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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식을 넘는 교회.
생존의식!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회!
이것은 하나의 영적 질병, 즉 교회의 암이다.
암! 이병은 그대로 두면 진행된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결국 죽음에 이른다.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숨어있다.
질병의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교회의 암의 핵은 “비젼의 결여”다!! 이제야 그 참 뜻을 알았다.
교회가 말하는 비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가 비젼이다! 질병에 걸린 교회는
교회안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역동적 실체가 소멸된 것을 말한다.
또 하나! 개개인은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집단의식, 공통된 갱신의식이
절망적 물결에 압도 되었기 때문.
비젼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잠29:18)
마찬가지로 교회도 비젼이 없으면 망한다.
생존의식이라는 질병은 비젼결여라는 질병이다.
이런 교회는 의심과 불신앙, 두려움으로 꽉 차 있다.
그러나 믿음의 불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교회를 갱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 개개인에게도 적용된다.
2.남은 자들(램란트) 사1:5-9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그루터기! 남은자! 하나님은 항상 그루터기를 남겨두신다.
그루터기가 없었다면 그나라는 완전히 망했을 것이다.
“오직 나만 남았습니다!(왕상19:10)
주님의 답변! 아직 7천인을 남겨 두었다.
(사6:11-13)! 이사야의 환상! 나를 보내소서!
언제까지 이렇게 황폐케 하시렵니까?
걱정말아라! 그루터기! 거룩한 씨를 남겨 두었다!(사6:1-13)
우리 주님도 잘라진 이새의 뿌리에서 나오셨다(사11:1-5)
자신들의 노력에 아무런 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변화의 징후도 없는 대도 불구하고,
지도자, 책임자들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데도 불고하고…!
여전히 남아 헌신하는 분들이 있다.
질병에 걸린 교회 안에는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두 부류가 있다.
남은 자: 그들의 대화의 중심은 주님이시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대로 떠나는 자, 질병에 걸린자: 전혀! 그리스도에 관한 낱말이 없다.
서로 폭넓은 대화를 하지만, 그리스께로 대화가 옮겨가면 무관심해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3.갱신의 출발
갱신의 출발은?
1. 남은 자를 찾아내서 비젼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들이야 말로 갱신의 바튼을 이어주는 하나님의 숨은 일꾼들이다.
지도자는 이들을 찾아서 비젼을 공유하는 것이 갱신의 출발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찾아내는가?
대개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고는 저들이 보기에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저들의 힘을 드러내신다.
저들은 광야에서 남모르게 하나님께 단련된 사람들이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갱신을 위해 숨겨둔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갱신은 현재 인원, 상황으로 충분하다.
하나님은 갱신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숨겨 뒀다.
갱신에 충분하리만큼! 필요하다면 또 채워주신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어느 한 사람이 없어도 해내실 분이시다.
명심할 것은 지금 남아 있는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다.
3. 이들의 눈을 미래로 돌려야 한다.
과거에 자석처럼 붙어있는 시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한다.
비젼이 선포되면, 물과 기름이 구분된다.
남은 자들은 떠오르고, 질병자들은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의 비젼의 근원이시며
성령의 감화를 받은 자 만이 주춧돌이 될 것이다.
4.신비! 하나님에 대한 비젼.
남은자! 저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이들의 대화에는 ‘신비’가 깃들어 있다.
인문학과 같은 것 말고, 생명의 신비와 같은…!
갱신의 중심에도 신비가 들어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예:가스렌지, 백실장의 애로사항)
따라서 이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두가지 유혹)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것,
주위에서 성공했다는 방법들, 해결책들! 이런것들은 대체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확실한 멧세지도 없이 먼저 말하는 것! 비젼은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되고 경험되어야 한다.
갱신을 위한 비젼(3단계)
위를 향한 비젼: 하나님을 향하여(예배, 기도, 찬양)
내부를 향한 비젼: 내적 성장, 교제, 나눔, 하나됨.(비젼의 공유)
외부를 향한 비젼: 전도, 선교.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공동의 비젼, 교회 모든 이들이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하나님은 역시 살아계시고 역동적이시며, 창조적이시다.
불신앙!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곳에는 언제나 불신앙의 강한 인력이 나타난다.
그것은 교회의 쇠퇴라는 현상 앞에 더욱 그렇다.
저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시편10:1이 생각난다.
교회는 저들에게 고립된 섬이다.
하나님의 임재!
갱신의 첫째 조건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에 관해 눈을 떠야 하며, 그 임재를 체험할 때! 갱신이 온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2)
교회가 예수를 붙잡으면 사람들이 모인다. 반듯이…!
그분이 교회의 머리됨을 인정할 때,
성령께서 활동하시며,
바로 그때부터 기도에 대한 응답이 시작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시지 않으시면…! 허사로다!
결국, 갱신은 하나님의 일이다.(시127:1)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사43:19)
하나님의 역동적 임재!
도저히 사람으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
어떤사람은 수련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
우와! 하나님 아니고서는 이렇게 될 수가 없어!”라고
하나님의 인재가 서로에게 공유될 때!
갱신의 힘은 폭발력을 가진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만히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일 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행전을 자세히 보라! 정작 일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만약 누군가 개인적인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강압적인 힘을 발휘한다면?
성령의 흐름은 중지될 것이다.
임재의 공유!
어떻게 하면? 이것이 문제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예배다! 성령께서 직접 인도하시는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역동적 생명력이 흐르는 예배!
이 예배에 목숨을 걸라!
예배에 들어갈 때는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려라.(히12:1-4)
오직 그분에게만 전념할 수 있도록 시신을 집중시켜라.
이 모든 것위에 필연적인 수순이 있다.
그것은 회개다. 성령의 강력한 책망속에 일어나는 회개!
이것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결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공동체 앞에서 토설하고 자복할 때(소그룹을 통한 QQ),
자신의 아픔과 연약함을 드러내고 함께 기도할 때!
우리 안에는 사랑의 힘으로 묶는 일체감과 영적인 활력이 넘쳐난다.
6.비젼의 담당자: 사람.
비젼이 있으면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죽어가는 교회에 비젼이 제시되고,
그 비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성령께서 활동하시고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 신비!!! 바로 그것이다.
에스겔의 마른뼈처럼! 그가 선포하고 외칠 때!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하시지 않으시고 그를 통해 외치라고 하신다.
담당자의 자세
1. 외침: 목회자는 외침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선지자적인 외침,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과 그 생명력,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능력! 하나님의 영광!
온화함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동안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은 외쳐야 한다.
그분은 해골을 군대로 만드시는 분이심을!
2. 영감: 기대감, 소망, 영적으로 보는 눈(안목)
이것은 계속적이고 확신에 넘쳐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남은 자에게 전파시키고 과감히 맡겨야 한다.
3.열정: 목회자는 그 자체가 비젼이 되어야한다.
그는 비젼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다.
부르심, 사도적 열정! 골수에 사무치는 사명감, 그 어떤 일에도 담대한 안정감.
열정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왜냐하면 그 곳에는 강력한 사단의 개입과 불의 연단이 있기 때문이다.
비젼은 그것을 가로막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친다.
재정, 현실적 문제들, 환경과 관례, 세상적 이치들!
교회는 이의를 제기하는 긴장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아는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램20:9)
특히 도심지에서는 황당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4. 하나님 안에서 뿌리 내리기.
비록 선한 비젼, 강한 열정이 있더라도
때로는 생각치 않는 문제들이 생긴다.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 매시아 신드롬!
내 것이 가장 옳다. 나의 지식과 능력으로,
나의 비젼은 실제로 나 개인적인 것이었다.
나는 나의 지식과 능력으로 그 흐름을 바꾸어 놓으려 했다.
매시아는 바로 나였다.(비록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냉담했고 나는 탈진 상태에 빠졌다!
교회를 구원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니다.
오직 교회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하시는 것이다.
이제야 깨달은 것은
나의 비젼이 하나님 안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의 가지일 뿐이다!!!
하나님과의 공감대, 동역함 없이 외치는 것은 허공을 치는 것이다
갈멜산에서 외치다가 탈진한 바알 선지자! 나는 그렇게 비유되었다.
일중독! 그래야 되는 줄 안다.
그 반대편에 선 앨리아! 냉정침착하다.
그의 시선과 관심은 오직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다.
침착하고 세심하게, 도랑을 파고, 제단을 세우고 장작을 쌓고
한걸음, 한걸음 조용하지만 담대하게 확신에 차서…!
불은 하나님께서 내리신다. 갱신도 그분이 하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목회자의 비젼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7.비젼을 위한 사역.
1. 사랑.
모든 것은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사랑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께서 바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명심하라! 사랑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 있다(요일4:7)
우리가 할 일은 그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성도가 그 사랑을 인식할 때! 믿음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이것은 그 어떤 성경공부나 신학 훈련보다 더 중요하다.
지도자는 그 사랑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이다.
비로서 주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게 된다.
2. 설교와 교육.
가. 설교: 가장 핵심적인 사역, 목숨을 걸라.
최고의 설교는 비젼을 제시하는 것이다.(나무가 아니라 숲이다)
제자들이 목숨을 건 이유는 주님이 제시한 비젼이였다.
이 비젼은 주님의 영감이 스며 있어야 한다.(성령)
또한 이 비젼은 분명하고 반복적으로 제시 되어야 한다.
설교의 주인공은? 내가? 천만에! 주님이시다.(크레미아 전쟁)
나. 제자훈련: 나무는 성경공부나 훈련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 경우도 중요한 것은 지식보다 삶이다! 삶 말이다!
또한, 비젼을 성취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설교에서 제시된 비젼은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선포된다.
폐회가 된 성전 앞에서 선지자 학개는 외친다.
이 처참한 상황을 보라!(학2:1-3)
이 상황은 두가지 반응을 일으킨다.
병든 자: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뻔하다.
남은 자: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선지자 학개는 외친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케 되리라(4-9)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택도아닌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주목!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왜 이런 폐허를 보여주는가?
우리들의 반응을 보신다. 그리고 남은자의 반응을 하는 사람들과 출발하신다.
교회 부흥의 출발은,
십자가의 폐허 위에서,
바울이 감방에 갇히고 나서부터,
스테판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본 때부터,
윈 부라더와 김영길 총장이 옥에 갇히고 나서부터,
썰렁한 개척교회안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며 분연히 일어서는 남은 자들과 함께…!!!
이 놀라운 하나님의 비젼이 설교를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두가지 엄청난 결과
병든 자: 광야에서 죽어간다.
고질적인 병! 그들은 환경과 그 안에 있는 문제점만 바라본다.
그들의 눈에는 스스로 매뚜기 같았다! (민13:33)
남은 자: 자신의 비젼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외치신다. 이미 정복되었다고(수18:1-3)
설교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비젼을 대신해야 한다.
결론은 이렇다!
교회가 부흥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네가 부흥할 수 없다.
네가 하는 일이 왜 건마다 꼬이는지 그 원인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때에 성전건축을 외면한채 이기심에만 매여있었기 때문(학1:1-11)
주목! 생존의 병이 든 사람이 어찌 성공할 수 있을까?
모든 성경의 내용은,
생존의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퍼붓는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 자신의 말을 따르는 자들을 향해 소망과 힘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전부다!(요엘2:28-29, 수1:1-11, 딤후1:7, 히12:1-2, 빌3:4-16)
특히 느혜미아를 깊이 묵상하라.
설교자는 계속해서 공개적이고 반복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선포하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도록 외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함께 기도해야 한다.
모델링.
어떤 비젼이 회중에서 효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비젼이 실재의 삶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그 비젼이 실제로 작동되는 방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
모델링, 본보기!
바울은 자신이 바로 본보기라고 말한다.(고전 4:16, 11:1)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한다.
요 주의 사항!
만약 자신이 돋보이도록 한다면 교만이다
이런 비젼의 가장자리에는 이러한 유혹이 숨어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효과적인 모델링은 자신의 연약함을 먼저 노출시키는 것이다
목회자는 언제나 거룩해야 한다?
주목! 그렇다면, 그것은 목회자 자신의 것이 되며,
단순히 바라봄의 대상이 될 뿐이다.
바울의 고백을 보라!
본이 되게 하려하심이라!!! . (딤전1:15-16)
바울의 요점은 이렇다. 즉,
이렇게 연약한 자신이 예수로 인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먼저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약할 때 주님께서 내 안에서 강하시기 때문이다.(설교2004, 30참조)
무엇을 말하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라.
재정부족에 대해 장광성을 펴거나 죄의식을 조장하는 발언보다,
그것으로 인해 더욱 기도하게 됨을 감사하라.
결핍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비로서 새로운 길이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것이다.
비젼을 현재적인 것으로 구체화하는 방법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비밀이 많은 목회자, 겉과 속이 다른 목회자 보다,
자신의 숨겨진 연약함을 인정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목회자를 더 존중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치유와 은혜는 이렇게 할 때 나타나기 때문.
가장 결정적인 방법!
그것은 선교다! 특히 도심교회!
부요함과 이기심, 이성적인 불신앙!
하나님이 없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는 상황 속에서,
생존의식에 급급한 나머지, 내부를 향한 강한 인력으로 고립된 상황 속에서,
목회자는 외쳐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작은 일에서부터 교회 밖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일에 대해 시작이라도 해야한다.(예: 식품창고, 청소, 인사하기)
이것은 하나님의 관심을 얻어내는 것과
교인들의 시선을 자신을 넘어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석 사역!
물이 컵에 반이 남아 있음을 분명히 알리고,
그것을 발전적으로 해석하라.
“반 밖에 남지 않는 것보다 반이나 남은 것이 성경적이다.
구 누구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남은 컵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해석은 갱신 사역의 핵심적 요소다.
비록 아무도 그 길을 걸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해석자는 컵의 원리를 이용,
그 순간의 역학과 강점을 포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성경이 다 알고 있다는 점이다.(전도서)
해석자는 먼저 하나님께 해석을 구하고 성경과 대조하는 것이다.(사3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