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 〈요한계시록의 네 기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년)가 요한계시록 6:1-8을 목판화로 새겼다. 그림 상단에는 백마를 타고 면류관을 쓴 사람이 활을 쏘며 달린다. 이는 파르티아 군대를 상징한다. 그 다음 붉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보인다. 그림에선 ‘큰 칼’이지만 그리스어 성경에 의하면 당시 로마인들이 쓰던 ‘단검’으로 내란을 상징한다. 그림 복판에 있는 세 번째 검은말을 탄 사람은 저울을 휘날리며 달린다. 저울은 기근의 상징물이다. 가장 아래 청황색 말을 탄 것은 사망을 의미한다. 사망은 전염병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말발굽 아래 사람들이 쓰러진다. 화면을 가득 메운 말 네 마리가 땅 전체를 장악했다.
사도 요한은 로마 제국을 향한 네 가지 심판을 예언했다. 당시 로마 제국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던 파르티아와 전쟁이 있을 것이고, 네로 황제 이후에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황제들이 죽고 죽이는 내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전쟁과 내란의 결과 제국의 신민들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다가 심지어 창궐하는 전염병을 맞을 것이다. 이 네 가지 심판으로 제국을 지탱하는 모든 사람이 환란을 당할 것인데, 임금, 왕족, 장군, 부자뿐만 아니라 종과 일반 시민도 심판의 대상이다. 뒤러는 요한계시록의 예언대로 제국 모든 사람이 맞았던 심판을 표현하기 위해 말발굽 아래 다양한 이들을 목판에 새겼다.
뒤러는 특히 저울을 들고 검정말을 타고 있는 사람을 복판에 그렸다. 네 가지 심판 중 기근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그가 살았던 16세기 어간 독일 상황과 관련 있다. 16세기 독일 경제는 호황을 누렸지만 빈부의 차가 컸다고 한다. 국가의 경제는 발전하는데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오그라들었다.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고 했던가. 독일 농민 30만 명이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1524년 봉기한다. 뒤러는 이런 일을 예견했을까. 농민들이 봉기하기 26년 전에 요한계시록을 인용해 경제적 심판을 묘사했다. 안타깝게도 배고팠던 농민 10만 명이 독일 귀족 군대에 학살당했다.
2020년 온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아프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는다. 네 번째 청황색 말을 탄 사망이라고도 하고 전염병이라 번역되기도 하는 심판을 받는 것만 같다. 게다가 전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더해진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 중 코로나19로 인류만 아프고 위기를 맞았다. 인류는 위기를 맞아 생산과 이동이 제한되었는데, 그 덕분에 대기는 깨끗해졌다. 코로나19는 다른 생명체들을 위협하진 않아서 지구 생태계는 오히려 평안하다.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는데 지구별에 사는 생명체 중 인류만 위기를 겪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제야 깨끗해진 대기를 보아야 한다. 하늘에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