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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전 8시, 여느 주일처럼 연습실은 불이 꺼져있다.
악보가 든 가방과 빵과 음료 보따리를 들고 문을 연다. 책상과 의자가 어지럽게 널려져있다. 시간마다 다른 부서에서 방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시 연습할 수 있는 형태로 책상과 의자를 놓아야 한다.
대략 5분이 지나면 피아노 반주 선생님이 온다. 목동에서 식구들과 함께 오는 그녀는 차에 내려 급하게 계단을 올라왔을 것이다. 숨을 몰아쉬며, ‘늦어서 죄송해요.’하며 웃으며 들어온다.
나는 다시 옆방으로 가서 악보집들과 성가대 옷을 연습실 옆에 가져다 놓는다.
‘오늘은 어떤 곡이죠?’ 반주하는 선생님이 묻는다.
그때, 문을 열고 누가 들어온다. 1학년 여학생, 그 식구는 무려 포천에서 모든 식구가 이곳까지 온다. 반주 선생님이 차를 타서 내게 건넨다. 나는 연습실 밖으로 나선다. 의자에 앉는다. 아이들이 어서 와야 할 텐데. 예배는 8시 30분에 시작이다. 연습 시간을 8시로 정했지만, 15분이 지나서야 대 여섯명이 올 뿐이다. 하는 수 없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연습을 시작한다. 다시 문이 열리고 또 한 아이가 들어온다. 이미 앞 부분의 진도가 나갔지만 하는 수 없다. 다시 반복을 한다. 또 한 아이가 들어온다.
내가 가진 성미 중에서 하기 싫은 것이, 싫어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다. 또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하긴 후자는 전자에 속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 두 가지 모두를 통해 주일 아침에 나를 시험 들게 한다. 속으로 화가 나지만 낼 수가 없다. 그러다가 다음 주에 안 오면 그만이다. 가뜩이나 공부를 할 고등학교 시절에 그것도 주일 아침에 늦잠도 못자고 교회에 왔는데, 학교도 아닌 교회에서 늦었다고 욕을 먹으며 이 짓을 할 아이는 드믈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아침에 성가 연습을 하러 오는 아이들이 신기하다. 무엇이 그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지, 나같으면 절대 안 올 것을 아이들은 오고 있다. 8시 30분은 되어야 열 댓 명의 아이들이 모인다. 예배가 시작할 시간이니 성가 연습을 어서 끝내고 예배에 들어가야 한다.
연습은 예배가 끝나고도 또 있다. 9시 30분에 예배가 끝나면 10시까지 반 별로 성경 공부를 한다. 나는 그 사이에 다른 연습실로 가서 또 똑같이 의자를 배열해야 한다. 스무개 정도의 의자를 두 줄로 배열한다. 그리고 악보를 복사하러 간다. 아이들이 보기 좋게 피아노 반주는 빼고, 또 마디마다 번호를 붙여 악보를 간단하게 줄여놓았다. 사무실에서 복사해 온 악보를 하나씩 끼워 넣는다. 이윽고 10시가 된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온다. 역시 10시에서 10분은 넘어야 아이들이 모인다. 몇 아이들은 반별 모임으로 밖으로 나갔나 보다. 아침과는 달리 아이들은 잠이 깬 듯 앉아서 제각기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대화를 하는지 게임을 하는지, 거기에 몰두해있다. 또는 끼리끼리 이야기를 하느라 내가 연습하자고 소리를 쳐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 - 내가 잘 참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역시 얼러서 연습을 겨우 겨우 시작한다. 이 파트를 연습하면 저쪽 파트 아이들이 떠들고, 저쪽 파트를 연습하면 이 파트가 떠든다. 10시 30분이 되면 유아부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들어온다. 아이들도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연습을 그만하자고 한다.
2.
남포교회 고등부 성가대 지휘를 하는 마지막 예배를 위해 내가 따로 특별히 준비한 찬양은 없었다. 목사님께도 진지하게 떠난다고 말하지 않았고, 내가 떠나는 것을 들은 아이들에게도 웃으며 ‘실력이 없어서 짤렸다.’라고 말을 했다.
떠나기로 결정했으니 어서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었다. 이미 후임 지휘자가 결정이 되었으니 이미 내가 오늘의 예배를 맡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일정이 2월 말로 끝나는 것처럼 나도 마무리를 잘 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학교의 내 장에는 많은 악보집들이 있었다. 지난 겨울, 악보집을 사서 퇴근 시간이 지난 밤이면 악보집에 실린 찬양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었다. 나는 아무 찬양이나 하고 싶지 않았다. 허다한 찬양 중에서 은혜가 되는 찬양을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찬양이 정해지면 오랜 시간 동안 구상을 했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이나, 차를 타고 어디로 향할 때도 내 머릿속에 찬양곡이 함께 있었다. 그 만큼 찬양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한 셈이다.
그런 찬양곡을 가지고, 제 시간에 결코 와주지 않는 아이들, 좀체 집중 하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늘 내 속으로 이런 생각이 지났다.
“ 나는 정말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게 하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못 참는 성미를 가졌어.”
3.
내 전임 성가대 지휘자는 무려 14년을 해왔었다. 참으로 신앙이 좋고, 인품도 좋은 지휘자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 분이 지휘하는 찬양을 2년 동안 들었다. 피아노는 사모임이 치셨는데, 사모님은 음악에 감정을 넣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휘자 선생님은 성실하셨지,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절대 하지 못했다. 모든 찬양은 다 은혜가 되어야 겠지만 내겐 참 지루한 찬양으로 들렸다. 고등부 성가대는 연말로 가면서 어떤 때는 여학생이 하나도 없기도 할 정도로 근근이 이어갔다.
14년 동안 그만둔 것에는 고등부 선생님들 중에 이제 지루한 성가대는 없애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기타와 드럼으로 무장된 찬양 팀으로, 흥미롭게 확 바꿔야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게 대두된 때문이었다. 거기 고등부 목사님도 동조했다.
14년 동안의 성가대를 그만 둘 때, 그 분은 얼마나 참혹하게 물러났는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성가대를 맡았다. 내가 지휘를 맡기 전에 이미 젊은 선생님은 성가대에서 또 아이들을 떼어 내어 찬양팀도 만들었다. 성가대 인원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찬양팀을 만들었다는 것은 장차 지루한 성가대는 없애야 한다는 의도가 있었다.
아무리 고등부 성가대 지휘자이지만, 지휘자가 그만둔다는 말이 돌자,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내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더군다나 함께 고등부 교사를 하는 조 선생님께 내가 할 수 있다는 의견을 그냥 보였을 뿐인데, 그러나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바람이었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고,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널려있었다. 헌데 내가 지나듯 한 말을 조 선생님이 고등부 목사님께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은 여러 지원자들을 고려해보지도 않고, 대뜸 내게 다가와 ‘집사님이 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목사님의 성품은 나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성가대가 음악성이 있는 찬양을 하는 것은 이왕이면 좋지만, 성심성의껏 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것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목사님은 실력보다 인품이 가장 좋은 나를 대번에 지명하여 부른 것이다.
4.
성가대를 처음 하면서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회 고등부 성가대 지휘를 했고, 정신여고에서 관현악반을 창단하여 거기 지휘를 해왔었다는 경력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전공을 하지 않는 것을 비루하게 나타내 보일 뿐일 수 있었다.
나는 합창 지휘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러나 스스로 음악에 대한 감성은 있다고 여겼다. 이 감성은 음악을 공부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이다.
성가대를 맡고 여름이 지나면서 나는 내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부에 와서 예배를 드리며, 찬양을 들었을 때, 지금까지 없던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찬양이 끝나면 아멘과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담임 목사님 예배 시간 조차, 대 예배의 찬양에 조차 침묵을 지키는 것이 교회의 전통적인 분위기였다. 급기야 초가을 어느 날 성가대의 찬양을 마쳤을 때, 아멘과 박수 소리가 이른 아침 고등부 예배실에 가득 울렸다. 이제 말씀을 시작하기 위해 앞에 선 목사님은 한 동안 말을 시작하지 못했다. 고개를 한 참이나 숙이고 머리를 들어 이윽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성경 말씀이 아니었다. 그 분은 신대원을 나왔지만 여러 찬양팀에서 봉사를 해서 음악을 아주 좋아하고, 노래도 잘 하는 분이었다.
“ 제가 평생 예배를 보면서, 찬양을 들었지만, 오늘처럼 은혜로운 찬양은 처음이었습니다. ”
5.
내가 성가대를 지휘하는 마지막 예배에는 교육부 서기 장로님이 오셨다. 그 분은 의례 그렇듯 마치 큰 관직을 맡고 게신 듯 근엄하게 고둥부 예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기 또 한 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후임 지휘자 선생님이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들리는 말로는 지휘를 아주 잘한다는 소문이었다.
신앙고백이 마쳐지고, 오늘의 성경 봉독, 욥기 34장이었다. 광고를 마치고 내가 일어섰다. 성가대도 따라 일어섰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사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와서 내 찬양을 듣기를 원했다. 내 후임자도, 나의 찬양대에 아마 놀랄 것이었다. 이 정도의 수준인 줄은 전혀 짐작을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는 보란 듯이 지휘를 해 나갔다. (오, 나의 오만한 자만심이여. 신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여)
성가대의 찬양이 끝나고 나는 박수를 기대했다. 허나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멘 소리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랜 침묵만이 있었다.
목사님은 이미 말씀을 하기 위해 서 계신 터였다. 지난 어느 가을 날처럼 침묵이 있었다. 그 분은 마침 내 입을 열어 내가 떠나는 것을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목사님은 설교를 시작했다. 1장부터 욥은 일관되게 자신이 억울하게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항변하고 있었다. 오늘 목사님은 영화 ‘밀양’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한 어머니의 아이가 괴한에게 끌려 죽임을 당했다. 어머니는 땅이 꺼지는 슬픔 속에서 잠겨있다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기서 용서를 배웠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살인자를 찾아가 용서하기로 작정했다. 얼굴에는 선한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평화가 가득했다. 살인자를 만나서 내가 용서하겠노라고 말하자, 살인자는 태연하게 이미 자신은 하나님을 통해 용서를 받았노라고 말한다. 용서라니!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제 멋대로 용서라니! 하나님이 뭔데 내가 하지 않는 용서를 멋대로 하다니..
6.
끝나고 나를 위한 환송회가 있었지만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떠날 때는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성가대를 그만 두는 이유가 소위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객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두고 나를 마음껏 비난했을 것인데, 그럴 때마다 조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다른 교회에서 숨은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하면서 말을 해주었다.
더군다나 내가 떠나는 것을 너무 아쉬워하는 분이 계셨다. 음악을 전공하시고, 성가대를 여러해 하시고 그래서 합창에 조애가 있으신 정 집사님. 그 분은 예전 남포교회 4부 성가대를 지휘하던 ‘이종기’ 지휘자가 잠시 아파서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복귀하려고 했을 때, 그 사이 지휘자로 부임한 분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다시 들어오지 못한 것을 너무 속상해하고 있었다.
그 정 집사님은 마치 내가 그 분과 비견될 사람이라고 언제부터 여기고 있었다. 사리가 분명하고, 그래서 좋고 싫음이 분명한 분이었다. 그 분은 언제부턴가, 주변에다가 ‘지휘자님은 어쩜 그렇게 은혜로운 찬양을 만드시느냐’고 감탄 하셨다. 겨울이 올 무렵 어느 날 그 분은 마치 나의 모든 인품이 성스러운 찬양으로 가득 차 있다는 듯이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7.
나는 욥이 졸지에 재산을,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잃고도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하고, 저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불평 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영화 ‘밀양’의 자식을 잃은 어머니처럼 자신이 하지 않은 용서를 하나님이 한 것에 대해, 당신이 뭐라고, 어떻게 내 슬픔과 아픔을 뭣대로 용서해주느냐고, 웃기지도 않는다고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여겨진다.
우리의 믿음은 대체로 현상적이지, 실제적이지 안다.
‘사랑하는 하나님’이라고 늘 말하지만, 나는 그 사랑이 얼마나 내 가슴에 애절한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 죄를 멸하시는 부담스러운 분으로 여겨질 뿐이다.
술과 담배를 절대 먹지 않는 것으로 기독교인이라고 자부를 한다. 그것을 신앙으로 안다. 헌금을 하면서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이웃사랑이다. 오리를 걷자하면 십리를 동행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어떤 모임에서 기도원에 가자고 해 놓고, 막상 운전할 사람을 찾으면 서로 이유가 많아, 정작 차를 가지고 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종교를,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자존심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이 자존심으로 무장하여 누구와 타협도 없다. 기독교 인들 앞에서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나 우리가 느끼는 온기는 차이가 없다.
내가 남포교회를 떠나면서, 조 선생님은 나의 뒷 모습이 혹, 어둡게 비춰질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다른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으며 라고 변명해 주었다. 수련회에 굳이 나를 초청해서 강의를 하게 해서 강사료를 주고, 교사들에게 나의 수고를 알려 선물을 마련해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 손길 속에서 나는 사랑을 느꼈고, 하나님 창조한 사랑을 느꼈다.
그러므로 나는 찬양은 하나님에게 받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찬양은 남에게 잘 났다고 드러냄이며, 그것으로 자기 만족을 느끼는 수단일 뿐인 것이었을지라도, 그래도 찬양을 지휘하며 그동안 한 사람에게라도 은혜를 주었으면 나도 그분의 자녀일 자격이 있지않겠냐는 항변이나 하면서......
‘샬롬* 예수님의 향기를 느끼게 하신분들의 떠남이 못내 아쉬워서 안전부절* 가끔 소식들려주세요 정00 드림’ 2/26 9:39pm 011-9668-12**
(2012.2.27)
첫댓글 세세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조박사님 덕에 못난 제가 무리없이 성가대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사료도 상품권도, 선물도요. 다음에는 강사료 더 올려주세요.(^^) 아마 조박사님은 제 지휘가 지휘한 찬양팀을 들었으니, " 어, 이게 아닌데, '하실 것이지만 역시 겉으로는 참 잘했다고 말할 인품인 줄 제가 압니다. 감사.
우리 교회에서는 제가 의도적으로 강사비를 안주는데....3월 11일 창조과학에 대하여 다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강의를 통해 많은 기쁨을 주셨기에 다시한번 이런 강의를 요청하는 것으로 압니다.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여 욕심을 냈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시행하실려나 우리는 짐작할 수가 없지만 엄청난 활력을 제공하시지 않을까 가늠해 봅니다. 주님의 선하신 섭리가 동행하길 제가 간곡하게 기도하겠습니다. 교감님의 아쉬움과 남아있는 조박사님과 그리고 여러 분들의 안타까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누가 들어오든 나가든 이냥 저냥 무관심한 교회 풍토 속에서 교감님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신 분도 없을 겁니다. 오늘 교사 모임에 갔더니 교감님 송별 파티를 제대로 해드리자는 이야기가 또 나왔습니다. 여하튼 인복이 많으신 분이 틀림없습니다.
교감님께서 지휘하셨던 찬양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찬양이었을 텐데요... 경일교회에서는 강의와 함께 50주년 기념집 편찬 등 새로운 색깔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 같네요. 하나님께서 새롭게 삶의 코너를 돌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인도하심과 은혜를 간구합니다.
교감선생님께서 지휘하시던 그 성가대 학생들은 참 운이 좋은 학생들입니다. 교감선생님이 지휘하시는 성가대에서 찬양하고 싶어지네요.
교감님의 마지막 찬양지휘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올리셨으면 좋지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참 좋았을텐데요. 카페 회원들이 모두 듣고 싶어 했습니다. 교감님도 두고 두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창조과학 동영상은 올려주시겠지요?
교감님은 단회적인 삶의 자취를 항상 비단에 수를 놓듯이 살아가는 분이심을 저는 잘 압니다. 마지막 찬양곡으로 어떤 곡을 선택하셨는지 개인적으론 그 점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 곡에 남겨 두고 가는 교회와 양무리를 위한 기도와 앞날을 인도해주실 주님께 대한 간구가 어쩌면 모두 담겨 있는 곡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감님의 세례명은 미카엘(MIchael)로서 천사의 우두머리인 미카엘 대천사장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주님을 배반한 사악한 사탄의 세력을 응징하고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그의 용맹스런 모습처럼 앞날의 행보에서는 지난 날의 영광보다 갑절이나 더한 영광을 주님께 돌리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할렐루야.