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관광명소
-하회마을권역
 영모각
-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844-3번지
하회마을 충효당 사랑채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영모각
은 임진왜란 시 영의정을 지냄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유물을 보존,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영모각은 서애 선생이 쓴 영모록(永慕錄)이라는 문구에
서 따온 것으로 영모록은 서애 선생이 풍산 류씨의 세계
(世系)를 집록한 것이다. ‘영모’는 오래도록 그리워
하고 기다린다는 뜻이며 영모각 입구에 있는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영모각 내에 전시된 유물은
국보 132호 징비록(懲毖錄)을 비롯하여 보물 160호
류성룡종문가문적(柳成龍宗孫家文籍) 11종 22점과
보물 460호 류성룡종손가유물 가운데 일부로 보물 160호는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로 임금을 호종하면서 군무를 총괄
하던 류성룡 선생이 직접 손으로 쓴 기록과 임진왜란과
관련되는 문건, 자료 등이 일괄 지정된 것이고 보물 460호는
류성룡 선생이 직접 쓴 것, 선생의 어머니에 관한 곤문기,
그리고 선생에게 조정에서 내린 여러 문서들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체화정
- 풍산읍 상리2리 447번지
진사(進士) 이민적(李敏迪:1663-1744)이 효종
(孝宗) 때 지었으며, 형 옥봉 이민정과 함께 살면서
형제의 우의를 다진 장소이다. 체화란 형제의 화목과
우애를 뜻하는 말이다. 정자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
으로 중층(重層) 팔작지붕집이다. 앞에는 3개의
인공섬이 있는 연못이 있다. - 규모 : 정면 3간 측면 2간의 중층(重層) 팔작집 - 시대구분 : 조선시대
- 형태/방법/업적 :정자 앞에는 방장(方丈), 봉래(蓬萊), 영주(瀛洲)의 삼신선산(三神仙山)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인공섬을 둔 연못이 있다.
담락재는 단원 김홍도의 필이다.
- 문화재 지정여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하회 옥연정사
지 정 : 중요민속자료 88호 (1979.01.23) 소재지 : 안동시 풍천면 풍천면 광덕리 37 시 대 : 조선시대
이 건물은 1586년(선조 19)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이 평소 밀접하게 지내던 탄홍(誕弘)스님의 도움으로
지어 문중 자제의 교육과 내객과의 담론을 나누던 서애의
별서이다. 마을 화천(花川) 건너편 부용대(芙蓉臺)의
우측 아래쪽에 동남향하고 있다. 대문채·안채·별당채·사랑채가 오른쪽으로부터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대문채와 사랑채가
근접해 있는데 비해 여기서는 멀리 두었다. 이는 주로
하회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와 사랑채 쪽으로 출입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반대편 광덕 마을쪽에서 들어올
경우 이용되는 대문채는 6칸 一자형으로 좌측에서 두 번
째 칸에 대문이 나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8칸 겹집이다. 2칸통 부엌을 가운데 두고 남측에는 1칸씩
의 온돌방 둘을 좌우로 배열하고 북측에는 전후 2칸통
안방을 앉혔다. 부엌이 중앙에 위치한 경우는 도투마리집
과 같은 모습으로 독특하다. 남측 온돌방 전면과 좌측에는
쪽마루를 시설하고 북측 안방 좌·우에는 툇마루를
들였다. 이용 빈도가 높은 별당채 쪽의 좌측 툇마루 폭이
조금 더 넓다. 별당채는 안채 남측의 온돌방 앞쪽 담장에
나있는 일각문을 통해서 들나들게 했다. | |

부용대
-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소나무 숲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하회마을 관광 백미 중의
하나로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북애(北厓)라 했는데, 이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하회세계탈박물관
-풍천면 하회리 287번지
한국과 세계의 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전문
박물관이며 탈과 탈춤에 대한 사진자료와 탈을
만드는 재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엔 하회마을의
부용대의 이름을 따서 부용탈방이라 하였으나 1985년
도부터 지금의 이름인 하회동 탈방이라 칭하게 되었다.
그동안 만든 하회탈은 공보처의 해외 공보관에 전시용
으로 공급되어왔다. - 규모: 1전시관 : 90평, 2전시관 : 75평,
3전시관 : 75평, 야외놀이마당 : 300㎡ 등

가일 수곡고택(佳日 樹谷古宅)
-풍천면 가곡리 419
- 지 정 : 중요민속자료 176호(1984. 1. 10) - 시 대 : 조선시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간에]
걸쳐 일지재(一枝齋)를 비롯하여 안채를 보수) - 규 모 : 1곽 3동
이 건물은 조선 정조 16년(1792) 권조가 조부 권보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종가집이다. "ㄷ"자형의
안채와 "ㅡ"자형의 별당채, "ㅡ"자형의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양반가옥이다.
남향의 별당채인 일지재는 자손들로 하여금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사용토록 하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다. - 유래 : 1792년(정조 16) 권조(權眺)가 할아버지인
수곡(樹谷) 권보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종가.
- 형태/방법/업적 권보는 연산군 때 갑자사화(甲子士禍)를 당한 권주
(權柱)의 8대손이자 권구(權絿)의 셋째 아들로
평생 도학(道學)에 전념하였다. 일생 동안 검소하였
으며, 사랑채 지붕을 맞배지붕으로 소박하게 처리한
것도 이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안동한지공장 및 전시관
- 주소 : 경북 안동시 소산리 361-1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안동한지에서는 질 좋은 닥종이
를 엄선하여 전통적인 방법 그대로의 제조법을 고집하고
있어 직접 한지를 만들어 보고 질 좋은 한지를 구입할 수
있다. 또한 한지로 만든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한지공예작가인 권영순 선생의 유천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 | |

병산서원
- 풍천면 병산리 31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류성룡
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고려말부터 사림들의
학문의 전당으로 1613년 서애 류성룡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존덕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했다. 1868년 대원군
서원 철폐령이 내려졌을 때 그 대상에서 제외된 전국 47
개, 안동 2개소 중 한 곳이다. 3월과 9월 초정일(初亭日)
에 향사하고 있다. - 규모 :.전체 지정 면적은 15필 6825평이다.
- 시대구분 : 조선시대
- 형태/방법/업적 : 1572년 류성룡이 지방관으로 역임하던
시절, 현재의 병산 서원자리로 이건 하였다. . 임진난으로 불탄 서당을 1607년 다시 중건하였고, 1614년
사당인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서원으로 탈바꿈 하였다.
1620년 서애의 위패가 안동 동쪽의 여강서원으로 옮겨졌
다가 1629년 다시 모시게 된다.사액서원으로 승격되기는
1850년대 이루어졌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시에도 보존
되었다.일제시대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다시 지어졌고 사당은 1937년 다시 지어졌다. - 문화재 지정여부 : 사적 제260호(1978년 3월 31일)

하회 겸암정사(河回 謙菴精舍)
-풍천면 풍천면 광덕리 37
이 건물은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의 맏형인 겸암
류운룡(謙庵 柳雲龍 1539∼1601)이 1567년(명종 22)
에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목적으로 지은 정사이다.
북쪽 화천 건너편 우뚝 솟은 부용대의 서쪽 강물이 크게
감돌아 굽이치는 절벽 위의 소나무 숲 속에 남동향으로 배치
되어 있다. 정사에서 내다 보면 강 건너 모래사장과 송림
그리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호는 퇴계가 류운룡의
학문적 재질과 성실한 자질에 감복하여 지어준 것으로
이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한다. 절벽 가장자리 뒤로 좀 물린 곳에 一자형 정사가 앉아
있고 그 뒤편에 부속채인 살림채가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살림채 좌측에는 초가 방앗간채가 자리잡았다.
정사 뒤쪽 우측 모서리와 살림채 사이의 좁은 틈새에
안마당으로 통하는 사주문을 내고 정사 뒤편 좌측과 살림
채 익사 전면 우측으로 담장을 쌓아 정사에서 살림채
안을 볼 수 없게 했다.

하회마을
- 지 정 : 중요민속자료 122호 (1984.01.10) - 소재지 :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시 대 : 조선시대 - 수 량 : 5,288,008㎡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인 겸암 류운룡 선생, 서애 류성룡
선생의 출신 고장으로 유명한 이 곳은 대대로 풍산류씨가
살아 오는 동성부락이다. 낙동강물이 흐르다가 이 지역에서
마을을 감싸 돌면서 흐른다고 하여 "하회 "라는 지명이
붙었다. 별신굿탈놀이와 하회탈이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물로 지정된 입암고택(사랑채 : 고려양식, 안채 : 이조양식, 불천위 사당 : 2채)과 충효당(경내에는 영모각이 있음.)
을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고택과 정사들, 서낭당,
정려각, 노거수 등이 있음. | |
-도산서원권역

온계종택 삼백당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580번지
온계선생구택(종택)은 온계 이해(1496~1550) 선생이
20세 되던 해 노송정 본가에서 분가, 이곳에 집을 지어
정착하고 온계선생이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동안 퇴계선생이 어머니 춘천 박씨를 모시고 5년간 거처했던 곳이다.
온계종택은 12대 후손인 지암(芝庵) 이인화(李仁和)
의병장이 1895년(고종 32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내려진 단발령에 반발, 예안에서 군사를 모아 의병을
일으켜으며, 퇴계종택과 나란히 안동유림 의거의 중심이
었던 의병장 이인화의 생가이다 구한말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된지 110여년만에 2011.5.5일 낙성식을 갖고 제모습을
찾았다. 부지 1천611㎡에 건평 256㎡ 규모로 지어진
생가에는 사랑채, 안채, 대문채, 삼문, 사당 등 소실 전
의 모습 그대로 건축됐으며 1896년 일본군에 의해 소실된지
110여년만에 온전한 제모습으로 돌아왔다.

퇴계태실(退溪胎室)
-도산면 온혜리 604
이 건물은 1454년(단종 2)에 퇴계선생의 조부인 계양공
(繼陽公)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가옥이다. 퇴계가
태여 난 특이한 방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지만 그의
할아버지 노송정 이계양이 지은 고택이다. - 규모 : 정면7칸, 측면6칸의 ㅁ 자형 정침과 독립된
건물인 노송정, 사당이 나란히 배치
- 시대구분 : 조선시대
- 유래 :14대손인 가원(家源)에 의해 중수되었고 1930
년대 전면개축이 있었다. 당호는 몸채 중앙에 돌출된
방에서 퇴계선생이 태어난데서 비롯되었다 . | |

옥진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번지
도산서원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옥진각은 퇴계 이황
선생의 유물전시관이다. 옥진각은"집대성 금성옥진
(集大成金聲玉振)"의 줄임말로 "집대성했다는
것은 금소리에 옥소리를 떨친 것이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유물 전시관은 1970년에 보수를 할 때 지은
건물로서 퇴계 이황 선생의 유품인 지리, 베개 등의
실내비품과 매화연 옥서진 등의 문방구, 청려장,
매화등, 투호, 혼천의 등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韓國國學振興院)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33
한국국학진흥원은 훼손 및 멸실의 위기에 처해있는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통하여 국학
자료의 과학적인 보존방법을 모색하고 전통문화와
사상에 기초한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유교문화관련 유물을 조사.
수집하여 연구, DB구축 등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국학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유교문화전시관과 장판각,
생활관을 건립 중에 있으며 퇴계관련영상물도 관람
할 수 있다.

이육사문학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2004년 7월 육사 탄신 100주년 맞이하여 개관한
이육사문학관은 육사선생의 고향인 도산면 원천리에
있다. 문학관 내부에는 육사선생의 친필 원고를
비롯하여 선생의 시집과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전시
되어 있다. 또한 문학관 주위에는 청포도 샘과 선생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이육사문학관에서 500미터 정도 거리에는 육사 생가터
가 있다. 건물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 안동
시내 태화동으로 이건 되었고 현재 그 자리에는 청포도시
비가 건립되어 있다.

청량산 박물관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1726-6번지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 지역홍보
자료를 한 곳에 모아 전시함으로써 봉화의 역사와 문화
에 대한 이해와 청량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탐방문화를 제공하고자 건립하였다. | |

유교문화박물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
한국국학진흥원의 부속기관인 유교문화박물관은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국내외에 알리고, 또 이를 토대로 국학
자료의 기탁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된 국내
유일의 "유교" 전문박물관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개별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으로부터 기탁받아 소장하고 있는
국학자료들 가운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들을 엄선
하여 전시하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인 유교문화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과 풍부한 볼거리를
꾸준히 발굴하여 전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도산서원(陶山書院)
-도산면 토계리 680
-규 모 : 사적지 324,945㎡, 건물 15동
이 서원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을 향사(享祀)
하는 도산서원이다. 선생은 1561년(명종 16)에 도산
서당 건립하고 학문연구와 인격을 도야하였는데, 선생
이 타계하자 문인들의 발의에 의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키로 하였다. 1572년(선조 5)에는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으며 1574년부터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576년에 완공하였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하였는데 그 편액은 당시의 제1인자라고 손꼽히던 명필 한호(韓濩)의
글씨이다. - 관련 인물 및 유적 (유물전시관 -영모각) 퇴계 이황(退溪 李滉) : 약 400종의, 4000여권에
이르는 장서와 장판 및 이황의 유품. | |

퇴계종택(退溪宗宅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이 건물은 퇴계선생의 영손 동암(東巖)공이 한서암 남쪽에 지은 가옥이다. 대를 이어 살아오다 1715년(肅宗 41)에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을 건축하여 면모를 일신한바 있으나, 10대사손 고계(古溪)공대에 구택의 동남쪽 건너편에 새로 집을 지어 옮겨 살았다. 그러나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두 곳 종택이 다 불타버렸고, 지금의 집은 1926년∼1929년 사이에 13대사손 하정(霞汀)공이 이곳에 세거하던 임씨(任氏)들의 종택을 매입하여 이건하였으며 추월한수정은 옛 건물처럼 재건하였다. - 규모 . 면적 : 2,119㎡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 형태인데 총 34칸
- 시대구분 : 조선시대
- 형태/방법/업적 :원래의 가옥은 없어졌으며, 지금의
가옥은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霞汀公) 이충호가 1926~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 |

오천군자마을
-오천1리 산28번지
안동에서 도산서원 가는 국도를 따라 약 20㎞정도
가다보면 오른쪽 길가 자연석에 군자리라는 표석이
있고 그곳에서 100m정도 굽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문득
20여 채의 고가가 나타난다. 이 건물들은 광산김씨
예안파가 20여대에 걸쳐 600여 년 동안 세거해 온
외내에 있던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그 밖의
고가들을 1974년 안동댐 조성에 따른 수몰을 피해 옮겨
놓은 것들이다. - 문화재 정보(국보, 보물 등) 보물 제1018호 : 고문서 11종 429점, 호적, 교지, 문서,
간창 등 보물 제1019호 : 전적 13종 61점, 서전, 송조명신언행록,
주자대전 등 -중요민속자료 226호 : 탁청정
중요민속자료 227호 : 후조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6호 : 탁청정 종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7호 :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0호 : 침락정 | |
- 봉정사권역

국화꽃밭(서후면국화大향연)
서후면국화大향연추진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10월에
진행되는 ‘서후면국화大향연’은 개막식 행사와
더불어 국화차시음, 길놀이, 저전농요시연, 국화다도,
국화꽃따기, 국화염색, 국화 찰떡 떡매치기 등 다양한
전시 및 체험행사가 있어 관광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봉정사(鳳停寺)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
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
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 311호
인 대웅전,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
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 최근에는 영국의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천등산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2리 - 높이 : 해발575.5m
- 유 래 천등산은 옛적에는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신라 문무왕때
능인대사가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天燈山”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天燈窟”이라 하였다. | |

운장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번지
학봉종택 내에 위치한 운장각은 유물을 보관․전시한
유물관이다. 운장이란 말은 ‘저 넓디 넓은 은하수,
하늘에서 빛나고 있네’라는 시경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운장각에서 보존하고 있는 문서는 보물
905호와 90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중 보물 제 905호
는 학봉김성일종손가소장전적(鶴峰金誠一宗孫家
所藏典籍)으로 56종 261책이 지정되어 있다. 지정된 전적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국조오
례의』, 『삼강행실도』등 28종 156책이 지정되었
고, 필사본 중에서는 『퇴계사전초』, 『북정일기』등 27종 85책이 지정되었다. 이 전적류들은 임진왜란
이전의 활자체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각종 고문서 중에서 보물 제 906호로 지정된 학봉김
성일종가소장고문서는 17종 242점이 일괄 지정되어 있
다. 종손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교지, 교서, 유서, 재산분배기록인 분재기 등 10,000여 점이나 되지만, 그 가운데 서간문과 제사에
쓰인 제문은 제외되었다. 지정된 문서를 보면 교서 1점,
교지 및 첩지 59점, 첩 4점, 시권 7점 등이다.

경당종택(敬堂宗宅)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204
경당고택(敬堂古宅)으로 현재 경당 11대손인 성진(星鎭)이 살고 있다. 불천지위(不遷之位)인 경당공
조고비(祖考妣) 세 분의 기제사가 모셔질 때마다 후
손들이 모두 모여든다. 종가 동북쪽에 사당이 있어서
경당 선조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입구자 형식의 영남
건축의 전형인 이 집에서 불천위 제사는 안채 대청 마루
에서 지낸다. 현재 서울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후손
들의 정신적 고향인 여기는 문중이 공동 관리하면서
선조의 유덕을 기린다. 정면에 걸려 있는 경당고택의
현판 글씨는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의 종손
남정(南井) 김구직(金九稷)의 글씨이다. | |

봉정사 성보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
라 불렸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봉황을 접어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
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
하라 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 15호인 극락전, 국보 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 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특히 고려 태조와 공민왕께서 다녀가기도
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봉정사 내에 위치한 성보관은 유물
전시관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한식기와 건물로 건립되었
으며 일반유물 수장고와 후불벽화 수장고 및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봉정사 소유유물 25종 174점과 봉정사 극락전,
대웅전 해체 보수 시 보존가치가 높아 보관해 온 포벽화와
후불벽화 등이 수장고에 보관되며 이중 일부 유물과
포벽화 및 후불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의성김씨 학봉종택
서후면 금계리 856
조선 선조 때의 명신이며 학자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을
보관한 곳인 운장각은 선생께서 남기신 서적.물품.친필기록
제초고 및 선조전래의 전적·문서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0여
점의 보물을 영구히 보존코자 건립하였다.
- 규모 : 수량 : 5동 (3,458㎡)
- 시대구분 :조선시대 (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자주 된다며 학봉의 8세
손 광찬(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고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위치로 이건)
- 형태/방법/업적 :학봉은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의 고제(高弟)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27세에
사마시, 1568년(선조 1) 중광문과 병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77년(선조 10)에는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1590년(선조 23)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나 임란때에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병사하였다. | |
-동남부권역

권정생생가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권정생은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
만 빈곤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와 가게의 점원 등을 하였다.
결핵에 걸려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 등을
앓으며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며 걸식을 하다가,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
교회 뒤 빌뱅이 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며 작품을
쓰고 있다.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에 마을 사람들은 그저 가난에
찌들어 사는 시골 노인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
들이 문상을 오는데 놀랐고 그렇게 책을 많이 낸 분인 줄
알고 놀랐으며 그 책의 인세로 선생의 재산이 10억이
넘는데 놀랐다고 한다. 무소유로 살다간 선생은 유언도 미리 써놓았다고 하는데 그 유언은 다음과 같다. “재산은 000목사님과 000신부님께 부탁합니다.
재산은 모두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과 중동, 티벳, 아프리
카 어린이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그 곳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평생 아이들을 생각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권정생 선생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이다.

묵계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705
묵계리 100m쯤 구 고갯길을 올라 왼쪽에 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
과 응계 옥고(1382~1436)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숙종
13년(1687) 에 창건되었다. 보백당 선생은 조선초기
성종때 대사성을 역임, 이조판서 양관대 제학으로 추증
되었고 시호는 정헌공인 명헌이며 응계 선생은 세종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바 있다. 고종 6년(1869)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뒤에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
과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하였다. 또한 서원 옆에
보백당 선생 신도비와 비각을 건립했다.
강당은 정면 5간 축면 2간의 팔작기와 지붕건물로
가운데 3간을 마루로 꾸미고, 좌우에 온돌을 들인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서원 좌측에는 이를 관리하는
정면 6간 축면 5간의 ′ㅁ′자형 주사 가 있다. 서원에서 멀지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묵계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종택내에는 보백당이 있는데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묵계리에서 ′
묵계새마을교′ 를 건너 하리 골짜기길을 따라 500m
쯤 가면 자연과 조화를 이룬 만휴정이 있는데 그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정자에는 만후정 현판외에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 이란 선생의 유훈 및 류도원,
김굉, 김도행, 정박 , 이돈우, 김양근공 등 명망이 있는
분들의 시판과 김양근공의 중수기가 게판되어 있다.

고산서원(高山書院)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산10 소유자 : 고산서원 수 량 : 1곽8정
이 서원은 18세기 유학자인 문경공 대산 이상정(文敬公 大山 李象靖)선생을 추모하는 고산서원이다.
1789년(정조 13)에 사림의 공의로 건립되었다.
선생은 25세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퇴계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
을 연구하는 한편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선생의 문인록에
등재된 제자만도 273인이나 된다. 1882년(고종 19) 이조
판서에 증직되고 1910년 문경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문집 27책이 있고 이기휘편, 제양록, 퇴계서절요, 사례상
변통고, 병명발휘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었으며. 특히 앙지재와 백승각의
양 끝은 개방된 마루를 두어 주변 경관을 음미하도록
꾸며져 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동·서쪽에 3단으로 설치되
어 있으며 뜰에는 정요대가 2기 설치되어 있다.
이 정요대는 일명 불받침대라고도 하며 서원행사 때
그 위에 관솔불을 지폈다. - 규모 : 수 량 : 1곽8정, 면 적 : 12,365㎡. - 시대구분 :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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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소호헌(安東 蘇湖軒)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562
- 시 대 : 조선시대 - 지 정 : 보물 475호 (1968. 12. 19)
청이 건물은 확실한 건립년대는 미상인 가옥이다. 고성이씨 임청각 이명의 다섯째 아들로 청풍군수를
역임한 무금정 이고(無禁亭 李股)의 분가로 건립한
것을 사위인 함재 서해(涵齋 徐 )에게 물려준
집이라 전한다. 대구쪽으로 가다보면 일직면 소재지를
지나 소호리 마을 안쪽 도로변에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별당건축인데 왼쪽 3칸은 넓은
대청이 되고 오른쪽 한칸은 루마루로 만들었다.
루마루에 접하는 대청 전면에 직각으로 꺽어서 2칸×1칸의 규모로 방을 들였으며 전체의 평면은 丁자형과 같다. 지붕은 팔작지붕이지만 부속된 방은 맞배지붕
이다.대청과 루칸과의 사이에는 사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도록 하고 이 루마루에서 방뒤의 툇마루에 이르는 주위에는 난간을 돌렸다.
루마루 이외의 부분에는 축대를 높게 쌓았으나 주초돌
위에는 기둥을 직접 세우지 않고 평방 모양으로 귀틀을
짜 돌리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기둥위에 얹은 주두로서 장혀와 도리를 받쳤
으며 초익공 계통의 형식에 속한다. 창방머리의 조각
적 수법은 고격을 띠고 있다. 가구를 보면 대들보는 주두
위에 얹었으며 포대공을 놓고 종량과 중도리를 받게 하였다.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는데 그와 함께
합장형의 소슬이 보인다. 주택건축에서 소슬대공을
사용한 예는 이 이외에 아직 발견 못하고 있다.

의성김씨 종택(義城金氏 宗宅)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80
이 건물은 16세기에 불 타 없어졌던 것을 학봉 김성일
(鶴峰 金誠一 1538∼1593) 선생이 재건한 것이 라 전하는 가옥이다. 의성 김씨가 500여년을 세거하고
있는 내앞(川前)마을에 있다. 16세기말 학봉선생이
명나라 사행길에 북경에서 그곳 상류층 주택의 설계도
를 그려다가 완성했기 때문에, 그 배치나 구조에
있어서 독특한 점이 많다고 한다. 이 가옥은 ‘口’자형 안채와"一"자형 사랑
(舍廊)채가 행랑(行廊)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
되어 집의 전체적 배치는"巳"자형 평면을 이룬다.
안채는 다른 "口"자형 평면 주택과 달리 안방을
바깥쪽으로 높이고 동쪽을 향하고 있는 커다란 대청(大廳)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손님을 접대하는 곳인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으로 안채
보다 깊숙이 외진 곳에 배치하여 방문객이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수애당(水涯堂)
- 분 류 : 사묘재실 - 지 정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6호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470-44
이 건물은 수애 유진걸(水涯 柳震杰)이 1939년에
지은 집이다. 건축주의 호(號)를 따 당호(堂號)를 수애
당이라 하였다. 원래 임동면 수곡리 612번지에 있었
으나 임하댐 수몰로 인해 현위치로 이건되었다. 남향하고 있는 우측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담장으로
구획된 장방형의 행랑마당이 나타나며 담장사이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일자형의 정침과 ㄱ자형의 고방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대문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외양간과 창고를
두고 우측에는 통간 온돌방을 두었는데, 대문채의 전면
벽체에는 용지판을 부착하여 부벽을 발랐다. 고방채는 12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로 정침의 전면에
자리잡고 있으며, 외벽은 담장의 구실을 하고 있다.
평면은 정침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좌로부터 창고 2칸,
고방 4칸, 화장실 반 칸, 고방 1칸 반, 정지 1칸, 온돌
방 1칸 반이 연접되어 있으며, 우측칸에는 정침쪽으로
축을 꺾어 고방 2칸을 두었다.정침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좌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 대청, 중간방, 사랑방이 연접되어 있으며 안방
의 뒤에는 우물마루로 된 찬방을 1칸 두었다. 부엌과 사랑방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간을 두었
으며 사랑방의 전면과 우측면에는 퇴를 둘렀다. 평면구
성상에 방의 크기가 제작기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이와 같은 특징은 기둥을 중앙에 두지 않음으로 해서
생긴 반 간의 변화있는 활용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5량가이다. 대량과 종량을 만곡된 자연재를 사용한 까닭에, 전면쪽에는 대량과 종량사이에 뺄목을
끼웠으나, 후면쪽에는 종량을 대량위에 바로 얹었
으며, 종량위에는 판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하였다. | |

임하댐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1084-7
4대강 유역 종합개발 계획의 하나로 이루어진 다목적
수자원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홍수조절과
농공업 생활용수를 공급, 조절하고 있다. 임하댐 본댐과
좌댐으로 나눠져 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빼어
나다. 유람선 선착장도 이용 가능하다.
댐 주위에 낚시터도 있어 유명한 곳이다. 벤치에 앉아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향을 음미하며
사색을 즐겨보는것도 좋을듯 싶다. - 규모 높 이 : 73m, 길 이 : 515m, 만수면적 : 28.7㎢,
저수용량 : 595백만㎥, 발전용량 : 5만kw,
홍수조절 : 80백만㎥, 용수공급 : 497백만㎥

용계의 은행나무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743
이 나무는 조선 선조때 훈련대장을 지낸 송암 탁순창 선생이
임진왜란 뒤 낙향하여 심었다고 하는데, 그는 임진왜란이 끝
나고 난 뒤에 고향으로 내려와 은행계를 조직하고 이 나무
주변에 대를 쌓아 보호했다고 한다. 예술촌과 함께 수몰
위기에 처했던 이 나무는 그 자리에서 3년 동안 성토작업을
해서 15m 위로 들어 올려 보존하게 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부러지고 노쇠한 몸을 철골로 얼키설키 지탱시켜 놓았다. 예술촌에서 은행나무를 만나러 가는 8km
비포장 고갯길은 매우 운치 있으나 눈비가 올땐 다소
위험한 구간이 산재해 있다.
- 규모 :
높이 37m, 뿌리부분의 둘레 16m, 가슴높이 둘레가 14.5m
- 연혁 :. 수령은 약 700년 정도로 추정.
조선 선조때 훈련대장을 지낸 송암 탁순창선생이
임진왜란 뒤 ,낙향하여 심었다고 한다. - 보호관리대상 지정여부 : 천연기념물 175호 (1966.1.3)

만휴정(晩休亭)
- 지 정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73호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1081 이 건물은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공의 정자
이다. 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다소 변형된 듯 일부는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선생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
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
건너 산곡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정자의 전면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난간을 돌렸다.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며 후벽의 문하부는
궁판이 높직하게 끼워져 있다. 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
데 방의 앞부분은 일반적인 쌍여닫이 세 살문을 달았으나
마루쪽으로는 띠살무늬의 세짝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으며, 약계정과 유사한 평면형식을 보이고 있다. 기둥 상부에는 연봉장식이 가미된 2익공양식의 촛가지가
돌출되어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 간주되지만 말기의
번잡한 양식과는 달리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방위에는 연꽃을 새긴 화반을 놓았는데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다. 상부는 5량가로 대량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렸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으로 처마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
(安東 造塔洞 五層塼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139
화강암과 벽돌을 혼용해서 만든 통일신라시대의 5층 전탑
이다. 초층 옥개석(屋蓋石)부터는 벽돌로 쌓았으며 그
가운데 당초문(唐草文)을 새긴 것이 섞여 있어서 통일
신라시대의 전탑으로 짐작하게 한다. 옥개 받침은 초층
부터 9단.8단.7단.6단.3단이며 옥개석에 기와를 입혔던
흔적은 없다. 탑신부(塔身部)의 2층과 4층 옥신석
(屋身石) 남쪽 면에 형식적인 감실이 표현되어 있다.
옥신은 1층의 높이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2층부터의 체감률은 작아서 안정감이 있으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탑의 상륜부(相輪部)는 훼손되어 모두 없어졌다.- 규모 : 높이 8.35m, 폭 3.65m. | |
- 안동댐(시내)권역

보물각(寶物閣 )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24
태사묘(太師廟)는 안동시 북문동 24-1번지 4062.83m² 대지에 삼태사(三太師) : 김선평
(金宣平:城主), 권행(權幸:本新羅宗姓金),
장정필(張貞弼:初名吉) 공(公)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천여 년이 넘도록 향사(享祀)를 봉행(奉行)해온
태사묘우(太師廟宇)를 비롯하여 보물각(寶物閣),
숭보당(崇報堂), 동. 서재(東 . 西齋),경모루(景慕樓), 전사청(典祀廳), 차전각(車戰閣), 안묘당
(安廟堂), 주사(廚舍) 등 10동(棟)의 건물이 기념물
(記念物) 제15호로 지정되고, 삼태사공이 쓰시던 유물
(遺物)과 공민왕(恭愍王)이 하사(下賜)한 유물
(遺物)들은 보물(寶物)제451호 지정되어 문화재(文
化財)로서 안동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적(遺蹟)이다.

태사묘 ( 太師廟 )
- 북문동 24-1번지 - 규 모 : 4,035㎡
이 건물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삼태사 김선평, 권행, 장정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재사이다.
태사묘사실기년(太師廟事實紀年)에 의하면 983년
(고여 성종 2)에 처음으로 삼공신의 제사를 안동부사
(安東府司)에서 거행하였다 한다. 1481년(성종 2)에 관찰사 김자행이 묘우를 세우는 터전
을 마련했고 이어서 1540년(中宗 35) 안동부사 김광철(金光轍)이 현 위치에 묘를 건립하였으며, 1613년
(광해군 5)에는 규모를 확대 개건하고 그 이름을 비로소
태사묘(太師廟)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도 혹은 증축하고 수리하며 제도를 보완하여 왔으
나 6 .25동란 중에 전면 소실된 것을 1952년 재건에
착수, 1958년 9월에 완공되어 현재는 보물각과 숭보당,
동서재, 경모루, 안묘, 차전각 등이 있다. 묘정에는 삼공
신비가 세워져 있다. 보물각내에는 3공신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안동 임청각
법흥동 20
이 건물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
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이 안동 산수의아름다움을 좋아
하여 이거하여 그의 셋째 아들 형조좌랑 이명이 건축한
조선 중기의 별당형 정자이다. 목조건물로는 봉정사 극락전
과 함께 임진왜란을 겪어 온 오래된 건물이다. 대청에 걸려있는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로
알려져 있다. 丁자형의 루각으로 된 별당건축이다. 정면 2칸에 측면도
2칸인 대청이며 남향으로 세웠다. 그 서쪽에 연접해서 丁자형으로 온돌방을 부설했는데
그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의 주위에는
쪽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다. | |

안동신세동칠층전탑
(安東 新世洞 七層塼塔)
법흥동 8-1
1487년에 개축되었으며 원형이 보존된 한국 최고
(最古)의 전탑이다. 이 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칠층전탑. 판석 조각의 수법은
시대가 동일하지 않고 탑신부는 무늬 없는 회색 벽돌로
축조되었고, 옥개 상면에는 곳곳에 기와를 입혔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는데 원래는 금동제(金銅製) 상륜이 있었다고
한다. - 유래 이 일대의 지명을 법흥리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법흥사(法興寺)에
세워진 전탑으로 추정된다.

월영교
-상아동
이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확정되었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 들게 한다.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 빛은 잊혀진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오늘 우리는 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 그들의 숭고한 사랑의 달빛을 우리 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타종식
동부동 안동웅부 공원 내
안동 구 군청 자리에 들어선 웅부공원에서는 다사다난 했던 한 해를 보내고 꿈과 희망이 가득한 새해를 여는 뜻깊은 순간을 지역발전과 안녕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제야의 타종행사」를 가진다. 12월 31일 밤 11시부터 새해 1월 1일 1시 까지 펼쳐지는 이 행사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새해를 시민들과 함께 함으로써 갈등 해소와 시민화합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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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댐
성곡동 산 164-19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이루어진 다목적
댐으로서, 정상에서의 수려한 경관과, 낚시꾼들에겐
입질 좋은 포인트로 안동댐에서 월척을 건졌다는 소식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을 만큼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댐 하단에 민속촌, 민속박물관 외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 이용도 가능하다. - 규모 높 이 : 83m, 길 이 : 612m, 폭 : 360m, 만수면적 : 51.5㎢, 저수용량 : 1.248백만㎥, 발전용량 : 9만kw,
홍수조절 : 110백만㎥, 용수공급 : 926백만㎥

고성이씨탑동파종택
법흥동 9-2
이 건물은 소유자의 11대조로 조선 숙종때 좌승지로 증직된
이후식(李後植)(1635∼1765)이 안채를 건축하고 이어
서 짓다만 사랑채와 대청(永慕堂)을 그의 손자 원미
(元美)(1690∼1765)대에 완성한 가옥이다.
대청의 북쪽에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는 북정(北亭)은
7대조인 진사 이종주(李宗周)가 1775년(영조(英祖)
51)에 건립하였다. 영남산의 동쪽 기슭에 좁은 계류를
끼고 넓직히 동남향으로 자리잡았다. 솟을삼문을 지나있는
사랑마당에는 연못이 있고 건너에는 대청이 높게 자리잡
았고, 연못 동쪽에는 사랑채가 있으며 그 곁에 ㅂ자평면
으로 구성된 안채가 있다. 안채의 동쪽에는 3칸 사당이
있고, 대청 북쪽 좀 떨어진 숲속의 계류옆에 북정이 서 있다. 대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의 좌측 2칸은 큰
마루방이고 우측 1칸은 1칸반 온돌방 뒤에 반칸 골방을
두었으며, 전.후면과 서측면에는 길게 동마루를 달아 내외
부 공간을 연결하였다. 방과 마루방의 창문틀에는 가운데
설주가 서 있으며, 마루방에는 큰 범살문을 달아서 바깥
으로 들어 열게하였다. 마루방은 연등천장으로 5량가인데
종보 위에 제형판대공을 세웠다.

안동소주박물관
수상동 280번지
안동소주 박물관내에는 안동소주 박물관, 전통음식 박물관,
소주를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장, 그리고 맛을 보는 시음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총 660여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습니다. 안동소주 박물관은 안동소주의 제조과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술의 역사와 계보 및 한국 무형문화재 민속주의 종류와
그 현주소를 밝히고 안동소주 양조에 필요한 모든 도구, 과정,
생산 또는 의례 접대까지도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전통음식박물관은 각종 전통음식, 술과 관련된 음식과
주 안상을 다양하게 전새해 놓았다. 전, 과자, 떡 등
각가지 모양과 색으로 만든 음식들, 관혼상제에 쓰이는
상차리는 법, 수라상, 여왕 생일상 등 여러 가지의
음식들이 전시되어 있다. | |
-안동 먹걸이

연음식 전문 농가맛집 '안동화련'
일직면 하나들길 150-23(귀미리 678-2)
054-858-0135

안동한우

- 맛볼수 있는곳
대구식당 : 풍산장터 내 T054-857-2707
금강산 : 옥동 983-13 T054-858-2043
동부숯불갈비: 운흥동 171-10 T054-857-2707

안동보리밥
- 맛볼수 있는곳
안동식당 : 구시장 내 제비원 상가 T055-855-7886
제비원식당:054-858-2646경북 안동시 남문동 184
보문식당 : 054-854-6009경북 안동시 남문동 184-4 | |

안동간고등어
맛볼수 있는곳
양반밥상 : 상아동 513 T054-855-9900
안동구이마당 :
천리동 229-3 T054-853-8292
목석원가든 :
천면 하회리 247-3 T054-853-5332

안동찜닭
-맛볼수 있는곳
원조안동찜닭:남문동 181-7 T054-855-8903 매일안동찜닭 : 남문동 181-7 T054-854-4128
서울안동찜닭 : 남문동 181-4 T054-855-1129
종손안동찜닭: 남문동 178-9 T054-855-9457
영가찜닭 : 서부동 182-6 T054-854-3838

안동막창
-맛볼수 있는곳
명동막창: 남문동 222-52 T054-853-0270
서울막창:남문동 222-11 T054-854-2881
안동막창:남문동 222-48 T054-852-7890 | |

헛제사밥 맛볼수 있는곳
까치구멍집: 상아동 513 T054-821-1056
안동민속음식의집:
상아동 513-1 T054-821-2944
터줏대감 : 상아동 T 054-853-7800
양반밥상 : 상아동 513 T054-855-9900

안동칼국수
- 맛볼수 있는곳
옥동손국수: 옥동 T054-855-2308
선미식당: 삼산동 63 T054-857-8498
골목안 손국수 : 남문동 207-1 T054-857-8887

한정식
안동한정식은 점차 현대화, 퓨전화되어 가고 있는 국내
한정식 상차림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한정식의 기본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시절음식이라는 점 또한 그러하다. 서울이나 대도시 한정식에 비해 시절음식의 비율이 높고
실제 생산지이기도 해서인지 안동과 인근지역에서 생산
되고 있는 지역 생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흔적이 보인다. - 맛볼수 있는곳
청록:정하동 312-2 T054-858-2698
고려정:옥동 1243-25 T054-843-2002
솔밭한정식: 옥정동 1-5 T054-857-7907 | |
* 안동시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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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이렇게보니 안동에도 볼거리가 무척많네요. 정말 좋은정보 감사드려요.
오늘부터 한곳씩 다녀볼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