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6주일설교 누가복음9:10-17
본문: 누가복음9:10-17
제목: 주께서 나에게 주라시면!
오늘은 누가복음9:10-17의 말씀을 가지고
“주께서 나에게 주라시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나에게 주라시면”
요즘 방송에서 트롯트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아서
처음으로 듣게 된 노래가 “보릿고개”입니다.
원래 진성이라는 가수가 불렀는데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정동원이라는 중학생이 불러서 알게 되었습니다.
노래 가사를 보면 참 애잔합니다.
보릿고개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길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그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먹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할 일이 오직 자녀들 밥을 먹이면
전부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못해서 내 자식을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내기도 하고
남의 집 종살이로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부모의 할 일이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서
자녀들 배고프지 않도록 먹이면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모가 못 먹여도
나라나 여러 시설에서 먹여주기도 합니다.
식량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해다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온 인류가 만났습니다.
그로 인해 세계 보건기구에서
팬데믹 선언-전세계의 전염으로 선언을 하게 되어
전 세계의 문제가 되었고
전 세계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사재기 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나라들은 식량수출을 금지하여
자기들의 먹을 것을 지키겠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고
많은 다른 나라에서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부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먹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졌고
그래서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장사가 되지 않고 사업이 되지 않아
심각한 경제적인 문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지방기관들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라가 나서서 지방기관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그냥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러한 때 예수를 믿는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무엇일까요?
1.제자들을 따로 데리시고 가시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는 늘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벳새다라는 따로 한 적한 곳을 찾아 가셨습니다.
오직 제자들하고만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제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수고한 제자들을 위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야 할 말씀이 있었지만
제자들에게 특별하게 하시고 싶은 말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셔서 제자들을 사방으로 보내셨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능력과 권위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을 고쳐 주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서
그 보낸 것에 대해서 정리하고
부탁하실 말씀이 있어서 한적한 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습니다.
무리들은 늘 예수님께 관심이 많았습니다.
무리들은 늘 예수님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좋았고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면 행복했고
기쁨이 있었고 평안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특별히 몸이 아픈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도 못 고칠 병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것은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이고 바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광야로 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자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해야 할 일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제자들과 함께 할
시간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여든 그들에게 예전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무리들은 그런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듣고
행복하고 평안하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아픔 사람이 낫게 해 주기를 원해서 나오면
그들을 만져 낫게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영과 마음이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병 고침을 받고 고통에서 놓임을 얻고 자유를 누리는
사람을 보는 무리들은 참으로
천국의 삶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광야이었지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한 이야기와
병 고침의 시간은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참으로 행복하고 기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2.걱정하는 사도들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고 따뜻하고
기쁨의 시간이 지나 날이 저물어 갔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아무리 좋고 행복해도 먹어야 합니다.
밝은 낮이 계속되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날이 저물어 갑니다.
날이 저물면 먹어야 하고 쉬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날이 저물어 배가 고파 오는 시간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며
병을 고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두 사도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먹을 것을 제자들이 준비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보면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예수님은 우물가에 앉아
여인과 이야기 하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갔습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걱정을 합니다.
자신들에게 닥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걱정을 합니다.
분명 예수님이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하실 텐데
그것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을 보내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이 무리들을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그들이 머무는 곳은 빈들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빈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빈들은 광야를 말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리들을 가까운 동네로 보내서
그곳에서 먹을 구하며 머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적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예수님께 그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런 제안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들에 책임을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을 져야 할 자로서
전혀 책임감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었고
다르게 생각하면 책임감을
모면하려는 말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장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야고보는 말합니다.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런 말을 하나 마나 한 말이라고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말은 좋지만 전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3.너희가 주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런 책임 없는 말
하나 마나 한 말을 들으시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주라”
책임감을 회피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말로 그냥 넘어가보려고 한 말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 그런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몰아치니
사도들은 어디로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살피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책임감이 있는 자신들이 피하려고 했던
자신에 문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살피게 되었고
지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자신들이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가지고 있는 것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한끼 식사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이것을 가지고 이 많은 무리들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법은 돈을 가지고
먹을 것을 사오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만 한 오 천 명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여인들을 합하면
2만 명 정도는 되는 숫자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한 끼를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마가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1데나리온은 장정의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의 품삯으로 100명 정도 식사를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뭘 사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하지 않고
겨우 때우는 정도의 식사였을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사도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들을 한 오십 명씩 앉히라고 하였습니다.
나누기 위해서는 파악을 해야 합니다.
파악하니 남자가 한 오천 명쯤 되었습니다.
4.이끌어 가시는 예수님
너희가 주라는 말에 뒷걸음만 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을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따라가 가는 일입니다.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면 됩니다.
주라하면 주고 주지 말라고 하면 주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야 사도입니다.
그래야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사람들을 앉히라고 하면 앉히면 됩니다.
지금 자신들에게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도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여도
하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먹고 다 배불렀습니다.
주라고 해서 주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리들이 다 먹고 배불렀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이 남은 조각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습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어떻게 했기에 오천 명이 다 먹고
열두 바구니나 남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제자들이 한 것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주님이 하라고 하는 일은 하였습니다.
주님이 주라고 하셔서 줄 것을 찾았고
찾아보니 가진 것이 너무 적어서
무리들에게 다 먹일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그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음식을 주시고
그 음식을 나누어 주라고 해서 나누었더니
남자만 해도 오 천 명이 다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을 먹인 것은
어떻게 한 것입니까?
무슨 능력으로 그렇게 하였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께서
무리를 먹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자신을 살폈으며
자신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폈으며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행하라고 하시는 일을 행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연약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여러 모양으로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저들에게 돈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까?
저들에게 좋은 이웃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까?
저들에게 좋은 치료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까?
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좋은 이웃이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좋은 치료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요 나는 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아니요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십니까?
아니요 그것은 나라가 해야 한다고 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배고픈 사람을 보았다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무엇인가 필요한 사람을 만났다면
너희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우리 교회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농촌의 작은 교회이기는 하지만
나누는 일을 거의 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어야 합니다.
빛은 나눕니다.
빛은 자기를 태워서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어두운 곳을 밝게 하고
부족한 곳을 채웁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가진 것이 적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너희가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을 따라서 행동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도 나누어 주는 일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일입니다.
나의 형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라는 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주변의 사람들에게 채워질 것이고
또 나에게도 남음이 있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사회적으로 재난 지원금을
기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재난 지원금을
기부를 받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금으로 하기도 하고 물건을 사서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동참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행할 때 성경의 말씀이
나의 삶에도 이루어지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 율리교회 모든 성도들의 삶에도
성경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지는
복과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