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금요일 강론>(2023. 8. 18. 금)(마태 19,3-12)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19,3-9)”
여기서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라는 말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또는 고발할 명분을 찾으려고, 의도적으로 접근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고 이미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31-32).
바리사이들은 그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대답하시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 때와는 다른 대답을
하셨다고, 즉 앞뒤가 다르다고 비방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고 대답하시면,
그들은 신명기의 율법을 거스르는 말을 했다고,
즉 율법을 어겼다고 예수님을 고발했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질문의 배경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있습니다.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은, 요한이 헤로데의 이혼과
재혼을 비판했기 때문이었습니다(마태 14,3-12).
그래서 바리사이들의 질문에는, 헤로데의 이혼과 재혼은 정당한가,
아닌가? 라는 뜻도 들어 있고, 동시에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일은 정당한가? 아닌가?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고 대답하시면, 바리사이들은
헤로데에게 가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을 옹호하면서 헤로데를
비난했다고 고발했을 것이고, 반대로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대답하시면, 예수님이 헤로데가 한 일은 정당하다고 말했다고
떠들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예수님에게
거세게 반발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불순한 의도를 알고 계셨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으시고 혼인에 관한 당신의 가르침을 재확인하십니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즉 ‘하느님의 성사’ 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라는 말씀은, “이혼하면 안 된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바리사이들이 인용한 율법은 신명기 24장 1절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은,
“그것은 하느님의 법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만든 규정일 뿐이고,
하느님께서 직접 내려 주신 ‘하느님의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라는 말씀은,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임시 조치였을 뿐이다,
또는 그것은 과도기의 규정일 뿐이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들이 혼인의 신성함을 깨닫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던 때의 임시 조치였다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수긍했는지,
아니면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해서 반감을 품은 채로
그냥 물러났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라는 말씀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혼인과 이혼에 관한 ‘우리 교회의 대원칙’이고,
우리 교회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예수님의 법’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혼인이 언제나 항상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나? 인간들이 마음대로 한 일인데도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바로 그것을 식별하기 위해서
각 교구마다 혼인 법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혼인인지, 아닌지를
개인이 마음대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판단은 교회의 교도권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사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혼인 법원에서는 여러 가지 증거들과 증언들을
신중하게 심사해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혼인인지,
즉 유효한 혼인 성사였는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혼인이 아닌 일,
즉 성사로서는 무효한 일이었는지를 판단합니다.
<혼인 무효 소송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소송이 제기된 혼인에 대해서, “그 혼인은 혼인 성사로
인정할 수 없으니 무효다.” 라고 혼인 법원에서 선고를 내리게
되면,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그 혼인에서 풀리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혼인 법원의 선고는 ‘이혼해도 된다.’ 라는 선고가 아니라,
‘그 혼인 성사는 무효다.’ 라는 선고라는 점입니다.
<혼인 무효 소송은 이혼을 허락받기 위한 소송이 아닙니다.
성사로서 적법하고 유효했는지, 아니면 불법적이고 무효인지를
판단받기 위한 소송입니다.>
혼인과 이혼에 관해서 말할 때,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했던
다음 말을 하나의 원칙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라고
부르셨습니다(1코린 7,15).”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