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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6장 36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1-자비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실까요? 에덴에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성품들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게 되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6장 36절입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이 말씀은 두 가지 사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자비로우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도 역시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대하여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비로우십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하나님 아버지가 자비로우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많은 곳에서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9장 16절을 보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기 직전에 구원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전에 빨리 떠나야하는 상황에서 지체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거기에는 일평생 모은 재산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가지고 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가고 싶을 만큼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들이 말도 못하고 자꾸만 주저하고 지체하자 두 천사들은 롯의 가족들의 손을 잡고 강하게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롯의 가족들을 그렇게 강하게 이끌어 내셨을까요? 그 이유를 제가 읽어드린 창세기 19장 16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하나님이 롯에게 자비를 더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롯에게 자비를 베푸신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창세기 19장 29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롯을 잃음으로 인해 아브라함이 고통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비를 더하셔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죄악 세상에서 구원받은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구원을 위해서 아들이 못박히고 달리신 십자가를 생각하십니다. 그 십자가를 보시면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생각하시고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던 모세는 신명기 4장 31절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줍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전해줍니다. 그런 자비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대하시는 방식이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으시며, 멸하지도 않으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시는 분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하시면서 일만달란트 빚진 자의 그 엄청난 빚을 다 탕감해주신 임금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임금은 그를 불러 그 빚을 갚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넣고 풀어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빚을 진 자가 임금에게 그 빚을 다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정을 합니다. 그것을 본 이 임금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 빚 전부를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큰 빚을 져본 적이 있다면 빚진 자의 애타는 마음을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갚았을 때의 기쁨도 잘 알것입니다. 그런데 이 임금의 신하는 다 갚은 것이 아니라 전액을 탕감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임금은 말씀합니다. “이제는 안 갚아도 돼 너는 자유다” 그러자 이 사람은 날 듯이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모든 죄를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하셨습니다. 대가 없이 말입니다. 물론 그 대가는 예수님이 다 갚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유를 얻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자유자입니다. 빚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옮은 행위나 기도를 많이 했거나 예배를 잘 드려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치 뜨거운 여름날 물가로 뛰어 나온 물고기와 같았습니다. 살기 위해서 팔딱거려 보았지만 점점 물가로부터 멀어지기만 하고, 몸의 모든 물기는 말라가서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목말라 겨우 입만 뻐끔거리고 꼬리만 겨우 가끔 흔들정도로 다 죽어가는 그 물고기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그 물고기를 불썽히 여겨서 물 속에 던져주었습니다. 그 물고기는 그 즉시 물 속에서 누리는 생명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인류는 이 여름날에 물 밖으로 뛰쳐나온 물고기처럼 하나님의 동산에서 죄를 범하고 뛰쳐나왔습니다. 돌아가고 싶기는 하지만 돌아갈 능력도 방법도 알지 못한 채 팔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의 손에 잡고 하나님 나라의 물 속에 던져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그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생명과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자비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신의 자비를 어떻게 표현하실까요? 누가복음 6장 35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인자하다”는 말은 ‘어질고 자비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보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은헤를 모르는 자들에게까지도 어질게 대하시고 자비롭게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하심 가운데 은혜를 받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를 행하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고린도후서 1장 3절을 보면 자비로우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면서 찬송해야할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굉장히 많은 것을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도 역시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그 많은 것들이 다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온 자비의 풍성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신 것부터 시작하여 주님 안에 있는 모든 풍성한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비롭고, 그 자비 속에서 베푸시는 은혜가 모든 영역에서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풍성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5장 6절을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32편 6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만나주시기 위해 여러분 가까이 계십니다. 만일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만남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지에 대하여 모든 경건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홍수가 범람할 지라도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46편 1절을 보면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십시오,
여러분들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어떠십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에 따라 섬김의 자세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도 다릅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하면 두려운 존재로 부각되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역시 율법적인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하면 사랑이 부각되어 사랑으로 따뜻한 마음을 갖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대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하면 친근한 아버지가 부각되어 아버지 앞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갖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를 갖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온유하신 하나님,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나를 다 아시는 하나님, 온 세상을 주관하시면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심판주 하나님, 존귀하신 하나님, 영광스러운 하나님 등 하나님에 대하여 갖는 다양한 고백들이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만 생각하고 묵상한 것을 기록해보아도 하루 종 일 다 걸릴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고백한 다양한 하나님에 대한 호칭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약간씩 강조점이 다르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들도 하나님처럼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나 악인들에게까지 인자하게 대하신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여러분이 닮아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여러분 역시 선인과 악인에게도 역시 인자하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6장 36절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예수님은 이 자비를 설명하시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강도는 이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고 때려서 거반 죽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세상의 잔악상입니다. 전쟁을 통해 행하는 강도짓은 죽이고 빼앗는 일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깁니다. 기업간의 전쟁에서도 상대방의 기업이 망해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당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마치 승부의 세계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경쟁 속에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칼국수집을 해도 수많은 칼국수집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해야 합니다. 망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려면 손님들을 끌어모아야 합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칼국수집들이 망해도 신경을 쓰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돈을 얼마를 벌었느냐만 신경씁니다.
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강도도 역시 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가 빼앗은 것이 얼마나 많이 빼앗았는지와 빼앗은 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에만 신경을 씁니다. 그것이 자기의 수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마약업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판 마약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죽어 나가도 그런 것들에 대하여는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들이 신경쓰는 것은 자기가 얼마나 많은 고객을 확장하느냐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담배를 파는 가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파는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서 사가는 사람들의 건강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이 피우고 많이 마실수록 더 좋아합니다. 자기의 매상이 오르고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기꾼들이나 도둑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기로 인해 망하는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주식도 역시 큰 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엄청난 개미투자자들이 쫄딱 망합니다. 그래도 큰 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익을 본 것만 신경쓰지 망한 자들의 아픔에 대하여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가 조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그 강도만난 자의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제사장도 있고 레위인도 있습니다. 그들은 선한 일을 한다는 사람들의 표상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보면서 존경의 표시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비심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만난 강도만나 죽어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 대한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진위여부를 신경써야합니다. 거짓말로 당한 척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강도잣을 계확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시대는 거짓말장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의해 진실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강도인 사탄을 만나 영적으로 곤고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으로 곤고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 병이들거나 장애를 입거나 늙었거나 하는 등의 곤고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성경 시대에는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고아와 과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국가적으로 그들을 돕는 제도들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강도들은 어디나 있고 강도만난 자들 역시 어디든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들의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여러분들을 통해서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혼자의 힘으로 안되면 다른 사람들과 합력해서라도 하나님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도우십시오,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십시오, 한 번 스치듯이 지나가면서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면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십시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비유하시면서 진정한 이웃이 누군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제사장도 버리고 간 사람, 그리고 레위인도 외면한 사람을 당시 여행 중이었던 사마리아인은 도와주었습니다.
그를 돕게되면 자기의 여행비가 모자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사마리아인은 기꺼이 그 사람들을 도운 것입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는 율법사에게 “누가 진정으로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대하여 그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그가 바로 이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곤고한 사람들, 영과 정신과 육체에 강도만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들은 그들의 이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이 여러분들에게도 역시 부어집니다.
하나님의 복은 베풀며 섬기는 자들에게 임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7절을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비로써 베푸시는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으로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곤고한 사람들을 향한 자비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임하신 성령을 여러분들이 받으셨다면 여러분들은 성령의 열매중 하나인 자비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형상을 나타내는 성품들 가운데 하나인 자비의 회복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수많은 강도만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계십니다. 그것을 많은 예수님 자신이 세우신 교회들을 통해 일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교회인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에게 자신의 긍휼과 자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심은 물론 그들이 당하는 곤고함을 외면하지 않고 나아가 그들을 고치시고 치료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증거하며 자비를 베푸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