집은 베란다좀 살펴보세유!
둬살 어쩌면 서너살..언내가 위험해 보이는디..클날 수도..
903호나 803호 혹은 905호 805호?.."
"저가 맹장 아참, 맹인 결막염이 생겨 눈이 저거해서요.
그, 그러고 보니..영수 할매!..옥희 어매! 영수나 옥희 잘있는지 저기하시구
옆집에 언내가 있다면 빨리 저거허슈!.
903호 학원 이슨상..805호 새색시..미스김...지가 총알같이 저기할거니께!"
하여 온 아파트가..아니 3동 8,9층이 완전히 뒤집혔다.
영수를 업고 있던 902호의 영수할머니는 정신이 나가 영수를 찾아서 부르다 실신지경이 되었고,
801호 옥희 엄마는 요람에 멀쩡히 잠들어있는 옥희를 놓치고 온집안을 헤매다
복도까지 나와 옥희를 찾아 울부짖었으며,
마침 903호에 잠입해 작업중이던 빈집털이 낮도둑은 사색이 되었으며,
805호에서 대낮에 친선 레슬링을 하던 미스김 부부는 황급히 분리되어 옷을 챙겨입었으며...
낮잠자던 703호의 태식엄마가 소란에 깨어나
베란다에서 난간을 기어오르던 두살먹은 태식이를 발견하고 달려가 잡아챘다.
과반수의 주민이 꿀잠을 망쳐 투덜거렸는데...
비상구로 도망가려던 903호 낮도둑은 마침 급히 올라오던 B경비와 부딪혀
눈치8단 비경비가 나동그라진채 호각을 길게 불었고...
아래층에서 비경비를 지원하던 A경비에게 붙잡혔다.
그러고도 소요가 계속되었는데 703호 태식엄마가 나서서
태식이였다고 자수하고서야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경찰백차가 출동해서 도둑을 잡아가고도 혼란이 이어졌는데...
B경비가 도둑을 잡으려다 도둑이 어린애를 인질로 삼았다가 실패했다는둥
유언비어가 많아져 진상파악을 한 관리소장이 자세한 설명없이
'B경비가 이상을 알아채어 사태를 수습하게 되었다'
는 식으로 정리한 모양이었다.
수입잡은 오만원은 공로비인지 상금인지 비상용 돋보기 값인지 명분이 애매했고..
"그럼 운수대통이지 운수 나쁜 날이 아니잖아?"
"내가 평소에 눈하난 제대로 박혔다고 자랑자랑혔는디 앞으룬 썩은 동태눈깔이라고
낙인찍히게 생겼는디 뭐가 경사냐?
글구 서울 본토 출신의 영어 많이 쓰는 교양만점의 신사행세를 했는디
충청도 촌놈이란 거시 뽀록났는디 세상에 이런 망신살이 어디 있단 말여?"
"...연변 보안관보다는 멍청도 저거 경비가 훨 나은 것 같은디 뭘ㅋㅋㅋㅋ"
"남자들 헌티는 온동네 여자들 다 만나고 다니는 바람둥이로 오해살지두 모른단 말여!"
"경비실이지만 매일 만나는 건 사실이잖아"
"뭣때문인지 미스김 신랑이 날 보는 눈초리가 임진왜란 일으킨 왜놈보듯..."
술 한잔을 사약마시듯 비우는 B경비였다.
"아아 정말이지 프라이버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개갈안난단 말여, 개갈이...
.....한잔더 곱배기루 담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