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홍자범칭(毋紅字泛稱)
[요약] (毋: 말 무. 紅: 붉을 홍. 字: 글자 자. 泛: 뜰 범. 稱: 일컬을 칭)
붉을 ‘홍’자 하나로 두루 칭하지 말라는 뜻으로, 꽃을 붉을 ‘홍’자 하나로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만물은 다 제각기 특징이 있다는 말.
[출전]《박제가(朴齊家)의 월뇌잡절(月瀨襍絶)》
[내용] 이 성어는 조선의 실학자인 박제가(朴齊家)정유각집(貞㽔閣集) 정유각초집(貞蕤閣初集)에 실린 월뇌잡절月瀨襍絶) 사수(四首) 첫수 첫 구절에 나온다. 그런데 이 첫수에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라는 제목을 붙혀 알려지고 있다. (한문 실력 부족으로 나머지 수는 번역을 보류함)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
毋將一紅字(무장일홍자) ‘홍(紅)’자 한 글자만을 가지고
泛稱滿眼華(범칭만안화) 널리 눈에 가득 찬 꽃을 일컫지 말라
華鬚有多少(화수유다소) 꽃 수염도 많고 적음이 있으니
細心一看過(세심일간과)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보게나
「위인부령화」 박제가1) [爲人賦嶺花 朴齊家] (조선시대 한시읽기(下), 한국학술정보(주))
*우리가 흔히 길가의 풀꽃들을 이름 없는 꽃이라거나, 이름 모를 꽃이라 한 마디로 말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 같다.
월뇌잡절(月瀨襍絶)
毋將一紅字。泛稱滿眼華。華鬚有多少。細心一看過。
坡坨色深淺。綠草風以暈。獨有含櫻鳥。時來刷紅吻。
了了魚相聚。寥寥人屛息。啞然忽發笑。顴影寫咫尺。
快活昆侖奴。靑泥蹋赤踵。要鎌明賽月。午飯高於塚。
이하 [문화일보]박석 교수의 古典名句 毋紅字泛稱의 글.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23일(月)
毋將一紅字 泛稱滿眼華(무장일홍자 범칭만안화)
붉을 ‘홍’자 하나로 눈에 가득한 꽃 두루 칭하지 마라.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가 어느 고개를 넘다 만발한 꽃들을 보고 지은 ‘위인부영화(爲人賦嶺花)’의 전반부이다. 사람들은 잘 아는 꽃들에 대해서는 하나씩 구분해 그 이름을 부르지만, 고갯마루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은 무심히 붉은 꽃이라 두루 칭하고 지나친다. 시인은 그런 타성을 꾸짖고 있다. 이어서 시인은 “꽃술에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으니 세심하게 일일이 살펴보리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섬세한 마음인가.
명말청초의 문인 김성탄은 사바세계는 지극히 작은 요소들이 뭉쳐 생긴 것이라는 불교의 세계관을 빌려와 문인은 모름지기 극미를 세밀히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극미론(極微論)을 주창했다. 그는 하나로 보이는 작은 등불의 불빛도 세심히 나눠보면 담벽(淡碧), 담백(淡白), 담적(淡赤), 건홍(乾紅), 흑연(黑煙) 다섯 가지 색으로 나눠볼 수 있고, 그냥 몇 개의 꽃잎이 생긴 것을 보고 꽃이 피었다고 여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받침이 먼저 생기고 밑동이 생기고 꽃잎이 생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꽃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극미론은 몇몇 조선 후기 문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시도 그중 하나다.
극미론은 대상을 세심하게 바라보자는 뜻 외에 나의 입장을 내려놓고 대상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김성탄은 우리가 볼 때 꽃잎 하나는 손톱만 한 크기지만 꽃의 입장에서는 꽃잎 하나의 거리도 아주 먼 거리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꽃술의 많고 적음이 대수롭지 않은 차이지만 꽃으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습관적 사고의 틀을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 보일 것이다.
상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