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선동열 선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세계야구선수권 MVP, 프로야구 최다MVP, 일본 진출 후에는 일본프로야구 최다 세이브 기록 등으로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리우던 선동열 선수. 1999년 11월 현역에서 은퇴하고 현재는 삼성라이온즈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야구천재 선동열 선수가 광주일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0년 5월을 배경으로 영화 [스카우트]는 시작된다. 선동열 선수의 자서전 [정면으로 승부한다]에 등장하는 대학 스카우트 비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스카우트]의 이야기는, [이 영화는 99%가 픽션이다]라는 알림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고의 고교 야구 투수인 선동열 선수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사학의 양대 명문이 치열하게 스카우트 전쟁을 펼쳤던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스카우트]는, 가령 [제리 맥과이어]의 톰 크루즈처럼 스카우터들의 활약을 그리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표면에 등장하는 것은 선동열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대학들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던 1980년 5.18 직전의 불안한 광주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시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헤어졌던 연인 세영(엄지원 분)을 다시 만난 스카우터 이호창(임창정 분)의 가슴 아픈 사랑이 담겨 있다. 선동열 선수 스카우트와 5.18 광주의 비극이라는, 한국 스포츠사와 정치사에 기록될 대형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실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카우트]의 대본은 영리하다.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서서히 이야기를 펼쳐가는 극작술은 현실과 교차되는 유머를 바탕으로 재미있게 전개된다. 허구적 구조물인 영화 속의 이야기에 실제의 인물들과 그들의 발언이 뒤섞이면서 관객들은 허구와 현실이 충돌하는 웃음을 즐기게 된다. 5.18 열흘전, 사학의 양대 라이벌 대학 야구부에서는 작전회의가 열린다. 특히 3연패의 수모를 당한 신촌의 대학 야구부에서는 어떤 수를 다해서라도 고교 초특급 투수인 선동열 선수의 스크우트를 책임지라는 엄명이 떨어진다.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감독을 대신해서 전직 야구 선수였지만 현재는 대학 교직원으로 야구부 행정일을 보고 있는 이호창이 광주로 급파된다.
광주에 내려온 이호창은 그러나 선동열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치열한 대학 스카우트 경쟁을 피해서 선동열 선수는 무인도에서 훈련하고 있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호창은 대학 시절 연인사이였던 도서관학과의 세영이 현재 광주 YMCA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그녀와 재회한다. 계단을 오르다가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지는 사람이 뽀뽀를 해주는 게임을 하기도 했던 세영이지만(이기던 지던 가위 바위 보를 할 때마다 뽀뽀는 하게 되어 있는 게임이다) 이소룡이 죽던 날 아무 이유없이 호창에게 결별을 선언했던 그녀다. 현재 세영의 곁에는 조폭 출신의 곤태(박철민 분)가 그녀에 대한 연정을 불사르고 있다.
[스카우트]의 전반부는 세영을 둘러싼 호창과 곤태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곤태의 자작시 [비광]은 웃음의 절정을 이룬다. [나는 비광. 고스톱에선 광 대접 못받는 미운 오리새끼. 그러나 내가 없으면 절대 오강을 할 수 없는 비광. 나는 비광. 광에도 존재감 없는 비운의 광] 세영 앞에서 초라해지고 더구나 그녀의 옛 연인인 호창의 등장으로 사랑의 위협을 받게 된 곤태의 절절한 마음이 스며 들어 있지만, 상황의 언밸런스로 기막힌 웃음의 코드를 던지는 명장면이다.
상대 대학의 스카우터로, 호창의 대학 야구부시절 라이벌 선수가 내려오면서 이야기는 칼날처럼 대립각을 세운다. 선동열 선수의 스카우트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선동열 선수의 부모. 미성년자의 대학 스카우트에 부모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영의 도움으로 이호창은 선동열 선수의 어머니(양희경 분)에게 먼저 접근해서 환심을 산 뒤, 아버지(백일섭 분)의 최종 승낙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대학 졸업 후 메이저 리그 진출에 대한 계약서 명시 조항에 난색을 표한 상대 대학의 허점을 알고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해서 드디어 선동열 선수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 잡은 호창은. 스카우트를 확정짓고 계약서에 최종 사인만 남긴 상태가 되었다.
[스카우트]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교차하는 영화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고, 개인의 아픈 로맨스와 역사의 비극이 교차된다. 그 교차지점에서 상황의 절묘한 언밸런스를 이끌어간 각본의 뛰어남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5.18이라는 거대한 민족사의 비극을 앞에 두고 서서히 긴장을 고조시키며 호창과 세영의 로맨스를 풀어가는 극적 전개는 탁월하다. 그러나 김현석 감독의 연출은 상황의 입체적 부각, 역사성 속에 함몰된 개인의 비극을 부각시키는 폭넓은 시야가 부족하고 상황을 밀어붙이는 힘이 부족하다. 상업적 감각에서도 웃음의 극대화와 눈물의 충돌이라는 기교적 장치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역인 임창정은, 유머와 페이소스를 동시에 갖춘 적역을 맡아 그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을 펼쳐 보인다. [비트] 이후 임창정은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 속에 내재된 비극과 희극의 양면성을 뛰어나게 표현해왔다. 이호창은 임창정을 위해 탄생된 배역이고, 상대 역인 세영 역의 엄지원은 포용력 있는 연기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개인과 시대의 비극을 끌어안는다. 물론 곤태 역의 박철민이 없었다면 [스카우트]는 심심해졌을 것이다.
한국 야구사에 불멸의 기록을 남긴 선동열 선수의 대학 스카우트 과정을 소재로 개인사적 비극과 역사적 비극을 연결시킨 [스카우트]는, 뛰어난 소재와 각본에도 불구하고 감성적 절정을 만들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유머와 페이소스를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실제 사건에서 소재를 가져오지만 현실 그자체에 끌려가거나 굴복하지 않고 창조적 상상력으로 새로움을 주는 미덕이 [스카우트]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