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간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다들 경제적으로 어렵던 때라 문방구점에서 파는 크레용 갑에는 크레용이 보통 여섯 개 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좀 여유가 있는
집 아이들은 열두 개짜리 크레용을 구해서 썼지만, 그런 아이들은 드물었다.
여섯 가지 색깔로
그림을 그리면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지만 난 그런 걸 몰랐다. 그림을 온통 초록색으로 칠하기 때문에 초록색 말고는 두어 가지 색깔만 더 있으면 충분했다.
주위가 온통
산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강원도 산골에 살아서 초록색 이외의 색깔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을까? 다른 아이들 그림은 그렇지 않았던 걸 보면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미술 치료사가 정서가 불안한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 초록색을 많이 쓴다는
글을 보았는데 어릴 적에 내가 정서가 좀 불안하기는 했다.
나이 들어서도
초록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초록색은 두 가지였다. 짙은 색은 초록색, 그리고 옅은 색은 연두색.
그런데 초록색도 수없이 많은 초록색이 있다는 걸 안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몇 달 지난 어느 봄날에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성당에 가려고 Garden
State Parkway를 달리다가 도로변에 있는 나무들에 눈길이 미쳤다.
별 생각 없이
바라보는데 나뭇잎의 색깔이 제각각 달리 보였다.
나무마다 그리고 같은 나무라도 이파리마다 색깔이 달랐다. 초록색에도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는 걸 처음 느끼고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초록색뿐만이 아니었다. 개나리꽃, 목련, 도그 우드, 복숭아 꽃의 색깔도 맑은 날과 흐린 날과 비 오는 날이 다르고, 이른 아침이 저녁 무렵이 틀리고
볼 때마다 색깔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요즈음은 어딜
가나 활짝 핀 꽃들로 세상이 아름답다. 초록색 나뭇잎 말고도 하얀색,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그 외에도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온갖 색깔의 꽃들을 보면 행복하다.
다리 하나를
잃은 큰 교통사고와 이에 따른 후유증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이후에는 눈이 많이 밝아졌음을 느낀다. 사고 전에도 세상은 아름다웠겠지만 사고 이후에야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는 걸 새삼 느끼며 살고 있다. 전에는 무심코 보아 넘기던 경치가 이제는 예사롭지 않게
보이며 때로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뒤늦게나마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었으니 이것도 축복이랄까. 큰 병에 걸리거나 큰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고 하는데 나는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 셈이다.
첫댓글 김형기 전화번호 알려주게 연락하게 아님 내 전번은 213-407-9356 이네 연락하던지 아님 내가 하던지
사물은 보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하더니.... 나도 그런 생각을 가끔하네... 젊었을 때 보았던 것들이 지금은 달리 보이더군... 여러가지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지....
토네이도 해일 지진 아무리 몰아쳐도 세상은 '있는 그대로' 원래 아름다운 것을 아프기 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라진 것 없이 아름다운 그대로이니 일찌기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