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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다
서럽다
그 아까운 재주 시대를 잘 못 만나
고독의 소금광주리 머리에 이고 살았네
그냥
누구의 아내도 아닌 것처럼
누구의 에미도 아닌 것처럼
누구의 자식도 아닌 것처럼
더러는 탄식하며
더러는 눈물 밥 말아
앞치마 하나 가득 하늘을 담아
혼자서 실실 들꽃처럼이라도 웃어나 보지
평생의 혹처럼
조선이라는 소천지(小天地)에서 태어난 것
女子로 태어난 것
남편인 김성립과 결혼 한 것에
숨어살다 탄식하다
독이되어
27세에 요절해 버린 여인아!
오호! 통재라!
- 하요람 -
- 한국의 미인도 중 허난설헌 -
허난설헌 許蘭雪軒
明宗18년(1563)에 태어나서, 宣祖22년(1589)에 27세의 나이에 요절한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본명은 초희(楚姬)..호는 난설헌(蘭雪軒).. 명문가에서 태어나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당시의 최고 詩人 이달(李達)에게서
詩를 배웠다.
그녀의 일생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이란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글씨는 한석봉이 썻고, 강릉의 기념관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15세에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妓房를 드나들며 풍류를 일삼았으며, 시어머니는 시기와 질투로 그녀를
학대하였다가 어린 남매를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流産됐다.
친정집에는 옥사(獄事)가 있었고,동생 허균(許筠)도 귀양가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詩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에 요절했다. 詩 213首가 전해지고 있다.
난설헌의 작품 세계와 사상도 괄목할만 하지만, 특히 그의 여자로서의
파란만장한 一生이 신사임당과 대비되어 많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한편의 소설과도 같은 삶을 살다가 27세에 죽었다.
그녀의 한탄
그는 세가지를 한탄하였다.
첫째는 조선이라는 소천지(小天地)에서 태어난 것
둘째는 女子로 태어난 것
세쩨는 남편인 김성립과 결혼 한 것
그녀의 작품 세계
그녀의 作品 세계
그는 동생의 재능을 알아본 오빠의 배려로 글을 배웠다.
그는 어른이 되었을 때,
가난한 집 아가씨는 열심히 옷을 만들어도 그 옷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서
사회의 불공평을 비판하는 사회비평 그리고 道敎的인 가치관 등
다양한 가치관을 詩로 표현하는 재능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그의 詩를, 임금노동자는 그가 생산하는 것의 所有者가 될 수 없다는
칼막스의 "소외론"과 비교할 정도로 그녀의 才能을 격찬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落花僚亂撲羅衣(낙화요난복라의) 지는 꽃은 어지럽게 치마를 스치네.
洞房極目傷春意(동방극목상춘의) 봄철 빈 방에서 애태우는 이 속내
草綠江南人未歸(초록강남인미귀) 풀은 푸른데 가신 분은 오시지 않네.
- 허난설헌의 시 “규정(閨情)”에서 -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의 장호와 옥류는 깨끗하고 푸른데
荷花深處繁蘭舟(하화심처번난주) 연꽃 우거진 깊은 곳 난을 실은 배에서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물을 두고 임을 만나 연을 따서 던지네
或被人知半日差(혹피인지반일수) 혹시 누가 보았을까 반나절 부끄러웠지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 슬프고 슬픈 광릉 (광주) 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 백양나무에는 으시시 바람이 일어나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 도깨비 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 지전을 불살라 너의 혼을 부르고
玄酒存汝丘(현주존여구 )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른다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縱有服中孩(종유복중해 )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安可冀長成(아가기장성 )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浪吟黃坮詞(낭음황대사 )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는구나
그림에 쓰여 있는 시(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식유란청우향 誰識幽蘭淸又香 그 누가 알리요! 그윽한 난초의 푸르름과 향기를
년년세세자분방 年年歲歲自芬芳 세월이 흘러도 은은한 향기 변치 않는다네
막언비련무인기 莫言比蓮無人氣 세상 사람들이 연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지 마오
일토화심만초왕 一吐花心萬草王 꽃 수 한번 터트리면 온갖 풀의 으뜸이니...
그녀의 가족들
하지만 아버지가 병에 걸려, 그녀 18세때 상주에서 객사하였으며,
오빠 허봉(許封)이 정치적인 이유로 귀양갔다가, 유배가 풀린 뒤에도
서울에 들어오지 못하고 방랑하다 금강산에서 객사한다. 어머니는
전라도에서 소화불량으로 역시 객사하며, 아들과 딸을 일찍 잃고,
죽기 얼마 전에는 배속의 아기마저 유산된다.
동생 허균(許筠 .. 홀길동의 저자) 역시 귀양을 다니며, 남편은
기방에만 출입하고, 시어머니는 그녀를 학대하는 등 불행한 일생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모든 작품을 스스로 불태워 버렸으나, 그가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이전에 베껴 놓은 것
기억에 남는 것
친정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을 모아
"난설헌집"으로 펴내어 오늘날 남아 있게 된다.
허균의 소개로 중국에서도 1598년과 1606년 두번에 걸쳐 "난설헌집"이
발간되었고, 그후 100년이 지난 1711년 日本에서도 난설헌집이 발간되었다.
이 곳 광주시 초월리의 묘역은 안동김씨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의
가족 묘역이다.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맨 하단에 허난설헌과 두 자식의 묘
그리고 그 위에 남편 김성립과 새로운 부인의 합장 묘가 있고
맨 위에 김성립의 아버지 김첨의 묘가 있다.
허난설헌의 묘는 원래 이 곳으로부터 약500m 떨어져 있었는데,
도로공사로 인하여 이 곳으로 이장되었다.
허난설헌과 일찍 죽은 두 아들의 묘가 나란히 있다.
허난설헌의 아들과 딸 무덤...3~4살의 나이에 일찍 죽는다.
난설헌의 곡자(哭子) 詩가 애절하다.
거년상애녀 去 年 喪 愛 女 지난 해 귀여운 딸 여의고
금면상애자 今 年 喪 愛 子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애애광릉토 哀 哀 廣 陵 土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경기도 광주)땅이여
쌍분상대기 雙 墳 相 對 起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소소백양풍 蕭 簫 白 楊 風 사시나무 가지에 쓸쓸한 바람
귀화명송추 鬼 火 明 松 楸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 비치네
지전초여백 紙 錢 招 汝 魄 소지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니
현주전여구 玄 酒 奠 汝 丘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응지제형혼 應 知 弟 兄 魂 알고 말고 너희 넋이야
야야상추유 夜 夜 相 追 遊 밤마다 너희들 어울려 놀테지
종유복중해 縱 有 腹 中 孩 비록 새 아기를 가진다 한들
안가기장성 安 可 冀 長 成 이 또한 잘 자라기를 바라겠는가
낭금황대사 浪 昑 黃 臺 詞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면서
혈읍비탄성 血 泣 悲 呑 聲 애끓는 피 눈물에 목이 메인다.
허난설헌의 작은 오빠 허봉이 쓴 죽은 조카의 묘비명이다.
허봉은 난설헌을 매우 아껴서 詩도 지어 보내고, 붓도 선물하였다
특히 1582년 (난설헌이 20살 때)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의
시집을 보내면서 편지도 동봉한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다.
"내가 열심히 권하는 뜻을 저버리지 않으면, 희미해져 가는 두보(杜甫)의
소리가 누이의 손에서 다시 나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직한 허봉은 율곡을 탄핵하였다가 함경도 甲山으로 유배되며,
귀양이 풀린 후에도 서울에 돌아 오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다가
금강산에서 38세의 나이에 객사하고 만다.
허봉이 허난설헌의 중매를 섰다.
즉, 남편 김성립의 아버지안 김첨(金瞻)과 같이 유학을 공부하던 동료이었고,
마침 그의 아들 김성립과 자신의 누이를 중매한 것이다.
아들의 이름이 희윤....그 당시 딸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난설헌은 이름도, 號도 다 있을만큼 시대를 앞서 산
그리고 그 친정의 개화된 풍속을 엿 볼 수 있다.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과 그의 새로운 아내 남양 홍씨의 묘...합장이다.
그러나 김성립이 임진왜란에서 전사하고 시체를 찾지 못하여
그저 가묘(假墓)일 뿐이다. 이 일대는 안동 김씨의 가족묘역이었다.
허난설헌의 묘는 원래 이 곳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몇년 전 도로공사로
인하여 이 곳으로 이장되었다. 그래서 일찍 죽은 자식들과 나란히 묻혀 있다.
부부 갈등과 김성립의 바람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온다.
남편 김성립이 접(接..글방 학생이나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에
독서하러 갔다. 허난설헌은 남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옛날의 접(接)은 재주(才)가 있었는데, 오늘의 접(接)은 재주(才)가 없다
즉 古之接有才,今之接無才(고지접유재,금지접무재)
즉, 오늘의 접(接)은 재(才)가 빠진 즉 첩(妾.여자)만 남아 있다고 하며
방탕한 남편을 꾸짖었던 것이다.
이러한 얘기도 있다.
김성립과 친구들이 서당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거짓으로 김성립이 기생집에서 술을 먹고 있다고 난설헌에게 전했다.
이에 난설헌은 안주와 술을 보내면서 詩를 한 구절 써보냈다.
"낭군자시무심자, 동접하인종반간 (郎君自是無心者,同接何人縱半間)"
즉, 낭군께선 이렇듯 다른 마음 없으신데, 같이 공부하는 이는 어찌된 사람이길레
이간질을 시키는가... 친구들은 그녀의 재주와 기백이 호방함에 놀랐다고 한다.
천재 부인과 사는 남편의 괴로움
하여튼 天才인 부인과 사는 김성립에게 방탕기는 분명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슴이 분명하다.
같은 수준의 사람을 만났으면....
남편의 바람기에...허난설헌의 애절한 詩가 전해 온다.
(제목 ..다른 여인에겐 주지 마셔요)
아유일단기 我 有 一 端 綺 아름다운 비단 한 필 곱게 지녀 왔어요.
불식광준란 拂 拭 光 浚 亂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대직쌍봉황 對 織 雙 鳳 凰 한쌍의 봉황새 마주 보게 수놓으니
문장하찬란 文 章 何 燦 爛 반짝이는 무늬가 그 얼마나 아름답던지
기년동중장 畿 年 疼 中 藏 여러 해 장롱 속에 간직해 두었지만
금조지증랑 今 朝 持 贈 郞 오늘 아침 님 가시는 길에 드리옵니다.
불석작군금 不 惜 作 君 衿 님의 바지를 만드신다면 아깝지 않지만
막작타인상 莫 作 他 人 裳 다른 여인의 치마감으로는 주지 마셔요.
빈녀음(貧女吟)
개시핍용색 豈 是 乏 容 色 인물도 남에 비해 그리 빠지지 않고
공침복공직 工 鍼 復 工 織 바느질 솜씨 길쌈 솜씨도 못 하지 않건만
소소장한문 少 少 長 寒 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란 까닭에
양매불상식 良 媒 不 相 識 좋은 중매자리 나서지 않네
부대한아색 不 帶 寒 餓 色 춥고 굶주려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진일당창직 盡 日 當 窓 織 하루 종일 창가에서 베만 짠다네
유유부모련 唯 有 父 母 憐 오직 내 부모님만 가엽다 생각할 뿐
사린하회식 四 隣 何 會 識 그 어떤 이웃이 이 내 속을 알아 주리오
야구직미휴 夜 久 織 未 休 밤이 깊어도 짜는 손 멈추지 않고
알알명한기 謁 謁 鳴 寒 機 짤깍 짤깍 베 짜는 소리 차가운 울림
기중일필련 機 中 一 匹 練 베틀에 짜여가는 이 한 필 비단
종작하수의 綜 作 何 誰 衣 필경 어느 색시의 옷이 되려나
수파금전도 手 把 金 剪 刀 가위로 싹둑싹둑 옷 짓노라면
야한십지직 夜 寒 十 指 織 추운 밤에 손 끝이 호호 불리네
위인작가의 爲 人 作 嫁 衣 시집살이 지을 옷은 밤낮이건만
년년환독숙 年 年 還 獨 宿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 잠인가.
허난설헌이 27세로 요절하자,
그의 동생 허균(許筠)이 누이를 그리며 詩를 남긴다.
옥(玉)이 깨지고 별이 떨어지니 그대의 한 평생 불행하였다.
하늘이 줄 때에는 재색을 넘치게 하였으면서도
어찌 그토록 가혹하게 벌주고, 속히 빼았아 가는가?
거문고는 멀리 든 채 켜지도 못하고
좋은 음식 있어도 맛보지 못하였네
난설헌의 침실은 고독만이 넘치고
난초도 싹이 났건만 서리 맞아 꺾였네
하늘로 돌아가 편히 쉬기를
뜬 세상 한순간 왔던 것이 슬프기만 하다.
홀연히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가니
한 세월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구나
- 글쓴이 : 정법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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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신을 기억 할 때마다 난 가슴이 찢어집니다
우리나라 천재적인 여류시인 허난설헌!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 이치을 알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또 남자도 아닌 여리고 여린 여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들을 다 겪었네요.
그것도 짦은 시간에...부모 형제 자식들의 비극에...남편까지...
보통 사람들은 세상 이치를 알기 전까지 이런 고통들을 겪지 않는데...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 온다고 하더만...아무리 그래도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 이네요...우째 이럴수가...
그러고 보면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