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ierto de Aranjuez (아랑훼즈 협주곡)
호아퀸 로드리고(Joaquin Rodrigo 1901~1999)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케리 카(Kary Karr)는 태평양 전쟁 발발하기전인
1941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1918년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러시아계 유태인이다.
7대에 걸쳐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영재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조부 친구인 "디멘 스타인"의 지도를
받다가 "헤르만 라인하겐"밑에서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 남 캘리포니아대학과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수학하였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인정을
받으면서 1962년 뉴욕에서 데뷔 이때부터 어느 오케스트라에도 소속하지 않고
독주활동에 전념. 콘트라베이스를 대형 첼로처럼 쉽게 다루며 이 악기가 독주악기로서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 한 음악가이다.
Jose maria carreras(호세 카레라스 1946~)성악가
호세 카레라스(Josep maria carreras)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951년 생활고를 탈피하기 위하여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다가 모국으로 돌아온다.
헤어숍을 경영했던 어머니는 그에게 최상의 자율을 주었고 그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행복해 했다.
그의 나이 6세 때 헤어숍 손님을 청중으로 삼고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을 정확한 음정으로 모두 소화해 내
이때 부터 그의 천재성을 보여준 유명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첫 스승은 “프란시스코 푸이”였지만 이후 “후안 루악스”와 “몽세라 카바예”를
자신의 예술적 아버지와 어머니라 부르면서 역량을 키워 나갔다.
갑자기 1987년 백혈병으로 무대에서 쓰러져 나간 후 2년 만에 병을 회복한
그는 백혈병 재단(Jose Carreras international Leukemia foundation)을 설립하여
골수기증 활성화를 위해 공연수익금 상당부분을 부담한다.
호세 카레라스는 한국과의 인연도 많다.
소프라노 신영옥. 조수미등과 해외 오페라 무대에서 공연한 것을 비롯하여
2001년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빅 3테너> 공연을 위하여 처음
한국을 찾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요코하마 결승전에서 축하공연도 했다.
2003년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소프라노 신영옥과 <빅 콘서트>를 한 바도 있다.
밀바 (Milva 1939~)
밀바(Milva)는 1939년 이탈리아 북부 코오로(Goro)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Maria IIva Biolcati 이며 1955년 Bologna로 이주하여 Emilia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야간 사교클럽에 사브리나(Sabrina)라는 이름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59년 Rai에서 개최된 신인 콩크르에서 우승하여 첫 번째 명성을 얻었고
1960년 Pantera di Goro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음악세계에 나서게 된다.
1961년 처녀 출전한 산레모(Sanremo) 가요제에서 [서랍 속의 바다]라는 곡으로
3위에 입상하여 서서히 그녀의 실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 하였고
같은 해에 “Labellezza di Ippolita"라는 영화에 처음 출연하여 주목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촌티를 벗지 못한 22살의 시골처녀가 “코오로의 암표범”이라는 애칭을 가진
대 스타가 되기까지는 이탈리아 귀족출신의 “마우리치오 콜냐티”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41살의 초로에 접어든 콜냐티는 이탈리아 국영 TV의 연출자였는데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되기까지 헌신적인 노력을 다하면서 뒷바침을 해줘 밀바의
가도는 밝게 빛났으며 지적 내음이 물신 풍기는 세련된 칸초네의 여왕이 되어져 갔다.
그들은 1961년부터 1969년 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Sanremo 가요제에 출전해서 모두
입상을 하는 대 기록을 세웠고 “비련(Nessuno Di Voi)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들을
배출해 내면서 그들 콤비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녀의 젊음과 욕망은 연극에 대한 불꽃같은 집념으로 변하여 8년간의
결혼생활은 파경을 맞게 되고 30살의 미남 연극배우 “마리오 피아베“와의 스캔들로
말미아마 짝사랑의 연인이 결국 자살하는 비극을 보아야 했다.
시골띠 소녀에서 “코오로의 암 표범”이 되기까지 그녀는 이렇게 많은 변모를
거듭 했고 지금은 콜냐티와의 사이에서 난 딸 “마르티나”와 함께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1972년 밀바는 내한공연을 가졌었는데 그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당시 모처럼
세계적인 대형가수에 대한 호응이 좋아 한국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