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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속으로] 02
S#1. 연희네 교실 (낮)
1부의 연결.
연희, 수표를 꼭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재숙에게 다가간다.
재숙, 연희가 다가오자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고 약간 긴장하여 본다.
연희 나한테 이걸 왜 주는 거야?
재숙 내가 아니? 니가 더 잘 알겠지.
연희 (부들부들 떨리지만 꾹 참고 빤히 보다가) 니네 식구들은
자존심도 돈으로 사냐?
재숙 뭐?
연희 (수표를 재숙의 책상에 탁 놓는다) 미안하다고 생각되면
직접 사과하라 그래. 이깟 돈 몇 푼으로 나까지 쓰레기
만들지 말고. (돌아선다)
재숙 야! 누가 누구한테 쓰레기라는 거야?
연희 (선다) 너! 니네 오빠! 니네 식구들!
재숙 너 말 다했어?
춘화 (재숙을 말리는 척하며) 야, 참아. 저런 애 건드려서 좋을 거
없어.
옥녀 그래, 너만 손해야.
재숙, 부르르 떨다가 연희에게 와락 달려든다.
연희, 슬쩍 옆으로 피하면 재숙,
달려오던 탄력에 책상을 안고 바닥에 나뒹군다.
연희, 쓰러진 재숙을 잠시 보다가 자리로 돌아가는데
춘화와 옥녀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재숙, 소리를 지르며 연희의 머리채를 잡으려
쫓아가다가 수빈이 슬쩍 내민 발에 걸려
이번에는 앞으로 쏠리던 탄력에 한 쪽 팔을 쭉
뻗은 채 그대로 교실바닥에 얼굴을
박고 엎어져 일어나지 못한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 놀라 그대로 굳은 채
교실에는 정적이 흐르는데
소리 선생님 오신다.
재숙,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리로 가고
아이들도 우르르 흩어진다.
재숙, 자리에 앉아 코를 감싼 채
연희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씩씩대고
수빈, 혼자 씩 웃는다.
S#2. 화장실
연희, 푸파거리며 열심히 세수를 하다가 고개를 드는데
뒤에서 거울 속으로 그런 연희의
모습을 빤히 보고 있던 수빈과 눈이 마주친다.
연희, 외면하고 다시 세수를 하려는데
수빈 너, 고아라며?
연희 (이건 또 뭐야? 하는 얼굴로 거울 속 수빈을 노려본다)
수빈 난 고아는 아닌데 고아 비슷한 거야.
연희 ... 그래서?
수빈 ... 친구 하자고.
연희 ...
수빈 친구로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담배 한가치를 꺼내
보이며) 망 좀 봐 주라.
수빈, 연희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연희, 어처구니가 없어 수빈이 들어간
화장실 문을 보다가 본능적으로 좌우를 살피고
기가 막힌 얼굴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데
수빈이 들어간 옆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콧잔등에 반창고를 붙인 재숙이 나온다.
연희, 마치 자기가 담배 피다 들킨 것처럼 당황하는데
재숙, 연희를 짝 째려보다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며 밖으로 홱 나가버린다.
연희, 자기도 같이 노려보다가 재숙이가
나간 뒤에야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수빈이 들어간 쪽을 본다.
S#3. 학생부실
연희와 수빈, 학생주임 앞에 서있다.
학생주임,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연희의 머리를 툭툭 민다.
학주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종이 어떤 인종인지
알아? 겉으로는 범생인 척 하면서 뒤로는 알로 까진 놈들.
잘못해 놓고도 끝까지 오리발 내미는 놈들. 그래서 주변
사람 다 열 받게 하고 바보 만드는 놈들. 너, 오늘 나한테 잘
걸렸어.
수빈 쟤는 안폈다니까요.
학주 (수빈에게) 조용히 안해?
연희 몇 번을 말씀드려야 되요? 저는 안폈어요.
학주 어쭈, 이게 대들어. 아무리 공부 잘해야 무슨 소용이니,
인간이 되야지.
연희 (기가 막히다) 하!
학주 너희 부모도 너 담배피는 거 아니?
연희,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S#4. 인하네 집 앞 (저녁)
인하, 집에서 나와 차에 탄다.
인하, 자켓을 뒷좌석에 던지다 밑에
떨어진 사진을 발견하고 주워 든다.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는 낡은 가족사진이다.
인하, 뭐야? 하는 얼굴로 아무렇게나
다시 휙 던져버리고 시동을 켜고 출발하려다가
문득 연희와 왕여사가 주고받았던 대화가 떠오른다.
왕여사 아버님은 뭘 하시는데?
연희 돌아가셨어요.
왕여사 그래? 쯧쯧쯧쯧... 언제?
연희 어릴 때요.
왕여사 (예상이 점점 빗나가자 의아한 얼굴이 된다) 그래?
어머님은?
연희 어머니도 돌아가셨어요.
인하, 다시 사진을 집어들어 보다가
자신의 머리통을 갈기던 연희 모습이 떠오르자
픽 웃고 출발한다.
S#5. 운동장 (밤)
연희,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터덜터덜 걸어내려 오고 있다.
소리 (학생주임) 내일까지 부모님 모셔와.
소리 (연희)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모셔와요?
소리 (학생주임) 너 정말 끝까지 오리발 내밀래? 내일까지
부모님 안모셔오면 퇴학인 줄 알아.
S#6. 연희네 학교 앞 (밤)
인하, 교문 앞에 차를 세워 놓고
헤드라이트불빛을 교문 쪽에 비치고 있다가
심란한 얼굴로 교문을 빠져나오는
연희를 발견하고 차에서 내린다.
연희,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고 차 앞을 지나치다가
인하가 앞을 가로막자 흠칫 놀란다.
인하 안녕.
연희, 외면하고 지나치려는데
인하가 연희의 가방을 잡는다.
인하 어제 일은 미안하게 됐다. 근데 나도 굉장히 기분 나빴어.
사람을 그렇게 패고 가는 게 어디 있어? 그것도 여자
앞에서.
연희 그래서 사과 받으러 왔어요?
인하 (보다가) 됐다. (불쑥 사진을 내민다) 이거 니꺼지?
연희,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진을 다시 찾아 기쁘지만 내색 않으며
사진을 탁 낚아채고 돌아서는데
인하가 팔을 잡아 돌려 세운다.
인하 (기분이 나빠지려 한다) 야, 고맙단 말 한마디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내가 여기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알아?
연희 이거 놔!
인하 어쭈? 야! 나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면 어린
사람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줘야 되는 거 아니냐?
연희 (돌아서며 다짜고짜 인하의 얼굴을 갈긴다) 예의? 예의를
갖추라고? 그래서 돈 보냈냐?
인하 ...
연희 너,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냐,
이 나쁜 자식아!
연희, 홱 돌아서서 가는데
인하, 못참겠는지 다시 연희를
거칠게 잡아 돌려세운다.
인하 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쪼그만 게 보자보자 하니까.
인하, 그 순간 연희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더 이상 말을 못한다.
연희,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인하를 빤히 바라본다.
인하, 연희를 툭 놓으면 연희, 쓰러질 듯 비틀거린다.
인하, 돌아서 차에 타고 떠나고
연희, 인하의 차를 노려보다가
참았던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S#7. 가라오케 (밤)
인하, 친구 1, 2, 와 여자들과 함께
질펀하게 술자리를 벌이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모두들 엉망으로 취해 있다.
인하, 노래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면
친구들,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여자 오빠, 노래 너무 잘한다.
친구1 얘, 진짜 잘하지.
여자 오빠, 가수해라.
친구2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별로 할 일도 없는데 가수나 하지
그러냐?
친구1 그래! 그래. 피는 못 속인 다니까.
인하 (얼굴 굳는다)
여자 어머, 이 오빠 집안에 누가 가수야?
친구2 얘네 엄마가 왕년에 날리든 가수였잖냐.
여자 정말? 누구?
인하 조용히 해라, 응?
여자 누군데, 오빠? 나도 아는 가수야? 이미자? 패티김? 김추자?
인하, 기분이 확 상해 굳은
얼굴로 술을 마시는데
이미 취한 친구들은 인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마구 떠들어댄다.
친구2 그 정도는 아니고, 마악 뜰래는 순간 얘네 아버지가 탁
(인하에게) 채갔다 그랬나?
인하 조용히 하라 그랬다.
친구1 연락은 하냐?
친구2 어떻게 연락을 해? 새끼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간 여자가
무슨 낯짝으로 연락을 하겠어?
인하, 갑자기 눈이 확 돌아
친구2의 입을 주먹으로 날려버린다.
친구2, 입을 감싸쥐고 뒤로 나가떨어진다.
인하 조용히 하라 그랬지.
인하, 밖으로 확 나가 버린다.
S#8-1. 캬바레 안 (밤)
노래부르는 은옥
S#8. 캬바레 앞 (밤)
춘배, 뒷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
머리모양도 살피고 옷매무새도 신경쓰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가 임사장 일행이 탄
차가 입구로 들어오자 잽싸게 차로 다가간다.
하지만 다른 어깨들이 어느새 임사장의 차를
에워싸는 바람에 뒷전으로 밀려난다.
임사장, 부하가 열어주는 문으로 천천히 내려
캬바레 입구를 둘러보는데
춘배, 어깨들의 어깨 사이로 임사장을 살피다가
임사장이 자기 쪽을 본다고 느낀 순간
얼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며 인사를 한다.
춘배 안녕하십니까, 형님!
임사장, 얼굴 굳고
다른 어깨들, 긴장한다.
춘배의 옆에 있던 어깨 한 명,
얼른 춘배의 얼굴을 뒤로 밀어낸다.
부하들, 경호하듯 임사장을 에워싸고 안으로 들어가고
춘배, 맨 뒤에서 경호원인양 주변을
둘러보며 부리나케 따라 들어간다.
S#9. 캬바레 (밤)
홀에서는 어둠침침한 조명 아래
중년의 남녀들이 부둥켜안고 춤을 추고 있고
무대에서는 은옥이 노래를 하고 있는데
임사장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입구에서 들어온다.
캬바레 사장, 저만치서 달려와 공손하게
인사하고 종업원들, 갑자기 부산해진다.
은옥, 노래를 하면서 임사장의 움직임을
따라 보다가 홀 안쪽 룸으로 가던 임사장과
눈이 마주친다.
S#10. 분장실 (밤)
새파랗게 젊은 여가수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화장을 하고 있다.
은옥, 노래를 마치고 들어온다.
가수들 수고하셨어요. 언니.
은옥 어, 그래. (거울 앞에 앉으며) 갈수록 힘들다. 힘들어.
여자1 밖에 임사장 왔대.
여자2 아주 나왔대?
여자1 그럼, 아주 나왔겠지, 휴가 나왔겠냐?
은옥 (여자1이 음료수 캔을 막 따서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얘, 나
그거 한모금만 줄래?
여자1, 막 입에 댔던
음료수 캔을 마지못해 건네준다.
은옥 고마워.
은옥, 목이 꽤 탔는지 벌컥 벌컥
다 마시고 쓰레기통에 홱 던진다.
여자1, 마시는 모습을 보다가 씁쓸하게
외면하고 화장을 고친다.
은옥, 거울을 들여다 보며 희미하게
남은 멍자국을 자세히 관찰한다.
은옥 (들릴 듯 말 듯하게) 개자식.
여자2 그렇게 무섭고 살벌한 사람이라며?
여자1 빵 안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같이 잡혀간 조직 애들한테
문안인사 받았대.
여자2 하여튼 남자는 돈이 있던가 힘이 있던가 둘 중의 하나는
있어야 돼.
은옥, 여자1과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은근히 비교해 보다가
여자1의 팽팽한 피부와 그 앞에
놓인 화장품을 번갈아 본다.
은옥 너 피부 좋아졌다. 화장품 바꿨니? 어머, 그거 뭐니? 한 번
줘봐.
은옥, 여자1의 손에서 빼앗듯이
콤팩트를 낚아채 얼굴에 바른다.
은옥 (감탄하며) 어머, 어머, 안 뜨고 싹 먹네. 이거 좋다. (상표를
확인한다) 어디 꺼야?
여자1 아직도 퇴근 안하셨어요?
은옥 해야지. (돌려주며) 나 그거 내일 좀 빌려줘. (자기의 화장품
케이스를 막 뒤지다가) 어디 갔지? 크린싱 있어?
여자1, 은옥 앞에 신경질적으로
크렌징 크림통을 내려놓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춘배가 들어온다.
은옥, 얼굴 굳으며 벅벅 화장을 지우고
여자 출연진들, 옷을 갈아입다가
괜히 애교있는 비명을 지른다.
여자2 어머, 오빠. 너무해. 노크 좀 하고 들어오지.
춘배 내숭떨지 마라, 응? 자, 주목! 지금 중요한 손님이
오셨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만큼은 삼류 가수 티 확
벗어버리고 잘나가는 가수처럼 폼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너,
너, 너, 니들은 룸으로 들어가봐.
은옥 야, 우리가 호스티스냐?
춘배 아줌마 보고 그런 거 아니예요.
여1 여자들 부르면 되잖아. 왜 우리가 나가야돼?
춘배 이 바닥에서 일 그만두고 싶어? 지금 밖에 누가 오셨는지
얘기 못들었냐?
은옥 (혼잣말처럼) 지가 무슨 영업부장이야, 연예부장이야?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누구 앞에서 깐죽거리고 있어?
춘배 (기분 나쁘지만 참으며)... 명하는 공장 잘 다니죠?
은옥 잘 다닌다, 왜? 우리 명하가 너같은 줄 아냠마?
춘배 아, 거 임마, 점마 좀 하지 마슈. 나도 나이가 있고 직책이
있는데. 아무리 친구 엄마래두 연예인들 앞에서 임마,
점마가 뭡니까?
은옥 (같잖다) 그래, 너 잘났다. 임마. 니가 나이가 있으면 얼마나
쳐 먹었고, 직책이 있으면 얼마나 높다 그래? 똘마니 주제에.
춘배 하, 차! 그러시는 아줌마 주제는요?
은옥 뭐, 임마?
춘배 (피식 피식 비웃으며) 야! 니들 빨리 준비하고 나와.
은옥 야, 이 자식아. 내 주제가 어때서?
춘배, 문을 박차고 나간다.
은옥, 기가 막히다.
S#11. 명하네 집 (밤)
연희네 집과 비슷한 구조의 방 한 칸 짜리 허름한 연립.
방에는 온통 은옥의 반짝이 무대의상으로 가득 차 있다.
명하, 자고 있는데 밖에서 술 취한 은옥의 목소리가 들린다.
은옥 (소리) 명하야! 명하야!
명하,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문을 연다.
만취한 은옥, 비틀거리며 들어와 현관
벽에 손을 짚은 채 발을 털어 신발을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은옥 저녁은 먹었냐?
명하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어?
은옥 세상이 엿같아서 마셨다, 왜? 자다 깼어? 어이구, 미안하다.
우리 아들 피곤할 텐데. 나 신경쓰지 말고 자.
명하, 잠시 엄마를 보다가 자리를 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방 가운데에 커튼을 친다.
은옥은 그동안 겉옷, 스타킹, 등등을
하나씩 벗으며 계속 떠들어댄다.
은옥 더러워서 이 짓도 이제 더 이상 못해 먹겠다. 아들 같은
놈들한테까지 무시당하고, 사장이란 자식은 어떻게든 돈
적게 줄라고 악을 쓰고. 치사한 자식, 내가 새파란
신인들보다도 조금 받아가면서 몇 년을 노래를 해줬는데
그걸 깍을라고 들어? 니가 그러면 안되는 거야, 임마.지가
언제부터 그렇게 어깨에 힘주고 살았다고. 야, 나도 왕년엔
잘 나갔어. (이부자리에 눕는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고, 늙고, 맨날 배신만 당하지만니가 임마. 나한테
그러면 안돼.
명하 (벌떡 일어나 앉으며) 그럼 그만 두면 될 거 아냐?
은옥 ... (힘없이)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은옥, 등을 돌리고 돌아눕는다.
명하, 커튼 너머 엄마의 숨죽인 흐느낌을
듣다가 다시 자리에 벌렁 누워 부릅 뜬 눈으로
천장을 노려본다.
S#12. 교실 (낮)
수업시간.
교사, 칠판에 열심히 적어가며
약장수같이 입에 거품을 물고 수업을 하고 있다.
교사 삼각형의 꼴을 알고자할 때는 변의 관계를 유도하거나 각의 관계를
유도하라. 자! 코싸인 법칙! 에이 곱하기 2삐씨분의 삐제곱
뿌라스 씨제곱 마이나스 에이제곱 이코오르 삐 곱하기
2씨에이분의 씨제곱 뿌라스 에이제곱 마이나스 삐제곱! 자!
따라서, 괄호 열고 에이제곱 마이나스 삐제곱 괄호 닫고
씨제곱 마이나스 괄호 열고 에이 네제곱 마이나스 삐 네제곱
괄호 닫고 이콜 제로다. 자! 따라서! (창 밖을 보고 있는
수빈에게 분필을 던지고 계속한다) 괄호 열고 에이제곱
마이나스 삐제곱 괄호 닫고 괄호 열고 씨제곱 마이나스
에이제곱 마이나스 삐제곱 괄호 닫고 이콜 제로. 자! 따라서,
에이는 삐거나 씨제곱 이콜 에이제곱 뿌라스
삐제곱이다.그러므로, 에이 이콜 삐인 이등변 삼각형이거나
씨는 90도인 직각 삼각형이다.
수빈, 창 밖을 보고 있다가 연희의
빈자리를 돌아보고 갑자기 가방을 꾸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교사 야, 너 어디 가? 야!
교사, 당황하고 아이들도 놀라
나가는 수빈의 뒷모습을 본다.
재숙, 아니꼬운 눈초리로 수빈을 본다.
S#13. 인하네 집 거실 (낮)
왕여사, 넓은 거실 중앙에 놓여있는
피아노를 마치 콘서트 중인 피아니스트처럼 열심히
치고 있고 그 옆에서 재숙이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재숙, 서툰 이태리 발음으로 마치
성악가인양 열과 성을 다해 부르는데
왕여사, 갑자기 연주를 중단하고
건반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고민한다.
재숙 (클라이막스의 음을 뽑다가 엄마를 본다) 왜애?
왕여사 (화를 누르며 혼잣말처럼) 아니야, 아니야.
재숙 왜?
왕여사 (여전히 혼잣말처럼) 릴릭으로는 너무 탁하고, 그렇다고
드라마틱이라기엔 너무 약하고...
재숙 뭐가?
왕여사 (다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진로를 바꾸는 게 어떻겠니?
재숙 음대 가래매?
왕여사 음대는 음댄데,... 바이올린은 너무 늦었고... 하프? ... 파이프
오르간?...
재숙 지금 다시 시작하라구?
왕여사 너 피아노는 했었잖아.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혼잣말로)
그래. 파이프 오르간이 좋겠다. 학교에 한 대 기증하겠다
그러지, 뭐... 음...
재숙 근데 엄마, 재벌이 더 쎈거야, 우리가 더 쎈거야?
왕여사 재벌? 재벌도 재벌 나름이지. (손가락을 착 펼치며) 이 안에
드느냐, 못드느냐에 따라서 빈부 차가 얼마나 심한데.
재숙 그 안에 들면?
왕여사 (잠시 긴장한다) 그래? (웃으며) 그래 봐야, 돈밖에 더
있겠니? 우리는 힘이 있잖니.
재숙 그럼 우리가 더 쎈거네. (혼잣말) 차, 별 것도 아닌 기집애가
까불고 있어.
왕여사 갑자기 재벌은 왜?
재숙 우리반에 기분 나쁜 기집애가 하나 전학 왔는데 재벌
딸이래.
왕여사 그래? 어느 집안 딸이래?
재숙 몰라.
왕여사 내가 한 번 알아봐야겠다. 참, 걔하곤 같이 안놀지?
재숙 (얄밉게) 걔?
S#14. 연희네 집
옥분, 출근준비를 하고 있고
연희, 설거지를 하고 있다.
옥분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러고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도 몰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밖에서 사고나 치고 돌아 다녀? 이모 힘든 거
조금이라도 알면 니가 그럴 순 없다.
연희 이모까지 나한테 왜이래요? 나 못 믿어?
옥분 믿고 안믿고 지금 그게 문제야?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미리
얘기를 해야지. 이모가 가서 니네 교장선생님한테라도
빌었으면 이 지경까진 안됐을 거 아냐?,
연희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이모가 가서 왜 빌어?
옥분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러겠지, 선생들이 괜히 그러겠니?
연희 ...
옥분 너 그러고 다닐 거면 이 참에 학교 때려치우고 돈이나
벌든지.
연희 ...
옥분 내가 너 공부 잘하는 것도 은근히 부담스러워. 내가
언제까지 니네 이모부하고 니 뒤치다꺼리나 하고
살아야겠냐? 이젠 아주 지긋지긋하다. 내가 소냐? 쎄빠지게
일해서 벌면 뭐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아니고.
연희 ... 걱정말아요. 이모한테 대학 보내달라고 안그럴 테니까.
여태까지 키워준 거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고등학교만
마치면 내 앞가림은 내가 할거야.
옥분 아이구, 퍽두. 그래서 그러고 다니냐? 그래서 정학 맞았어?
연희 ...
옥분, 연희를 노려보다가 홱 나가버리고
연희, 손동작을 멈춘다.
엄마가 그리워지는 듯 슬픔이 베어온다.
S#15. 옥상 (밤)
연희, 심란한 얼굴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명하가 올라온다.
명하,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문득 연희를 돌아본다.
명하 한 대 줄까?
연희 (대꾸 안한다)
명하 ... 어으, 창피해. 기집애가 담배 피다 정학이나 당하고. 내
동생 같았으면 그냥,
연희 주먹 휘두르다 퇴학당하는 거보다는 나아.
명하 뭐? ... 난 맞아도 싼 놈들 아니면 주먹 안 써.
연희 나도 담배 안 펴.
명하 근데 왜 정학 당해?
연희 무전유죄, 유전무죄. 몰라?
명하 여학교에도 그런 게 있냐?
연희 (픽픽 웃는다)
명하 ... 세상이 다 그런 거야.
연희 우리나라만 그런 거 아니고?
명하 외국이라고 뭐 안그러겠냐? 사람 사는 덴 다 마찬가지겠지.
연희 이민이나 가려 그랬는데 그것도 생각해 봐야겠네.
명하 이민은 아무나 가냐? 그것도 다 돈이 있어야 가는 거야.
연희 ... 돈 벌 거야.
명하 돈은 아무나 버냐? 돈도 돈이 있어야 버는 거야.
연희, 명하가 말끝마다
물고 늘어지자 열받는다.
연희 오빠나 잘 해.
연희, 아래로 확 내려간다.
명하 (씩 웃으며 내려가는 연희의 뒤에 대고) 잘 자라.
S#16. 연희네 집 앞 (밤)
연희, 계단을 내려와 지하로 들어가려다가
집 앞에 서 있는 명하의 오토바이에
걸터앉은 수빈과 눈이 마주친다.
수빈, 연희를 보고 일어서는데
연희, 싸늘하게 무시하고 지나친다.
수빈 야, 이연희! ... 친구가 왔으면 아는 척은 해야지.
연희 (멈춰 서서 돌아본다) ... 친구?
수빈 내가 여기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연희 누가 찾으래?
수빈 ... (어렵게 툭 내뱉는다) 미안하다.
연희 됐어. 난 너같은 애 정말 밥맛이야. 가. (다시 들어가려는데)
수빈 니가 날 싫어하는 만큼 나도 내가 싫어.
연희 (홱 돌아선다) 웃기지 마. 넌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잖아.
니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 된다는 거. 가. 가서 너하고
어울릴 만한 애나 찾아 봐. 그리고 마음껏 위악을 떨어봐.
어차피 니네 집안 돈하고 힘으로 다 해결될 테니까.
수빈 너, 나 알아?
연희 알고 싶지 않아.
수빈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 그래?
연희 한가진 알고 있어. 니가 이중인격자라는 사실. 고아니까
친구 하자구? 친구니까 망 좀 봐달라구? 너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사람을 대해 본 적 있어?넌 맨날 척만 할 뿐이야.
수빈 ... 그래. 나, 그런 애야. 엄마랑 둘이 무슨 범죄자처럼
숨어살면서 어쩌다 들르는 아버지 앞에서 늘 행복한 척 해야
했고 엄마가 약 먹고 죽었어도 소문날까 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리로 끌려왔어. 아무리 엄마가 보고 싶어도 슬픈
내색도 못하고,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하고, 생판 처음 보는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살아야 돼. 그렇다고 친구를 사귈
자격도 없는 거야?
연희 ...
수빈 ... 고아니까 친구하자는 말은 내 진심이었어.
수빈, 돌아서서 간다.
연희, 가는 수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S#17. 연희네 동네 (새벽)
연희, 사복 차림으로 경사진 길을 내려간다.
교복 입은 학생들 둘 둘셋 지나간다.
S#18. 시립도서관 열람실 (낮)
연희, 열람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수빈 들어와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연희 의아하게
보다가 씩 웃는다. 수빈, 밝은 웃음으로 답한다.
연희 너 땡땡이쳤냐?
수빈 내가 의리가 좀 있거든.
연희 넌 좀 이상한 애 아니니?
수빈 글세, 정상적인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해서 잘모르겠는데...
특히 너야말로 비정상같다.
연희 ...?
수빈 공부 지겹지도 않냐? 자존심 안상하니? 정학받고 진도
따라가는 거?
연희 (웃으며 고개 끄덕인다)
수빈 나가자.
연희 (잠시 망설이다 책 덮는다)
S#19. 도서관 여자 화장실 앞
화장실에서 나오는 수빈의 모습을 보고
연희, 입이 닥 벌어진다. 염색된 가발에
빨간 루즈에 야한 복장이다.
수빈 (씩 웃는다)
연희 (기가 막히다)
S#20. 이대 앞 악세서리 가판대
수빈, 머리핀 귀걸이 골라 제 머리에 대보고
연희에게도 대본다. 연희, 손을 내저으며
거부하지만 의리의 표시라며
달아주고 거울을 비춰준다.
S#21. 라이브 재즈 카페 (밤)
연희를 끌다시피 데리고 들어가는 수빈.
매우 특이한 복장의 청년이 주문받으러 온다.
수빈 뭐 마실까?
연희 (메뉴판을 보다가) 사이다 주세요.
수빈 어휴, 시시해. 난 맥주. 음...이걸루 주세요.
연희 (눈이 동그래지며) 어이야.
청년 알겠습니다.
연희 (작게) 너 술도 마셔?
수빈 휴...쪽팔려.
연희 (멈칫거리다) 아저씨!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수빈 (웃는다)
맥주병을 앞에 놓고 라이브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는 수빈과 연희. 수빈, 시계를 보더니
벌떡 일어난다. 덩달아 일어나 급히 나가는 연희.
S#22. 수빈 빌라 앞 (밤)
빌라 앞에서 비서 초조하게 왔다갔다하며
주위를 살피는데, 수빈 다가오다 비서를 발견하고
담쪽으로 몸을 숨긴다. 카폰 울리자 차안으로
들어가는 비서, 그 틈에 슬며시 빌라
안으로 들어가는 수빈.
S#23. 수빈 빌라 (밤)
수빈, 들어와 불을 켜는데 전화벨 울린다.
수빈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S#24. 정회장의 차 안 (낮)
수빈과 정회장,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다.
수빈, 분위기가 어색하여 창 밖만 보고 있다.
정회장 집은 마음에 드냐?
수빈 ... 좋아요.
정회장 학교는 어때?
수빈 ... 좋아요.
정회장 친구는 좀 사귀었냐?
수빈 ...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정회장 오늘 집안에 행사가 있어. 가까운 친척들이니까 인사도
드리고 얼굴도 익히도록 해.
수빈 (갑자기 난감해진다)
정회장 처음이라 껄끄럽겠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될 일이다.
마음 편히 가져.
수빈 ... 꼭 가야 되요?
정회장 다 니 친척들이야.
수빈 ... 안 가면 안 되요?
정회장 ... (말없이 앞만 바라본다)
S#25. 호텔 지하의 고급 의상실
수빈, 우울한 얼굴로 우아한 공주의상을
입고 의상과 세트로 만들어진 신발을
발에 꿰고 있다.
정회장,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S#26. 호텔 앞
인하, 호텔 현관 앞에 거칠게 차를 세운다.
주차요원 다가와 문을 열어주는데
인하, 잠시 정면을 응시하며 마음을 다잡고
차에서 내린다.
S#27. 엘리베이터 앞
인하, 아무 생각없이 서서 층을 알리는
번호판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무심코 따라하고 있다.
인하 비삼, 비이, 비일...일. 땡! 열려라 참깨!
인하, 문이 열리고 안에 사람이 서
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탄다.
S#28. 엘리베이터 안
수빈과 정회장, 나란히 서 있고
인하, 구석에 기대 서 있다.
정회장 (힐끗 보며) 커 갈수록 엄마를 닮아 가는구나.
수빈 ...
정회장 ... (다시 앞을 보며) 엄마 죽었을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두사람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른다.
인하, 수빈을 슬쩍 곁눈질 하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S#29. 연회장
원탁이 열 개 정도 있는 소규모 연회장.
은은하게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웨이터들, 분주하게 써빙을 하고
송여사를 비롯한 정씨 일가가 나이별로
모여 앉아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누군가 정회장은 왜 이렇게 안와?
송여사 공항에서 바로 오신다 그랬는데 길이 좀 막히나 보네요.
하는 순간 문이 열리고 정회장이 들어온다.
송여사 (반갑게) 왜 이렇게 늦었어요? 다들 기다리시는데.
일동 (웅성 웅성 인사를 한다)
정회장 (웃으며 웃어른들에게) 죄송합니다. (다른 팀에게) 어,
오랜만이야. (문 뒤쪽을 보면서) 들어와라.
수빈, 긴장한 얼굴로 바닥을 보며 들어온다.
일동, 수빈의 갑작스런 출현에 조용해진다.
송여사, 활짝 웃고 있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정회장 (수빈에게) 인사드려라.
수빈, 나이든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을 향해 꾸벅 인사한다.
송여사 (얼른 표정을 관리하며 가식적으로) 오, 그래, 수빈이
왔구나? 저쪽에 앉아라.
송여사, 괜히 수빈을 다정하게 감싸
안고 구석에 있는 또래 테이블에 앉힌다.
송여사 많이 먹어.
송여사, 얼른 돌아서 자리로 간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는 수빈, 불편해서 미칠 지경인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아이들,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슬쩍슬쩍 훔쳐 보며
서로 귓속말을 주고 받는다.
S#30. 화장실
인하,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담배를 피다가 재떨이에 비벼 끄고
옷에 밴 담배냄새를 털어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시계를 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S#31. 호텔 식당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
강경환, 왕여사, 재숙이 앉아
인하를 기다리고 있다.
경환 당신 오늘 제대로 얘기한 거야?
왕여사 걔가 약속 지키는 애예요? 우리끼리 그냥 먹읍시다.
경환 이 놈의 자식, 그냥.
왕여사 싫은 거지, 뭐. 얼굴 맞대고 밥 한 끼 먹는 것도.
경환 당신 무슨 얘길 그렇게 해?
왕여사 사실이 그렇잖아요? 걔가 언제 날 엄마로 생각했어요?
재숙 배고파.
왕여사 그러게 집에서 먹자 그랬잖아요. 다들 인하가 유학 간 줄
알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봐요. 내가 얼굴을 못들고
다닌다니까.
이때 입구 쪽에서 인하가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다.
인하 죄송합니다.
일동, 인하를 째려본다.
경환 너, 지금이 몇 시야?
인하 길이 좀 막혀서요.
경환 니가 다니는 길만 막히냐? 어른들하고 약속을 했으면
일찍일찍 나와 있어야지.
왕여사 소리 좀 낮춰요.
종업원, 메뉴판을 돌린다.
S#32. 연회장
옆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모두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버려
수빈 혼자만 남아있다.
수빈, 언제부터인가 테이블 위에 있던
술을 몰래 홀짝 홀짝 마시고 있다.
S#33. 식당
인하일행, 밥을 먹고 있다.
경환 ... 너, 뭐하고 싶냐?
인하 ...
경환 (버럭) 하고 싶은 거 없어!
왕여사 윽박지르지 좀 말아요.
인하 (움찔, 막 생각하다가) 하나 있긴 있는데요.
경환 뭐야? 얘기해봐.
인하 저, 독립하고 싶습니다.
경환, 왕여사, 재숙,
인하의 말에 놀라 본다.
경환 (뜻밖이다) 독립?
인하 예.
경환 (갑자기 아들이 신통하다) 아이템이 뭔데?
인하 그게 아니구요, 따로 나가 살았으면 해서요.
재숙 (푹 웃는다)
경환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빤히 보다가) ... 에라, 이!
왕여사 (경환의 팔을 잡으며) 여보, 말로 해요, 말로. 재숙이
체하겠어요. 시험도 얼마남지 않아서 가뜩이나 예민한데.
경환 너, 내일부터 일 배워.
인하 공부는요?
경환 공부? 니가 언제 공부했냐?
인하 그래도 하던 건 마저 해야죠.
경환 (버럭) 그런 놈이 학기 중에 말도 없이 돌아와?
왕여사 여보.
인하 ...
경환 이번 학기는 종 쳤다고 니 입으로 얘기했지? 당분간 고부장
밑에서 일 배워.
인하 ... 싫어요.
경환 뭐? 싫어? 싫어?
왕여사 아, 싫다는 애한테 자꾸 왜 그래요?
경환 싫어도 나와. 나도 더 이상 너 그러고 다니는 꼴
못봐주겠으니까.
인하 그러니까 나가 살겠다는 거 아니예요?
경환 ... 너 나랑 인연 끊고 싶냐?
인하 ... 그러고 싶으세요?
경환 뭐, 임마? ... 그래. 니 맘대로 해. 니 맘대로 한 번 살아봐.
니가 이 자식아, 여태까지 제대로 한 일이 하나라도 있어?
니 엄마, 니 동생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너같이 인생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놈이 세상에 나가서 뭘 할 수 있을
거 같애? 등신같은 자식.
경환,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왕여사와 재숙, 경환과 인하를 번갈아
보다가 경환을 따라 나간다.
고개를 수그리고 가만히 듣고 있던 인하,
다른 식구들이 모두 나간 뒤에도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다가 한 손으로
눈을 지그시 누르며 픽 웃는다.
S#34. 연회장
수빈의 앞에 놓인 술병이 꽤 비었다.
이제 더 이상 수빈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빈, 사람들을 좌악 훑어보는데 모두들
자기를 손가락질하며 귀엣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에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간다.
S#35. 화장실
수빈, 변기에 앉아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는데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1 좀 이상한 거 같지 않니?
소리2 많이 이상하더라. 엄마도 이상했대.
소리1 어떻게?
소리2 약먹고 죽었대.
소리1 (놀란다) 정말?
소리2 작은 아버지도 이상해. 이런 델 데리고 오냐?
소리1 나같으면 안와.
소리2 우리도 어딘가에 저런 형제 있는 거 아니야?
소리1 그럴 수도 있지, 뭐.
소리2 우리 2차에 걔도 끼워줘야 되는 거야?
소리1 제정신이면 따라오겠니?
소리2 이상한 애잖아.
소리1 어으, 몰라, 몰라. 어떡하지?
수빈, 픽픽 웃으며 듣고 있다가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간다.
소리1,2, 얼굴이 하얗게 질려 수빈을 본다.
수빈 걱정하지마. 니들이 같이 가 달라고 빌어도 안 갈 테니까.
수빈, 밖으로 나가버린다.
S#36. 엘리베이터 안
인하, 아무 생각없는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벽에 기대 서 있는데
초점 없는 두 눈에 눈물이 맺힌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수빈이 탄다.
인하, 눈물이 보일까봐 얼른 외면하고
수빈은 수빈대로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탈까 말까 순간적으로 망설이다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두 사람, 각자 반대편
구석에서 벽 쪽으로 외면한 채 내려간다.
S#37. 거리 (밤)
수빈, 표정없이 눈물을 흘리며 터덜터덜 걷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 공주처럼 차려 입은
수빈을 힐끗힐끗 보며 지나친다.
수빈, 줄지어 서 있는 공중전화 부스를 지나치다가
잔돈이 남은 전화부스를 발견한다.
S#38. 연희네 집 (밤)
연희,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연희 여보세요. ... 누구세요? ... 너, 수빈이니? ... 지금? ... 너,
지금 울어? 무슨 일이야? ... (다급해져서) 거기 어딘데? ...
S#39. 연희네 집 앞 (밤)
연희, 계단을 뛰어올라와 집밖으로
나가다가 명하의 오토바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명하네 집 쪽을 올려다본다.
S#40. 거리 - 공중전화 부스 앞 (밤)
명하의 오토바이가 거리를 달려오다가
공중전화 부스 부근에서 속도를 줄인다.
명하, 공중전화 부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수빈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그냥 지나쳤다가
뒤늦게 보고 크게 원을 그리며
회전해 돌아와 수빈의 앞에 선다.
명하 니가 수빈이냐?
수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명하, 얼굴엔 눈물자국이 번진 채 얇은
공주 옷 한 벌만 입고 덜덜 떨고 있는 수빈을 보고
잠바를 벗어 준다.
명하 입어.
수빈, 명하의 잠바를 받지 않는다.
명하 연희 부탁으로 온 거야. 연희도 같이 올라 그랬는데 이
오토바이가 삼인승이 아니라서. 받아.
수빈, 옷을 받아 입는다.
명하 타.
수빈, 명하의 뒤에 탄다.
명하 꽉 잡아.
수빈이 명하의 허리 양 옆의 옷 끝을 잡자
명하, 수빈의 손을 잡아끌어
자기의 허리를 꽉 잡게 하고 출발하는데
맞은 편에서 오던 정회장의 차가
수빈을 발견하고 갑자기 유턴을 하여
명하의 오토바이를 쫓아오기 시작한다.
명하, 뒤에 승용차가 따라붙으며
상향등을 깜빡거리자 수빈을 돌아본다.
수빈, 명하의 등에 바짝 붙어 있다.
명하 저 차가 따라오는데? 누구야?
수빈 (돌아보고) 잡히면 저 죽어요. 다시는 안 갈 거야.
명하 나쁜 놈들이야?
수빈 네.
명하 알았어!
명하, 오토바이의 속력을 높여
달리다가 급회전을 하여 차를 따돌린다.
통쾌해하는 수빈. 으쓱해하는 명하.
엄마가 죽은 뒤 처음으로 느끼는
해방감에 들뜨는 수빈, 명하의 등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명하의 허리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준다.
명하, 그런 수빈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뒤에서
요란한 싸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따라붙자 더욱 속력을 낸다.
명하와 경찰의 대추격전이 펼쳐지고
명하가 경찰차를 따돌렸다고
생각할 때마다 점점 경찰차의 수는 불어난다.
마침내 여러대의 포위공격에 밀려 경찰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까지 쫓겨온 명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명하의 오토바이는
바리케이드 앞에서 서고 쫓아오던 경찰차도
오토바이를 포위하고 선다.
명하와 수빈, 체념한 듯 오토바이에
앉아 있고 경찰들이 다가와
오토바이에서 명하를 끌어내려 바닥에
쓰러뜨리고 팔을 뒤로 꺽어 수갑을 채운다.
수빈,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어느새
다가온 비서가 수빈의 팔을 잡아 끌고 간다.
명하, 수갑을 차고 바닥에 무릎을 꿇린 채
정회장의 차에 타던 수빈과 눈이 마주친다.
S#41. 비행기 안 (낮)
1부 첫장면과 비슷한 내용의
기장의 멘트가 나오고 있다.
전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고,
고급양복을 입고, 전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인하,
창 밖을 보고 있다가 손목시계의 시간을 맞춘다.
S#42. 도심 정류장 (저녁)
군복 차림의 명하, 더플백을 메고
좌석 버스에서 내린다.
S#43. 인하네 집 거실
인하와 경환, 소파에 앉아 있다.
경환, 인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고
인하는 앞의 테이블만 보고 있다.
경환 ... 공부 끝날 때까지는 들어오지 말라 그랬지? 왜 니
멋대로 들락거려?
인하 ... 죄송한데요, 더 이상 못 하겠어요.
경환 (참으며) 못해? 왜 못하겠다는 거야?
인하 ... 도대체 내가 어떤 인간이 되길 바라세요?
경환 남들처럼만 해.
인하 저는 저예요, 아버지. 저도 생각이 있고, 제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경환 너같은 놈이 무슨 생각이 있어? 생각한다고 해도 썩어빠진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인하 ... 그래요. 전 썩어빠진 놈이예요. 그러니까 저한테 어떤
것도 강요하지 마세요.
경환 ... 그래서 너도 니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거냐? 인생
패배자로?
인하 ... 아버지처럼 사는 거 보단 그게 낫겠네요.
경환, 인하의 뺨을 갈긴다.
인하 (픽 웃으며) 엄마가 왜 아버지 곁을 떠났는지 이제 조금은
알 거 같아요.
인하, 나가버린다.
S#44. 방
연희, 고 1쯤 되어보이는
남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연희 삼각형의 꼴을 알고자할 때는 변의 관계를 유도하거나 각의
관계를 유도해야돼. 자, 봐봐. 에이 곱하기 2삐씨분의
삐제곱 플러스 씨제곱 마이나스 에이제곱은 삐 곱하기
2씨에이분의 씨제곱 플러스 에이제곱 마이나스 삐제곱!
학생 (공부에는 관심없이 연희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선생님.
연희 응?
학생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예뻤어요?
연희 (군밤을 먹인다) 잘들어. 여기서 어떻게 돼?
학생 ... 모르겠는데요.
연희 (괴롭다) 자, 이 방정식에서 우리가 원하는 답을 유도해야
되는 거야. 다시 해보자.
연희의 가방 속에서 삐삐가 울리기 시작한다.
연희, 무시하고 계속 하려는데
학생 애인 있어요?
연희 없어. 자, 에이 곱하기,
학생 선생님.
연희 왜?
학생 키스해 봤어요?
연희, 학생의 뒤통수를 무지막지하게 갈긴다.
학생, 책상에 얼굴을 되게 박고 그 탄력으로
고개가 번쩍 들리는데 쌍코피가 주르르 흐른다.
하필이면 그 때 학생의 엄마가
과일을 들고 들어서다가 경악한다.
연희, 난감하다.
S#44-1. 클럽 (밤)
인하, 혼자 스탠드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인하, 술잔을 비우고 앞에 내려놓으면
바텐더, 술을 따라준다.
인하, 다시 한 입에 털어 넣고 바텐더에게
술잔을 내밀면 바텐더, 다시 따라준다.
이때 인하와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수빈이 들어와 앉는다.
수빈, 전작이 있는지 취해 있다.
바텐더 오셨어요?
수빈 내 술 남았죠?
바텐더 예.
바텐더, 술을 가지러 가고
수빈,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수빈, 라이터를 찾다가 인하 앞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는 것을 보고
수빈 (인하에게) 불 좀 빌려 줄래요?
인하, 수빈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대꾸가 없다.
수빈 아저씨, 불 좀 빌리자구요.
인하, 짜증스러운 얼굴로
수빈을 보지도 않고 라이터를 집는다.
수빈, 인하가 불을 붙여주려는줄 알고
담배를 문채 입을 쭉 내미는데
인하, 라이터를 수빈에게 홱 밀어보낸다.
수빈, 기분이 나빠져
라이타를 집지 않고 인하를 빤히 보는데
마침 술을 가져온 바텐더가
담배를 들고 있는 수빈을 보고
앞에 놓인 인하의 라이터를 집어
불을 붙여주고 수빈의 앞에 놓는다.
수빈 그거 내 거 아니예요. 저 사람 거예요.
바텐더 아, 예.
바텐더, 다시 라이터를
집어 인하의 앞에 놓는다.
인하, 그제서야 수빈을 슥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이 때 연희가 수빈을 발견하고
곧장 다가와 수빈의 어깨를 치며 옆에 앉는다.
연희 오래 기다렸어?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