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가 산뜻한 2015년의 출발을 알렸다. 팬들도 경기장을 많이 찾았고 경기 자체도 즐거웠다. 본격적으로 야구 시즌이 되면 또다시 중계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KBS에서 경기 중계를 정기적으로 해주기로 했다는 소식도 있는만큼 이번 시즌 K리그의 인기몰이를 기대해본다. 그 와중에 사소한 걱정을 하나 늘어놓고 싶다.
KBS는 지난 7일 올 시즌 1강으로 꼽히고 있는 전북과 지난 해 FA컵 우승팀 성남의 경기를 공중파를 통해 중계했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중계에 능숙한 최승돈 아나운서를 기용한 것도 훌륭했고, 인터뷰에도 이광용 아나운서를 쓰면서 내용에도 신경 쓴 기색이 역력했다. 퍼거슨 경과 무리뉴 사이에만 설전이 있는 줄 알았는데, 경기를 앞두고 한국의 봉동이장과 학범슨 사이에도 설전이 있었다. 최강희-김학범 두 감독 간이 모발을 두고 벌인 신경전까지 언급하면서 경기의 흥미를 더한 것도 매우 좋았다.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중계진의 노력이 느껴져서 마음이 흐뭇했다.

(△ 모발이식이나 하라며 김학범 감독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탈모인들을 광역 도발한 최강희 감독. 결국 경기는 승리했다. 출처: 전북현대모터스 홈페이지)
이렇게 좋은 중계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으니, 최강희 감독과 김학범 감독의 인터뷰가 하프타임에 진행된 것이다. 어떤 의도인지는 너무나 잘 알겠다. 경기 전 유쾌한 설전까지 벌였던 두 감독의 인터뷰는 팬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프타임 동안 다른 채널을 틀어놓았다가, 후반전 시작에 맞춰서 다시 채널을 맞추는 것은 어느 축구팬들이라도 비슷할 것이다. 이탈하는 시청자들을 잡기 위한 일환이었을 것이라 보인다. 잠깐 채널을 돌렸다가 무한도전 재방송이 너무 재미있어서 채널을 못 돌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늘 고민이 되는 딜레마이긴 하다. 포장을 잘하는 데에 신경쓸 것인가, 아니면 내용물을 충실하게 채우는 데에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하지만 하프타임에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축구 외적인 요소를 잘 부각시켜서 중계의 즐거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기력을 보여주는가에 있다. 하프타임은 전반전에 노출했던 문제점들을 지적해서 고치고, 파악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전술적 지시를 내리는 시간이다. 하프타임을 통해 감독은 경기 분위기를 바꾸고, 후반전을 맞아 마치 새로운 경기인 것마냥 치르게 만들 수도 있다. 즉 경기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감독들은 하프타임에 선수들과 함께 해야 한다. 팬들을 위한 인터뷰도 좋지만, 축구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밌는 경기 내용이어야 한다.
불과 15분 남짓의 시간이지만 하프타임이 경기를 뒤바꾼 수많은 예들이 있다. 여전히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스탄불의 기적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전반에만 3:0으로 뒤졌던 리버풀은 후반에 3골을 내리 꽂아넣으면서 AC밀란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기적과 같은 승리가 모두 하프타임 덕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분명 하프타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골을 허용하며 침체된 분위기는 15분의 휴식 후 후반전의 시작과 함께 반전되었다. 제라드가 리더십을 뽐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경기가 중단되는 하프타임 덕을 보았음에 분명하다. 전북과 성남의 경기에서의 양상은 어떠했나. 이번 경기 역시 성남은 후반 내내 강한 압박으로 전북을 괴롭히면서 전-후반의 양상이 상당히 달랐다.
사실, 전북과 성남의 경기에서 감독의 인터뷰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하프타임 중 잠시 최강희 감독이 자리를 비웠지만 전북은 여전히 강했고, 김학범 감독 역시 인터뷰를 했지만 경기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극적인 승부가 일어나다면 우린 그것을 굳이 '극적'이다라고 표현할 리가 만무하다. 드물게 일어나는 기적과 같은 역전승, 흔히 말하는 '극장 경기'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온전히 보전된 하프타임 시간이다. 감독 이하 선수들의 정신을 '버쩍' 들게 할만한 하프타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짧은 감독님들의 인터뷰가 중계에서 큰 즐거움을 준 요소였을까? 평소에 여유있을 때에야 구수한 입담을 뽐내는 최강희 감독이지만, 빨리 들어가서 선수들 봐야하는데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 시간이 있겠나. 야구처럼 흐름이 여유 있는 스포츠는 경기 중 선수나 감독의 인터뷰가 불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축구는 야구와는 성향이 완전히 다른 스포츠이다. 지난 경기에서 최강희, 김학범 두 감독 모두 하프타임 동안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현대 축구에서 상업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할지라도, 아직까진 몸과 몸으로 부딪히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축구가 30분씩 3쿼터로 진행되지 않는 것도, 경기 중 작전타임이 없는 것도 아직은 이러한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쿼터 사이의 쉬는 시간, 작전 타임 시간 등은 광고에 이용되기에 적당하다.) 상업성에 매몰되면 결국 본질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프로스포츠로서 팬을 가장 우선해야하는 것은 백분 동의하는 바이나, 결국 팬들에게 가장 먼저 선사해야할 것은 높은 수준의 경기내용이다. 고작 2,3분의 인터뷰보다 하프타임 동안 만들어낼 변화가 팬들의 머리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명승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프타임 동안 감독님은, '인터뷰하지 마세요. 선수들에게 양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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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채널고정 때문이라면 차라리 락커룸보여주지
그러게 말입니다. 감독님들만 쏙 빼서 급해죽겠는데 인터뷰하지 않았으면 해요. 차라리 라커룸 들어가는 모습이나 선수들 서로 다독이고 파이팅하는 모습 같은 걸 보여주면 훨씬 더 뜨거워질 것 같은데
미리 인터뷰 뽑아서 하프타임때 보여주면 좋겠네요
농구를 그렇게 하던데
분데스리가 벤치마킹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