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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회의록 (1908) - 안국선 - |
[줄거리] |
인간사에 대해 개탄하다가 흰 구름 아래의 더없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잠깐 잠이 들어, 짚신을 신고 대지팡이를 흔들며 유유히 봄길을 나서는데, 발길이 가 닿은 곳은 '금수 회의장'이라는 곳의 현판 앞이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무슨 물건이든지 의견이 있으면 누구든 서슴지 말고 말하고, 듣고 싶으면 회의 내용도 각자 자유롭게 방청하라'라는 알림판을 보고 있는데 길짐승, 날짐승, 벌레, 물고기, 풀, 나무, 돌 등의 행렬에 의해 엉겁결에 밀려들어가 그 회의를 모두 보게 된다. 이들은 저마다 인간 사회의 갖은 부도덕과 비합리, 모순들을 낱낱이 드러내어 비판하고 인간을 동물의 밑으로 깎아 내린다. 개회사에서 회장은, 첫째, 사람된 자의 책임을 의논하여 분명히 할 일. 둘째,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할 일. 셋째, 요즘 세상 사람들 중에서 인간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할 일. 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토의하여 자신들과 사람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일삼으며 반성하지 않으면 '사람'이라는 이름을 빼앗고, '이등 마귀'라는 이름을 갖게 할 것을 하늘에 아뢰겠다고 강조한다. 이어 금수들이 하나씩 등장하여 제각기 인간을 비판하고 조소하는 연설을 한다.
1) 연미복을 입은 까마귀는 연단으로 맨 먼저 나와, 얼마만큼 자란 까마귀는 제 어미에게 먹이를 갖다준다는 '반포지효'를 강조하면서 동서양에서 미덕으로 강조하는 효도의 정신을 잃고 부모의 뜻을 어기고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인간의 불효함을 풍자하고, 까마귀가 곡식이 있는 논밭에 날아드는 것에 대해서는 해충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까마귀를 흉조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좋지 못한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려주기 위한 것이지 까마귀가 흉하고 꺼릴 만한 새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2) 여우는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여우를 '호가호위'라는 말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꾀를 부린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여우의 꾀에 속아 넘어간 호랑이가 오히려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라고 한다. 반면에 인간은 하나님의 위엄을 빌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는 않고 강대국의 세력에 빌붙어 제 나라를 망하게 하고 동포를 괴롭히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인간이 여우를 두고 요망하고 간사한 동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오히려 상서로운 동물이며 인간이 오히려 요망하고 더러운 존재라고 반박한다. 3) 개구리는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소견 좁은 인간을 풍자한 '정와어해'를 강조한다. 외국의 형편도 모르고 천하대세도 살피지 못하면서 공연히 아는 체하며 떠들어 대는 인간을 풍자하면서, 개구리 자신은 소견이 좁을지언정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지는 않는다고 열변한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체하기 일쑤요, 조금이라도 알면 악용하기 일쑤요 제 욕심 채우는 일에 급급하다고 말하며 주로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경계한다. 그리고 개구리의 자손은 개구리를 닮는데 인간의 후손은 인간을 닮지 않고 마귀의 자식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4) 벌은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모습과 마음을 닮았으나 타락하여 흉칙하고 악독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나 속으로는 남을 해친다는 인간의 양면성을 비판하는 '구밀복검'에 대해 강조한다. 벌에게 꿀은 양식이요 침은 자기방어를 위해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입속에 있는 말은 참으로 변화무쌍하여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악독한 것이라고 하며, 또한 참으로 입에 담지 못할 흉악한 소리하기가 다반사라며 정직함을 강조한다. 5) 게는 인간들이 게를 무장공자라고 하며 창자(지조와 절개)도 없는 존재라며 지조도 절개도 없는 동물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게는 아예 창자가 없지만 사람들의 창자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이 온통 썩어 더럽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온통 더럽고 추악하고 비열하고 악독한 것으로만 가득차 있어 구린내가 물큰물큰하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창자가 없는 게는 옛날부터 많은 선행을 했을 뿐 아니라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발을 들여놓을 데가 아닌 곳에 분변치 못하고 들어가서는 화를 자초한다고 그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6) 파리는 조강지처도 버리고 유지나 지사를 고발하여 감옥에 넣는, 이른바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소인배들을 비난하는 '영영지극(세력이나 이익을 얻으려고 골똘하는 모습의 극치)'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파리를 보고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말하지만, 사람들이 오히려 간사하고 쓸개에 가 붙었다가 간에 가서 붙었다가 하는 존재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파리들은 먹을 것을 보면 절대 혼자만 먹지 않는데 비해, 인간들은 서로 골육상쟁하기를 예사로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파리를 쫓아도 날아가지 않는다고 미워하는데, 사람들은 쫓을 것은 안 쫓고 안 쫓을 것만 쫓는다고 역공을 편다. 사람들이 정작 쫓을 것은 마귀, 더러운 생각, 욕심, 간신배 등이라고 말한다. 7) 호랑이는 옛말에 '호랑이를 기르면 후환이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인간의 가혹한 정치와 권력의 남용이 산속의 호랑이보다 더 포악하고 무섭다는 말로 '가정맹어호'를 주장한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두고 포악하다고 해서 무서워하지만, 호랑이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치대로 살 뿐이며, 오히려 인간의 포악성은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학문과 지식을 악용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무기를 개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잔혹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호랑이는 포학무쌍하다고 하지만 천품은 은혜를 알고 의리를 갚을 줄 아는 동물이라고 고사를 인용하여 반박한다. 8) 원앙새는 어디를 가거나 오거나 할 때에 항상 같이 다닌다는 '쌍거쌍래'를 통해 화목한 부부의 의를 강조하며, 인간의 추하고 음란하고 복잡한 남녀관계와 가정의 화목함을 경시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회의가 끝나 모두 나간 뒤에 '나'는, 모든 금수에게 이렇게 비판과 비난을 받는 처참한 사람을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는가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하늘은 아직도 사람을 사랑한다 하니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인간을 구제할 가느다란 지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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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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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
◈ <금수회의록>은 우화적인 기법을 통하여 개화기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비리에 젖어 간교하게 목적을 달성하는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사를 조소하고 비판한 작품이다. 인간은 사회적 자아이면서도 개인적 욕구에 불타는 존재이다. 더구나 격변기의 혼탁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속에는 탐욕과 간교함, 메마른 욕구의 달성, 쓸개없는 듯한 행위들이 그대로 배어날 뿐 아니라 권력 지향적인 비호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욕구를 달성하려고 한다. 소설의 서사 구조가 느슨하면서도 풍자적, 우화적인 기법에 의해 소설 자체의 문학성을 획득하고 있다.
◈ <금수회의록>은 꿈의 장치에 의해 서사화되고 있다. 이 작품의 서두와 종말은 1인칭 관찰자인 '나'의 꿈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으며 금수회의의 내용은 꿈 속에서 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의 꿈 - 금수 회의 - 꿈에서 깨어남'의 구조로 엮어져 있어, 주인공인 '내'가 본 또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액자소설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꿈의 장치는 조선 소설의 몽유록계 소설을 이어받고 있는데, 굼이라는 허구적인 성질을 통해서 현실적인 의미를 전달하려는 독특한 문학 양식이다. 대개가 현실적 비판과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칠해진다. 이러한 몽유류계 소설은 개화기 신채호의 <꿈의 하늘>로 이어지고 이광수의 설화를 서사화한 <꿈>에 계승되어 있어서, 꿈의 모티브는 한국 소설의 중요한 한 형태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 <금수회의록>의 바탕에는 기독교 사상이 흐르고 있어 인간 구제의 한 가능성을 그 속에서 나타내고 있다. 현재의 사회는 복잡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금력에 의해 혼탁해지는 사회이다. 다윈의 진화론적인 인간관과 적자 생존에 의한 투쟁으로 인간의 욕구는 끝없이 펼쳐져 간다. 인간악의 모든 근원이 이 권력과 금력의 횡포와 그 추종에 있는 것이다. 금수회의를 보고 나서 인간이 동물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을 통탄하는 화자는 '하늘은 아직도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악한 일을 많이 했을지라도 진심을 다해 반성하고 뉘우치면 다시금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여, 성찰과 회개에 의한 인간의 구원의 가능성을 진실한 참회와 사랑에서 찾고 있다.
◈ 결국, <금수회의록>은 한말(韓末)의 혼란된 시대상황 속에서 국권수호와 자주의식을 고취하며, 무너져 버린 인간 윤리의 회복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세계를 비판한 정치 풍자 소설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이 소설은 동물들의 연설을 통하여 개화기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정치적 자립, 민권사상 및 도덕의 정화와 정치적 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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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신소설, 우화소설, 정치소설, 풍자소설, 액자소설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배경 사상 : 재래적 윤리관과 기독교 사상 ▶ 문체 : 산문체, 연설문체 ▶ 표현 및 특성 : 환몽구조(액자식 구성), 연설 회의 형식, ▶ 주제 ⇒ 인간세계의 모순과 비리, 타락성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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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아 봅시다] |
◆ 우화소설 · 정치소설 우화소설은 주로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 행위의 우매함과 타락함을 풍자,비판하고 이를 계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특이한 기법의 서사문학이다. 이런 양식의 소설은 부조리한 현실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의도된 저항 정신의 발로이자 건강한 도덕심을 제창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정치소설은 정치 사상이 지배적 역할을 맡고 있거나 정치적 환경이 지배적인 배경으로 되어 있는 소설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국민의 정치적 계몽과 개인적 정견 발전 내지 사회 개량의 수단으로 나타나거나, 국권신장 의식을 반영하고 부패 관료의 학정을 폭로하는 풍자적 무기로 이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소설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우화적 정치소설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까마귀, 여우 등의 동물을 내세워 우화 형식을 빌렸지만, 자신의 정치·사회 의식을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어조로 표현하여 국민의식의 계몽을 추구했던 것이다.
◆ '금수회의록'에 나타난 작가의 태도 이 작품은 당시 사회와 국민들에 대한 강렬한 풍자와 비판 정신이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이제까지 제기된 모든 문제를 기독교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안이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수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느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 자매는 깊이 깊이 생각하시오.'로 끝나는 대목은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을 침탈하고 내정의 부패가 극심하던 시기에 전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발전에 대한 이해와 현실의 문제점을 통찰하는 예지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안국선으로서는 당연한 논리적 한계로 보이며, 이 점은 그가 친일 인사로 변절하여 <공진회>를 쓴 사실에 견주어 볼 때 충분히 검증될 수 있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