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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달라이 라마 · 빅터 챈 - 류시화 옮김 - 오래된나무
이 책을 읽는 동안 절친한 친구 중에 젊은 시절 늘 나에게 자신이 믿는 종교를 믿으며 용서를 구하면 내가 저지른 잘못을 다 용서 받는다며 그리하라고 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난 그 친구가 그런 말을 꺼낼 때마다 “윤리와 도덕과 상식과 법률에 입각하여 열심히 사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누구에게 무슨 용서를 빌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을 하곤 했었다. 덧붙여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하였으면 상대방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고 또 나로부터 피해를 당한 상대방이 있다면 그가 나를 용서하여야 내가 진정으로 용서를 받는 것이지 내가 왜 엉뚱한 곳에다 대고 용서를 구하여야 하나?”라는 말도 늘 덧붙였다. 그 친구는 이제 내가 구원받을 자가 못된다고 포기했는지 아니면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요즈음은 가끔씩 그의 종교적 이야기를 꺼내기는 해도 더 이상 나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소주잔을 맞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한다.
이 책은 또 다른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에서 달라이 라마는 내 친구가 이야기 하는 절대적인 종교적 용서를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종교가 기반이 되기는 하지만 종교를 통한 용서가 아니라 내가 친구에게 농담조로 이야기 하였던 당사자의 용서가 포함이 되고 있다고 느꼈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가 공동 집필자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수행한 중국계 홍콩인 학자인 ‘빅터 챈’에 의한 달라이 라마와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의 시작에서 빅터 챈은 처음 달라이 라마를 만날 때 자신이 중국계라는 이유로 달라이 라마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며 티베트를 침공, 점령하여 달라이 라마를 망명케하고 인도의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게 한 중국을 용서하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인터넷에서 전하는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중국(당시 중공)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1950년 가을 티베트 침공을 시작하여 1951년까지 티베트 중앙까지 완전히 점령, 주둔한 것으로 나와 있다. 북한의 남한 침략에 지원을 하면서도 동시에 티베트를 침공한 것이다. 중국은 티베트 점령 후 승려들과 국민들을 많이 괴롭혔으며 사찰도 많이 파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우리가 당하였던 일제강점기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 독립국으로서의 자유로운 환경이지만 그들은 아직 점령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라이 라마는 “미움을 통해 얻어진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며 복수는 더 큰 불행을 낳는다. 그러므로 용서를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라고 하였다. 다른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누군가를 통한 간접적인 용서나 대리 용서와는 다른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당사자끼리의 직접적인 용서를 이야기 한다고 느꼈다. 빅터 챈은 오랫동안 달라이 라마의 활동과 설법에 관하여 많은 것을 기술하였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어록이라기보다는 그의 활동을 세세하게 기록한 일종의 ’어록을 포함한 활동보고서‘라 하여도 좋을 듯싶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떨치신 특별한 분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한 때는 나도 방송에 나오는 그의 강좌를 매우 열심히 시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나에게는 긍정적이지 못한 학자의 모습을 남겼다. 이 책은 그가 달라이 라마를 방문하여 인터뷰한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빅터 챈의 기록은 그가 다른 예정된 스케줄에 앞서 순리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인터뷰를 새치기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가 미국의 하버드 출신이며 한국에서의 유명세를 강조하고, 달라이 라마에게 던지는 그의 사적인 질문이나 종교적 대답에 관한 이해력 및 인터뷰 도중 자신이 대동한 사진사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한 촬영 각도를 지시한 모습 등을 설명하며 빅터 챈도 내가 느꼈던 긍정적이지 못한 면을 보았는지 인터뷰에 관한 설명에서 주는 느낌이 다른 설명과는 달리 자연스럽지 못하였다.
달라이 라마는 그의 종교적 경전에 기록된 것들을 애써 강조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원수는 원수를 낳는다”등에 대하여 현실적인 용서라는 것을 대입하여 종교가 없는 모든 이들의 자신을 위한 수행에까지도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여도 빅터 챈의 열성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려주는 종교적이거나 철학성이 곁들여진 부분의 용서에 대한 설명은 나처럼 비종교인이며 비철학적인 사람은 이해하기에 어려운 면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는 자체만으로도 숙연해지는 마음이며 내가 먼저 상대를 용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을 끝까지 천천히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가 행한 말들 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오래된 힌두교 경전에 쓰여 있다고 소개한 ‘용감한 사람을 보기 원하면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을 보라. 영웅을 보기 원하면 미움을 사랑으로 되돌려 보내는 사람을 보라’라는 가르침이 더 기억에 남는다. 물론 그는 부가 설명에서 “용서는 자신 안에 갇힌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는데 쓸 수 있게 한다. 용서의 실천은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을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다.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용서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할 까닭이 없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내가 읽은 티베트에 관한 다른 수필이나 여행기와 같이 이 책에서도 중국의 티베트 침공에 대해서 어떠한 역사적 배경 설명이나 이유 등은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제에 의한 많은 인적, 물적 피해가 있었음은 언급되어 있다. 그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를 비롯하여 티베트인들은 용서를 통하여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것 같다. 이것이 달라이 라마를 세계적인 지도자, 특히 정신적 지도자가 되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티베트라는 이름 자체가 종교를 떠나 어떤 영적인 존재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 서양인들도 티베트를 각자의 종교와는 무관하게 “Holy Land'라 부르는 모양이다.
2022년 12월 20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sNy_slyCazU 링크
Song From A Secret Garden (Piano Solo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