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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崑崙)의 하백(河伯), 풍이(馮夷)는 빙이(氷夷)로 구이(九夷)다.
2021년 06월 30일
〈구려[駒驪 : 高駒驪] 는, 하신(河神), 하백(河伯)의 자손(子孫)〉
○ 「하신(河神)이란 : 하(河) 즉(卽) 황하(黃河)의 신(神)을 말하는 것이며, 하백(河伯)의 딸(女息) 유화(柳花)와 부여(夫余) 왕(王) 금와(金蛙)가 혼인(婚姻)하여 낳은 아들(子)인 주몽(朱蒙)이 건국(建國)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백(河伯)의 ‘소도(所都)’가 곤륜산(崑崙山) 하(河)의 물가에 있었다.」고 했으니, 당시(當時)의 ‘압록강(鴨綠江)’은, 그 주변(周邊)에서 찾아야함은 마땅한 것이리라! 당연(當然)한 이야기요, 자연(自然)스러운 이야길 것이다.
아니면 역사통설(歷史通說)【식민사관(植民史觀)=반도사관(半島史觀)】논자(論者)들의 이야기대로, ‘하백(河伯)=하신(河神)’의 여식(女息)인 유화(柳花)가 잠시 나비(접:蝶)가 되어, ‘일만(一萬)리’를 훨훨 날아, 반도(半島) 땅, 압록강(鴨綠江)변에서 수욕(水浴)을 즐기다가 서로 눈이 맞아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겠는가?
‘하백(河伯)’은, 풍이(馮夷)【빙이(氷夷)=풍이(風夷)】로, 『곤륜산(崑崙山) 하(河) 상류(上流)측에 그들의 소도(所都)가 있었으며, 우두머리가 ‘하백(河伯)’이었다.』고 고전(古典)에서 말하고 있다.
● 〈부여(夫余) 왕(王) ‘금와(金蛙)’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압록강(鴨綠江) 또는 우발수 변에서 우연(偶然)이 만나 한 눈에 반하여 야합(野合)했다면, 그곳이 어떻데 반도(半島) 땅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問題) 제기(提起)다.〉
부여(夫余)도, 하백(河伯)도, 고구려(高駒驪)도, 이들 모두의 터전이 곤륜산(崑崙山)을 중심(中心)으로 이루어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괄지도(括地圖)와 목천자전(穆天子傳)’등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內容)이다.
● ‘필자(筆者)’가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 또는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발상(發想)에서 주장(主張)하는 것이 아니다. 수천(數千)년 전(傳)에 기록(記錄)된 산해경(山海經)과 목천자전(穆天子傳)등에서, 1천 3백 년 전(傳)에 편찬(編纂)된 괄지도(括地圖)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內容)이다.
즉(卽) 수경주(水經注) 하수(河水)[水經注.河水1]편의 주석(注釋)을 보면 :
[1] 《山海經曰:南即從極之淵也,一曰中極之淵,深三百仞,惟馮夷都焉. : 산해경(山海經)에서 이르기를 : 남(南)쪽을 따라가면 끝에 못(淵)이 있는데, 중극지연(中極之淵)으로, 깊이가 3백인(百仞)이다. 풍이(馮夷)의 서울(都)이다.》라고 하였으니,
곤륜산(崑崙山)의 하(河) 발원지(發源地) 연못 가장 깊은 곳에서 하백(河伯) 즉 ‘풍이(馮夷)=빙이(氷夷)’들이 살았다는 뜻이며, 이곳이 바로 이들의 도읍지(都邑地)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백(河伯)은, 곤륜산(崑崙山)의 하(河) 상류(上流)를 벗어날 수 없다.
[2] 《括地圖曰:馮夷恒乘雲車駕二龍.河水又出于陽紆陵門之山,而注于馮逸之山. : 괄지도(括地圖)에서 이르기를 : 괄지도(括地圖)에서 이르기를 : 풍이(馮夷)는 항상 구름과 두 마리의 용(龍)이 끄는 수레를 탄다. 하수(河水:黃河)는 또 양우능문(陽盱陵門)산에서 나오고, 풍일산(馮逸山)에 물을 댄다.》하였다.
위의 글 [1]과 같은 내용이다. 즉(卽) 풍이(馮夷)는 곤륜산(崑崙山)의 하수(河水) 발원지(發源地) 즉 상류(上流)측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3] 《穆天子傳;曰天子西征,至陽紆之山,河伯馮夷之所都居,是惟河宗氏,天子乃沈珪璧禮焉.河伯乃與天子披圖視典,以觀天子之寶器,玉果,璇珠,燭銀,金膏等物,皆河圖所載,中略.: 목천자전(穆天子傳)에서 말하기를 ; 주(周)나라의 목왕(穆王)이 서(西)쪽으로 정벌을 나갔을 때, 양우지산(陽紆之山)에 이르러, 그곳을 다스리는 하백(河伯) 풍이(馮異) 즉 하종(河宗)씨에게 옥을 바치며 예를 다했다. 하백이 감격하여 목왕(穆王)에게 천상의 각종 보물이 기록된 책을 보여주었는데, 옥과(玉果)·선주(璇珠)·촉은(燭銀)·금고(金膏)등의 물건을 이었다. 이 모두는 하도(河圖)에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중략(中略)《命歷序曰:河圖,帝王之階,圖載江河,山川,州界之分野.後堯壇于河,受龍圖,作,握河記;逮虞舜,夏,商,咸亦受焉. : 명력서(命歷序)에서 이르기를 : 하도(河圖)는 제왕(帝王)의 섬돌로, 그림에 강(江)과 하(河), 산천(山川), 마을의 경계와 분야(分野)들이 기재된 것이다. 그 뒤에 요(堯)가 하(河)에서, 수용도(受龍圖)는, 악하기(握河記)에서 이르기를 : 뒤를 따라 우순(虞舜), 하(夏), 상(商), 모두 이를 받아들였다.》고 하였다.
이는 “하백(河伯)으로부터 제왕(帝王)의 모든 것들이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즉 “우순(虞舜)도, 하(夏)나라도, 상탕(商湯) 즉 은(殷)나라도 모두 함께 이를 이어받아 나라를 이끌었다.”는 뜻이다.
또 『하백(河伯)은, 구이(九夷)중의 하나로, ‘풍이(馮夷)=빙이(氷夷)’는, 곤륜산(崑崙山)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말은, 『동방구이(東方九夷)』와 함께, “곤륜산(崑崙山)으로부터 그 동(東)쪽의 땅(地)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란 뜻이다.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을 중심(中心)으로 한, 동서남북(東西南北) 수만리(數萬里)의 땅이 바로 동방(東方)의 영역(領域)에 속한다. 곧 조선(朝鮮)의 땅이었다.〉
태왕(太王)이 직접(直接) 다스렸던 적현신주(赤縣神州)는, 소위(所謂) 팔도(八道)로 나누었으며, 그 외(外)의 땅에는 많은 번국(藩國)들이 적현신주(赤縣神州)를 떠받들며, 울타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적현신주(赤縣神州) : 史記 卷74 孟子荀卿列傳 : 전국(戰國)시대 제(齊)의 추연(鄒衍)이 ‘화하(華夏) 땅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由來)되었다.】
➨ 풍이(馮夷)는, “풍이(風夷)=람이(藍夷)=빙이(氷夷)”라고도 한다. 또 풍이(馮夷)는, 산해경(山海)에는 ‘빙이(氷夷)’로 되어 있고, 목천자전(穆天子傳)에는 ‘무이(無夷)’로 되어 있다
이 기록(記錄)에 따르면 : 『부여(夫余), 고구려(高駒驪)의 연대(年代)는, 요[堯:기원전(紀元前:BC) 2,357年] 이전(以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요(堯)는, 기원전(紀元前-BC) 2,357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순(虞舜)은, 기원전(紀元前-BC) 2,257년이다.
[4] 《釋氏,西域記曰:阿耨達太山,其上有大淵水,宮殿樓觀甚大焉.山,即崑崙山也. : 석씨(釋氏)의 서역기(西域記)에서 이르기를 : 아누달태산(阿耨達太山)은, 그 꼭대기의 못(淵)에, 아주 큰 궁전(宮殿)과 누대(樓臺)를 볼 수 있다. 산(山)은, 곧 곤륜산(崑崙山)이다. 穆天子傳曰:天子升于崑崙,觀黃帝之宮,而封豐隆之葬.豐隆,雷公也.黃帝宮,即阿耨達宮也.其山出六大水,山西有大水,名新頭河. : 목천자전(穆天子傳)에서 전해오기를 : 천자(天子)가 곤륜(崑崙)에 올라, 황제(黃帝)의 궁(宮)을 보고, 이어 풍륭(豊隆)을 장사지내고 봉(封)했는데, 풍륭(豊隆)은, 뇌공(雷公)이다. 황제궁(黃帝宮)은, 곧 아누달궁(阿耨達宮)이다. 그 산(山)에서 여섯 개의 큰물(大水)이 나오는데, 산(山)의 서(西)쪽 큰물(大水)은, 이름이 신두하(新頭河)이다.》고 하였다.
● 수경주(水經注) 하수(河水)편에서, 하수(河水)의 발원지(發源地) 곤륜산(崑崙山)과 하백(河伯) 즉 ‘풍이(馮夷)=빙이(氷夷)’에 대한 기록(記錄)을 살펴보았다. 이로 보면, 고구려(高駒驪)는, 이때『곤륜산(崑崙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건국(建國)되었다.』라고 보아진다.
왜냐하면, 하백(河伯)의 딸인 유화(柳花)와 금와(金蛙)가 만날 수 있었던 곳은, 하수(河水)의 상류(上流) 주변(周邊)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當時)의 부여(夫余) 또한 마찬가지 경우(境遇)다. 이로 미뤄보면, 『“부여(夫余)와 고구려(高駒驪)의 건국(建國)연대(年代)’는 ‘주(周) 이전(以前)의 상고(上古)’때에 이루어졌던 일이다. 왜냐하면 주(周) 목왕(穆王)이 하수(河水)가 나오는 곳에서 하백(河伯)을 만났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重要)한 내용(內容)은, 〈구이(九夷)란 동방(東方)에 살고 있는 토착민(土着民)들을 말하는 것이고, 동방(東方)이란 하수(河水)의 발원지(發源地) 곤륜산(崑崙山)으로부터 그 동쪽을 말한다.〉는 것이다.
동방(東方)이 반도(半島)라고 떠벌리는 자(者)들은 누군가? 바로 ‘부역(附逆)매국노(賣國奴)’들로, ‘식민(植民)사학자(史學者)’들이다. 일제(日帝)와 더불어 조선사(朝鮮史)를 망쳐 놓은 장본인(張本人)들이다.
[5] 노사집(蘆沙集) 제9권 / 서(書) / 이사형에게 답하다 기묘년(1879, 고종16) 7월〔答李士亨 己卯七月〕
《蔥嶺是昆侖南脊.三十六國在蔥嶺之東.五天竺國在蔥嶺之西.故往來天竺者.必由蔥嶺. : 총령(蔥嶺)은 바로 곤륜산(崑崙山)의 남(南)쪽 등성이인데, 36국은 총령(葱嶺)의 동(東)쪽에 있고, 오천축국(五天竺國)은 총령(葱嶺)의 서(西)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천축(天竺)을 왕래하는 사람은 반드시 총령(葱嶺)을 경유합니다.》라고 하였다.
※ 노사집(蘆沙集)이란 / 기정진[奇正鎭 1798 ~ 1879]의 문집(文集)을 말한다.
기정진[奇正鎭 1798 ~ 1879]선생(先生)의 말에 따르면 : ‘오천축(五天竺)’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과 이란(Iran)’지방에 있었다는 이야기되는데, 서역전(西域傳)의 대진(大秦)편에서 말하는 천축(天竺)과 해중(海中)에서 무역(貿易)을 했다는 기록(記錄)과 연결(連結)되는 구절(句節)이다.
➊ 즉(卽) 〈‘총령(葱嶺)=곤륜산(崑崙山)=천주산(天柱山)=불주산(不周山)’의 동(東)쪽에 36국이 있다.〉는 말은 전한서(前漢書)에서 말하는 서역(西域) 곧 오늘날의 신강성(新彊省)을 가리키는 것이고,
➋ 〈오천축국(五天竺國)은, ‘총령(葱嶺)=곤륜산(崑崙山)=천주산(天柱山)=불주산(不周山)’의 서(西)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기정진[奇正鎭 1,798 ~ 1,879]선생(先生)의 말씀에 따르면 : 오천축국[五天竺國 : 동천축·서천축·남천축·북천축·중천축의 5천축(天竺)을 말하는 것이다.]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파키스탄[Pakistan]…이란[Iran]…투르크메니스탄[Turkmeniistan]등지에 있었어야 한다.
※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지도(地圖)
❸ 참고(參考)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오천축국도[五天竺國圖] 설명(說明)을 보면 : “고려시대에 윤보(尹譜)가 제작한 것으로 전하는 인도와 서역제국을 중심으로 한 불교계 세계지도”라고 하였는데,
그 내용(內容) 중에서, “서역(西域) 및 인도(印度)의 여러 나라가 중심(中心)이 되어 있고 이 밖에 진단국(震旦國 : 中國 : 大唐國)이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라고 하는데, 진단국(震旦國)은 발해국(渤海國)의 별칭(別稱)이 아니었나????
● 「진단(震旦)=진단(震壇)=진국(震國)=진역(震域)」이란,
〈진(震)은 동방(東方)을 뜻하며, 곧 진방(震方)이며, 동방(東方)이다. 고려(高麗)때에도, ‘진단(震旦), 진역(震域)’은 고려(高麗)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使用)되었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 / 靺鞨 [一作勿吉] 渤海 / 《通典云.渤海,本粟末靺鞨.至其酋祚榮立國.自號震旦.先天中[玄宗王子]始去靺鞨號.專稱渤海. : 통전(通典)에서 이르기를, 발해(渤海)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인데, 때에 이르러 대조영(大祚榮)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하였다. 선천(先天)중에 처음으로 말갈(靺鞨)이라고 불렀는데, 발해라고 칭하였다.》고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진단[震檀] : 진단(震壇), 진국(震國), 진단(震旦), 진역(震域) / 동방에 단군의 나라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별칭
‘진단(震壇)’이라고도 표기한다. 진(震)은 『주역(周易)』설괘(說卦)에 나오는바, 이를 동방(東方)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진방(震方)은 동방을 뜻한다. 인도에서 중국을 진단이라 별칭하기도 하였으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쓰였다.
또한 발해는 국호를 ‘진국(震國)’·‘진단(震旦)’이라 하였으며, 궁예 역시 '마진(摩震)'이라는 국호를 쓴 적이 있다. 고려시대에도 ‘진단’ 또는 ‘진역(震域)’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쓰였다. 985년(성종 4)에 송나라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고 특사(特赦)를 내린 글에서 “책봉이 진역을 빛나게 하였다.”라고 썼으며, 『고려사(高麗史)』 권123 백승현전(白勝賢傳)에 “마리산(摩利山)의 참성(塹城)에서 친히 초제(醮祭)를 지내시고 또한 삼랑성(三郞城)과 신니동(神泥洞)에 가궐을 만드셔서 친히 대불정오성도량(大佛頂五星道場)을 여시면 … 삼한(三韓)이 변하여 진단(震旦)이 됨으로써 대국(大國)이 와서 조공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단(震旦)은 ‘동방 아침의 나라’라는 뜻으로 해가 뜨는 동방의 나라라는 뜻이며, 진단(震檀)은 ‘동방 단군(檀君)의 나라’라는 뜻으로 20세기초에 쓰인 바 진단학회(震檀學會)가 그 예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진단 [震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인용(引用).끝]
위의 글 ❸ 설명(說明)에서, 진단국(震旦國)이 조선[朝鮮 : 총칭(總稱)]이 아닌 당(唐)나라가 되어야 할까? 고전(古典) 기록(記錄)에 따르면 : “당(唐)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이어야 하며, 곧 당시(當時)의 신라(新羅)를 지칭(指稱)한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동방(東方)과 진역(震域)과 진단(震旦)은 똑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 “동방(東方) 즉(卽) 진단(震旦), 진역(震域)에 당(唐)나라는 없었다.”는 뜻이다.
○ 산해경(山海經), 수경주(水經注), 목천자전(穆天子傳), 괄지지(括地志), 통전(通典)등 주요(主要) 고전(古典)의 말씀에 따르면 :
동방지인(東方之人)은, 즉(卽)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이고, 또한 진단(震旦), 진역(震域)의 땅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중국(中國)왕조(王朝)’라고 하는 “중원(中原) 땅의 옛 왕조(王朝)”는, 바로 조선왕조(朝鮮王朝)【총칭(總稱)】를 지칭(指稱)하는 것이다.
천자국(天子國)이니, 황제국(皇帝國)이니 하는 옛 봉건왕조(封建王朝)는, 즉(卽) 「조선(朝鮮)」을 지칭(指稱)했던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두는 고전(古典)을 통(通)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총령(葱嶺)·곤륜산(崑崙山)·불주산(不周山)·천주산(天柱山)”등으로 불렸던 곳으로부터 그 동(東)쪽의 땅은 모두 옛 조선(朝鮮)의 터전(地)이었으며, 이는 곧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이며, 구이(九夷)들의 터전(土著)이었다.》는 것을 고증(考證)해 주고 있다. 조선(朝鮮)의 역사(歷史)를 제대로 알아야 되지 않을까!
2021년 06월 30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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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백(河伯) 또는 하신(河神)은 구이(九夷)중의 한 부류였다."
구이(九夷)는 東方(동방) 땅의 본토박이다.
식민사관=반도사관 논자들의 설명대로 라면, 하백(河伯) 또는 하신(河神)은 반도 땅의 수신(水神)이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쉽고, 안타깝게도 "河"는 중앙아세아 땅의 곤륜으로부터 발원하여 대륙을 동서로 관통해 황해바다에 물을 쏟아낸다. (이건 당시의 시대상이다). 반도가 될 수 없음은 명명백백한 현실이다.
구이(九夷)의 후예가 삼한이요, 삼국이요, 고려요, 조선왕조(근대)다.
중앙아세아로부터 대륙을 관통해 흐르는 하(河)와 같이 구이(九夷) 또한 그곳에서 살아왔었음을 고전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민족주의자니, 국수주의자니 하면서 비난하기에 앞서, 진실을 탐구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차려준 밥상인 '반도한국사' 속에서 헤매고 있을 건가????????
읽으면서 문무 선생님의 풍부한 지식에 놀라웠습니다.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습니다.
<현조>님!
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고전 원전에서 말하고 있는 '조선사'를 회원님들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만,
진전이 더딥니다. 원전의 분량이 워낙 방대한 것이라서 평생을 보아도 힘들겠지요.
젊은 분들이 조선사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문무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본문 ➊에서 '전한서에서 말하는 서역 곧 오늘날의 신강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라 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서역을 파미르고원 서쪽인 중앙아시아 지역이라고 알고 있는데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로터스>님!
위의 본문 글 중에서 "전한서에서 말하는 36국"에 대한 것은,
전한서에서 말하는 36국에 대한 해설은 오늘날의 신강성지방과 서역(서토:중앙아세아)일부지방에 있었던 나라들을 지칭하는데, '총령=곤륜'이 오늘날의 '파미르고원'이라고 했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령의 '동방지방'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해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로터스>님!
위의 본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오천축국"은 오늘날의 인도대륙이 아닌 총령(곤륜=파미르고원)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으니,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땅이 아니었을까 유추합니다. 원래 아프가니스탄에는 불교유적이 엄청 많았다고 하는데, 회교가 들어오면서 많이 파괴되었지만 근래까지도 많은 불교유적들이 있었으나, 텔레반에 의해 많은 유적들이 다시 또 파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천축국의 위치가 총령의 서쪽이냐, 남쪽이냐 하는 것인데, 조선사에서는 서쪽에 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진단이란 분명 오늘날의 중국 땅을 말하는 것이고,
부상은 진단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으니, 반도 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는 열도 땅?
그러나 역사서에서 말하는 지형지세와 거리등으로 보면, 매치가 되지 않아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나라 소왕 때라면 기원전 1052년부터이니, 불기는 3000년이 되는 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카프카스산이 곤륜이라면 천축은 동구,터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