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4月 ☞정직과 순종하는 습관☜ 4월은 시편 묵상과 성경적 성숙한 기도와 순종으로 응답받읍시다. 시32:1-11절) 죄 용서의 기쁨 우리에게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일까? 자신이나 자녀가 대학에 합격했거나 회사에서 승진했을 때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이런 일은 누구나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더 기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시합에서 역전승을 거두었을 때라든지, 아니면 아예 패자 부활전에서 승리해서 결승까지 올라갔을 경우입니다. 또 우리의 큰 잘못이나 허물이 용서되어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게 될 때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때는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체증이 다 내려간 것처럼 시원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위 관직자들이 죽도록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부정을 저질러놓고 조사를 받기 전에 검찰청 현관 입구에 서서 수많은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를 받으면서 사진 찍히는 그것입니다. 사진이 찍히는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 것입니다. 그는 검찰의 소환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모든 특권을 누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짓을 저지른 사실이 들통이 나면, 직위고하를 불문하고 검찰청 입구에 서서 사진 찍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날 조석간 신문에 그의 사진과 모든 혐의 사실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면서 그는 사회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죄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차별이 없습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도 죄를 지은 것이 판명되면 조사를 받아야하고 심지어는 대통령도 지은 죄가 분명하게 드러나면, 조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하나님 앞에 가면 어떨까?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받던 존경과 칭찬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순간에 욕과 수치로 변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詩)는 다윗 왕이 밧세바와 간음죄를 지은 후, 회개하면서 지은 시로 생각됩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후, 그 죄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 죄가 다 드러나면. 사람들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다윗은 왕의 신분이 아니라, 죄인의 신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를 감추고 있는 동안 다윗의 마음은 몹시도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왕위를 빼앗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그 사실이 그에게는 더욱 큰 두려움 이었습니다. 간음죄를 지었고, 살인죄까지 지은 사람이 어떻게 거룩한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죄 용서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다면, 다윗은 틀림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회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회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를 감추고 있었으며, 속은 자꾸만 썩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회개의 자리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죄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이 회개할 수 있도록 초청하여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의 책망을 받고서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속에 감추어진 엄청난 죄를 다 쏟아놓고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32:1절)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생각하면 죄가 들통 나지 않고. 가만히 넘어가는 자가 복이 있을 것 같은데, 다윗은 온갖 창피를 다 당하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자기 죄를 다 토하고 난 후, *죄용서 받는 자가 참으로 복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Ⅰ.값 없이 죄 용서를 받은 은혜 어떤 장관이 업자로부터 천만 원을 받았는데, 결국 그 천만 원이 문제가 되어서 결국 검찰의 소환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뒤늦게 그가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이 일을 다시 무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일단 저질러진 죄는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이 모든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자신의 명예만 지킬 수 있다면, 천만 원이 아니라, 몇 천만 원이라도 내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죄는 들통이 났고, 그는 그 순간 모든 명예와 지위와 자유를 모두 잃어버리고. 푸른 죄수복을 입고 감옥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2:1절)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즉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다른 사람 앞에서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벌벌 떠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그들이 새카맣게 잊어버렸던 모든 죄들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청빈하다고 존경받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가장 추잡하고 더러운 자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위선을 다 알고는 그를 향하여 침을 뱉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추악하고 더러운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틀림없는 죄인임을 자기도 알고 또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보니까 그가 지은 죄들이 모두 다 지워져 있고, 허물들은 모두 가려져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죄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도말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칭찬과 상급만 잔뜩 기록되어 있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4:6-8절)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일한 것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공로 없이 그렇게 죄 용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께 심판받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얻은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지은 죄가 들통나지 않고. 아무 탈 없이 넘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복이 없는 것이요, 재수가 나쁜 것입니다. 왜냐면 결국 이 세상에서도 그 죄가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있고, 특히 저 세상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모든 죄가 낱낱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Ⅱ.회개하게 하심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즉 이 세상에서 죄를 드러내셔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철저하게 자기 죄를 하나님 앞에서 토하여 내게 하시는데, 이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미리 죄 용서받을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죄를 가려주십니다. 더욱이 그동안 중단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다시 회복하여 주십니다. 아무 공로 없고 돈 한 푼 쓰지 않아도 하나님은 회개만으로 그런 복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죄를 지었을 때, 심판받기 전에 이 세상에서 회개하도록 유도하십니다. 32:2절)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실 성도는 이렇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죄를 지으면, 그런 생각이 싹 없어지고, 끝까지 죄를 부정하고 싶고, 감추고 싶습니다. 그 죄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싶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내 죄가 들통이 나면서 지금까지 성도로서 누리고 있던 모든 존경과 신뢰를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이 평소에 누리는 특권은 천사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은 죄가 들통이 나면서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진 비참한 천사가 되는데, 그 비참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신자들도 죄를 지은 후에는 위선자가 되어 간사하게 죄를 은폐하면서 절대로 입으로 토설(吐說)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독약을 삼키고 뱉어내지 않고, 계속 가만히 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삼킨 그 죄가 그를 죽일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은혜도 모두 다 빼앗아갈 것입니다. 32:3절)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는 죄를 짓고 난 후, 들통이 나지 않으면 죄를 지은 사실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를 내리누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리누르셔서 답답하게 하십니다. 즉 너무너무 괴롭고 불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런 답답한 상태가 지속되는가 하면, 죄를 다 토해 낼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그 회개가 절대로 혼자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회개도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까지 우리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즉 독약을 삼켰는데. 토하지 못하니까 속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왜 성도가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뼈가 녹을 정도로 고통스러울까? 그것은 그 마음속에 있는 성령님께서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는데 어떻게 속이 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이 누르시니까 진액이 다 말라버려서 피골이 상접하는 정도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회개하도록 도와주십니까? 말씀으로 그를 꾸짖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그의 죄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숨겨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다윗에게는 그 사람이 나단 선지자였습니다. 아마 다윗이 *원래 악한 왕이었다면. 나단 선지자까지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정도로 타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의 입을 막는 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신 것이며, 회개하도록 초청하신 것입니다. 32:5절)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즉시)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회개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회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께 회개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곧바로(즉시) 자신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마음을 내리누르고 있던 하나님의 그 무거운 손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에는 이것을 *짐을 가득 실은 수레가 누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짐을 기득 실은 수레 밑에 깔리면 어떻게 될까? 수레의 무게 때문에 뼈라는 뼈는 모두 다 부서지는 데, 의식은 살아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회개한 그 순간 그 무섭게 짓누르는 양심의 고통이 사라지고.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마음이* 생깁니다. Ⅲ.다른 사람에 대한 권면 32:6절)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성도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 죄의식을 느끼는 시간은 서로 다릅니다. 대개 성도들은 마음에 유혹을 받았을 때, 이미 죄책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유혹을 받는 즉시 마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좀비)들은 죄를 지은 후, 그것으로 인해 말썽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죄의식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죄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대체로 회복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미 죄를 자각(自覺)함과 동시에 양심에 경고등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이 죄라는 것을 즉시 압니다. 사실 이것이 일차적으로 회개할 기회입니다. 다윗 왕이 옥상에서 산책하다가 여자(충성된 군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정욕을 느낀 것 자체가 이미 죄입니다. 그는 빨리 옥상에서 내려왔어야 합니다. 아마 그 후에도 여러 번 옥상에 올라가 보고 싶었을 것이며,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정도는 깊은 죄에 빠진 단계는 아니지만 자기 아내도 아닌 유부녀를 불러서 남편도 없이 식사에 초대했을 때, 이미 다윗은 죄에 발목이 잡힌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만날 기회*라는 것은 *죄책감을 느꼈을 그때*를 말합니다. 그때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죄에 대하여 예민한 사람은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끄떡없습니다. 그는 이미 죄의 유혹을 눈치 채고 그것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이 아무리 벌떼처럼 덤벼들어도 그에게서 죄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에서 안전할 수 있는 최선책은 죄를 미리 예방하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안전지대가 어디일까? *말씀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왜냐면 그런 교회 안에서는 작은 죄도 말씀으로 지적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만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죄를 잘 짓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죄에 빠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죄에 대한 경계심이 자꾸만 둔하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만나는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됩니다. 그리고 *신앙이 좋은 그리스도인들과 가까이하는 것이 죄를 예방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만약 술 마시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면. 옛날 버릇이 재발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서 자꾸만 돌아다니면 유혹이 틈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부부끼리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죄를 멀리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32:9절)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죄를 짓는 길에서는 빨리 돌아서면 돌아설수록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죄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지면 치료하기도 어렵고, 회복하는 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짐승들 중에서 *말이나 노새는 고집이 쎕*니다. 그래서 주인이 채찍으로 때리지 않으면 자기 욕심에서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성도는 억지로 잡아끌기 전에 자기 발로 유혹에서 돌아섭니다. 왜냐면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는 언제나 비참한 파멸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마치 우리의 죄가 영원히 들통 나지 않을 것처럼 속이고. 특히 그런 죄를 아름다운 것처럼 미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에서 돌아서는데 상당한 미련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미련한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의 기질이 고집스럽다 해서 다 지옥에 간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집이 쎈 사람은 절대로 이 세상에서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왜냐면 마치 염소처럼 모든 것을 억지로 끌어당겨야 겨우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염소 다루는 방법은 뒤로 땡겨야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미리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은 맞을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성도인가 하면, 징계를 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도 신속하게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맞아도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애굽의 바로 왕과 같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징계하면 할수록 더 하나님을 미워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끝내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32:8절)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품고 있는 동안에 막아놓았던 복들을 취소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우리 이름 앞에 달아놓으십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고집을 꺾고. 하나님께 회개하기만 하면. 마치 봇물을 터뜨리듯 예비해 놓은 복을 내려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성경으로 양육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집이 굳어진 늙은이 보다. 젊었을 때,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을 받으면 기질이 유순하게 변하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은 대개 고집이 그렇게 쎄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리다가도 하나님의 징계가 두려워 돌아서고 죄를 향하여 따라가다가도 하나님이 두려워서 머뭇거리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홍수가 몰려와도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의 미래를 책임져주시기 때문입니다. 32:7절)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께 은신처가 되어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제 모든 죄가 다 들통이 났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저주가 두려운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 죄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수욕을 당하게 될 테니,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자기 고집대로 끝까지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 자는 이상하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다. 놀라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를 숨기고 감출 때는 더 많은 소문과 의혹이 일어났는데, 모든 것을 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니까 소문도 잠잠해지고 공격도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의 은신처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집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집이 너무 쎄면 결국 많이 두들겨 맞게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닌데도 자꾸만 가려고 하고, 죄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회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2:10절)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악인은 죄를 숨기고 응큼하게 감추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습니다. 죄를 토하지 않고 있는 동안 그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온갖 좋지 않은 일이 다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결국 죄가 드러나게 되면, 모든 비난을 다 듣고. 결국 죄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는 것 자체도 불행이지만, 죄를 지은 후에 그것을 토(吐)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 것이 더욱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비록 하나님께서 치실지 몰라도 그들을 악인에게 넘기지 않으시고 인자하심으로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으로 둘러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권면을 합니다. 32:11절)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 할 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원토록 우리에게 진노하지 않으시고 회개하는 즉시 은혜를 회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단 하나님께 회개한 죄는 하나님께서 숨겨두셔서 악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심판받지 않도록 지켜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죄에 대하여 예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문둥병이 무서운 이유는 통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에서 병이 퍼지고 있는데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신경이 예민해야 우리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요한1서 1:8-10절)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아-멘 찬송가 332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site/Kakao 선교회 안내 주님의 선교 명령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치와 아름다운 가정과 영생을 위하여 대상 : ▷불신자 ▷개종자 ▷코로나시대 바빠서 교회출석 못하는 자 자발적인 전화 신청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 ▷영생 받고 사망 후 천국 가길 원하는 자. 즉▷허무에서 가치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권태에서 행복으로, ▷염려에서 기쁨으로,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저주에서 풍요로, ▷종교인에서 주님의 제자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으로,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불 땔감에서 천국 맨션(mansion)을 원하는자. 물론 각자 의지와 기질과 순종여부에 따라 차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계21:8절)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상담실 운영 ◐신앙 상담 ☞ 갈등 상처 ◐가정 상담 ☞ 폭력. 이혼. 자살충동. 우울증 등 ◐내방 장소 ☞ 동탄 종합문화센터 옆 펜케이 카페 주소 반송동 117-5 망설이면 기회를 놓칩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