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산으로 향하는 차 내에서 강 대장님께서 새로이 입회를 하신 새내기 느림보 한 분을 소개 하셨는데 우리 느림보의
최고 어른이신 장 사장님의 소개로 오셨다는 김 사장님이 바로 그 분이시다. 놀랍게도 칠순을 앞 둔 나이 임에도 안즉
꺼증도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하신다. 어떤 일화가 펀득 떠 오른다.
수행을 하시는 선승들은 여름 석달 동안을 하안거라고 하여 외부와 출입을 끊고 집중적으로 참선을 하신다. 경우에
따라선 용맹 정진이라고 하여 약 일주일 정도를 잠도 주무시지 않고 참선에 열중 하시기도 하는데 이 안거가 끝나면
이곳 저곳을 다니시는 만행이란 걸 하면서 또 다른 배움을 갖게 되는데 어느 스님께서 하안거가 끝나던 전날 밤 꿈인지
생시인지 내일 절 문을 나서서 만행을 시작하면서 맨 처음으로 만나는 어떤 인물이 너에게 참으로 많은 깨우침을 줄 것이란
말씀을 듣게 된다. 다음 날
일주문을 벗어 나서 사하촌이 있는 마을 입구에 있는 다리에 당도를 하니 건너 편에서 어떤 젊은 여인네가 머리를 산발한 채
한 손에 든 쐐주병을 나발로 불면서 갈짓자 걸음으로 다가 오면서 훌쩍인다.
인생이란 흘러 가는 구름 처럼 무상한 것입니다. 성냄도 욕심도 버리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시면 될 일을 어찌 젊은 아낙이
무신 말 못할 곡절이 있어 벌건 대낮 부터 대취한 채로 다리에서 아래로 떨어 질려고 하고 계십니껴?
너 가튼 놈 때문에 내 꼬라지가 오늘 날 요 모양 요 꼴이야 임마. 하면서 귓싸대기를 한대 올려 붙이곤 휭 허니 지나 가 버린다.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내 밀라고 아무리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지만 뿔따구가 대가리 끝 까지 치밀어 오른 이 선승께서 마을로
들어 와서 수소문을 해 보았더니 술 취한 그 아낙은 아줌마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시집 못 간 노처녀 흐 흐.
난 그 스님과는 달리 절멋던 시절엔 육보시를 무쟈 마니도 했었는데 어째서 오늘날 요 모양 요 꼴인지 ...
칠순 꺼증 직장을 다니시는 분이 계시니 나 처럼 안즉 꺼증도 뺨따구니에 솜털이 뽀송 뽀송한 인간들이 백수 노릇이나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부러움반 존경심반과 함께 떠 오른다.
오늘의 유명산 들머리인 선어치 고개에 느림보 리무진이 가뿐 숨을 내 쉬며 당도하자 어마나! 제법이나 매서븐 칼바람이
요동을 치고 있다.
꽝 꽝 얼어 붙은 손으로 어기적 거리며 우선 아이젠을 착용 하노라니 집꾸석에서 아랫목에 뱃때지나 처억 들러 붙이고 엎어 져서
호박전이나 붙여 먹을 일이지 연말연시 그것도 동장군이 엄습한 이 겨울에 이 무신 개고생을 돈을 주고 사서 하는 가 하는
생각만이 간절하다.
요따우 방정 맞은 생각도 잠시 잠깐이다.
능선길에 오르자 큰 나무 작은 나무 가릴 것 없이 온통 두툼한 얼음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란제리 팻션쇼우를 보는 듯 하다.
모든 이들이 신비스런 자연현상에 탄성을 질러 댄다.
우리 느림보가 이곳 유명산으로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조물주께서 지난 밤에 잠시 내려 오셔서 온 산에 석회 반죽을 드리
부었던가? 이도 아니면 유명산 산신령께서 이른 새벽에 유명산 정상에서 소피를 보셨던가?
처절토록 아름다운 얼음비의 향연에 몸을 맡기고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얼음밭을 걸어 본다.
연말연시가 다가 오면 늘 생각 나는 내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주 오랫만에 참석한 송연회에서 이 친구를 만났을 때의 그 충격은 오늘의 유명산 얼음비 만큼이나 충격
그 자체 였었다. 이 친구는
이름 보단 뱃놈이란 별명으로 더욱 명성이 자자한 놈인데 물론 뱃놈이란 별명은 고향이 바닷가인 경북 영덕인 탓도 있지만
그 보단 초등학교 다닐 적에 담임 선생님이 손수 지어 주셨다고 한다. 그 유래를 알고 보면 참으로 황당하다.
역사 시험에 이 순신 장군께서 전사 하신 곳이 어디냐는 문제가 나왔었는데 뱃놈의 대갈통에 노량해전이나 노량대첩 같은 해답이
들어 있을 턱이 만무하다. 얼결에 앞에 앉은 친구의 답안지를 흘겨 보니 " 바다에서" 라고 써 있었던 가 보다.
정답이 무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바다에서 라고 답을 쓰기엔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뱃놈이
답안지에 " 배 위에서 " 라고 써 갈겼던 가 보다. 채점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포복절도를 하시며 뱃놈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시곤 넌 앞으로 뱃놈 이라고 손수 아호를 지어 주셨다고 한다.
이 뱃놈은 고등학교에 들어 와서도 공부하고는 완전히 철벽을 쌓아 놓고는 교련복에 번쩍이는 미제 워카를 신고 돌아 댕기면서
쌈박질이나 하다 정학을 다른 친구들 학교 다니는 날 보다 더 많이 받았던 놈인데 졸업할 무렵 선생님께서 돌리신 설문지에
장래 희망을 뽕짝 가수로 써 놓을 정도로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나 훈아나 이 상열씨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소풍날
희극 배우 김 희갑씨 처럼 약간 합죽한 턱을 오무렸다 벌렸다 하면서 갖은 개폼과 함께 노래를 불러 대던 뱃놈을 생각하면 지끔도
웃음이 나오는데 송연회에 참석하니 이 뱃놈이 쎄련된 뿔테안경을 끼곤 아주 젊잖은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혼자서 저 뱃놈의 직업이 과연 무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었는데 금새 답이 나온다. 잘 하면
밤 무대에서 활동 하는 삼류 트로트 가수? 이도 아니면 야바위나 사기꾼? 송연회가 끝날 무렵 이 뱃놈과 수인사를 나누며
그냥 인사 치례로 물었을 뿐인데 들려 온 답변은 모 여고에서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 수 수학선생?
연탄 화덕이 들어 있는 원형 테이블 아래로 온통 도루목 지느러미와 뼈다귀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대구 시내 어느 허룸한 선술집
에서 이차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뱃놈이 수학교사를 하고 있다는 말은 아무래도 뻥일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검정고시로 교사
자격증을 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넌지시 물어 보니 놀랍게도 사년제 정규 대학을 당당히 졸업했다는 것이다.
70년대만 해도 사년제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선 국가에서 시행하는 예비고사를 치루어야 하는데 이 예비고사에서 사년제 대학
정원의 2배수만 합격 시키고 나머지는 응시 자격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이 예비고사에만 붙으면 전기 대학에서 낙방하고
후기 대학을 응시하지 않고 재수를 결심하는 친구를 많기 때문에 눈만 약간 아래로 하향 조정하면 후기 대학엔 미달이 되는
학과가 많기는 했었다. 뱃놈이
예비고사를 치루는 응시장소에 전날 수험표를 받을려고 소집이 있어 가서 보니 감독관하고 마주 보는 맨 앞자리가 자기 자리더란
것이다. 이런 자리는 아무리 컨닝에 뛰어 난 재주를 가진 뱃놈이라도 대책이 없는 통에 급거 그 날
오밤중에 털고 일어 나선 예비고사를 치루게 되는 학교 교실로 몰래 잠입을 한 뱃놈이 우선 자기 자리를 옆 줄 맨 뒤로 돌리고
나선 자기 뒤에 있는 모든 책걸상을 한칸씩 앞으로 당겼다는 것이다. 심야에
그것도 교실 실내가 마루 바닥이여서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제법 큰소리가 나는 작업을 도둑넘 처럼 눈을 부라리고 작업을 하는
일은 그 누구도 감히 발상을 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설령 발상을 하였다고 하여도 그런 일을 실행할 담력이 없어서 못 할
노릇인데 이 천하의 뱃놈은 맨 뒷자리로 가선 앞에 앉은 넘 등짝에 송곳을 쑤셔 대면서 컨닝을 하여 합격을 하였단 것이다. 구럼
사범대 수학과면 아무리 후기 대학이여도 미달은 없을 터인데 어떻게 뱃놈이 합격을 하였느냐구요? 이 또한
알고 보니 참으로 간단한 일이더만요.
이미 전기 대학에서 합격을 한 친구를 포섭하여 후기 대학에 나란히 즉 수험번호를 바로 앞과 뒤로 배정을 받도록 접수를 시키곤
앞에 앉은 친구는 일부러 낙방을 하면서 뱃놈과 시험지를 바꿔치기 하는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런 무용담을 들으면서
벌린 입을 다무리지 못할 즈음에서야 그날 도루목이 집에서 함께 막걸리 마시던 또 다른 한 친구가 그제서야 입을 뗀다.
학창시절 사고만 치고 다니던 뱃놈이 문제아가 아니라 인생을 살다 보니 사실은 자신이 문제아 였다는 것이다.
곱상한 얼굴에 금테 안경을 끼고 다니던 이 범생 친구는 현재 법무부 장관을 하고 계시는 권 .. 장관님의 한살 아래 아우인데
수재 집안 답게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깎은 알밤처럼 모범생 이였다. 무 문제아라니 당신이 어째서 문제아 였냐고?
이 범털 같은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성장하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 부터 야단 한번 맞은 적이 없이 생활을 하였으며
어디 가서 시험에 떨어져 본 적 또한 없었으므로 늘상 자신의 현재 생활에 안주를 할 줄만 알았지 이거이 아니다 더욱 분발을
해야 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져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단 것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을 지언정 막상
사회란 곳엘 나와 보니 공부만이 모든 것이 아니더란 것이다. 출세를 위해선
우선 윗놈한테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아랫놈은 발길로 무자비하게 짓 밟을 수 있는 즉 자전거 타기 처세술이 우선 부족하고
더불어 세상을 사는 요령이나 뒷돈을 찔러 주는 사바 사바 기술 또한 전무한 통에 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물론 이 뱃놈은 이미 오래 전에 하던 수학 선생질도 때려 치웠다.
물 좋던 시절 과외를 하여 떼돈을 벌어 사 둔 빌딩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만 해도 평생을 뱃때지 터지게 먹고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에지간한 놈은 눈깔 뒤집어 진다.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기만 했던 유명산 정상에서 많은 느림보님들이 인증샷을 찍으며 하하 호호 거리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이 한 해를 어김 없이 또 보내며
난 과연 제대로 된 문제의식이나 한번 가져 본 적이 있었던 가 하는 반성을 뼈 저리게 하면서 능선길을 타고 내려와 주차장
인근으로 다가 가니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어떤 분이신지 알 수가 있는 어떤 느림보님이 갈림길에 서 계신다.
남을 위한 봉사정신이 뼛속까지 깊이 배기신 두발로님 이시다. 추운
날씨를 마다 하시고 호옥 늦게 오시는 느림보 동료들이 알바를 할까 해서 갈림길에서 교통 정리를 하고 계시는 것이다.
사실 나 같은 인간은 저룬 훌륭한 일을 할 엄두도 내지 않을 뿐 더러 그런 일을 해야 겠다는 발상 그 자체를 하질 않는다.
올 한 해 느림보에 와서 여러 훌륭하신 분들로 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면서 송연 모임을 갖게 되는
솔 가든 출입문을 밀고 들어 가니 한바탕 푸짐한 잔치가 지둘리고 있다.
독수리 보다 쫴꿈 더 작은 토종닭을 능이 버섯과 함께 푸욱 고와서 상에 올린다. 오늘은 튿어 지는 날이다.
이룬 성대한 잔치를 베푸어 주신 강 대장님 내외분과 여러 운영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더 지면을 통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막상 문 밖을 나서면 갈 곳이 없는 변변찮은 이 인간을 조선 팔도 이 구석 저 구석 꺼정 델꼬 다녀 주시며 배 불리
먹여 주시고 천상에서 내려 오신 팔선녀 보다 더 아름다우신 우리 느림보 여전사님 틈바구니에서 쐐주 꺼정 멕여 주신 점
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뼈 저린 감사 드립니다.
분당 탄천변에서 공포의 상어잇빨 돌삐 인사 드립니다.
|
첫댓글 언제나 다정한 오라버니 같은 돌삐님..이 함께하시길
가끔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튀어나와 곁이 있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는 하시지만..
꾸밈없고 솔직한 그 심성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매주 연재하시던 산행기라기보단 단편 소설같은 재미있는 돌삐님의 글을
이제는 가끔씩 봐야한다는 서운함은 있지만
그래도 느림보를 사랑하시는 마음에 일부러 시간 내주시는 그마음도 너무나 고맙습니다.
오늘도 재밌는 글..쿡쿡 웃으며 읽어 내립니다.
새해에는 좀더 자주 느림보님들께 재밌는 글..부탁드립니다.
연말 송년회 많으실텐데..너무 많이 드시지말고 늘
강 대장님 덕분에 지난 한 해도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세상 구경 정말 많이 했습니다.
계사년 새해엔 더욱 번성하는 우리 느림보 산악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제가 2010년 3월 말 사량도 지리망산에서 처음으로 느림보의 일원이 되었었는데 그 전해인 2009년은
제게 참으로 힘든 한해 였었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릴 곳을 찾다 우연히 느림보를 알게 되어
참으로 좋은 분들과 교우를 하며 세상구경 많이도 했습니다. 강 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벗님들께 새해를
맞아 다시 한번 더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모든 느림보님들 계사년에도 더욱 강건하신 모습으로
함께 산행 하십시다.
돌삐님 넘오랜만에 뵈었네요.
반가웠습니다.늘건강하시고잼날글 자주볼기회주셔야지요.
유일하게보는 둑서중하나인데 ~~~~요
***메리크리스마스***
사랑스런 껏님! 헐 우리 안동 껑꺼이들 증말 출세 마니 했습니다. 명품 느림보 산악회의 일원이 되어
매주 전국을 주유하며 산행을 할 수 있다 함은 그 자체가 축복 받은 인생이라고 해야 겠지요.
새해엔 하시는 사업 번창하여 돈벼락이라도 맞았으면 울매나 좋겠습니까?
내년엔 가끔씩이라도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제법 많은 나이에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헛배 덕분에
산행에서 늘상 배실 배실 거리는 에쉴리 큰언니를 올해도 어김없이 잘 토닥거리고 케어해 주셔요
선근 공덕이 어디 따로 있니껴?
간만에 방문하여 키득거리며 읽고 갑니다ㅎㅎ
갑자기 사업의 길로 들어서 산에가기도 힘드네요
늘 즐거움과 함께 여러 상상을 일으키게 하는 돌삐님의 글 즐독했슴다
2013년도에도 건승하시구요~~^^
울진 왕피천 계곡에서 뵈온 이래로 은은한 광배가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하는 지원님의 고우신
모습을 도무지... 흑 흑. 카더라 방송에 의하면 지원님이 수원 인근의 돈을 갈쿠리로 긁어 들이는 통에
은행 마다 현금이 고갈되어 난리라고 하더만요. 능력있는 워킹맘 보다 더 아름다운 건 이 세상에 업져.
제 예팬네는 집꾸석에서 해종일 서방 잡아 묵을 궁리만 하고 하나 밖에 없는 고명딸은 직장엘 다니는데도
이 애비만 눈까리에 띄면 돈 뜯어 낼 궁리만 하니 에효 이 너무 팔자 참으로 험상 궂네요.
새해 더욱 다복 하시고 가끔씩이라도 느림보 산행에서 뵈었으면 증말 좋겠습니다.
스님은 ....?
뱃 놈도 대단합니다.재미만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님이나 신부님들은 성직자이기 전에 노처녀 제조기라고 할 수 있져.
고슴도치 처럼 까실 까실 하게 밀어 붙인 머리에 스님 바지를 입고 산헹에 열중 하시던 경포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서언 합니다. 무지개 마을 주공 12단지 앞에 있는 약수터 수질이 부적합으로 오래도록 판정이
나는 탓에 가끔씩 약수터에서 경포님을 뵙던 쏠쏠한 재미도 요즘은 참으로 뜨음 합니다.
나이 먹어선 우짜든동 건강해야 됩니다. 우리 함께 밝고 희망 찬 새해를 기대해 보죠 무어.
즐감!
뻐 뻥여사님 즐감이 아니라 증말 올만입니다. 캬 캬. 지난 해는 앓던 어금니 같던 아드님도 장가 보냇삘고
새롭게 일도 벌이시고 참으로 바쁘셨죠? 껏님 동생 말에 의하면 에쉴리 큰언니가 돈독이 오르셔서 산에도
아니 가시고 주야장창 일을 하시느라 몸이 무척이나 마니 수척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원래가
약하신 몸인데 수척 꺼정 하시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많이 됩니다. 올 해는 느림보에서 빛나는 산행으로
원기 회복을 하셔서 예전의 우람한 모습으로 꼬옥 다시 변신 하셔요. 히 히.
젊었던 시절에 맨손으로 황소도 때려 잡던 그 팔뚝이 어쩌다가... 각설하고
제 고명딸 중매해 준다던 그 뻥은 절대로 뻥으로 끈내면 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