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에 주원 지역에 진짜 주 나라의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그곳에는 놀랍게도 한 인물이 거주하던 주택이 온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다.
그 인물이 이 책의 후반부를 거의 장식하게 될 주창, 즉 훗날 주 문왕이다. 그가 살았던 증거로 갑골문도 다량 출토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저자는 이 책 《상 나라 정벌》을 쓰는데 여러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여러 문헌에 의하면 어린 주창은 역시 빠르게 결혼을 하였는데 기록에는 15세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하고 90세 넘게 살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믿기가 힘들다. 주창이 성인이 되어 문왕이었을 때 지은 역경의 효사에는 신부는 상왕의 여동생이라고 하는데, 역시 아닐 가능성이 크다.
당시 상왕은 제을이며 제을의 아들인 제신이 바로 상 왕조의 마지막인 주왕인데 그렇다면 주왕의 고모부가 되는 셈인데 신부의 이름이 나중에 태사太姒라고 부르게 되는데 사姒란 성은 상 왕족의 성인 자子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란 성은 앞의 하 왕실의 후예란 설은 있다.
결혼 후에는 주창은 직접 친정親政을 시작하여 새로운 주족의 역사가 시작이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의 주인이 될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것은 여태의 유목민같은 힘있는 야성野性과 더불어 수준 높은 문화를 어느 정도 갖춘 집단이 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주창은 자식을 100명까지 두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모두를 알 필요가 없지만 최소 세 명은 기억을 하는 것이 좋다. 첫째가 백읍고伯邑考이고, 둘째가 주 무왕이며 나중에 상을 직접 멸하면서 왕으로 등극하는데 이름이 발發이며, 넷째가 유명한 주 문공이 된 단旦이다. 주 문공은 전설상이어서 과장이 되었겠지만 고대사에 최고의 성인으로 꼽힌다. 그 이유는 훗날에 공자가 몹시도 흠모하였고 그의 롤 모델이어서기도 하다.
기록에는 주창의 정식 자식은 최소 10명이 기록에 남아있고 서자는 두 명이 사기에 올라와 있다.
후대에 이 시기를 다룬 유명한 소설인 《 봉신연의 》에는 100번째 아들로( 물론 가상 인물이지만 ) 뇌진자란 이름이 나온다.
주창이 한창 왕성한 나이일 때 상 왕조는 제을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되었는데 그가 제신帝辛이며 보통 주왕紂王으로 알려져 있다. 주왕이란 이름은 좋지 아니한 뜻으로 나중에 주 왕조에서 붙인 이름이다. 하 왕조의 마지막인 걸왕桀王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주족의 지도자로서 주창의 가장 중대한 일은 당연히 상을 위해 주변의 강족이나 융족을 잡아 바치는 것이였지만, 이제 자식들이 많이 장성하자 그들에게 주로 그런 일을 맡기고 그는 상 왕조의 상층부가 하였던 일인 점복占卜, 제사祭事, 통령通靈 등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미신으로 보이겠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중요한 학문이며 과학인 것이다.
주창은 어질고 착하며(현량賢良) 학문이 높다는 소문이 나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자기를 낮추어 예우를 하였기에 많은 인재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른 것도 있지만 주창이 현대에도 이름이 남긴 것은 역시 역경易經, 즉 주역周易을 창시한 것이다.
여기서는 창시라 했지만 그가 만들었다기보다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witpo
주역周易
주역 이전에도 하나라의 연산역(蓮山易), 상나라의 귀장역(歸葬易)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실전되고 주 시대에 만든 점치는 법이라서 주역이라 한다.
그 이전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주대(周代)에는 서죽(筮竹)을 써서 길흉을 점치는 방법이 행해졌다.
이러한 점(占)의 말이나 점법의 정신을 해설한 것이 《역경(易經)》이다. 전설에 따르면 팔괘八卦는 본시 전설적인 군주인 삼황오제 시대의 복희(伏羲)가 만들었다고 한다. 복희는 양陽을 상징하는 효와 음陰을 상징하는 효를 겹쳐 팔괘(소성괘小成卦라고도 부름)를 정립하였고, 주 문왕(주장)은 팔괘를 위아래로 겹치는 중괘(重掛)를 하여 64괘(대성괘大成卦라고도 부름)를 만들었다. 64괘의 각 괘를 이루는 단 여섯 개 각각을 효(爻)라 일컫는다. 각 괘사에는 해석에 해당이 되는 괘사辭가 붙고 효에는 효사爻辭가 붙는다.
일반적으로는 괘사(卦辭)는 주의 문왕(文王)이 지었고, 효사(爻辭)는 주공이 지었고, 십익(十翼)은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괘사나 효사는 고대부터 오랜 기간 점(占)과 관련하여 여러 전문가들 거쳐서 완성이 된 것이기에 특정한 한 사람이 지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공자는 주역의 중요함을 알고 죽간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낡아 끊어지도록 봤다고 한다. ( 위편삼절韋編三絶 )
그리고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역시 진 시절에 분서갱유에서 불에 탔으나 한 왕조 시절에 복원이 된 것이니 더욱 원래 내용이 어떤 것이었고 원 작가가 누구인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주역은 영어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변화하는 것을 그렸다고 하여 The Book of Changes라도 번역을 하며 중국 팔괘의 구성을 접한 17세기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가 팔괘를 이진법으로 분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주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부정하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봉신연의 封神演義
중국의 고전소설로 명 나라때 지어졌다. 상나라의 폭군 주왕과 그를 타도하기 위해 봉기한 주나라 무왕의 싸움을 그린 소설로, 분류로는 신마소설에 속한다. 《봉신방(封神榜)》, 《상주열국전전(商周列國全傳)》 등으로도 불리며 저자는 육서성(陸西星:1520∼1605?) 또는 허중림(許仲琳)이라고 전해지나 분명하지 않다. 또한 육서성이나 허중림 본인의 순수한 창작보다는 송원대(宋元代)에 나온 《무왕벌주평화》(武王伐紂平話) 같은 '무왕벌주'에 대한 민담과 대본을 각색한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