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경기당 평균관중 1만1000명으로는 …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유럽인들이 아시아인을 구별 짓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아시아인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일본인과 나머지.
유럽에서 보면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는 극동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일본인은 유럽인처럼 대접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뤄냈다.
‘잇쇼켄메이(一生懸命·목숨을 걸고 일함)’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집요한 성실성은
일본을 세계 초일류 국가로 발돋움시킨 특징이자 강점이다.
한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적인 특징은 전방위적으로 통한다.
몸과 몸이, 정신과 정신이 부딪치는, 그래서 흔히 전쟁에 비유되는 축구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일본은 일본의 축구를, 한국은 한국의 축구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 고지에 올랐다.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3차전에서 천신만고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별리그를 간신히 통과했다.
2-2 무승부였지만 2-3으로 패했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힘겨운 경기였다.
반면 일본은 카메룬·네덜란드·덴마크 등 아프리카와 유럽의 강호를 상대로 2승1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여유 있게 16강을 점령했다.
한·일 양국의 16강 동반 진출은 아시아 축구의 경사다.
하지만 일본과 파라과이와 승부차기를 바라보는 한국 축구 팬의 마음은 심란했다.
일본은 동아시아 선수권과 월드컵 직전에 열린 한·일전에서 잇따라 참패하지 않았던가.
한국은 16강에서 우루과이를 그토록 몰아붙이고도 2-1로 패했는데, 일본은 하품 나는 경기를 펼치고도 16강을 넘어 8강까지 넘본단 말인가. 일본의 승부차기 패배를 지켜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팬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스페인의 우승이 확정된 후 국제축구연맹(FIFA)은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최종 성적표를 매겼다.
2승1무1패(PK 패배는 공식 기록엔 무승부 처리)를 기록한 일본은 9위에 랭크됐다.
8강 바로 아래다.
한국은 1승1무2패로 15위다.
16강 팀 가운데 꼴찌에서 둘째다.
경기 내용을 감안하지 않고 승점과 골득실로만 매긴 성적이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냉정하게 양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을 비교하면 한국이 일본에 앞서는 게 많지 않다.
일본축구는 유럽을 흉내 내고 있고 점점 닮아가고 있다.
4년 후에는 일본 축구가 정말 한국 축구를 따돌리고 먼저 8강 고지에 오를 수도 있다.
월드컵에는 한 나라의 축구 역량이 모두 투여된다.
집집마다 놋숟가락까지 긁어 총알을 만드는 총력전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구차하게 군비를 모아야 한다면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
한 나라 축구의 기초 체력이 길러지는 곳은 자국 프로축구 리그다.
프로 리그에서 화수분처럼 재능 있는 선수가 쏟아지는 국가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우승국 스페인이 대표적 사례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무적 함대’는 전투력을 키웠다.
토마스 뮐러·메주트 외칠 등 독일 축구의 재능 있는 신예는 독일 분데스리가라는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의 평균 관중은 4만2000명을 넘는다.
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3만4000명)를 뛰어넘는 세계 1위 기록이다.
분데스리가는 2부 리그까지 관중이 꽉꽉 들어찬다.
독일 ‘전차 군단’이 괜히 강한 게 아니다.
아프리카 축구는 1980년대부터 “곧 아프리카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시대는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문밖을 서성대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아프리카 국가는 가나뿐이었다.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는 팀 정신이 부족했다.
아프리카 특급 선수들은 대부분 용병이다
. 이들은 명예보다는 실리를 좇는 데 익숙했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대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축구협회와 포상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건 낯선 모습이 아니다.
만일 아프리카의 축구 리그가 유럽처럼 활성화됐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지금과는 다른 양상일 가능성이 크다.
K-리그는 1983년 3S(Sports·Screen ·Sex) 정책의 일환으로 ‘빨리 빨리’ 태어났다.
덕분에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큐베이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K-리그 구단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당분간은 적자를 면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관중 집계도 믿을 수 없다.
호구 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니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도 없다.
승강제 시스템은 당분간 엄두도 못 낸다.
반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축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1992년 1년 동안 준비기간을 거쳐 93년 화려하게 출범했다.
99년에는 J-2리그가 탄생해 승강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실업축구(JFL)도 우승을 차지하고 자격을 갖추면 J2를 거쳐 J1까지 올라갈 수 있다.
3부 리그까지 틀을 잡고 있는 셈이다.
2007년부터는 평균 관중이 3년 연속 1만9000명을 넘어섰다.
5000명이 입장해도 1만2000명이 들어찼다고 부풀리는 한국식 관중 집계가 아니다.
북한 대표팀 스트라이커 정대세는 “일본 J-리그를 보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라고 말했다. J-리그는 북한을 조국이라 생각하는 재일 한국인의 마음까지 단숨에 사로잡았던 셈이다.
이용수 해설위원은 일본 축구가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봤다. 그는 우선 “상대 팀들이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너무 얕잡아봤다. 일본이라는 팀에 대해 거의 준비를 하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 위원은 “개인적으로 북한 여자 축구가 아시아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공이 있는 곳에 항상 4~5명의 선수가 벌떼처럼 모여드는 축구다.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이 보여준 축구도 이것과 비슷했다”고 평가했다.
이 위원은 “일본은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유지한다. 정확한 패스를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해나가는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뚜렷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약점만 보완한다면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말처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일본이 4강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현대 축구의 템포는 점점 빨라지고, 압박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이 뛰는 것도 좋지만 좁은 공간에서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민첩하고 순발력 있는 플레이로 이번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은 ‘오카다 재팬’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다. 일본 축구팬의 97.6%가 일본의 16강 진출이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한국 팬과, 지나치게 비관적인 일본 팬도 양 국민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국은 월드컵 직전 93.1%가 16강 진출이 가능하며 4강 이상을 거둘 것이라는 팬도 13.5%에 이르렀다.
일본 축구에 정통한 축구 평론가 신무광씨는 “일본 대표팀과 오카다 감독은 월드컵 이전까지 공을 소유해 경기를 지배하고, 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해 나가는 적극적인 축구를 추구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에 패했지만 그게 일본 축구였다.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지금껏 사용했던 것과 180도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일본 내에서는 단지 승리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지금껏 쌓아 올린 이상을 저버렸다는 비판이 잠시 일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마저 꺾으며 16강에 진출하자 역시 아시아권에서는 공격적인 축구가 통하지만 세계 레벨에서는 아직은 수비 위주로 나가다가 한 번의 기회를 엿보는 게 현명했다는 게 일본 축구계의 전반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그는 “도리어 일본에서는 한국이 더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리스와 우루과이를 상대로 한 한국이 훨씬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많았다”라며 “기성용·이청용·김보경·이승렬 등 경쟁력 있는 어린 선수들이 꾸준히 배출되는 것도 일본 축구가 한국을 부러워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개개인의 자질, 체격적인 조건과 정신력 등을 종합하면 일본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의 잠재력이 훨씬 더 크다는 게 신무광씨의 지론이다. 그는 “이런 생각은 일본 내 스카우트나 구단 관계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점이다. 하지만 과연 K-리그가 이런 유망주들의 발전을 자극할 만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유럽도 아니고 일본 J-리그에 진출하는 한국의 유망주를 볼 때면 안타까운 기분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