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의 말과 글 (이화여대 대학원신문, 2002. 4)
"오늘 경선 경과를 처리님에게 드꼬(듣고)…(중략) 저랑 이인제
습격대를 결성하여 조국의 앞날에 큰 획을 그어 보심이 어떨지…"
노무현 후보의 팬클럽인 노사모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일부분이다. 이인제 후보 측에서는 "노사모의 활동이 사이버 테러를 넘어 오프라인에서까지 폭력을 휘두르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글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다. 자신에 대한 습격대를 결성하겠다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섬뜩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제3자
입장이라도 이런 글이 담긴 유인물을 보거나, 어두운 뒷골목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속닥거리는걸 듣는다면 소름이 돋을 일이다.
하지만
이 글이 실린 곳은 인터넷 게시판이다. 그리고 게시판을 통해 이 글을 접한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아마도 이같은 호들갑은 떨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의 내용쯤이야 게시판에서 흔히 보아왔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메시지이다"라는 맥루한의 유명한 명제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것이 어떤 미디어에 실려 있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상당히 다르게 와 닿는다. 이인제
후보측의 발표를 두고 "인터넷상에서 흔히 재미로 쓰는 표현이며, 이런 글들은 얼마든지 더 있다. 이 후보측의 문제제기는 사이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반박한 노사모측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텍스트로 말하고 텍스트로 듣기
위의 노사모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두고 지금까지 필자는 편의상 '글'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것은
'글'보다는 오히려 '말'에 더 가깝다. 우리는 네트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모니터 위에 텍스트로 표현되기 때문에 자칫 글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타이핑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는 행위인 경우가 훨씬 많다. 자고로 글이란 머리 속에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단편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서 정제된 단어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반면 네트에서 이루어지는 타이핑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생략한 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채팅방이나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해보면 훨씬 이해가
쉬워진다. 이곳에서 주고받는 텍스트는 분명 글이 아니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채팅이란 말 그대로 수다떠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채팅방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니터에 정신없이 텍스트가 올라올 때면 '시끄럽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 "ㅎㅎ"나 "ㅋㅋ" 같은 자음으로
웃음소리를 표현하는 것도 텍스트를 음성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더 엄밀히 따져보자면 인터넷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말'에 좀 더 가깝다는 뜻일 뿐, 면대면 대화에서 주고받는 '말'과 동일한 것은 결코 아니다. 네트의 커뮤니케이션이 음성의 높낮이나
장단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대화자의 감정이나 정서와 같은 숨겨진 메시지까지 고스란히 전달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게시판에는
'말'과 '글'이 하나의 텍스트 속에서 혼재되어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따라서 네트의 커뮤니케이션은 '말' 혹은 '글'이라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범주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차원으로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즉 네트에서의 언어는 제3의 언어이다. 음성을 통한 청각적
커뮤니케이션이 텍스트를 매개로 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구현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언어인 것이다. 그래서 네티즌은 텍스트로 말하고 텍스트로
듣는다. 이것은 아주 색다른 경험임에 틀림없다.
이모티콘의
효과
사실 오프라인에서 음성을 매개로 한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전적으로 청각에만 의존해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표정이나 몸짓과 같은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즉 커뮤니케이션 주체의 육체를 통한 시각적 표현이 동시에
동원된다. 하지만 익명의 커뮤니케이션이라 지칭되듯이 네트에서 커뮤니케이션 주체의 육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청각의 시각화는 동시에 우리의 시선에서
주체를 제거시킨다. 그리고 텍스트 형태로 구현된 음성만이 시선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것은 면대면 대화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커뮤니케이션 주체의 바디 랭귀지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에 담긴 의미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같은 말이라도 단순한 텍스트만으로는 어떤 뉘앙스로 어떤 의도를 담아 말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대화 과정에서 이모티콘과 같이 바디 랭귀지를 대신하는 표현 전략이 자주 사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상황1> 잘났어 정말
<상황2> 잘났어 정말^^
<상황1>은
비꼬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웃는 이모티콘이 첨가된 <상황2>는 이와는 애교 섞인 농담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일한 텍스트지만
이모티콘이 있냐 없냐에 따라 때로는 전혀 상반된 의미가 전달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모티콘은 몸짓이나 표정 등 맥락단서들을 보충해 줌으로써
텍스트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대화를 음성을 통한 대화에 보다 가깝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육체의 제거, 그리고 네트의 새로운 인간 관계
물론 이모티콘
역시 결국은 육체와 분리된 텍스트이다. 비록 그것이 바디 랭귀지를 대신해 주기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주체의 존재 자체에 담겨 있는 메시지까지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면대면 대화 과정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주체의 육체, 즉 외모나 체구, 연령 등 생물학적 조건 그리고
직업, 교육수준, 계층 등과 같은 사회적 조건 그 자체가 스스로 메시지를 만들어 낸다. 이런 것들은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이나 성격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반면 커뮤니케이션 주체의 육체성이 제거된 네트의 언어는 이같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자유롭다. 인터넷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상대방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익명의 베일 뒤에 숨어 얼마든지 자신을 가공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어떠한 감정을 교환하는가 이다.이처럼 육체와 분리된 텍스트가
매개하는 네트의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관계의 방식을 변화시킨다. 주체가 메시지를 압도하는 오프라인의 인간관계와는 달리 네트에서는 메시지가 관계를
규정한다. 네트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