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1사무 17,32-51; 마르 3,1-6 / 2024.1.17.; 연중 제2주간 수요일(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오늘 미사의 독서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복음에서는 안식일 논쟁이 나옵니다. 골리앗은 필리스티아의 장수였고 우상을 숭배하던 필리스티아는 당시 강성하던 철기문명의 나라였습니다. 반면에 필리스티아와 대적하던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섬기던 나라였으나, 아직 나이 어린 장수 다윗이 철제 검을 들고 나온 골리앗을 대적하려 준비한 무기는 겨우 양치기 시절에 익힌 돌팔매질에서 쓰던 무릿매 끈과 돌멩이 다섯 개였던 것이 이 상황의 우열을 잘 말해줍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집트 탈출 시에 역사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그 하느님과 동족이 맺은 시나이 계약 정신에 투철한 젊은이였습니다. 위기 때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도와주심을 철썩같이 믿었던 다윗이 겁도 없이 칼을 든 필리스티아 장수 골리앗에게 도전할 수 있었던 용기와 뒷배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다윗은 임금이었던 사울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게 되고, 결국 이 인기를 바탕으로 왕위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사울 대신에 다윗을 왕위에 앉히게 된, 사무엘을 통한 하느님의 개입도 결국 다윗의 실력과 백성의 민심을 미리 내다보신 안목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필리스티아를 물리치고 국권이 튼튼하게 된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 시에 모세로부터 배운 하느님 신앙을 유다교로 굳건하게 발전시켰습니다. 유다교의 핵심은 시나이 계약이요 그 중에서도 십계명이었습니다. 안식일 계명은 그 십계명 안에서도 세 번째에 속하는 매우 중요한 계명이었지요.
오늘 복음의 상황은 이토록 중요한 계명이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은 물론 백성의 형편과도 상관없이 매우 편협하고 비인간적으로 적용되고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굳이 안식일에 회당에 데려다 놓고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사이를 비롯한 지식층 유다인들의 마음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 이상으로 오그라들어 있었습니다. 모든 법은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는데, 안식일 법에 대해서는 입법취지와 상관없이 매우 형식적으로 답습되고 있던 형편이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만나더라도 안식일에는 고쳐주지 말아야 한다고 여길 정도로 고답적인 인습이 마치 대단한 종교적 진리인 양 행세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이 되어 버린 형국이었습니다.
이 고약한 대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근본 취지를 상기시키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꼼짝없이 이 대결에서 패배한 바리사이들은 그 무렵부터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는데, 하필 그 음모에서 야합한 상대는 평소에 앙숙으로 지내던 헤로데 당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야합 사실은 바리사이들의 종교적 소신이 일관성도 없고 백성에 대한 진정성도 없었음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독서에서 다윗의 하느님 신앙과 골리앗의 우상숭배 종교가 대결했다면, 복음에서는 인습적으로 고착되어 우상숭배적 혐의가 짙어진 유다교의 종교 질서와 예수님의 신앙이 대결하고 있는 형국인 것입니다.
아시아는 제3천년기의 세계 안에서 가장 큰 선교적 도전지가 될 대륙입니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필리핀에만 5천 5백만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밖의 일부 지역(인도 1300만, 인도네시아 400만, 베트남 350만, 한국 350만)에 편중되어 있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1% 미만의 소수집단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요제프 톰코 추기경은 아시아의 복음화를 전망하면서 아시아에서의 가톨릭 신자 분포 상황을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분포는 숫적으로는 필리핀에 가장 많고(가톨릭 신자 83%), 질적으로는 베트남(7%), 한국(7%, 개신교 신자 14%), 인도네시아(가톨릭 신자 3.5%, 개신교 신자 7%) 순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1% 미만인 국가로는 방글라데시(0.18%), 일본(0.35%), 몽골(0.01%), 네팔(0.02%), 파키스탄(0.79%), 태국(0.42%) 등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인구대비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에서 교회 당국이나 신자들이 위축되어 있는 경우들이 톰코 추기경이 지적하듯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종종 심리적인 영향을 미쳐, 일부 아시아 주교들이 지적한 것처럼 소수 콤플렉스가 됩니다.’
아시아 교회들은 오늘날에도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각국에서 여전히 ‘외래종교’ 내지 ‘서양종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 제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많은 국가들에서 그리스도교는 제국주의적 정복자들에게 협력한 부역자들의 종교로서 낙인찍혀 있으며,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은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 중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과 같은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교회가 박해받거나 극도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이슬람교가 우세한 중동 제국이나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들에서도 선교활동이 상당히 제약받고 있으며, 종교적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인도 여러 주에서는 개종이 금지되어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필리핀, 한국, 일본, 대만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들 안에서 교회의 복음화 활동이 여하한 형태로이거나 제약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상, 심상태, “아시아 교회 안에서의 한국교회의 역할”).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화 제3천년기에는 아시아 대륙에서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보편교회의 바람은 그 자체로만 보면,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의 싸움과도 같은 형국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주하신 상황 역시 고질적인 인습에 얽매여 있을 뿐만 아니라 기계적으로 율법 규정을 적용하려는 바리사이들로부터 안식일 계명의 근본 취지를 회복하시려는 도전의 상황이었습니다.
대희년을 앞두고 열린 아시아 주교 특별 시노드의 건의를 받아 문헌 ‘아시아 교회’를 사도적 권고로 반포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문헌에서,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아시아 대륙에 살고 이는 거대한 인구에게 필요한 공동선의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열 가지나 나열하고 나서 아시아의 모든 지역 교회들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하였지만, 특히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박해를 이겨내고 교세를 신장시켰으며 복음화 역량까지도 독보적으로 성장시킨 한국교회에 대하여 아시아 공동선을 위해 교회를 쇄신하기를 신신당부한 바 있었습니다. ‘삼중의 대화’(토착 종교, 전통 문화,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복음화 과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건의한 아시아 주교들도 이미 이를 달성한 바 있는 한국교회가 나서면 파견할 인적 자원이 부족한 서구교회도 물적으로는 얼마든지 지원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까지도 표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러한 기대를 받을 만큼 아시아 지역 교회들 안에서는 가장 앞선 노력을 기울인 바 있었으니, 공의회가 폐막된 지 20여 년도 채 안 된 시기에 한국판 공의회라 할 수 있는 전국 사목회의를 열어서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 모두의 의견이 모아진 사목 의안을 대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과 주교회의의 승인으로 편찬해 낸 바 있기 때문입니다. 공의회가 천명한 교회 쇄신의 길을 한국교회도 따라가겠음을 대내외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로드맵(roadmap)인 이 사목 의안의 메시지를 따라 교회를 쇄신해 가면 민족 복음화는 물론 아시아 복음화의 과업에까지도 하느님께서도 원하시고 보편교회와 아시아 교회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공의회 이후 한국교회를 찾은 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의 방한 메시지를 종합한 해석입니다. 두 교황은 우리 교회가 바라는 민족 복음화와 우리 겨레가 바라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 화해를 위하여 마음을 합해 기도해 주었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03위 순교복자를 성인품에 올리는 시성식을 서울에 와서 주관해 주었으며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정해 주고 세계 성체대회를 서울에서 유치하도록 주선해 주면서 전 세계 지역 교회의 주교들과 신자들을 불러 모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게 하면서 한국교회가 받은 은총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 교회를 위해 나누어 주라고 하느님께 주신 것임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124위 순교자를 복자품에 올리는 시복식을 서울에 와서 주관해 주면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교회 쇄신을 독려하는 쓴 소리를 주교단, 수도자, 평신도를 비롯한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를 백 년 간이나 박해한 조선 왕조의 죄과는 겨레의 수난이라는 벌로 나타났습니다. 왕조의 멸망과 식민통치,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로 이어진 겨레의 수난사는 박해기간보다 더 길었습니다. 한민족은 전쟁 후 폐허에서 불과 70여 년 만에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는가 하면, 한국교회는 아시아에서 순교정신을 계승하는 신심이 가장 뜨겁고 그 결과 평신도 사도직이 가장 체계적이고 활발한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나라도 교회도 성공 대열에 들어선 셈입니다. 이는 물론 아시아의 여러 나라 및 여러 지역 교회와 비교한 상대적 평가에 불과합니다. 아직 한국교회 안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행히 이미 40년 전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대의원들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쇄신의 길에 대해 12개 의안으로 4년여에 걸쳐 간추려 놓았습니다. 보편교회의 여망을 대변하는 교황청과 두 교황은 복음화를 위한 교회 쇄신의 노력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면, 우리 겨레가 그토록 원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화해는 선물로 주어지리라고 복음적 훈수를 둔 셈입니다.
교우 여러분! 골리앗과 상대하여 무찌른 다윗의 무기는 기도였습니다. 그는 그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하느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또한 강고한 인습을 타파하고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태도 역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황청과 두 교황이 대변해 준 보편교회의 여망을 우리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마음과 복음선포의 자세로 받아들인다면, 한국교회의 쇄신과 신앙 활성화는 물론 아시아 복음화 과업이라는 도전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화해까지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마음이 완고하는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고,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음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