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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유념해야할 경고의 귀중한 말씀들
우리들은 주님의 길을 알기 위하여, 또한 종교적인 허위(虛僞)들에 속지 않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거짓된 이론들과 미혹적인, 강신술적 견해들로 가득 차 있어, 밝은 영적 식별력을 흐리게 하고, 진리와 거룩함에서 떠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이 때를 만난 우리들은,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5:6)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SM 170.1) 침례‘요한’이 한 것과 같은 그러한 사업과 사명을, 이 마지막 날에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께서 택하신 기구들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에게 기별들을 주셨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분께서 보내시는 권고와 경고의 말씀에 유의하기를 바라신다.(2SM 150.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성령께서는 받은 빛을 부인하지 않고, 재림운동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과 여전히 함께 하셨다. ‘히브리서’에는 이러한 위기에 처하여 시련 중에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권면과 경고의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5~39)(GC 407 .1)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혀지려고 한다. 이 엄숙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주변에서 영혼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안락을 좋아하는 우리의 이기적 마음에 붙들려 있는가?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무감각하게 되어 버렸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이 있다는 것을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는가?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계층에 속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을, 그대들에게 주신 것이 헛된 일인가? 그분께서 계속해서 그대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보내신 것이 헛된 일인가? 그대는 세상에 바야흐로 임할 일에 관한, 영원한 진리의 선포를 믿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이 사람들에게, 내리기 직전임을 믿는가? 그러면서도 그대는 여전히 안락하고, 게으르고, 부주의하고, 쾌락을 사랑하면서 앉아 있을 수 있는가?(5T 464.2)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 아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는, 별들처럼 질서를 갖게 될 것이며, 그분의 광채를 비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목사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그들의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임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그들에게 기대하신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알고 있는 교회들을, 놓아두고 나가서 새로운 교회들을 세우며, 하나님의 경고의 기별을 모르는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하라.(6T 414.2) 깨어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 일이다. 성경말씀을 연구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에게 세상과 짝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저희 가운데서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한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7,18).
그대가 정치문제를 가지고 투표하는 것에 관하여,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것을 펜으로나 음성으로 선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신자들은 셋째천사의 기별과 관련이 없는, 문제들에 관하여는 침묵을 지킬 필요가 있다.
만일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백성들이 있다면, 저들은 필연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다. 과거에 여러 가지 놀라운 구상들과, 꾸며진 계획들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선포하거나 무엇을 놓쳐서는 안 되리라는, 일종의 불타는 욕망이 남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으나, 저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많은 문제들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 침묵을 지키신 것이야말로 참된 웅변이었다...(2SM 336.1)
어두운 구름처럼 얼마나 두려운 기만과, 맹목이 이스라엘을 덮었는가! 이 맹목과 배도는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저들의 교만과 죄 때문에 보내어 주신, 견책과 경고의 말씀을 유의하지 않음에 따라 서서히 임하였다.
이 두려운 위기의 때에 우상숭배적인 제사장들과, 배도한 왕 앞에서 그들은 중립적인 입장에 머물렀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짓고 있는 죄 중에서, 그 어떤 죄보다도 진노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위급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신앙적 위기에서 무관심과 중립은, 하나님께 무거운 죄로 받아들여지며, 하나님께 대한 최악의 적대감과 같다.(3T 280.3)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하나님께서 증언 가운데 주신 충실한 견책을 멸시한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그 사악한 왕이 그렇게 했듯이, 기록된 견책과 경고의 말씀을 태워 버리는 지경까지 나아갔다는 것이, 이상 가운데서 내게 보여 진바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협들에 대하여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의 집행이 방해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의 선택한 도구들을 통하여 말해진 여호와의 말씀에, 도전하고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그분의 노를 격동시킬 뿐이며, 마침내 범죄자에게 확실한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자주 죄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견책을 전달하고자, 선택하신 대리자들에 대한 분노가 불붙는다. 항상 그러해 왔고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한 것 때문에, ‘예레미야’를 박해하고 투옥시켰던 그런 동일한 정신이 오늘날도 존재한다(4T 180.1)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처럼 오늘날 그분의 교회를 부르셔서, 세상의 빛으로 서게 하셨다. 진리의 예리한 칼, 첫째와 둘째와 셋째천사의 기별로써 그분은 그들을 교회들로부터, 또한 세상에서 분리시켜 그분 자신에게, 거룩한 접근을 하게 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그분의 율법의 보존자로 삼으시고, 이 시대를 위한 위대한 예언의 진리들을 그들에게 맡기셨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거룩한 성경말씀처럼, 이것들은 세상에 전해져야 할 신성한 위탁이다.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는, 하나님의 기별의 빛을 받아서 세상의, 방방곡곡에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그분의 대리자로서 나가는 백성을 대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갈바리의 십자가는 말한다. “영혼들의 가치를 바라보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어떤 것도 이 사업을 방해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그것은 영원처럼 멀리까지 미쳐야 할 사업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희생을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에 대하여 나타내신, 사랑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행동하게 할 것이다.(5T 455.2)
우리는 이 경고의 성취를 보고 있다. 이보다 더 철저하게 성경 말씀이 성취된 적은 없었다.(8T 99.1) 왜 고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처럼 쉽게 잊어버렸는가?
그 백성들은 그분의 위대하고 능력 있는 행사와 그분의 경고의 말씀들을, 그들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그들에 대한 그분의 놀라운 행사들을 기억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책망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8T 113.6)
나는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사업을, 보지 못하는 위험에 처한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들을 따르라는 교훈을 받았다. 주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진리의, 보관자로 삼으셨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계1:7)고 선포하는, 계시자의 언어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해야 한다.(8T 116.1)
우리는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위태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사단은 미구에 세상의 끝이 올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젊은 남녀들을 그의 사업에 밀어 넣기 위하여, 온갖 기회를 이용하고자 작정한다. 그는 그들을 곁길로 벗어나게 하고자, 많은 그럴듯한 기만들을 고안해 낼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쓴 경고의 말씀을 주의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8T 223.3) 그리스도의 모본은 기도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만일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자들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책임을 깨닫게 된다면, 그들은 열렬한 기도의 필요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의 모본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셔서, 그곳 그늘진 나무들 사이에서, 온 밤을 기도로 보내곤 하셨다. 그 자신에게 죄의 얼룩이 없었던—축복의 보고, 폭풍이 부는 바다 위에서 공포에 질린 제자들에게, 하늘의 축복으로 밤 사경(밤3시부터 새벽6시)에 음성을 들려주시고, 말씀으로 죽은 자들을 무덤에서 불러내신—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그분께서 구원하러 오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분은 탄원자가 되어 그분의 아버지의 손에서, 새로운 능력의 공급을 구하고, 인류의 대리인으로서 새롭게 되어 활기를 얻어서 나오셨을 때, 자기 자신을 고통 중에 있는 인간과 동일시하셨고, 기도의 필요에 대한 하나의 모본을 그들에게 보이셨다.(Pr 18.4)
절제사업을 강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자세를 취하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절제의 현안을 다루기를 원하신다. 먹고 마시는 일에 그릇된 습관을 가짐으로써, 사람들은 사상과 지성을 위한 자제의 능력을 파멸시키고 있다. 도끼를 들어 저들이 출입하는, 술집을 부숴 버릴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탄이 저들의 길에 가로질러 놓고자 하는, 지옥의 그림자를 꿰뚫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 줄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전능하시다. 주님께서는 저들의 심령에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일을 해 오신 것을 보았다.(MTC 134.6)
다음과 같은 우리 주님의 경고의 말씀이, ‘감람산’으로부터 수 세기를 통하여, 엄숙하게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Mar 35.6)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눅8:18)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경고의 말씀이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21) ...면밀히 살피라. 이것은 하나님의 권고이다. 그것에 주의하겠는가?(Mar 155.4)
성령께서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성령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종이 아니다. 그분은 통제하시는 힘을 가지고 계신다. 성령께서는 진리를 각 사람의 마음에 비추는 일을 하시며, 목사가 자신을 굴복시킬 때, 그 목사의 설교를 통해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성령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걷고, 인간 대리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공기와 같이 영혼을 둘러싸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로 말씀하신다.(VSS 285.1) 우리 세상의 모든 것은 격동하고 있다. 다가오는 사건들이 우리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시대의 징조는 정말로 불길하다. 인간적이고 땅에 속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신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휴식의 순간을 주셨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빌린 것이며, 그것이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무지 속에 멸망해가고 있는, 우리의 동료들을 위해서 일하도록 하신 것을, 할 수 있도록 신성하게 보존해야 한다.
경고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야 한다. 결코 지체해서는 안 된다.(TM 364.2) ‘소돔’이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롯’에게 기별을 보내,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7)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동일한 경고의 음성을 들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 어다”(눅21:20,21). 그들은 소유물의 어느 것이라도 지키려고 머무르지 말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망하여야 하였다.(PP 166.3)
그러나 그 율법이 얼마나, 무시를 당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공공연히 반역하는, 오늘날의 세상을 보라. 이 시대는 진실로 배은망덕한 시대요, 형식주의와 불성실과 교만과, 배도가 충만한 완고한 세대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하고 진리를 미워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율법이 거절당하고, 그분의 사랑이 멸시를 받고, 그분의 대사들이 냉대를 당하는 것을 아신다. 예수께서는 자애로운 말씀을 하셨으나, 그 자비로운 말씀이 감사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경고의 말씀을 하셨으나,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인간의 영혼의 성전 뜰은 거룩하지 못한, 거래장소로 변하여 이기심, 질투, 교만, 악 등 이 모든 것을 품게 되었다.(PK 185.1)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영향을 갖게 될 것이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모든 방해들을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것으로, 대항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밀집되어 있는, 진리들을 연구하지 않을 것인가?
형제들이여 우리는 팔짱을 끼고 있을 시간이 없다. 여호와께서는 속히 오고 계시며, 우리는 자신들을 위로하고 생애와 품성이 잠자는 것으로, 사로잡힐 때까지 경고의 주의를 들어오고 있다.
우리에게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어떤 진리보다도 더 엄숙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아무것도 없다.(2SAT 49.1)
오늘날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심고, 집을 짓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상인들은 여전히 사고팔고 있다. 사람들은 최고의 자리를 위하여 서로 다투고 있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극장, 경마장, 도박장 등으로 몰려들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흥분적인 일이 편만하다. 그런가 하면 은혜의 시기는 신속히 마쳐지고 있다. 자비의 문은 미구에 영원히 닫혀 질 것이다.(SJ 182.2)
절제생활- 이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제목이 없음— 하나님께서는 남녀들에게 그들의 위험에 대하여, 각성하도록 경고의 기별을 보내셨다. 그러나 수천 아니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의 위험을, 지적해 주는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먹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부적당한 음식을 먹으며 취하게 하는 술을 마심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노예로 굴종시키고 있는 사실을, 깨달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명과 건강의 법칙을 범하며 마침내 식욕의 사슬에 속박되고 만다.(Te196.1)
우리는 우리의 방법과 정신을 주의 깊이 살펴보고, 영혼들의 운명이 걸려있는 사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업을, 어떤 태도로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바로 최고의 의무가 우리에게 지워져 있다.
사단은 악한 자들과 연합하여 진리를 믿는 자들에게, 신속하고 혹독한 고난을 주기 위해 사단의 대리자들의 총 연합체를 선도하고자, 불타는 열성으로 준비를 갖추고 있다. 우리의 형제들에게서 나오는 지혜롭지 못한 모든 말은, 흑암의 왕에 의하여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9T 241.2)
나는 질문하고자 한다. 천사 장 ‘미가엘’이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 9)고 말하였는데, 어떻게 감히 유한한 인간의 지성이 하나님의 성도들을 대적하는, 지옥의 세력을 격동시킬 부주의하고 위험스런 말을 하겠는가?(9T 242.1)
우리가 어려움과 고난을 피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7).
그러나 실족케 하는 일이 다가올 것이므로, 우리는 지혜롭지 못한 말과 불친절한 정신의 표현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육신적인 기질을, 자극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9T 242.2)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본을 시야에서 잃어버리고, 그분께서 가르치신 방법을 본받지 않을 때, 그들은 자만해져서 그들 스스로의 무기를 가지고, 사단을 대항하고자 나가게 된다. 원수는 그의 무기를 사용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무기를 어떻게 향하게 할 것인지 잘 안다. 예수께서는 순수한 진리와 의의 말씀만을 하셨다.(9T 243.1)
구주를 소개하는 데 있어 지혜가 필요함—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다른 사람에게, 구주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를 것 같으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환영했던 것처럼 우리를 환영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만 사람에 뛰어난”(아 5:10) 자이고, “그 전체가 사랑스러운”(아5:16) 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조급하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지혜로써 말해야 한다.
이 일은 우리가 말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사업이다. 그런 재능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죄를 사하는 구주로 소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VSS 27.1)
오순절 전조(前兆:징조)—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 그리고 그들에게 그의 평화를 나누어 주신, 이 그리스도의 행동은 오순절 날에 주어질 풍성한, 성령의 소낙비가 있기 전에 주신 약간의 빗방울과 같은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 사실에 관하여, 깊은 인상을 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위탁된 일을, 추진시켜 나갈 때에 그들은 그 일의 성질과,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방법에 관하여 더욱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구주의 증인으로 인정함을 받았다. 그들은 주님의 부활에 관하여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주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은혜스러운 말씀을 되풀이 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인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은 마치 태양에 서 있었지만,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 천사와 같았다. 그리스도의 흠 없는 품성을 인간의 삶의 표준으로,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사도들의 성업(聖業:거룩한 구원사업)이었다.
제자들은 이 거룩하신 모본과 너무나도 친밀하게 사귀어 왔기 때문에, 그들의 품성은 그분과 어느 정도 닮은 바가 있었고, 그분의 교훈과 모본을 세상에 알리는 데에, 특별히 적합한 사람들이었다.(5BC 1151.1)
인간의 일그러진 특성은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품성을 형성하는 법을, 가장 잘 깨닫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마음과 의지를 꼴 짓고 모양을 잡으시기 위하여, [마음에]들어오시는 데에 방해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이 생각해 낸 모형에 따라, 그들의 품성을 완전하게 꼴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품성이 꼴 지어져야 할 모형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품성이다. 구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로 동의할 때, 그들의 삐뚤어진 특성은 사라질 것이다.
*** 자아가 십자가에 죽으면, 그리스도 품성과 같이 사랑이 솟아나 넘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