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을,
사붓이 내려놓은 엊그제(26일.木), 장수영 바둑
도장에서 1년 전 일본에서 입단한 오오조라
군의 ‘입단 축하연’이 원생들과 사범님들의 박
수 속에 조촐하게 열렸다.
고등학생 이상만 단체기념사진
왼쪽에서 2번째가 박병규 원장, 가운데 꽃다발과 선물을 받은
일본 프로기사 오오조라(요다 노리모토 9단이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일본 여류프로기사 하라 사치코다)
그간,
박병규 프로9단과 김은선 프로6단 부부가 운
영하는 장수영 바둑도장에, 유학생이 30명 여
명 공부하고 돌아갔다.
유학생 제자 중,
고국에 돌아가 4명이나 입단하는 행운을 누렸
으니 원장님이나 지도했던 사범님들의 자부심
도 제법 클 터이다.
중국 유학생도,
여럿 다녀갔지만 유독 일본 유학생이 많은 것
은, 김은선 6단이 외국어大 일본어과를 나와
일본 부모와 학생에게 상담하고, 상대하기에
많은 도움이 되어서 일 게다.
과거,
조남철 사범님을 비롯하여 김인 사범님 등이
일본 유학을 다녀왔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는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
만큼 한국 바둑의 위상이 높아졌음이리라.
중국과 일본은,
바둑의 인프라가 한국보다 잘 갖추어져 있는
데, 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걸까.
특히 일본은,
학업과 바둑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과 바둑
대회가 많지를 않아 주말마다 열리다시피 하
는 한국보다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본 요다 노리모토 9단의 아들 오오조라가
장수영 바둑도장으로 유학을 온다.
요다 노리모토 9단 하면,
시니어 바둑 펜들은 아시겠지만, 1980년대
후반 ‘한. 일 신예대결’ 에서 이창호 사범을
이겼던 일본 프로기사를 떠올리실 거다.
오오조라 어머니도,
일본기원 여류 프로기사(하라 사치코)인데, 아
들을 한국으로 유학 보내는데 적극적이었다.
오오조라가 어릴 때는,
유명한 프로기사의 아들이라 바둑을 피했는
데 중2가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일본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갈 나이가 몇 달 지나버리자,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간을 따져 보
니 2달 정도 남아 있었다.
한국기원 연구생은,
국적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오오조라도 선
발전 지원이 가능했다.
그 마지막 기회,
한국기원 연구생 선발전을 무사히 통과하
고 장수영 바둑도장으로 유학을 온 것이다.
오오조라는,
장수영 바둑도장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국기원 연구생 생활을 마친 후, 일본기원
입단대회에서 드라마틱하게 프로기사가 되
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인 2020년 1월, 꼭 3년 전.
일본,
‘미무라 바둑도장’ 소속의 토시키가 장수영
바둑도장으로 건너와서 공부하다 일본에서
입단했다.
토시키 입단 축하연이,
일본 미무라 바둑도장에서 열렸는데 초청장
이 날아와 일본에 가게 되었다.
가운데가 토시키
옆이 필자. 뒤가 '미무라 바둑도장' 원장. 옆이 박병규 원장.
그때,
장수영 바둑도장에서 공부하던 오오조라와 일
본 여류 프로기사(하라 사치코)인 어머니가 비
행기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식사를 대접받은 후,
오오조라 어머니가 직접 운영하는 바둑교실을
방문했는데, 상상을 깨고 1층은 바둑교실이고
2층은 살림집이었다.
특이하게,
눈에 띤 것은, 입문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
님들이 ㄱ(기억자) 로 놓인 탁자 바둑판 안에 들
어 앉아서 바깥의 아이들을 상대로 지도하는
모습이었다.
벽에는,
바둑교실 원생들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는데,
먼 지역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 주일에 한번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을 포함해 150여명 된
다고 했다.
원생 이름표
1년 전에,
일본 프로기사가 된 오오조라는, 금방 한국으
로 방문해 같이 공부했던 원생들과 식사자리
를 원했다.
코로나로,
입국할 수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에 오
게 된 것이다.
도장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박병규 원장은 오오조라의 그간의 도장에서의
생활을 설명하고 꽃다발과 선물로 격려했다.
오오조라는,
김은선 사범의 통역을 통해 같이 공부했던 원
생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같이 공부했던 원생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오오조라
일본 프로기사의 통역을 하는 김은선 6단.
고등학교 원생들만,
단체기념사진을 찍고 고기 집으로 이동했다.
음식의 절반은 추억이다.
입 안 가득 새콤달콤한 맛이 번진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잊지 않고 늦게나마 찾아와 추억을 안
겨준 오오조라 프로사범의 건투를 빈다.
다음주에,
일본으로 돌아가는데 일본 프로생활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2월에는
원하는 일은
모두 이루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