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로/은/편/지
김완정
미주현대불교의 발전을 축하드립니다.
심규흥씨의 Aricke을 읽고 제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불교를 말한다기에 뭐라 하지만 ·•. 저는 선원을 다닌 지 2년도 안된 짧은 기간이므로 -.혹시 잘못이 있더라도 애교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 불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지 좀 고심을 했습니다. 불교라는 것이 따로 있고 종교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심선생님(심규흥씨를 칭함) 말씀따라 우리가 10분 후에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데 • •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우리가 남의 종교, 내종교 하면서 피안이 어쩌고, 절대자가 어쩌고 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장에 이 글을 읽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고 한번 해 보십시오. 불교가 어쩌고, 인류가 어쩌고, 중생이 어쩌고 하기 이전에 내가 누구이며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한번 단단히 깊이 아주 깊게 한번 생각 해보십시오.
불교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생활법이지 우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믿는 법이 아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신을 믿으라, 따르라 하지 않았습니다.당신이 찾았던 것, 아니 본래 우리에게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무명에 가려 허둥지둥, 하루하루를 사느라 정신없이 또 일회용 사탕발림에 팔려 죽으면 천당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 물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중에서도 열심히 생활하면서 또 마음을 비워가면서 실천을 노력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이전의 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신 그 보배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줄 알면 감히 어찌 그냥 사탕발림에 속아 절대자, 절대자 하면서 피지배자로 평생을 이 소중한 나를 노예로 값싸게 팔아 버릴려 하십니까. 과학자 다윈의 진화론, 생성과정을 우리는 국민학교 때부터 배워서 압니다. 저 거대한 공룡들의 변화가 원시인으로서의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에서 또 단군의 조상이 곰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를 왜 왜곡하십니까. 단 한번이라도 당신의 전생을 볼 것 같으면, 아하 내가 이름에속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을 보십시오 옆집의 누가 교회를 갑니까? 이 기독교 사회에서 그들은 교회는 하나의 낡아 빠진 도구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기에. 그들은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행복하게 삽니다. 아무도 옆집을 흉보거나 남을 흉보거나 하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항상 그것을 서로 물어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동양의 정신사상을 어떻해서 배울까. 스승을 찾을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아십니까. 유독 한국사람들만 미친듯이 종교, 종교라는 상표에 팔려 교회를 교회를 온 사방 팔방에 그 많은 돈을 들려 짓고, 그리고는 이곳은 지옥이다, 뉴욕은 지옥이다, 아이고 괴로워 못살겠다, 사기나 거짓말, 조금이라도 어떻게 거짓말을 해서 더 많이 벌까. 좀 더 나를 내세울까. 그리곤 하나님이라는 이름 한번만 부르면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정말이지 통탄해 마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신만을 따르라, 당신만이 절대자의 아들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스승일 뿐,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인줄 안다며 우리 모두 너무 소중해, 당장에 죽어도 너무나 즐거워서 혹은 울면서 웃으면서 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 줄 알면 우리 감히 말하나 행동 하나 함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속에는 삼라만상, 온 우주, 자연 그 자체가 아니 개미 한마리 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종교, 종교하지 마십시오. 항상 피지배자로 노예같은 삶을 산다면 언제에 자유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한 생각 한 마음이 온 우주와 연결이 돼 있다는 것을 안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 공부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로 위시해서 나 자신 부터이지만, 좀더 남을 위해서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이 공부를 해나가는데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쌍한 이웃을 위하고 Homeless들이 불쌍하니 어떻게 좀 잘되게 할 수 없을까하는 그 마음,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말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 밥 한그릇, 나눠 먹으면서 화해하고 힘찬 하루를 사는 것이 불교라 이름한다면 불교이지, 완벽이 무엇인 줄 알고 완벽합니까? 어떠한 사람이 가난이라는 고난으로 인해서 자기가 왜 살며 왜 그렇게 살며, 자기가 무엇인지 알려고 함이라던가. 한 사랍이 물질과 정신으로 부자임으로 자기도 쓰고 남에게도 베풀고, 이 모두 불고 아님이 없는데, 풀 한포기가 왜 있는 줄 알며 물고기가 왜 거기 있는 줄 안다면, 우리가 인간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는가를 안다면 당신은 말한마디 행동하나 함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가 따로 있고 절대자가 따로 있고, 종교인, 피종교인이 따로 있지 않고, 밥 먹고 똥싸고 하는 것, 모든 것이 하나에서 나왔지, 무엇 무엇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다가 이 바쁜 세상에 언제 활달한 자유인으로 사는 것입니까?
항상 피지배자로 살면서 아프고, 죽고, 가난하고, 병들고, 죄인이고, 업이 어쩌고,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안다면 거기에는 죽음과 삶도 없으며 지금 찰나 찰나 나고 있는데, 찰나 찰나 진보하고 있는데, 그렇게도 항상 지지리도 못나게 살려고 애쓰는지요? 우리가 곤충에서 시작해서 아니 그 이전에서 수많은 과정을 거쳐나온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자유인, 하고 싶은대로 좀 더 능력있고, 덕이 있고, 지혜있는 생활인이면서 죽을때는 언제 죽을지를 알고, 나오고 싶으면 언제 어떻게 뭐로 나올 수 있는지 알고 나오기 싫으면 안나오고 하는 자유인이 되는 과정이며, 이 사회가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며, 모두가 서로가 스승이며, 배우며 사는 도량이지, 하루살이 일회용 광고속에 속아서 절대자의 이름만 부르면 죽을때 천당으로 가는 이름에 속아서 자기를 팔아치우니, 항상 죄인으로 살아야 한다니, 진리추구란 말하지 마십시오.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당당히 사는 대장부로서의 삶을 살려고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봄을 찾아 사방팔방 헤매다 집에 돌아와 보니 봄은 본래 집에 피워 있었느니라.
물주고 자양주고, 자꾸고 돌보아 뿌리 내려 삼라만상 꽃피우는 것도,
열매 맺어 맛을 보는 것도 거기에서 나와서 거기에서 전부 하네.
1992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