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체험'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오랜시간 같이 지내도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옆에 있는 철수를 가장 잘 알수 있는
방법은 그 철수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입니다.
예수는 아버지를 살아냈고
'조건없는 사랑'을 성취 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조건없는 사랑의 성취에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용서'입니다.
그것은 절대계에서는 체험할 수없고
오직 이 상대계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생각을 살고 있으며
그 분의 생각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간이 된 이유 입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제한된 물질이 되어
모든것을 경험하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제한적인 것을 경험하고 이해하기 전까지
무한함에 대하여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하나님 전체. 즉 순수한 생각의 광대함에서
물질의 한계성까지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당신 자신인 신을 이해 할 수 있을까요?
슬픔.한계. 그리고 죽음이라는 환영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기쁨.자유.그리고 영원함을 이해할수
있을까요?
비록 우리들은 아주 힘겹고 심각하게
자신의 게임과 환영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러한 모든것들은 당신을 가르치고 확장하며
깨우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당신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단지 '지혜'라는 가장 위대한 보상
을 얻기 위해서 여러분이 게임을 하고 환영을 경험
할수 있는 무대일 뿐입니다.
지혜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혼안에 모인 보물이며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에게 완전히 속한
가장 경이로운 보물입니다.
지혜는 여러분의 모든 모험에서 신이라는 생각의
영역을 통해 얻은 '감정의 집합'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세상을 떠날때 가져가는
유일한 것입니다.
감정은 삶의 모든 것입니다.
감정이 없다면 삶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규율의 제한과 압제를 통해.
종족간 분쟁과 타락을 통해.
남여.또는 형제간의 반목을 통해
인류가 배워온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가장 천한 상태로 비하시켜 이룬 것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전쟁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여성을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차별하여 업신 여기는
이런 모든 것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것이 어떤 느낌인지 결코 알수 없었을 것입니다.
삶이 계속되고 수 많은 삶을 살면서
그것들이 확고부동한 현실이 되어버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과민에 빠지고 불안해하며
꿈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짐승처럼 대하도록 허용하는
신은 어디에 계시는가?
신이 그렇게 잔혹한 행위가 일어나도록 허용했다면
결국 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신은 항상 그곳에 있었습니다.
신은 우리의 모든 환영이었으며 모든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분명히 항상 우리를 사랑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여러분이 설계한 대로 꿈을 경험하
도록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처음 그 꿈을 꾸었고
선택하면 언제든지 그 꿈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단지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자신은 지극히 불행하고 슬픈 이야기로
자신의 환영을 엮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망가트립니다.
또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당신은 우상을 섬깁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합니다.
당신은 비판하고 증오하며 집착하고 두려워하고
그리고 정말로 오만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인가?
이런 모든것들이 된다는 것이 어떤한가를
알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써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왕국을 이해하고 품에 안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 당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불안함과 사소한 생각으로 갇혀버린 우리들 모두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게임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이며
자신의 환영아래 깊숙히 숨겨져 있는 지극한
아름다움 입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