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법령강요가 이루어 질 때 우리의 자세
사랑하는 형제에게- 나는 일요일 법령이 강요될 때, 그대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그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기를, 우리가 기대하고 있던 때에 주께서 내게 주신 빛은, 사람들이 땅의 권세에 충동을 받아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때에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그 날에 일상적인 일을 하지 말고, 선교사업에 헌신함으로 지혜를 보이는 것이었다.(9T 2321,2)
일요일 법령을 무시하는 것은 그 법령을 강요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종교적 열광자로 핍박을 강화하게 할 뿐일 것이다. 그대를 범법자로 지목할 기회를, 그들에게 주지 말라.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통제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통제자체가 참신함을 잃을 것이요, 일요일 준수에 대하여 엄격히 하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철저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못함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을 손에 들고 선교사업을 계속하라. 그리하면 원수는 자신의 사업을, 자기가 망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 분노를 자극하는 일을 하지 않으므로, 평화를 유지하는 지혜를 깨닫고 이와 동시에, 가장 중요한 사업을 한다고 해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아니다.(9T 232.3) 우리가 일요일을 선교사업에 바칠 때에,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모욕하기를 좋아하는, 독단적인 열광자들의 손에서 채찍이 거두어질 것이다.
우리가 일요일에 사람들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성경을 펴는 일에, 스스로를 바치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때 그들은 일요일 법령을 만들어서, 우리의 사업을 방해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9T 232.4) 일요일은 주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여러 분야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 날에 옥외집회들과, 가정집회들을 개최할 수 있다. 집집방문사업을 할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자들은 기사를 쓰는 데, 이 날을 바칠 수도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언제든지, 일요일에 종교 집회들을 가지라. 이 집회들을 참으로 흥미롭게 만들라. 부흥적인 찬미들을 부르고 구주의 사랑에 관하여, 능력 있고 확신 있게 말하라. 절제에 관하여, 그리고 진정한 신앙적인 체험에 관하여 말하라. 그대는 그렇게 함으로써 일하는 방법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영혼들과 접촉하게 될 것이다.(9T 233.1)
우리학교에서 봉사하는 교사들은, 일요일을 선교활동에 바쳐야 한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원수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받았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집회를 열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성취할 것이다.(9T 233.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업에 관하여, 분명한 지시를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생긴 무너진 데를 수보하기 위하여, 주님의 안식일에 관한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무지한 가운데 있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재정적인 원조를 받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과 결코 연합해서는 안 된다.(9T 233.3)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하여,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읽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로 ‘애굽’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나니”(겔20:10~14).(9T 233.4)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 로라.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보아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 하지 아니하였었노라.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열조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겔20:15~20).(9T 234.1)
안식일은 주님의 시금석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그가 왕이든지, 제사장이든지, 통치자이든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개입될 권리가 없다.
그들의 동료인간에게 양심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위에 두게 된다. 거짓종교의 영향아래 있는 자들, 가짜 안식의 날을 지키는 자들은, 참 안식일에 관한 가장 분명한 증거를 무시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만든 율법, 하나님의 율법과 노골적으로 반대되는 율법을, 순종하도록 사람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이 길을 계속 따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다. 그들이 길을 바꾸지 않는 한 형벌을 면할 수는 없다.(9T 234.2) 주일 중 첫째 날의 준수를 위한 법은, 배교한 그리스도교계의 소산이며, 일요일은 그리스도교계에 의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의 날보다, 더 높임을 받은 교황권의 소산이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에 경의를 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피하기를 바라시는 때에, 그들이 반대를 무릅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편견을 너무도 크게 일으켜서, 진리를 선포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법에 반항하여, 시위운동을 하지 말라. 만일 한 지역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져 굴욕을 당하게 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일요일을 그리스도 편에서 말하는 사업을, 추진시키는 날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모든 온유와 겸손으로 일해야 한다.(9T 235.1)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이 전도자로 일하면서, 당할 일들에 관하여 경고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고통이 어떠할 것인지, 어떤 시련과 어려움을 견디도록 그들이 요구받을 것인지 아셨다. 그분께서는 예고 없이 다가오는 환난이 그들의 믿음을, 요동시키지 않도록 그들이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에 대해, 알려주는 일을 숨기지 않으셨다.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4:29). 시련이 다가옴으로 그들의 믿음은, 약해지기보다는 더욱 강해져야 할 것이었다. 그들은 피차간에 말할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우리가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도 말씀하셨다.”(9T 235.2)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16,22). 그들은 그리스도를 이유 없이 미워했다.
그분의 표징을 간직하고 그분의 사업을 하는 자들을, 그들이 미워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인가? 그들은 세상의 폐물로 간주된다.(9T 235.3) “이 동리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그대들의 생명이 아무렇게나 희생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10:23).(9T 236.1)
사람들은 진리, 솔직하고 분명한 진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진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리 가운데 있는 양처럼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경고들을 그분을 위하여 지키지 않고, 인내와 자제를 실천하지 않는 자들은 주님을 위해, 일할 귀중한 기회들을 잃어버릴 것이다. 주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그분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긴 공격의 연설을 하는 일을 맡기지 않으셨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다른 교회들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거룩한 진리를 위탁받은 한 백성으로서 등한히 해 왔고, 결정적으로 불충성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업은 소수의 중심부에 국한되었고, 그곳에 거하는 자들은 마침내 복음의 감화에 굳어져 버리기까지 되었다. 진리를 너무 많이 듣고서도, 그것을 거절한 자들에게 감명을 주기란 어렵다...(9T 236.2)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우리를 대적한다. 만일 회개한다면 현대진리가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올바로 나타낼 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우리가 열렬하게 노력했을 것 같으면, 오늘날 우리의 사업은 얼마나 많이 발전했겠는가. 다른 지역들을 등한히 하면서, 소수의 지역에 모든 특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9T 236.3)
‘오스트레일리아’ ‘쿠란’봉 가까이 있는 우리의 ‘아본데일’ 학교에서, 일요일의 노동문제가 의결사항으로 등장하였다. 우리가 일요일에 일을 할 수 없도록, 미구에 우리 주위에 너무도 단단하게 선(線:규칙법규)들이, 그어질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학교는 어떤 마을이나 철도역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숲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아무도 우리가 하는 일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나, 방해를 받을 만큼 가까이 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시를 받았다.
관리들은 우리의 구내에 가서 점검해 보도록 권유를 당하였고, 그들은 왔다. 그들이 우리를 고발할 마음만 있었다면,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하고 있는 자들을, 주시하는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를 너무도 신임하고 있었고, 그 지역사회에서 우리가 한 사업 때문에, 우리를 너무도 크게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느 곳에서나 우리를 신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9T 236.4)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그곳에 간 이후로, 전 지역사회가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안식일 준수 자가 아닌 한 여자는 나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이곳으로 와서 학교를 세우고, 이 작은 집회들을 개최한 결과로 이 지역사회에 생긴 변화에 관하여, 내가 완전히 알려준다면 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9T 237.1)
그러므로 우리의 형제들이 핍박으로 위협을 받고,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난처한 처지에 빠질 때에는, 운동경기에 관한질문의 대답으로 주어진 것과 동일한 충고가 주어졌다.
나는 말했다. “일요일을 하나님을 위해 선교사업을 하는 데 사용하라. 교사들이여, 그대들의 학생들과 함께 나가라.
그들을 숲속으로, 곧 집들이 가끔 1마일(약 1,600미터)이나 2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숲 속의 주거지역으로 데리고 가서, 그 집들에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라. 그대들이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라.” 그들은 그렇게 하였고, 그 결과로 그들 스스로가 큰 유익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호감을 가지고 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말씀의 진리를 제시하는 길을 배우기 위해 그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였다.(9T 237.2)
한번은 ‘아본데일’에서 우리의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률을 담당한 관리들이 일요일에 일하는 자들을, 체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 어려움을 피하기란 매우 쉬울 것입니다. 일요일을 선교사업을 하는 날로 주께 바치십시오.
여러 지역에서 집회들을 개최하고, 또한 의료선교사업을 하기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십시오. 그들은 가정에서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진리를 제시할 훌륭한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일요일을 이렇게 보내는 것은, 언제나 주께 가납될 일입니다.”(9T 238.1)
우리는 우리의 사업과 성경상 안식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9T 238.2)
최초의 일요일 법령-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일요일 법령— 기원후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반포된 휴업일(休業日)에 관한 법령은 다음과 같다.(GC 680.4)
“모든 법관들과 도시의 주민들과 상인들은,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에 쉴 것이다. 그러나 농촌의 주민들은 자유롭게 경작 활동에 종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씨를 뿌리고 포도나무를 심는 일이, 다른 날에는 적합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므로 적절한 시기를 놓치게 되면, 하늘이 주는 혜택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건이 곧 세상 앞에서 벌어질 것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 왔다. 환난의 때가 하나님의 백성 위에 임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안식일 준수 자들은, 주일 중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을 경우, 사고파는 것을 금하고 처형의 위협을 가하고, 심지어 죽여도 좋다는 법령을 반포하게 될 것이다.(LHU 347.3) 이 나라가 정부의 원칙을 포기하고 일요일 법령을 제정할 때에, 이러한 일로써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교와 제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활동적 독재 군주제를 다시 일으킬 기회를 오랫동안 모색하여 온, 폭군을 부활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ChS 160.3) 많은 사람들, 일요일 법령을 강요하는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자들까지도, 눈이 어두워서 이 운동으로 인하여 초래될 결과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종교자유를 직접적으로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성경상 안식일의 요구나 일요일 예배제도가 거짓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ChS 161.2)
성경상 안식일의 요구와 일요일 제도의 거짓 근거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종교적 법률 제정을 위한 어떤 운동도 실상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 양심의 자유를 거슬러 싸워온 교황 권에 양보하는 행위이다.
일요일 준수가 소위 “불법의 비밀”(살후2:7)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적 제도이며,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바로 천주교의 기초가 되는, 원칙들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국가가 일요일 법령을 제정하기 위해, 그 정부의 원칙들을 공공연하게 버릴 때, 개신교들은 이 일에 있어서 천주교와 협력할 것인데, 그것은 다시 적극적인 전제정치가 되기 위해, 그 기회를 오랫동안 열심히 기다려 온 전제정치에 활기를 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Mar 131.3)
사단은 사건들을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자신만의 주관)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가 그들로 그렇게 생각하게 하기를 원하는 대로, 지상에 가득한 재난은 일요일을 준수하지 않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한 생각으로, 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령을 만든다.(LDE 129.4)
일요일 법령은 로마교에게 영광을 돌림- 일요일을 안식일로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법령은, 정부의 기초가 되어 온 공화정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국가적인 배교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교황 권 종교는 통치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은 무효화될 것이다.(LDE 132.1)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거짓 종교가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일상적으로 일하는 날이요, 그 어떤 신성성도 갖지 못한 주일 중 첫째 날이, ‘바벨론’의 신상처럼 세움을 입을 것이다.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은, 이 거짓 안식일을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날을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법령이 온 세상에 발해질 것이다.(LDE 134.5)
인간의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대신하는 일, 곧 순전히 인간의 권위로 성경의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높이는 일은, 연극에서 최후의 장면[세상역사의 종말]이 될 것이다.
이같이 대신하는 일이 보편적인 것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위엄 가운데 일어나셔서, 땅을 무섭게 흔드실 것이다.(LDE 135.5)
악인들은 ... 자신들이 진리를 가졌다고, 그들 가운데 기적이 있다고, 하늘로부터 온 천사들이 그들과 함께 동행 하며, 이야기했다고, 큰 권세와 징조와 경이들이 그들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기대하여 온, 지상 복 천년기라고 선언하였다. 온 세상은 개종하여 일요일 법령에 연합 하였다.(LDE 136.1)
짐승의 표가 아직은 적용되지 않음— 일요일 준수는 아직 짐승의 표가 아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우상의 안식일을 경배하게 하는 법령이 포고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은 짐승의 표가 될 것이다. 이 날이 시험이 될 때가 오겠지만, 그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7BC 977.9)
만약 진리의 빛이 그대에게 제시되어 넷째 계명의 안식일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일요일 준수는 성경 상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그래도 그대는 여전히 거짓 안식일에 집착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성일”(사58:13)이라고 부르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기를 거부한다면, 그대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다.
언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되는가? 성경에는 일요일이 보통 일하는 날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을 알고도, 그대가 짐승의 표를 받기로 하고 하나님의 인 받기를 거절하면서, 일요일에 일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법령을 그대가 순종할 때이다.(7BC 980.1)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상충되지 않고 할 수 있을 때는, 국가의 법에 모든 것을 일치시키도록 그들을 가르치라.(9T 238.3) 사도 ‘바울’의 마음이 회심 전에 하나님의 감동에 민감하였던 것처럼, 때때로 박해자들의 마음도 그러하다.(9T 238.4)
오늘날 부절제한 인물들이 공직을 맡아왔으며, 비위를 맞추는 수단으로 투표하지 않는, 안식일 준수 자들의 태도를 인정한다는 뜻을 표현하였고, 계속 안식일 준수 자들이 투표하지 않는, ‘퀘이커’교도[집단적 평화주의자]들처럼 저들의 노선을 굳게 지키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말했다.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매우 분주(奔走:매우 바쁘고 광분)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이 지상[죄악세상]에 자기의 일꾼들을 가지고 있다. 사단이 실망(失望:좌절멸망)하게 되기를 나는 기도한다.(2SM 337.3)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51:7,8,6).(9T 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