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아빠가 B형 딸에게 쓰는 편지
네가 쓴 편지는 많이 받았지만 아빠가 편지 쓰기는 처음이네. B형 아빠 닮아서 예술적 감성도 풍부하고 열정도 아빠보다 더 한 B형 딸.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서 대견하고 축하하며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어릴적 책읽기를 좋아해서 아빠 닮아서 작가가 되나 했더니, 엄마를 닮아서 음악을 선택한 것은 다행이다. 아빠는 옛날에 돈이 없어서 돈이 안드는 문학을 전공하는 바람에 지금 돈이 안되고 있다. 아빠처럼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엄마를 닮아서 음악을 전공하는 것을 보고 아빠는 행복했고 대견스러웠다. 아빠는 소시적에 노벨문학상이 꿈이었지만 아직 신춘문예도 통과하지 못하고 잡문만 쓰고 있다. 그나마 아빠가 지은 것 중에서 가장 멋진 글이 바로 네 이름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음악을 전공 시키느라 더 뒷바라지 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 부잣집에 태어났다면 걱정없이 더 편하게 음악을 했을테고 네 하고 싶은 것 다 했을텐데 말이야. 그래도 아빠가 가고 싶었던 학교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연주자로 성장해서 엄마 아빠가 못다 이룬 꿈을 이뤄줘서 고맙다. 아빠의 진짜 바람은 네가 음악을 해서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은 꿈을 이루는 것과 관계가 있겠지. 하지만 그 꿈이 쉽게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주변에 어릴 적 꿈을 이룬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손흥민 선수는 실력을 떠나서 막내와 후보시절 선배들 물주전자를 불평 없이 날랐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고 묵묵히 수행하면서 월드 클래스를 꿈꾸었다고 한다.
유재석 방송인은 무명시절에 술을 안마셔서 선후배 개그맨들 대리운전을 할 정도로 하찮은 대우를 받으면서,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개그맨으로 데뷔한 정성화는 주변으로부터 노력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인기가 없었고 심지어 연예인병도 걸렸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뒤늦은 나이에도 뮤지컬 단역부터 바닥에서 시작해서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 레전드 연기를 했다.
가수 싸이는 군대를 두 번 갈 정도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평범한 외모 때문에 무대 제의도 별로 없었다. 자신의 단점인 체형을 장점으로 바꾸면서 월드 스타를 꿈꾸었다고 한다.
아이유 가수는 고졸로 데뷔 전 음반 기획사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서 기타 코드 짚으며 노래 연습을 했다. 남의 곡이 아니라 싱어송 라이터가 되어야만 인정을 받는 가수가 된다고 믿었다.
위의 사연을 보면 무명의 혹독함이 절실함으로 더 열심히 하도록 만든다. 그래야 생명이 길다. 음악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쉽게 갑자기 이루면 생명이 짧고 자만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네가 조금 알려진 것은 너가 잘나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만들어준 것임을 명심하고 항상 낮은 자세로 임해라. 줄을 설 때에도 항상 사람들 뒤에 서라 앞에 서지 말고. 어느 순간 그 사람들이 너를 맨 앞에 세워줄 것이다.
음악으로 장래를 결정했으니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낮은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 오브리가 들어오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뛰기 바란다. 대타 연주가 들어오면 차비가 겨우 나오더라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기 바란다.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더라도 지방 연주도 가고, 오케스트라 선배 멤버들한테 눈도장도 찍고 믹스커피도 타고 심부름도 해야 사람들이 알아준다. 플루트 외에 피콜로도 잘 불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다. 사람들은 여러 조건에 적합한 사람을 찾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이 성취 할 수 있다.
처음에 레슨학생이 없다고 낙담하지 말거라. 앙상블에서 재능기부도 하고 버스킹과 무료 공연도 하길 바란다. 음악가가 꿈인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지도하고 네가 걸어온 길을 시행착오 없이 잘 전수하기 바란다. 돈 받고 레슨을 할 때도 절대 시간 전에 끝내지 말고 10분 20분 더 해주거라. 네가 손해일 것 같지만 그 시간만큼 너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것이다.
비용이 들어도 매년 독주회를 해서 팜플렛 경력도 쌓고, 지방 오케스트라 자리가 나면 감사하게 자리 잡고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것이다.
차근차근 밑바닥부터 밟고 올라와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온다. 그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네 것으로 만들기 바란다. 성공은 실패와 도전과 경험을 딛고 올라야 값진 것이다. 모든 대가들은 그러한 정석 길을 거쳐서 올라섰으니 하나부터 차근차근 밟고 가거라.
음악 연주자의 악기 소리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심성을 지녔는지가 녹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테크닉보다 항상 좋은 소리를 간직하고 유지하거라. 아빠가 지어준 네 이름 미솔 - 미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연주자가 되거라.
이제 졸업을 했으니 취업을 해서 사회에 나가거나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는 것은 이제부터 너의 선택이자 결정이다. 아빠의 남은 바람은 음악을 하면서 항상 행복해야 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든지 그만두고 더 행복한 길을 찾길 바랄 뿐이다.
이번 생은 아빠가 처음이라 많이 서툴렀다. 다음 생에 또 부녀로 만나면 더 잘 할 자신이 있다. 아빠의 유일한 취미가 마라톤이지만 이온음료 하나 안 사먹고 물만 마시며 널 뒷바라지 했다.
아빠가 하도 일이 잘 안풀려 엄마가 용한 점쟁이를 찾아갔다고 한다. 아빠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오직 뛰어난 2세를 만들기 위함이라 하더란다. 그만큼 아빠는 아무것도 보잘 것 없지만 물려받은 흙수저를 잘 빻아서 거름으로 만들어 줄테니 자양분으로 삼아 무럭무럭 성장하거라. 옛말에 호부 밑에 견자는 없다고 했다. 우리 집안을 보니 견부 아래 호자라 참으로 다행이다.
아빠를 키운건 팔할이 B형 유전자였다. B형 아빠는 B급 광대였지만, B형 딸은 아빠가 못다이룬, 되고 싶어했던 진정한 예술가가 되거라. 아빠가 꿈꾸었던 시적 세계는 딸에 의해서 음악적 상상력으로 피어나고, 더 나아가 예술로 승화되어 사랑과 행복으로 완성되기를 바란다. 아빠가 가진 문학적 B형 유전자로, 아빠가 이루지 못한 예술적 B형 유전자로 꽃피우거라.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받은 내리사랑을 그대로 너한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원하는대로 다 해주지는 못했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내 딸로 태어나주어서 고맙다.
2024년 8월 말 코스모스 졸업식에서 _ 변미솔 아빠 변경수가 쓰다.
변미솔 학생은
세계 최초 어린이 재능기부 연주자
세계 최연소 버스킹 연주자
세계 클래식 연주자 중 가장 많은 버스킹 공연 기록 (230회)
초등 5학년부터 지금까지 230회 거리공연에 2,800만원 모금 전액 기부
대한민국 10대 처음으로 국무총리상, 장관상, 서울시장상 함께 수상
SBS 스타킹에 재능기부 플룻천사로 4회 출연
평소 선행과 학교를 빛내는 활동을 해온 결과로
졸업생 대표로 <총동창회장상>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키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