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사회라면 우울증은 청년기 그리고 산후 여성들에게 많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과 이상사이의 괴리 등으로 인한 우울증이 청년기를 괴롭힐 것이다. 여성들이 산후에 우울증이 오는 것은 이상할 리가 없다. 10달이상 몸속에 품고 있던 아이를 내 놓으니 성취감도 있겠지만 허탈한 감정이 없을 리 없다. 그것이 우울증 증세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물론 청년들의 우울증도 상당하지만 특히 노인층에서 우울증 증세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를 보면 2021년 전체 우울증 환자의 36%정도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2023년 현재 그런 상황은 더욱 심화됐을 것이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가거나 약을 복용한 것을 대상으로 나온 통계이니 드러나지 않은 우울증 환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 판단한다. 요즘 우울한 상태를 걱정해서 스스로 병원을 찾는 젊은층이 많은 것과 비교할 때 노년층은 우울증 정도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훨씬 적다. 우울증은 그냥 일반적으로 감기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노인층의 우울증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노인층가운데서도 60대보다 70대 80대의 우울증 비율이 훨씬 많다. 우울증은 자살로 연결되기에 심각성이 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상실감을 꼽는다. 가진 것을 잃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실이다. 노인층들은 은퇴로 인한 노동 일선에서 상실, 체력 약화와 병으로 인한 건강 상실, 노년에 살 시간이 많지 않다는 허망함으로 인한 상실, 친구나 친지들의 사망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요즘 들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예전에는 노인들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 사회에서 노인층들은 상당수가 바로 베이비 부머들이다. 베이비부머가 아니더라도 한국전쟁과 1960년 19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점에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그리고 중년시절을 보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나라, 노력한 만큼 성취를 할 수 있는 나라속에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패배란 없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성공과 실패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집단적인 패배는 없었다. 1960년대 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 까지 군사독재정치아래에서 심적 힘듬은 겪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그래도 압축성장을 이룬 것이 바로 한국이다. 4.19 혁명이나 6.10항쟁 등으로 한국 정치사를 바꾸기도 했다. 이것은 더욱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뭔가 움직이면 변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당시 부모들은 자신은 배우지 못했지만 자식들 만큼은 무조건 가르쳐야 한다는 각오아래 교육에 올인한 것 아닌가. 그래서 대학진학률을 엄청난게 높여놓았다. 그런 환경속에 자란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학교 졸업후 정말 대부분 원하는 직장을 찾게 된다. 직장속에서도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고 월급수준도 높아졌다. 1980년대 1990년대 초에는 마이카붐이 일어 너도 나도 자가용차를 소유하게 된다. 1988년 올림픽도 열리고 화장실문화 등 사회기반적 분위기도 대단히 향상되었다. 정말 마음만 먹으면 안되는 일이 없는 시절이었다. 지식의 양이 많아지니 자기 주장도 강해졌다. 부도 상당히 축적했다. 정치에도 대단한 관심을 기울인다. 한국전쟁과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엄청난 반감과 함께 그런 분위기에 증오를 느끼는 세력들도 크게 증가했다. 이미 한국사회는 이때 보혁갈등의 엄청난 씨앗을 품고 있었다. 학창시절 군사교련 수업을 철저히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멸공이라는 단어에 엄청나게 익숙한 세대이다.
그런 베이비부머들이 이제 본격적인 은퇴를 하고 있다. 이미 은퇴를 한 베이비부머들도 상당하다. 그들은 대단한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 그냥 하면 되던 시절속에 청춘과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그들이 마주한 사회는 상실의 사회였다. 직장을 잃고 가정에서도 권위도 잃고 존재감도 상실했다. 특히 남성들이 그런 분위기속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더욱 우울한 것이다. 예전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에는 노년 공경사상이 강했다. 그리고 환갑을 전후하여 사망하는 비율도 높아 자식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않고 여생을 살다 가면 됐다. 손주들 재롱을 조금 맛보고 자식들에게 대우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 꿈도 꿀 수 없다. 아예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에 머물며 그나마 위안을 준다는 유튜브나 영화 채널 등을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유튜브라는 것이 요상해서 자신과 맞는 것들만 올려준다.그러니 정말 한쪽으로 기운다. 정신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하게 된다. 우측은 극우로 가게 하고 좌측은 극좌로 가게 한다. 상실감속에 증오심만 더욱 커진다. 지금 인터넷 댓글을 작성하는 대부분은 청소년들과 노인층이라는 말도 나온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이 없으니 주구장창 댓글올리기에 시간을 보낸다. 상실감과 분노에 우울증까지 겹치니 그 댓글이 정상적일 리가 없다.
지금 한국의 노인들은 우울하다. 한때 이 나라를 지금 이 정도 위치까지 만든 것이 자신들이라고 판단하는 데 그에 대한 댓가가 너무 초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듬의 슬픔과 젊은이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그런 기분 그리고 가정에서도 존재감이 없다는 우울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지는 사회현상이다. 유독 전세계에서 한국의 노인층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것은 놀랄 일도 슬프할 일도 아니다.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배운 것이 많아 지적 호기심도 많고 어릴때부터 주입된 독재주의적 발상과 반공주의적 사고가 그들을 더욱 한쪽으로 쏠리게 한다. 그래서 정치에도 대단한 관심과 과격할 만큼 적극적인 활동성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성향이 이 나라 정치와 사회가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자신들이 추구하는 그런 사회로 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그런 분개가 바로 우울증이라는 상실감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압축성장의 어두운 면이 바로 한국 노인들의 우울증 증세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지금 한국의 사회현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2023년 10월 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