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란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일본의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1930년대 초 대륙 침략과 함께 군 위안소를 시범적으로 운영하다
전쟁 말기에 이르러 이를 더욱 조직화하여
1944년에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만들어 조선 여성을 집단적으로 징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무장한 군인보다 방비 없는 민간인이 훨씬 희생이 크다.
그중에서도 어린이와 여성들의 피해가 집중되었는데,
10대 중․후반 여성들을 국가 권력에 의해 집단적으로 강제 연행한 행위는
아마도 세계 전쟁의 역사에서 그 유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젊은이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읍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생존하여 거주하고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이분들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실화에 바탕을 둔 시나리오를 완성시켰지만,
이후 수 년 동안 여러 차례의 투자 거절로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유로운 후원을 받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도입한
영화 공식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서 뉴스 펀딩과 유캔 펀딩, ARS 문자 후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제작비로 완성하여 최근에 개봉한 영화가 바로 <귀향>이다.
한적한 어느 시골 16세 소녀는 어느 날 주재소 순경들에 의해 강제로 차출되어
기차 타고 군용트럭에 옮겨 타서 중국 길림성에 위치한 일본인 부대에 배치되었다.
한참 꿈 많고 순진한 소녀들에게 가해진 성폭력과 매질, 한계를 넘은 상황 속에서 ‘위안부’로 살아간다.
전쟁의 패배가 가까워지자 일본군의 소각명령으로 ‘위안부’ 소녀들을 대거 살상하는데,
이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이도 있었다.
과거를 감추고 살아오던 ‘위안부’ 할머니의 통한을 먼저 죽어 간 친구들의 혼령을
우리네 전통 ‘굿’ 을 통해 불러내어 치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랑나비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모든 여성들이 차별과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은 상징물이겠고.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아리랑’과 함께 고려가요 <가시리>도 그렇게 애닮을 수가 없다.
아하! <가시리>는 님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안타까움을 노래했다고 하여 귀호곡(歸乎曲)이라고도
했다는 생각에 이르니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영화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장면은
‘위안부’할머니들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지우고자 미술심리치료로 일환으로 그린 그림들과 함께,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참여한 75,000명 후원자 명단이 이어지는
약 10분에 걸친 엔딩 크레딧이다.
영화 <귀향>을 각본/연출/제작한 조정래 감독은 어떤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삶과 그들이 겪은 고통을 영상으로 기록해,
잊혀지지 말아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를 '증거물'로 남기고자 하는 진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는 분명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홀로코스트’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 <인생은 아름다워>(1997), <피아니스트>(2002)와 같이
‘문화적 증거물’로서의 역할에 기여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영화가 이제야 나온 건 부끄러운 일이다.
누군가가 지적한 것처럼 유럽은 전범 국가인 독일의 악행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고발했지만,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도덕성을 제대로 문책하지 못했다.
잘못을 꾸짖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사실대로 가르치는 일이다.
치욕의 과거로부터 도망칠 핑계만을 찾는 일본에게 자신의 과오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본에게 부끄러워하라며 꾸짖고 이웃들에게는 함께 분노하기만을 요구할 뿐,
그 근거를 제시하거나 설명하는 데는 소홀했다.
영화 <귀향>은 다행히도 이 시대의 우리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일깨워줬다.
‘간도에서 나고 일본 후쿠오카에서 죽었다.
이역(異域)에서 나고 갔건만 무던히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좋아 하더니’
친구와 함께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같은 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식민지 시대 젊은이들이 있었다.
시인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가 바로 그들이다.
오늘이 마침 3.1절이구나.
연희 전문 학생이었던 그들도 걸었을 신촌에 위치한 극장에서
그들의 삶을 다룬 흑백필름 영화 <동주>도 관람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P.S) 또한
‘위안부’에 관심을 처음 제기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서울 마포구 성산동 소재)과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주하시는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위치)도
다시 한 번 방문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첫댓글 전 '귀향' 과 '동주' 다 봤는데요 둘다 슬퍼서 영화끝날때쯤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우리나라가 다시금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는 되풀이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ㅜㅜ
3.1절인 어제 이용자와 함께 <동주>를 보고, 영화에 인용된 윤동주 시도 몇 편 복사하여 함께 낭송하였습니다.
영화 관람료 (복지카드 제시하면 평일과 공휴일에 관련없이 본인 및 동반1인 할인, 5,000*2=10,000원)
댓글에 대한 답례로 이 詩들을 이 카페에도 올려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