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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속으로] 01
S#1. 하늘을 나는 비행기
S#2. 비행기 안
일등석.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다.
소리 (영어)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잠시 후면 목적지인
김포공항에 도착합니다. 현재 목적지인 서울의 시간은 오후
다섯시. 기온은 영상20도입니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공항에
내릴 때까지 안전벨트를 풀지 마시고자리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등등...
인하, 안내방송을 들으며 손목시계의 시간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가방을 찾아 꺼내는데
가방의 덮개가 열려 있어 안에 있던
내용물이 바로 앞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우두커니 창 밖을 보고 있던
수빈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인하 죄송합니다.
인하, 수빈의 앞에 떨어진 소지품들을 집으려는데
어려보이는 수빈이 먼저 집어
인하를 보지도 않고 아무 표정 없이
인하에게 건네주고 다시 창 밖을 본다.
인하 (잠시 보다가) 고맙습니다.
인하, 다른 소지품들도 줏어 담으며
대답없는 수빈의 얼굴을 슬쩍 보는데
수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
인하,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자리로 가
앉으며 계속 수빈을 눈여겨 본다.
이때 뒤에서 비서가 수빈에게 다가온다.
비서 (과잉 아부) 지루하셨죠? 이제 곧 도착합니다.
수빈 (이어폰을 뺀다)
비서 도착하신 다음 스케쥴은 (괜히 수첩을 펴서 보여주면서)
일단 집에 가셔서 여장을 푸시고 회장님과 저녁식사를
하시기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식사후에는 성북동 본가로
가셔서 사모님께 귀국 인사를 드리신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에, 그리고 학교는 집에서 가까우면서도
좋은 집안의 자제분들이 특별히 많이 다니는 훌륭한 학교를
수소문해서 편입학 절차를 밟아놨습니다. 미국만은
못하겠지만 아마 만족하실 겁니다. 그리고,
수빈, 비서가 떠드는 동안 창에서
시선도 돌리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가 말을 끊는다.
수빈 됐어요.
비서 아, 예. 그럼!
수빈, 이어폰을 꽂는다.
비서, 다시 깍듯하게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인하,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런 비서와 수빈을 본다.
S#3. 거리 (밤)
도시의 한복판.
오토바이를 탄 명하, 분노에 찬 얼굴로 어디론가 질풍처럼 달리고 있다.
S#4. 나이트클럽 홀 (밤)
인하, 두 손을 깍지 끼어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여자의 어깨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흐느적거리듯 춤을 추고 있고 여자,
그런 인하의 어깨에 두 팔을 두르고 있다가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인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S#5. 술집 입구 (밤)
명하의 오토바이가 입구에 선다.
명하, 오토바이의 시동을 건 채
잠시 안을 노려보다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다.
S#6. 호텔 나이트 클럽 앞 (밤)
몹시 술이 취한 인하와 여자, 비틀거리며 객실 쪽으로 향한다.
인하, 여자의 팔을 잡고 방향을 바꿔 밖으로 끌고 간다.
막 들어서는 모범 택시에 여자를 쳐넣고 기사에게 지폐 몇장을 건네준다.
호텔 현관에 철퍼덕 주저앉는 인하.
공허해보인다.
S#7. 술집 안 (밤)
명하, 거침없이 카운터를 지나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방문을 하나씩 열어 본다.
카운터에 있던 마담이 놀라 일어나
뭐라고 떠들고 지나가던 웨이터가 앞을 막으며
뭔가 이야기를 하지만 명하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어느 방에선가 찾던 사람을 발견하는
명하, 같이 있는 일행과 여종업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안으로 들어가 한
중년남자를 불문곡직 때리기 시작한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말리지도 못하다가
뒤늦게 여종업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나가고
일행인 남자가 명하를 떼어내려 하지만
오히려 뒤로 나자빠지고 잠시후 들어온 기도들도
악착같이 남자에게 붙어서 때리고 있는
명하를 쉽게 떼어내지 못한다.
S#8. 수빈 빌라 안 (밤)
침대 앞에 짐이 일부 풀어져 있다.
수빈, 이제 막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치며
들어와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는다.
젖은 머리의 수빈 모습이 청초하면서도 감각적이다.
문득 흩어진 짐 사이에서 작은 사진 액자를 집어든다.
수빈과 엄마가 다정하게 껴안고 찍은 사진을 보는
수빈의 눈에 반짝 눈물이 보인다.
S#9. 호텔방 (아침)
커튼 사이로 아침햇살이 비친다.
바닥과 의자 여기저기에 옷가지들이 하나씩
널려 있고 테이블에는 술병과 술잔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다.
침대에는 인하가 자고 있다.
현관벨이 울리지만 잠에 취해 일어나지 않는다.
벨이 거듭 울리다가 문이 열리고
고부장의 난감한 얼굴이 빼꼼 들어와 안을 살핀다.
고부장, 침대에 누워있는 인하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고부장 (조심스럽게) 쩌어기...도련님...도련님.
인하, 도련님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고 부시시 깬다.
고부장 도련님,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인하, 잠이 확 깨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다.
고부장 가시죠.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고부장, 밖으로 나간다.
인하, 괴로운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쉰다.
S#10. 강경환의 사옥
새로 지은 빌딩의 위용이 대단하다.
승용차 현관 앞에 서면 인하 몸을 툭툭턴다.
고부장, 인하를 건물안으로 안내한다.
엘리베이터 족으로 향하는데 인하를
알아본 중역들 정중히 인사한다.
그 결에 다른 직원들도 허리를 굽힌다.
S#11. 강경환의 사무실
인하, 소파에 앉아 테이블만 노려보고 있고
고부장은 소파 옆에 서 있다.
강회장 너 언제 들어왔어?
인하 ...
고부장 정확히 일주일 됐습니다.
강회장 (화를 참으며 한숨을 내쉰다) 왜 들어왔어?
인하 그냥요...
경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인하의 뺨을 갈긴다.
인하, 머리가 홱 돌아간 채로 픽 웃음을 날린다.
경환, 그런 인하를 무섭게 노려본다.
경환 웃어?
인하 ...
경환 내일 당장 나가!
인하 ...
경환 (버럭) 알아 들어?
인하 ... 나가 봐야 이번 학기는 종쳤어요.
경환, 말문이 막혀 부들부들 떤다.
경환 야, 나가. 나가.
인하, 얼른 일어나 나간다.
S#12. 회장실 앞
인하, 회장실 문을 닫고 뺨을 슥
문질러 본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간다.
S#13. 경찰서 유치장 (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사람, 노숙자,
주정꾼 등 다양한 행색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는 유치장 안.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명하, 구석 자리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철문 밖에서
경찰이 부른다.
소리 (경찰) 한명하!
명하, 소리나는 쪽을 천천히 돌아본다.
S#14. 경찰서 복도 (밤)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걸어오던 명하,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환한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다가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명하, 야한 옷차림에
화장을 짙게 하고 커다란 잠자리
선그라스를 쓴 엄마를 보고 멈칫
서는데 잠시 말없이 명하를 보던 엄마,
느닷없이 명하의 뺨을 후려갈기고 돌아서서 나간다.
명하,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엄마를 따라 나간다.
S#15. 좌석버스 안 (밤)
늦은 밤이라 텅 빈 버스의 맨 뒷자리
창가에 명하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다.
명하는 창 밖만 보고 있다.
은옥 도대체 뭐가 될라 그래? 니가 깡패야? 어떻게 사람을 그
지경이 되게 패냐?
명하 그럼, 그런 자식을 그냥 둬?
은옥 어른들 일에 니가 왜 나서?
명하 그럼 엄마가 맞아도 가만있으란 말이야?
은옥 엄마 일은 엄마가 알아서 해.
명하 ... 그런 자식은 맞아도 싸.
은옥 그래, 너, 속 시원하겠다.
명하 ...
은옥 내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도 합의금으로 얼마나 준 줄 알아?
명하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를 본다) 뭘 줘요? 합의금? 미쳤어요?
은옥 그럼, 자식새끼가 감옥 가는 꼴을 에미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멀건히 봐야겠냐?
명하 이 자식을 그냥!
은옥 시끄러!
명하 어흐, 정말 치사한 새끼네.
이때 버스가 서고 손님 두어명이 버스에 타며 은옥을 힐끗 보고 자리에 앉는다.
명하, 얼굴이 화끈거린다.
명하 (못마땅한 얼굴로 엄마를 보며 작은 소리로) 입술 좀 지우면 안돼?
은옥 응?
명하 꼭 그렇게 술집 나가는 표 내야 되겠어?
은옥 뭐?
명하,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은옥, 자식한테 그런 얘기를 듣고
자존심이 상해 명하를 노려보다가 슬그머니 핸드백에서
거울과 휴지를 꺼내 선그라스를 내리고 입술을 닦아낸다.
은옥의 눈두덩이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S#16. 연희네 집 안 (밤)
연립주택 지하에 있는 방 하나 짜리 조그만 방.
연희의 이모부, 몹시 취해 방과 부엌을 왔다갔다하며
집안살림살이들을 마구 들었다놨다
하고 있고 이모는 쫓아다니며 필사적으로 말리고있다.
연희, 그런 와중에도 방 옆에 붙은 작고
지저분한 부엌 싱크대 옆에서 조그만 밥상 위에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만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서방 내쫓더니 이제 찾아와도
문전박대를 해! 내가 오늘은 아주 그냥!
옥분 그거 안 내려놔! 그게 얼마짜린데! 여기 니가 사준 거
하나도 없어. 다 내가 벌어서 산 거야!
만수 오, 그래?
만수, 들고 있던 밥솥을 살며시
내려놓는 척 하다가 발로 뻥 찬다.
밥솥이 데굴데굴 구르며 안에 있던 밥이 다 쏟아진다.
옥분, 놀라 얼른 밥솥을 주워 살핀다.
만수 (연희에게) 야! 술 사와!
연희, 못들은 척 공부를 한다.
만수 야! 내 말 안들려? 야! 야!
만수가 던진 베개가 연희의 머리 위로 날아간다.
연희, 만수를 슥 째려보고 다시 책을 본다.
만수 (연희의 옆으로 다가와 책상을 뒤집고 연희의 머리를 툭툭
밀며) 너까지 날 깔봐? 에잇!
만수, 갑자기 TV를 번쩍 들어
패대기치려는 듯 힘을 줘보는데
꿈쩍도 않는다. 만수, 그 자세 그대로 잠시
당황하는데 이모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와
이모부를 밀친다.
이모 그거 안 내려놔!
이모와 이모부, 서로 뒤엉켜
바닥에 구르며 레슬링을 시작하고
연희,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 들고
밖으로 나간다.
S#17. 연희네 집 앞 (밤)
낡고 지저분한 다가구주택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산동네.
제일 초라해보이는 건물 지하에서 살림살이
부서지는 소리와 남녀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명하, 은옥의 뒤를 따라 집 입구로 들어서다가
지하계단에서 올라오던 연희와 마주친다.
연희, 상처투성이인 명하를 힐끗 보는데
명하, 연희를 지나쳐 집으로 슥 들어가버린다.
연희 (목례한다)
은옥 니네 이모부 또 오셨냐?
연희 ... 예.
은옥 으휴... 니네 이모 팔자도... 우리 집에 가자.
연희 아니예요, 올라가세요. 좀 있다 들어가 봐야죠.
은옥 에휴, 좋을 대로 해라, 갈 데 없으면 올라와.
연희 예.
은옥,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연희, 가로등 앞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펼쳐 들여다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연희, 눈에 눈물이 맺히자 책을 탁 덮고 엎드리는데
담배를 피우러 계단에 나온
명하가 그 모습을 내려다본다.
S#18. 연희네 집 안 (새벽)
어두컴컴한 집 안.
이모와 이모부는 지난밤의 격렬한
싸움에 지쳐 곯아떨어져 자고 있고
집안은 난장판이 돼있다.
연희, 어지러운 살림살이들을 피해 다니며
교복을 챙겨 입고 주섬주섬 가방을 꾸린다.
연희,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밥솥을 힐끗 보고
찬장을 뒤져 라면 한봉지를 꺼내
책가방에 쑤셔 넣고 집을 나선다.
S#19. 연희네 동네 (새벽)
비탈을 걸어내려오는 연희. 단정한
교복 차림의 연희의 모습이 신선하고 기운차보인다.
S#20. 왕여사의 차 안 - 학교 앞 거리 (아침)
왕여사, 운전하고 있고 그 옆에 재숙이 앉아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다.
재숙, 책을 탁 덮는다.
재숙 엄마. 나 선생 바꿔줘.
왕여사 무슨 선생?
재숙 과외선생 말이야. 실력이 없는 거 같애.
왕여사 무슨 과목?
재숙 다!
왕여사 무슨 소리야? 내가 그 선생들 잡느라고 얼마를 썼는데.
재숙 근데 왜 맨날 다 틀려?
왕여사 뭐가?
재숙 찍어준건 시험에 하나도 안나온단 말이야.
왕여사 그래?
재숙 우리반에 전교 1등하는 애 있는데 그 기집애 선생이 괜찮은거 같애.
왕여사 그래? 뭐하는 집 딸인데?
재숙 몰라. 하여튼 빵빵하대.
왕여사 그래?
재숙 어! 쟤야, 쟤!
차창 밖으로 걸어가고 있는 연희가 보인다.
왕여사, 연희를 지나쳐가며 힐끗 살핀다.
왕여사 쟤랑 친하니?
재숙 아니.
왕여사 집에 한번 데리고 와.
재숙 왜?
왕여사 전교 1등이라며? 집안도 괜찮고.
재숙, 교문 앞에 서 있는
고급 승용차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수빈의 비서, 뒷문 열어주면 수빈 내린다.
비서가 허리 굽혀 인사하는데 시선도 안주고
교문을 들어서는 수빈,
그 몇걸음 뒤로 걸어오는 연희.
S#21. 연희네 교실
점심시간.
아이들, 왁자하게 떠들며 도시락을 꺼낸다.
수빈,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고
재숙의 자리에 모인 아이들이 수빈에 대해 소근거린다.
춘화 미국에서 살다 왔는데 무진장 부자래.
재숙 그래?
춘화 재벌이라던데?
재숙 그래?
춘화 아침에 보니까 차가 장난이 아니야. 니네 차보다 좋은 차 같던데?
재숙 (흥!) 그래?
재숙,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수빈쪽으로 간다.
재숙 (수빈의 어깨를 툭툭친다) 안녕.
수빈 (돌아본다)
재숙 (생글 생글 웃으며) 나 재숙이야.
수빈 (표정없이) ?
재숙 너 아직 친구 없지? 우리 친하게 지내자.
수빈 ... 왜?
재숙 나, 너한테 관심 있어. 너도 내가 누군지 알면 관심을 갖게
될 거야.
수빈 (재숙을 빤히 보다가) ... 난 너한테 관심 없는데. (다시
고개를 돌린다)
재숙, 부글부글 끓는 얼굴로 수빈을 노려보다가
이번에는 라면에 스프를 뿌려가며
우적우적 먹고 있는 연희에게 다가간다.
재숙 지금 뭐 먹어?
연희 보면 몰라?
재숙 그게... 도시락이야?
연희 난 시험 땐 이렇게 먹어.
재숙 오... 저기, 이따가 우리 집에 가서 같이 공부하지 않을래?
연희 왜?
재숙 그냥.
연희, 재숙을 빤히 올려다본다.
연희 그러지, 뭐.
재숙,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수빈 쪽을 보지만
수빈은 여전히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창 밖을 보고 있다.
S#22. 인하네 집 앞
연희와 재숙, 차에서 내린다.
연희, 재숙을 따라 들어가며 상상을
초월하는 정원의 규모에 기가 질린다.
S#23. 인하 방
옷가지들과 잡지, 등이
여기저기 되는 대로 흩어져 있는
텅 빈 방 안에 헤비 메탈
음악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S#24. 인하네 집 거실
연희, 재숙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서며
난생 처음 보는 호화스러운 분위기에
낯선 얼굴로 집안을 둘러보다가
가정부가 나오자 인사한다.
연희 어머니, 안녕하세요.
가정부 오셨어요.
연희 예?
재숙 엄마, 엄마------
당황한 연희, 2층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올려다 보는데
왕여사, 휘어진 2층 계단에서 우아한 차림으로
무선전화기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내려온다.
왕여사 음...응?...
연희 안녕하세요.
왕여사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답한다) 뭐? 정말?...
재숙 얘가 걔야.
왕여사 (부드럽고 우아하고 반갑게 연희에게) 오, 그래. (전화기에
대고) 잠깐만. (부엌에 대고) 아줌마. 저녁 준비해요. (2층
어딘가에다가 꽥) 음악 좀 줄여라!!
재숙 올라가자.
왕여사 그래, 가방 갖다 두고 내려와서 저녁 먹어라.(다시 2층을
향해 꽥) 음악 좀 줄이라니까!!(다시 전화기에 대고) 어,
그래. 얘기해...
왕여사, 다시 우아한 포즈로
전화통화를 하며 거실로 가고
연희, 재숙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며
집안을 두리번거린다.
S#25. 2층 복도
계단을 올라온 연희, 재숙이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지 안보이자 음악소리가
울려나오는 방을 힐끗 본다.
S#26. 인하방
조금 열려진 문을 슬적 열고 들어가는 연희.
1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고급스런 오디오가 눈에 띈다. 벽쪽에 붙어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 묘한 자세로
음악을 듣던 인하,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다.
동시에 인하를 발견한 연희와 시선이 부딪친다.
인하, 몸을 일으켜 연희에게 다가간다.
한발 뒤로 물러서는 연희. 연희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팔을 뻗어 벽을 짚는 인하.
연희 ...
인하 너...누구니?
연희 ...
인하 여기 왜 있는거야?
연희 ...
연희, 잠시 멍하니 인하를
바라보다 얼른 밖으로 나간다.
S#27. 복도
연희, 놀란 가슴을 달래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재숙의 방으로 간다.
S#28. 식당
왕여사, 연희, 재숙, 밥을 먹고 있다.
재숙의 옷차림, 화려하고 대담하다.
왕여사는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
왕여사 그 문제는 걱정 마시라니까요. ... 저녁보다도... 아, 그래. 그게
좋겠다. 제가 내일 가봉하러 가는데 거기서 같이 만나시죠,
뭐. 자연스럽게... 그럼, 내일 아침에 제가 연락 드릴께요. ...
네...(전화 끊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연희를 잠시
보다가) 우리집 음식이 입에 맞니?
연희 예. 맛있어요.
왕여사 다행이네.
이때 인하가 외출준비를 끝내고
내려와 식탁에 앉는다.
연희, 방금 전 욕실에서 이상하게
마주친 인하가 옆에 앉아
밥을 먹자 기분이 이상해진다.
왕여사 또 어디 나가니?
인하 (밥을 먹으며 왕여사는 보지도 않고) 약속 있어요.
왕여사 무슨 약속인데?
재숙 술약속이겠지, 뭐.
인하, 재숙이를 한 번
노려보고 다시 밥을 먹는다.
왕여사 알아서 처신해라. 회장님 화 많이 나셨더라.(연희에게)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해?
연희 (쑥스럽게 웃는데)
왕여사 전교 1등이라며?
연희 (쪽팔리다)
왕여사 우리 재숙이가 날 닮아서 머리는 좋은데 머리 믿고 너무
노력을 안해.
인하, 밥이 안넘어간다.
왕여사 오늘 같이 공부하면서 우리 재숙이한테 공부하는 요령 좀
가르쳐 줘. 자고 갈거지? 집에 전화했어?
연희 아뇨.
왕여사 밥 먹고 전화해. 자고 간다고. 내일 일요일인데 뭐 어때?
연희 가봐야 되요.
왕여사 그래, 이런 데서 가정교육이 표가 나는 거야. (인하를 슬쩍
째려본다)
인하, 못들은 척 묵묵히 밥을 먹는다.
왕여사 그래, 어느 선생님한테 과외해?
연희 과외 안하는데요.
왕여사 그래? 머리가 꽤 좋은가봐? 그럼 학원 다녀?
연희 아뇨.
왕여사 그래? ... 그럼, 개인교습?
연희 아뇨, 아무 것도 안해요.
왕여사 (못믿겠다) 정말?
연희 네.
왕여사 아버님은 뭘 하시는데?
연희 돌아가셨어요.
왕여사 그래? 쯧쯧쯧쯧... 언제?
연희 어릴 때요.
왕여사 (예상이 점점 빗나가자 의아한 얼굴이 된다) 그래? 어머님은?
연희 어머니도 돌아가셨어요.
왕여사 그럼, 고...아네?
연희 네. 지금은 이모하고 살아요.
왕여사 오... 이모부는 뭐하시는데?
연희 ...놀라요.
왕여사 그럼, 이모는?
연희 주방일 보세요.
왕여사 어디서?
연희 ... 캬바레요.
왕여사, 말문이 막힌 채 점점 얼굴 굳고
인하, 연희를 다시 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재숙이
먼저 일어나 아무 말 없이 2층으로 올라가 버린다.
연희 (따라 일어나며) 저녁 잘 먹었습니다.
왕여사 갈래? 그래, 그럼, 잘가라. 아줌마 얘 간대요.
왕여사도 일어나 가버리고
식탁엔 연희와 인하만이 남는다.
연희, 기가 막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있는데
인하도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S#29. 인하네 집 앞 (저녁)
연희, 집 앞으로 나오는데 인하의
차가 서 있고 인하가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앞을 막는다.
인하 타라. 데려다 줄게.
연희, 싸늘하게 보고 지나치는데
인하, 연희의 팔을 잡는다.
인하 데려다 준다니까.
연희 됐어요.
인하 청승 떨지 말고 타.
연희 뭐요?
인하 그런 거 아니야, 지금. 자존심 상한다. 기분 나쁘다. 쪽팔린다.
연희 그런 거 아니예요.
인하 그럼 타.
연희 됐어요.
인하 나 바쁜 사람이야. 빨리 타.
인하, 한 손으로 연희의 팔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차 문을 열고 연희의 가방을
빼앗아 뒷자리에 던져 넣는다.
연희, 더 이상 빼기도 이상해서
얼떨결에 그냥 차에 탄다.
S#30. 공장 (저녁)
신도림동 뒷골목에 있는 작고
지저분하고 어두컴컴한 공작소.
선반 한 대와 밀링 한 대, 공원 세 명이 전부이다.
손톱 밑에 기름때가 새카맣게 낀 명하,
선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깍고 있는데
누군가가 공장 안으로 불쑥 들어선다.
춘배 오랜만이다.
명하와 다른 공원들, 보면
머리에는 무스를 잔뜩 바르고 꼭 끼는
양복에 셔츠 깃을 밖으로 내놓고
어울리지 않게 한껏 멋을 부린 춘배다.
공원1 이야, 춘배형 아니야?
춘배 잘들 지냈냐?
공원들, 춘배 곁으로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데
명하, 춘배를 외면하고 하던 일을 계속 한다.
공원2 형, 멋있어졌다. 너, 진짜 배우됐냐?
춘배 (살피며) 사장, 어디 갔냐?
공원1 거래처 나갔지.
춘배 (갑자기 큰소리) 짜식, 눈에 띄면 한 방 먹여줄라
그랬는데.니들 아직 월급 그대로지?
공원2 그렇지, 뭐.
춘배 60만원이 뭐냐? 60만원이. 니들이 무슨 불법체류자냐?
명하 (하던 일을 멈추고) 왜 왔어?
춘배 (명하에게) 시간 있냐?
S#31. 공장 근처 밥집 (밤)
명하와 춘배, 밥을 먹고 있다.
춘배, 인하의 손톱 밑에 낀 때와
꼬질꼬질한 작업복을 한심하다는 듯이 본다.
춘배 야, 너 그 때 그 싸가지 없는 기집애들 생각나냐? 손톱에
때가 껴서 밥 맛 떨어진다고 밥 먹다 말고 확 나가버린
년들. 아, 지금 내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그 싸가지 없는
년들. 내가 탁 차는 건데. 내가 말이야, 이 손톱 밑에
때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명하 용건이 뭐야?
춘배 어, 내가 우리 사장님한테 니 얘기했거든.
명하 (노려본다)
춘배 (당황한다) 아니, 내가 얘기할라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하다 보니까 니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온 거야. 너 한 번
보고 싶으시다고.
명하 ...
춘배 우리 사장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그러니까 니네 엄마
같은 사람도 먹고 사는 거 아니야? 막말로 그 나이에 어디
가서 노래할 수 있냐? 우리 사장님이니까 옛정을 생각해서
다 돌봐주시는 거 아니냐.
춘배, 얘기하다가 명하의 얼굴이
심상치 않게 변하자 긴장한다.
춘배 아니, 그러니까 내 얘기는,
명하 밥값 내고 가라.
명하,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춘배 (픽 웃으며) 짜식, 밥값도 못내는 주제에 잘난 척 하긴.
S#32. 공장 (밤)
명하, 구석에 앉아 백열등
아래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S#33. 거리 (밤)
오토바이를 탄 명하, 복잡한 머리 속을
털어내려는 듯 무섭게 달린다.
S#34. 다른 거리 (밤)
인하의 차 안.
인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말없이 운전하고 있고
연희, 매우 불편한 자세로 앞만 바라보고 있다.
인하 이름이 뭐야?
연희 ...
인하 난 인하야, 강인하.
연희 됐어요. 세워주세요.
인하 집앞가지 태워줄게. 내가 좀 문제는 있지만 여자한테는 잘 해주거든.
연희 (기분 나쁘다)
인하 아까 그 아줌마랑 재숙이 배고... 재숙이 같은 애랑 놀지마.
연희 댁도 똑같은 사람 아닌가요?
인하 (이것 봐라)
연희 (오기로) 좋아요. 저기서 우회전이요.
우회전하자마자
연희 좌회전이요.
인하 (피식 웃는다)
달동네 비탈길을 올라가는 인하의 차
인하 우와, 이 동네 죽인다.
연희 ...
인하 별도 많이 보이냐?
연희 (그제서야 본다)... 아뇨.
인하 이름이 뭐야?
연희 ... 이연희요.
인하 연희라... 더 가야돼?
연희 여기서 좌회전이요.
인하, 좁은 사거리에서 급하게
핸들을 돌리는 순간 다른쪽에서 직진해 오던
명하의 오토바이가 헤드라이트 불빛에 불쑥 들어온다.
인하, 놀라 브레이크를 밟지만
명하의 오토바이는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명하, 기분 나쁜 얼굴로 일어나며 운전석을 노려본다.
인하 (차창을 내리고) 미안합니다.
명하, 말없이 인하를 쏘아보다가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려는데
차에서 연희가 내리자
인하와 연희를 번갈아 본다.
연희 오빠, 괜찮아?
인하, 연희가 명하에게
아는 척을 하자 자기도 차에서 내린다.
인하 괜찮아요?
명하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당신 눈엔 괜찮아 보여?
인하 (상대가 다짜고짜 반말로 나오자 어처구니없어하며 픽 웃는다)
명하 (연희에게) 야, 얘 뭐야?
인하 (동시에 연희에게) 아는 사이야?
연희 아무도 아니야.
인하 (기분 나쁘다)
명하 아무도 아닌 놈 차를 왜 타고 다녀?
연희 무슨 상관이야? (인하에게)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명하에게) 가. 오빠.
연희, 두 사람을 떼어내려고
명하를 오토바이 쪽으로 밀어 붙인다.
명하 (연희에게 밀리며 인하에게) 운전 똑바로 해.(돌아서서 자기
오토바이로 가려는데)
인하 (계속 픽픽 웃고 있다가) 야, 얼마면 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연희, 인하를 노려본다.
명하, 잠시 섰다가 연희를 뿌리치고
다가와 인하의 멱살을 움켜쥔다.
명하 성질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꺼져. 응?
인하 (여전히 웃으며) 너만 성질 있냐?
인하, 명하가 쥔 멱살을
탁 쳐내고 명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지만
명하, 별로 충격도 받지 않고
고개만 슬쩍 돌아갔다 돌아온다.
연희 오빠, 참아!
명하 이 자식을, 그냥!
연희 (명하를 뒤로 밀어내며) 오빠, 가자. (인하에게) 가세요, 빨리.
명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가까스로 참고 인하를 노려보며 연희에게 밀려간다.
인하 왜? 쳐 봐. 쳐 이 자식아.
명하, 가까스로 참고 가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연희를 확 뿌리치고 인하에게
무섭게 다가와 인하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아
차에 거칠게 밀어붙이고 주먹을 치켜들어
힘껏 내리친다. 연희,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지만
명하의 주먹은 인하의 코 앞에서 멈춘다.
그런데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자기를
노려보는 인하의 눈빛에 기가 막히는 명하.
한 손으로 자기를 꼼짝 못하게 밀어붙이는
명하의 완력에 기가 질리는 인하.
두사람, 그 상태 그대로 잠시 서로를 노려본다.
명하 너,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죽어.
명하, 인하의 목을 쥔 손을 놓고
돌아서서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인하도 연희의 존재를 잊은 듯 명하가
사라지자 그냥 차에 올라 가버린다.
연희,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잠시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가 차에 가방을 두고 내린 것을 깨닫는다.
연희 내 가방! 잠깐만요.
연희, 인하의 차를 따라 뛰어간다.
S#35. 인하의 차 안 (밤)
인하, 명하에게 잡혔던 목을
만져보다가 룸미러를 힐끗 보는데
연희가 손짓하며 뛰어오는
모습이 작게 보인다.
인하, 오디오의 볼륨을 올리며 속력을 높인다.
S#36. 수빈의 빌라 (밤)
내부가 마치 고급호텔처럼 꾸며진 100평쯤 되는 빌라.
현관문이 열리고 수빈이 들어온다.
새집, 새 가구에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어 더 휑하니 넓어 보인다.
수빈, 거실 소파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S#37. 수빈의 방 (밤)
욕실과 옷방이 딸려 있는 커다란 방.
수빈, 방에 들어와 먼저 오디오
리모컨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화장대 서랍에서 담배와 화장품을 꺼내 늘어놓는다.
수빈, 담배를 하나 꺼내 불도 붙이지 않은 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손가락에 끼워보고
연기를 내뿜는 시늉도 여러 가지로
폼나게 해보며 화장을 시작한다.
아무렇게나 진하게 눈썹을 찍 그리고 입술도
립스틱 하나를 다 쓸 정도로 입 주변에
마구 뭉개고 서랍에서 가발을 꺼내 머리에 쓰고
야한 원피스 덮어 입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거울을 보며 폼을 잡는 수빈.
이때 문이 벌컥 열린다. 수빈, 놀라 돌아본다.
송여사, 방으로 들어오다가
수빈의 몰골을 보고 얼굴 굳는다.
송여사, 수빈의 입에서 담배를 빼내
쓰레기통에 던지고 방 안을 싸늘하게 둘러본다.
수빈, 송여사를 빤히 본다.
송여사 내가 누군진 알지?
수빈 (마지못해) 안녕하세요.
송여사 너 오던 날은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성북동으로 널 부른다니까 애들이 아무래도 불편해하는 거
같고, 너두 불편할 거 같아서.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내가
이렇게 한 번 와보는 게 너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도리
아니겠니?
수빈 (픽 웃는다)
송여사 (불쾌하지만 내색 않고) 와 보니까 오길 잘한 거 같구나.
씻어라.
수빈, 욕실로 들어간다.
송여사,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서랍과 장, 가방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자기 눈에 쓰레기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수빈의 침대 위에 너덜너덜한 청바지를
비롯한 불량스러워 보이는 옷가지들,
가발, 담배, 술, 잡지, 화장품 등등이 쌓인다.
마지막으로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사진을 보는 송여사.
수빈과 엄마가 다정하게 껴안고
찍은 사진액자를 부르르 떨며 노려보다가
수북히 쌓인 잡동사니들 위에 홱 던진다.
이때 수빈이 욕실에서 나오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다.
수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송여사 정리하는 거다. 내일 아줌마한테 얘기해서 다 버리라 그래.
수빈, 잡동사니들 위에 던져진
엄마의 사진을 보는 순간 이성을 잃는다.
수빈 나가요! 누구 맘대로 내 물건에 손대는 거예요!
송여사 (무섭게 노려보다가) 엄마를 닮아서 맹랑하구나. 니가
미국에서 니 에미하고 둘이 살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여기선 안돼. 니 일거수 일투족을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어.
너같은 애 하나 때문에 우리 가문이 천박해져서야 되겠니?
수빈 ...
송여사 (다시 우아하게) 피곤할 텐데 자라. 내 말 명심하고.
송여사, 밖으로 나간다.
수빈, 어지럽게 흩어진 침대 위에서
엄마 사진을 집어들고 들여다보다가
침대에 엎어져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S#38. 수빈의 집 앞 (밤)
송여사, 차에 오르며 기다리고 있던 비서를 손짓으로 부른다.
송여사 수시로 들러보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비서 네.
S#39. 거리 (밤)
인하의 차 안.
인하, 운전하고 있고 옆자리와 뒷자리에 친구가 타고 있다.
친구1 (인하에게) 야, 누구 나오라 그럴까?
인하 니들 맘대로
친구1 지난번 기집애들 화끈하더라.
인하 오늘은 우리끼리 마시자.
친구1 왜? 모처럼 만났는데. 말만 해.
친구2 야, 이거 뭐냐?
친구2, 발 밑에서 연희의 가방을 꺼내든다.
인하, 룸미러로 슥 본다.
친구2 학생가방 같은데? (실내등을 켜고 가방을 열어 안을
뒤져본다) 뭐야, 이거?
가방 안에서 반쯤 먹고 돌돌 말아둔
라면봉지와 교과서, 참고서, 필통, 찍찍이지갑 등이 나온다.
친구2 웬 라면?
친구1 (지갑을 빼앗아 열어 보며 낄낄거린다) 3학년 2반 이연희?
오우, 예쁜데? 얘, 부르자.
인하 야, 야. 그거 다시 넣어 놔.
친구2 누군데?
인하 있어.
친구들, 인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연희의 가방을 들쑤셔 놓는다.
S#40. 클럽 룸 (밤)
인하와 친구들, 룸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인하의 핸드폰이 울린다.
인하 여보세요. ... 누구? ... 연희? ... 응, 그래. 왜? ... 재숙이한테
보낼게.... 급해? ... 중간고사? ... 그럼, 와서 가져 가.... 여기?
S#41. 클럽 홀 (밤)
입구에서 교복 차림의 연희가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연희가 룸으로 가는 동안 홀에 있던
손님들, 무슨 일인가 하여 본다.
S#42. 다시 룸 (밤)
인하,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바짝 붙어 앉아 있다.
두사람 다 무척 취해 있고 여자는
인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인하, 잔에 술을 따르는데 문이 열리고 연희가 들어온다.
인하 왔냐?
친구1 실물이 난데?
인하 앉아라.
연희 가방 주세요.
인하 어, 차에 있어.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내민다) 내 차
알지? 들어오는 현관 입구에 있으니까 가방 꺼내 가고 키는
발레 서비스하는 애한테 맡겨 놔.
연희 누구요?
친구1 앞에 차 빼주는 애들 있잖아.
연희, 더 이상 있기가 역겨워
얼른 키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간다.
S#43. 클럽 입구 (밤)
연희, 입구에서 나와 인하의
차를 발견하고 다가가 문을 열다가
차 뒷자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기 짐들을 보고 너무 분해 눈물이 핑 돈다.
연희, 이를 악물고 주섬주섬
자기 물건들을 가방에 쓸어 담는다.
S#44. 다시 룸 (밤)
문이 벌컥 열리고 연희가 들어선다.
일동, 의아하게 보는데
연희, 인하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가방으로 인하의 머리통을 날린 다음
차 열쇠를 얼굴에 던지고 돌아서 나간다.
인하, 기가 막힌다.
돌아서는 연희를 친구2가 나꿔챈다.
친구2 와! 신선한데...너도 껴줄게. 놀다가라.
연희, 친구2에게 물컵을 끼얹는다.
친구2 이년 봐라!
친구2, 몸을 벌덕 일으키려는데
인하, 친구2에게 주먹을 한방 날린다.
연희, 어리둥절하다가 룸밖으로 나간다.
S#45. 연희네 집 건물 옥상 (밤)
연희, 오늘 하루종일 당한 일들이
생각할수록 열받고 그럴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져 자꾸만 눈물이 나오지만
심호흡을 크게 하며 애써 눈물을 참고
손등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계속
훔쳐내는데 명하가 올라온다.
연희, 얼른 눈물을 수습하고 일어선다.
명하, 연희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연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밤하늘을 응시하며
명하 또, 어디 갔다 왔냐?
연희 ...
명하 저녁 먹었냐?
연희 ...응.
명하 어디서?
연희 어디서 먹었건. (내려가려는데)
명하 ...아까 걔... 누구냐?
연희 ...우리 반 애 오빠.
명하 짜식, 되게 싸가지 없대?
연희 싸가지 없는 집안이야.
명하 (흐뭇하게 웃는다) 그러게, 다 큰 기집애가 아무 차나 얻어
타고 다니는 거 아니야.
연희, 대답없이 명하의 옆모습을
잠시 보다가 아래로 내려간다.
명하, 연희가 내려간 다음에야
연희가 사라진 쪽을 돌아보고 다시 밤하늘을 본다.
S#46. 인하의 방 (밤)
몹시 취한 인하, 방으로 들어와 털썩 앉는다.
리모컨으로 음악 트는데 재숙, 잠옷 차림으로 들어온다.
재숙 오빠!
인하 (성가시다)
재숙 아까 연희 태워줬다며?
인하 내 방에 들어오지 말랬지.
재숙 오빠 차에 가방 두고 내렸다며?
인하 ...
재숙 그래서, 만났어?
인하, 벌떡 일어난다.
인하, 지갑에서 10만원권 수표
몇 장을 꺼내 재숙에게 준다.
인하 이거, 어제 걔 갖다 줘라.
재숙, 얼떨결에 받으면 인하, 침대에 눕는다.
재숙 이걸 왜?
인하 그거 주고 어제 나하고 있었던 일, 잊어버리라 그래.
재숙 무슨 일?
인하 그럴 일이 있어.
재숙 무슨 일인데?
인하 나가.
재숙, 움찔해서 나가며
인하와 수표를 번갈아 본다.
S#47. 연희네 교실
수빈, 자기 자리에서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카세트를 듣고 있다가 테잎을 바꾸기
위해 뚜껑을 여는데 뒤에서 재숙과
친구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춘화 정말이야? 여태까지 감쪽같이 속았네?
옥녀 이야, 잘난 척 더럽게 하더니, 그런 애였어?
재숙 우리 엄마 거품 물었잖아.
춘화 그랬겠다.
재숙 쪽팔려서 혼났대니까. 게다가 우리 오빠 꼬셔 갖고 차까지
얻어 타고 간 거 있지?
옥녀 어머, 어머, 어머. 걔 정말 웃기는 애다.
재숙 더 웃기는 건, 하, 차, 나한테 우리 오빠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 달라는 거 있지?
춘화 꼴에 눈은 있다, 니네 오빠 찍은 거 보면.
옥녀 핸드폰 번호는 왜?
재숙 하, 차, 가방을 두고 내렸다는 거 있지? 그걸 누가 믿어?
춘화 어머, 어머. 걔 그렇게 안생겼는데. 진짜 사람 생긴 거
갖고는 모른다, 그지?
옥녀 그렇게 생겼잖아. 그래서 가르쳐줬어?
재숙 가르쳐줬지.
옥녀 그걸 가르쳐주면 어떡해?
재숙 근데 (주위를 살피고) 가까이 와봐. (귓속말로 소근댄다)
춘화와 옥녀, 눈이
점점 휘둥그레지다가 경악한다.
춘화 미쳤구나, 걔?
이때 연희가 교실로 들어오면
재숙과 친구들, 갑자기 말을 멈추고
연희의 눈치를 살핀다.
연희, 재숙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외면하고 자리에 앉는다.
재숙, 연희에게 다가와 어깨를 톡톡 친다.
연희 (돌아본다)
재숙 가방 찾았어?
연희 덕분에.
재숙 (수표를 내민다) 자.
연희 뭐야?
재숙 우리 오빠가 이거 먹고 떨어지래.
재숙, 연희의 책상에
탁 뿌리듯이 내려놓고 돌아서서 가버린다.
연희, 수표를 내려다보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옥녀 무섭다. 저런 애 잘못 건드리면 큰 일 나. 고아지, 이모는
술집 나가지, 어으, 무서워.
재숙, 춘화, 옥녀, 키득키득 거리며 웃는다.
수빈, 고개를 돌려 연희를 본다.
연희, 수표를 한참 노려보다가
수표를 움켜 쥐고 기가막혀 웃는다.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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